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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08화 (108/169)

108화

어느새 아렌달 가문의 셋째 아가씨인 아리엘도 벌써 4살.

이제는 말도 곧잘 하고, 언니들을 따라서 집 안 이곳저곳을 뛰어다닐 정도로 자랐다.

샤를로트의 배 속에 있었을 때는 정말 얌전한 아이였는데, 막상 태어나고 보니 세 자매 중 가장 활동적인 아이가 태어났다. 낯도 가리지 않고, 정말 잘 돌아다녔다.

전 스톨 백작인 장인의 성격을 빼다 닮아서 그런지, 아리엘은 장인이 특히 아끼는 아이였다.

아리엘을 보겠다고 심심하면 뉴렌달에 찾아올 정도였다.

"아리엘은 정말 이쁘구나. 허허허-"

장인의 말에 아리엘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뻐요?"

"그럼. 이쁘고말고."

그 말에 옆에 있던 아리스가 장인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저는요? 저는 안 이뻐요?"

"당연히 아리스도 이쁘지."

그 말에 옆에서 그림을 그리던 아리아가 슬쩍 장인을 바라봤다.

눈치 빠른 장인은 아리아에게만 들리도록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아리아가 제일 이쁘단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아리아의 모습에 샤를로트가 장인에게 말했다.

"아버지. 시간이 늦었어요. 이만 쉬세요."

"그럼 그럴까?"

자리에서 일어나는 장인의 모습에 아이들이 아쉬운 얼굴이 되었다.

그 모습에 장인은 빙긋 웃으며 주머니에서 금화를 꺼내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애들한테 돈 좀 그만 주라니까요."

"내가 가진 게 돈밖에 없으니 돈이라도 줘야지. 허허허-"

샤를로트는 장인의 대답에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애들한테 돈이 뭐가 필요하다고…"

"그럼 나는 이만 돌아가야겠구나.

얘들아. 다음에 또 보자꾸나."

"안녕히 가세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다음에 또 봐요."

"할아버지. 안녕."

아이들의 작별 인사에 장인은 아이들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 주고는 돌아갔다.

"장인어른은 정말 변하지 않는 것 같단 말이지."

"아버지가요?"

"라이언에게 들으니 여전히 노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

베르겐 왕국이나 브레튼에 무슨 행사만 있으면 놓치지 않고 찾아간다고 하더라고."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아렌달은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인터리아와 코아스탈이라는 두 개의 신도시가 완성되었고, 각 도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와 철도가 만들어졌다.

인구도 꾸준히 늘어나 아렌달의 생산력은 계속해서 올라갔고, 그 생산력으로 만들어 낸 상품들은 동대륙뿐만 아니라 중앙대륙과 남대륙까지 팔려 나갔다.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꾸준히 성장하며 아렌달에서 만들어진 소설이나 연극, 음악, 스포츠 등이 다채로운 모습으로 아렌달을 즐겁게 해 주고 있었다.

현대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마법 아이템들도 계속해서 만들어져 백성들의 생활 양식도 정말 많이 변했다.

이제 아렌달에는 냉장고가 없는 집이 없었고, 열심히 돈을 모은 사람들은 집을 소유하거나 차를 소유한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과거에 영주의 지배 밑에서 나누어 주는 것만 받았던 백성들은 이제 스스로 얻어 내고, 소유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가장 크게 변한 건 백성들이 주체적인 생각을 한다는 것이지.'

기초 의무 교육부터 고등 교육, 그래도 대학에서 전문 교육을 마친 인재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면서 아렌달의 산업 곳곳에 투입되고 있었다. 그만큼 생각하는 인재들이 늘어났고, 그들로 인재 산업은 더 빠르게 발전해 나갔다.

그나마 아렌달을 벤치마킹하며 따라오는 베르겐 왕국이나 브레튼에서도 아렌달의 발전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아렌달의 백성들은 이제 다른 곳에서는 살지 못한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래도 장인어른 같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왜요?"

