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현대인-102화 (102/169)

102화

브레튼과의 신경전을 계속하고 있던 베르겐 왕국에서 사신이 찾아왔다.

"베르겐 왕국은 아렌달이 가져간 스톨과 엔나, 기르만 영지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겠소.

또한 그 곳에 살고 있던 백성과 영주들의 이주도 허락해 주겠소.

그러니 그 대가로 브레튼의 독립을 저지하는데 아렌달이 힘을 빌려주시오."

"아렌달이 가져간 게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온 것이지.

이미 오래전부터 왕도보다 아렌달과 더 가까이 지낸 영지들 아닌가?

영주들이 아렌달과 함께하기를 바라기에 나는 그들을 받아 주었을 뿐."

"그게 그 말이지 않나!"

내 대답에 벨파스트 후작이 눈을 부라렸다.

나로 인해 중앙에서 축출되었던 벨파스트 후작이 중앙 정치로 복귀했다. 그리고 아렌달을 설득하기 위해 직접 찾아왔다.

아렌달로 탈출한 3개 영지를 포기할 테니 브레튼의 독립을 막아 달라는 메세지를 가지고 온 것이다.

"이제 70살도 넘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소리를 치다가는 갑자기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공작은 베르겐 왕국의 왕족이 아닌가! 베르겐 왕국이 이렇게 조각나도록 가만히 있을 셈인가!"

"왕국을 생각하고 계셨다면 덴프린스가 그렇게 날뛰도록 놔두지 말았어야지.

그리고 왕국의 공작위는 진작에 내려놓았다는 걸 잊은 건가? 벨파스트 후작."

벨파스트 후작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후우- 베르겐을 위해 딱 한 번만 도와주시오."

"제가 베르겐을 돕는다고 어떻게 될 상황은 아닐 것이오.

이미 북부의 백성들은 베르겐 왕국이 아닌 브레튼의 백성이 되었으니.

그들의 민심이 이미 베르겐 왕국을 떠났는데 이제 와서 붙잡는다고 그들이 다시 베르겐 왕국의 백성이 될 것 같은가?"

"……"

"브레튼과의 일에 아렌달이 베르겐 왕국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오."

내 대답에 벨파스트 후작이 주름진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 역시 브레튼의 민심이 왕국을 떠났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만약 베르겐 왕국이 브레튼을 제압한다고 하더라고, 북부의 백성들은 다시 브레튼을 일으키려 할 것이다.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한 벨파스트 후작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 평생을 바친 왕국이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되었군."

"나 때문이 아니라 발전을 포기하고 현재에 안주한 당신들 때문이지."

베르겐 왕국으로부터 들어오던 목재나 석재들의 자원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왕국의 손을 들어 주지 않았던 것에 대한 보복성 조치였다.

당장 아렌달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 없기에 거래를 막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렌달을 압박하기 위해 내린 조치는 분명했다.

"돈을 조금 더 들여서라도 나르비크에서 가지고 와야지.

나르비크도 식량이나 철 등의 금속 자원들이 비싼 것이지, 목재나 석재 등 건설 자재의 가격은 안정됐잖아?"

"거기다가 나르비크는 지금 남대륙 원정으로 인해 돈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건설 자재를 보내 달라고 하면 당장이라도 자재를 보내 줄 겁니다."

전쟁이나 벌이는 국가에 돈을 쓰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미 시작한 신도시 건설을 늦출 수도 없는 일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도시 공사는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는 거지?"

"인력이야 충분하니 자재가 밀리지만 않는다면 차질없이 진행될 겁니다."

"일단은 그렇게 하자고.

베르겐 왕국도 이 흐름을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달으면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테니까."

갑자기 늘어난 인구로 인해 뉴렌달에는 사소한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저 이주민들 때문에 우리 일자리가 줄어든 것 아닙니까!"

"대부분 신도시 건설에 투입되는 이주민들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든다니! 그런 억지가 어디 있나?!"

이주민들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사람들이 너무 늘어나서 도시가 더러워졌어.

이주민들의 위생 개념이 너무 떨어지는 것 아니야?"