"가끔이라도 옛날을 떠올릴 수 있게 해 주잖아."

"저는 별로 예전의 저를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

예전의 저보다는 지금의 제가 좋은걸요."

"그래?"

"옛날에는 그저 좋은 가문에 시집을 가기 위해서만 살았으니까요."

도시의 좋은 귀족과 결혼하겠다고 온갖 교양을 익혔던 샤를로트가 아니었던가.

가끔씩 아렌달로 와서 아이스크림으로 스트레스를 풀던 모습을 나 역시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은 좋아하는 소설도 쓰고, 연극도 즐기고, 가끔씩 당신과 이렇게 시간도 보낼 수 있지만, 옛날의 모습 그대로였다면 그저 가문 안에서 귀부인들과 교양이나 떨면서 살았을 거예요.

그게 귀족 가문의, 영주의 딸로 태어난 여자의 삶이었으니까요."

아마 샤를로트라면 그렇게 살지만은 않았을 것 같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를 만나서 다행이네."

"……"

"아니야?"

내 물음에 샤를로트는 대답을 피하고 나를 살짝 흘겨보았다.

살짝 달아오른 귀를 보면 굳이 말로 듣지 않아도 샤를로트의 대답을 알 수 있었다.

백성들이 주체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서 아렌달은 더 빠르게 발전해 나가고 있지만, 그 안에는 당연히 문제도 있었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기존의 기득권층과의 갈등이었다.

언제나 수동적이었던 백성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기득권층에게는 거슬리는 게 당연했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이세계에는 신분이 존재했으니까.

귀족들은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 백성들에게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아렌달에 이주한 지 오래된 귀족들은 그나마 불만이 적었지만, 아렌달을 관광하기 위해 찾아오는 왕국의 귀족들에게는 아렌달 백성들의 행동이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감히 평민 따위가 귀족의 앞길을 막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이오?"

"귀족이 평민의 물건을 빼앗은 게 무슨 잘못이라는 말인가?

평민 주제에 귀족인 나에게 먼저 저 물건을 바치지 않은 것이 더 큰 잘못 아닌가!"

"아렌달에는 귀족법도 없는가! 건방을 떤 평민을 죽인 것이 무슨 죄라는 말이냐?"

이런 귀족들의 성토에 백성들도 가만히 듣고 있지는 않았다.

"아렌달의 주인이신 데우스님도 아무렇지 않게 평민을 대해 주시는데, 자기들이 뭐라고 뻗대고 다니는 거야?"

"가진 것이라고는 귀족이라는 혈통밖에 없는 사람들이 뭐가 잘났다고 저러는지 모르겠네."

"아렌달 건설의 리암님을 보라고. 평민들과도 아무렇지 않게 필드에서 공을 차시잖아."

"진짜 귀족은 데우스님이나 리암님처럼 백성들을 이끌고 함께해 주시는 분들이지.

저렇게 혈통 말고 아무것도 없는 놈들이 무슨 귀족이라고. 쯧쯧."

이런 신분 갈등 속에서 아렌달의 행정관들만 힘들어지고 있었다.

"아렌달을 찾는 귀족들의 불만이 나날이 늘어 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백성들의 불만도 늘어 가고 있고요."

"코아스탈에서 또 한 명이 죽었네. 이번엔 나르비크 왕국의 귀족인가?"

"자신이 사려고 한 상품을 평민이 먼저 집었다고 죽였다고 합니다."

"뺏은 것도 아니고 먼저 집었다고 죽였어?"

"그렇다고 합니다.

그것도 호위 기사의 검을 빼앗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였다고 합니다."

"하- 그런 귀족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사는 거지?"

내 한숨에 리오가 말했다.

"저는 평민이라 모르겠습니다."

"귀족인 나도 모르겠다."

정말 그런 귀족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뭔가 확실한 이유라도 있다면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겠지만, 정말 아무런 이유도 없이 평민을 죽이는 귀족들이 가끔씩 나타났다.