"도시가 더러워진 게 왜 이주민 탓이야! 그리고 아렌달만 위생을 따지는 줄 알아?

이주민이라고 무시하는 거야 뭐야?!"

도시가 어지러워졌다고 이주민을 배척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늘어난 만큼 작은 범죄들도 늘어나기 시작하며, 뉴렌달의 원주민과 이주민들의 갈등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경비대를 늘렸는데도 문제가 생기는구나."

"이게 다 백성들이 너무 살기 좋아져서 이런 겁니다.

백성들끼리 서로 비난하고 싸우다니. 옛날에는 상상도 못 하던 일 아닙니까?

옛날이 뭡니까? 바로 몇 년 전입니다."

이주민을 배척하는 것이야 어느 곳에서나 있는 일이었지만, 지금과 같이 대놓고 떠드는 일은 없었다.

원주민이나 이주민이나 영주의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아렌달로 이주해 온 게 몇 년이나 되었다고 원주민 행세인지…"

"데우스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사실상 바깥 영토에 사는 백성들은 모두 이주민이 아닙니까?

지금 도시 운영에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쓸데없는 문제들까지 행정관들에게 들어 달라니."

귀찮아 죽겠다는 듯 말하는 리오의 모습에 내가 말했다.

"무슨 방법을 찾아야겠지?

옛날처럼 닥치고 지시를 따르라기에는 백성들의 생각이 많이 변했으니까."

"그냥 경비대와 군 병력을 동원해서 치안을 더 안정시키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음- 지금 다른 나라들이 전쟁을 하는 상황에도 아렌달의 분위기는 좋게 유지했는데, 지금 와서 군을 동원해 분위기를 다운시키기에는 아쉽지 않아?"

"그렇지만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지 않습니까."

리오의 말대로 가장 쉬운 방법은 이주민들과 분란을 일으키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방법이었지만, 그로 인해 도시의 분위기가 망가지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때 조용히 듣고 있던 볼튼이 말했다.

"그냥 백성들끼리 잘 지내라고 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 방법이…"

"원래부터 뉴렌달에 살고 있던 백성들과 이제 막 뉴렌달로 이주해 온 백성들에게 동질감을 가지게 만들면 서로 잘 지내지 않겠습니까?"

"동질감?"

"원주민이든 이주민이든 아렌달의 백성들은 본질은 똑같지 않습니까?

백성들에게 동질감을 가지게 만들어, 서로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면 지금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겁니다."

"볼튼이 생각한 방법은?"

"축제를 개최해서 같은 문화를 즐기게 만드는 건 어떻습니까?"

볼튼의 제안에 나는 속으로 감탄을 하고 있었다.

기사인 볼튼이 군사적 행동보다 문화적 행동으로 백성들을 통합하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오드리의 영향을 받은 건가?'

볼튼이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는지 리오도 상당히 놀란 얼굴이었다.

"축제를 통해 같은 문화를 즐기고 동질감을 느끼게 하자니…"

"좋은 생각 같은데?"

기존의 원주민들과 비교해서 이주민들은 문화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축제를 함께 즐기며 아렌달의 문화를 즐긴다면, 그들도 쉽게 문화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리오 어때? 축제를 열어도 괜찮겠지?

새로운 인구의 유입으로 생산력에 차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시의 자금 상태도 인공 마나석의 거래 덕분에 부족한 상태는 아니잖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니-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아렌달이 스톨과 엔나, 기르만을 환영한다는 의미를 담으면 더 좋을 것 같아.

원주민들이 이주민들을 환영한다는 모양을 만들어 버리면 지금 같은 분위기는 자연스레 사라지지 않겠어?"

환영의 분위기를 내세워 축제기를 기획하게 된다면 원주민들도 체면상 지금같이 이주민을 배척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데우스 님께서 말씀하시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하도록 하죠."

"요리 대회나 공모전 등 쉽게 참여할 수 있고,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것으로 시작하자고."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에 백성들은 불만이 아닌 기대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행정관들을 괴롭히던 사소한 문제들도 차츰 줄어들었다.