당연히 그들은 무죄를 주장하며 왕국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지만, 아렌달에서는 아렌달의 법을 따라야 하는 법.

"그래도 귀족이라 뉴렌달에 있는 교도소에 구금했습니다."

"나르비크 왕국에서는 뭐라고 하는데?"

"나르비크 왕국이야 유감스럽다는 반응만 보이고, 귀족을 풀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 가문에서 평민의 목숨값을 할 테니 당장 나르비크로 돌아올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더군요."

"항상 똑같은 대답이네.

그리고 겨우 몇백 셀링 내놓는 게 무슨 목숨값이야?"

"그것도 주기 싫어하는 귀족 가문이 수두룩하지 않습니까?"

물론 지금까지 그따위 협상을 하려던 귀족들 중 아렌달 교도소에서 풀려난 귀족은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만 단위의 목숨값을 지불한 귀족 가문이나 형을 조금 감행해 주었을 뿐, 아렌달 교도소에 잡혀 들어간 귀족들은 대부분 아렌달에서 내린 형기를 채우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귀족법에 따르면 그들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것 아닙니까?

아무리 아렌달에서는 죄가 된다고 알려도, 왕국의 귀족들은 지키지 않을 겁니다."

리오의 말에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왕국들은 아렌달과 같은 변화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어느 왕국이나 평민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칫 하다가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평민들에게 빼앗길 수도 있을 테니까.

"아렌달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귀족들이 몇 명이나 되지?"

"거의 30명 가까이 됩니다.

대부분은 나르비크 왕국의 귀족들이지만, 베르겐 왕국이나 아스타나 왕국 출신의 귀족들도 있습니다."

"그놈들은 노역도 안 하지?"

"교도소에 들어가 있다고 해도 귀족이지 않습니까?

귀족님들이 노역을 하겠습니까?"

리오의 대답에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졌다.

"이제부터 아렌달 교도소에 들어오는 귀족들은 전부 노역을 시킨다."

"진심이십니까? 귀족들에게 일을 시키다가는 다른 왕국과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아렌달에서는 아렌달의 법을 따르겠다는 생각이라도 할 것 아니야."

그 말에 리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과연 교도소의 귀족들이 노역을 할까요?

교도관들의 지시도 듣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요."

"말을 듣지 않는다면, 말을 듣게 만들어야지."

"설마 교도관들에게 폭행을 시킬 생각이십니까?"

"아니- 괜히 때렸다가 귀족 가문에서 들고일어날 수도 있잖아."

"그럼요?"

"앞으로 아렌달 교도소에서의 식사는 전부 직접 사서 먹으라고 해."

"네?"

"노역을 통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배를 채우게 만들라는 말이다.

그리고 교도소 밖에서 영치금도 넣지 못하도록 막으면 살기 위해서라도 노역을 하겠지.

만약 그래도 노역에 임하지 않는 귀족이 있다면 그냥 굶어 죽으라고 해."

내가 내린 강경한 조치에 리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다가 정말 굶어 죽는 귀족이 나오기라도 한다면 왕국 간의 분쟁이 생길 수도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렌달을 찾는 귀족들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조치는 필요했다.

"귀족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명분이라는 것 알지?"

"물론입니다."

"귀족들에게 말해.

우민한 평민들도 스스로 벌어서 먹고사는데, 평민보다 우월한 혈통을 가진 귀족이 스스로 벌지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 아니냐고. 귀족이라는 혈통이 정말 우월한 것인지 스스로 증명하라고 말이야."

노역을 시킬 만한 명분을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정말 귀족이 평민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 주려면 노역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 버리면 귀족 가문에서도 불만이 있을지언정 목소리를 높일 수는 없었다.

가문에서 나서서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귀족의 무능함을 보여줄 수는 없을 테니까.

무능한 귀족이 속한 가문이라는 오명을 쓰고 싶은 귀족 가문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스스로 무능함을 인정하는 녀석들에게만 지금과 같은 식사를 넣어 줘."

이런 선택을 하는 귀족은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니, 가문으로 돌아갈 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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