3개 영지에서 이주해 온 백성들도 처음 맞는 아렌달의 축제에 큰 기대를 품은 눈치였다.

"이번 요리 대회의 기르만 남작님의 전속 요리사가 출전한다던데?"

"그건 반칙 아니야?"

"몰라. 그래도 기대되지 않아? 기르만의 고기는 유명하잖아?"

"이번 축제 기간에 얼마나 많은 작품이 공모전에 나올지 기대가 되네요."

"근래에 대작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들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작가들도 있을 테니 기대해 봐도 되겠죠?"

"이번 축제에는 토너먼트는 열리지 않는 건가?"

"아직까진 이야기가 없지만, 축제에 토너먼트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지.

만약 데우스 님께서 토너먼트를 열어 주시지 않더라도, 리암 님께서 나서서 추진할 게 분명하잖아?"

"하하- 맞아. 리암 님이 계시는 한 토너먼트 대회는 무조건 열리게 되어 있지."

축제에 대한 기대감으로 도시에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쳤고, 그로 인해서 그동안 서로를 배척하던 분위기도 완전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볼튼에게 말했다.

"볼튼이 한 건 해 줬네."

"제가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볼튼. 이제라도 행정 일을 배워 보는 게 어때? 어차피 데우스님과 항상 함께 있으니까 볼튼도 행정을 알게 된다면…"

리오의 말에 볼튼은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기사가 행정이라니? 책상에 오래 앉아 있지도 못하는 제게 행정을 하라고요?

분명 답답해서 뛰쳐나갈 겁니다."

"책상을 부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하하- 맞습니다. 책상을 부숴 버릴지도 모르죠.

그리고 만약 그게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 신경을 쓰다가 데우스 님의 호위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어떡합니까?"

볼튼은 이렇게 가끔 아이디어를 내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축제가 열리면서 라디오 방송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하는 중계방송이라는 것에 백성들은 귀를 열고 라디오에 집중하고 있었다.

"스틸러스의 압도적인 피지컬에 맨체스터 선수들이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스틸러스가 토너먼트를 가져가겠군요."

"맨체스터는 몸싸움이 아닌 테크닉과 콤비네이션으로 스틸러스를 공략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어려워 보입니다."

직접 대회를 보지 못해도 실시간으로 들려오는 대회 소식에 엄청나게 몰입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야말로 맨체스터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대로 무너질 생각이냐. 맨체스터!"

"하하하- 맨체스터가 우승 트로피라니. 꿈도 크지."

"1라운드에서 탈락한 리버의 추종자는 조용히 하지?"

"축구 중계가 끝나면 요리 대회도 중계해 준다고 했는데. 도대체 축구는 언제 끝나는 거야?"

아렌달 어디에 있던 축제를 함께하는 느낌에 백성들은 동질감을 느끼며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아렌달의 기술력은 매번 놀랍네요. 라디오를 통해 축제 상황을 계속 알 수 있다니.

마치 어디에 있던지 현장에서 함께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아렌달의 기술 만큼이나 문화 역시 대단한 것 같습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섞이지 못하던 백성들이 이렇게 쉽게 섞이다니.

아렌달 문화가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것 같습니다."

"스톨이나 엔나, 그리고 기르만은 아렌달의 기술이나 문화를 꾸준히 접해 오지 않았습니까?

덕분에 백성들도 쉽게 적응을 한 것이겠죠."

이주한 귀족들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런 귀족들에게 말했다.

"백성들만 즐기는 축제는 아쉽지 않겠습니까?

축제가 열리는 동안에는 백화점에서도 행사가 열릴 겁니다.

이번 축제를 위해 각 상단들이 비장의 상품들을 준비했을 뿐 아니라, 백화점의 멤버쉽을 위한 경매 행사도 있을 테니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아렌달의 축제는 정말 재밌는 일들이 많군요."

"이것도 다 아렌달의 문화력 아니겠습니까? 정말 기대가 됩니다."

일반 백성들과 다르게 귀족들은 돈을 쓰면서 친해지는 법.

이주한 백성들만큼이나 이주한 귀족들도 아렌달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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