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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97화 (97/169)

97화

14일마다 하루.

한 달에 단 이틀밖에 안 되는 휴일.

지구에서라면 정말 악독한 근무 환경이 아닐 수 없는 상황에서도 리오는 고개를 저었다.

"진심이십니까?"

"그래. 그리고 휴일을 받는 건 건설 현장이나 공장 등에서 일하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다.

농업이나 어업, 그리고 자영업자들은 그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 쉴 수 있는 1차 산업 종사자들이나 자영업자들은 정기적인 휴일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다.

따로 지시가 내려지지 않으면 쉬지 못하는 현장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왜 그런 조건을 생각하셨는지… 혹시 제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리오는 어느새 흥분을 가라앉힌 모습이었다.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성과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무조건 일하는 시간이 늘어난다고 결과가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너무 많이 일하게 되면 그만큼 많은 피로가 쌓이잖아? 그 피로로 인해 사소한 실수들이 발생하고, 그 실수들로 인해 일의 능률이 떨어질 수 있지."

"피로와 실수…

하지만 피로와 실수는 일을 많이 하던, 일을 적게 하던 발생하는 요인 아닙니까?"

"하지만 쌓이는 피로의 무게가 다르지. 가끔 휴일을 통해서 피로를 풀게 되면, 그 피로로 만들어지는 실수가 조금이라도 줄어들겠지."

"……"

"그리고 백성들이 휴일을 요구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는지 생각을 해봐."

"문화생활을…"

"그래. 노동자들에게 휴일을 주는 것은 다른 분야에 도움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 말에 리오는 잠시 생각을 하고는 말했다.

백성들이 휴일을 요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함이었다.

자신들이 일해서 번 돈을 다른 곳에서 소비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는 것이다.

"돈을 쓸 시간이 생긴 백성들은 소비를 통해 도시의 경제를 성장시켜주겠지."

"도시에 돈이 도는 만큼 세금도 늘어나겠군요."

"맞아. 백성들에게 휴일을 주면 생산량이 줄어드는 손해가 생길 수도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것을 상쇄할 만큼의 이득이 생기지 않겠어?"

그리고 무조건 쉬게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휴일을 챙기지 않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그만큼의 임금을 더 주게 되면 휴일 없이 일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돈을 더 벌 기회를 만들어 주어서 일하게 만드는 거군요."

"문화생활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나, 돈을 모아서 집이나 자동차 등 값비싼 물건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갑자기 생산이 멈추는 일도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 설명하자 리오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는 모습이었다.

"14일에 하루…"

"어때? 그 정도면 휴일을 주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

"……데우스님. 만약 백성들이 그 14일에 하루를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휴일을 바란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당장은 아니라도 나중에… 나중에는 더 많은 휴일을 주겠지.

10일에 하루가 될 수도 있고, 7일에 하루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휴일을 줄 수도 있겠지."

"데우스님. 백성을 위하는 데우스님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백성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면 안 됩니다.

언젠가 백성들은 데우스님의 은혜를 잊고 점점 더 많은 것을… 어쩌면 데우스님의 것까지 내놓으라고 요구할지 모릅니다."

리오의 충고에 나는 씨익 웃었다.

"내 것을 가져가고 싶다면 한번 해보라고 하지.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 보라고 해.

나는 믿을 수 있는 수석행정관이 있어서 걱정이 없어. 하하-"

내 말에 리오는 한숨을 쉬며 웃었다.

"하아- 마음대로 하십시오."

단 하루의 휴일일 뿐이었지만, 그 휴일만큼은 마치 축제라도 되는 듯 도시에 활기가 돌았다.

축제가 아님에도 아침 늦게 일어날 수도 있고, 낮에는 각자 취미에 맞는 문화생활을 즐기고, 저녁에는 먹자골목에서 지인들과 다음 만남을 약속하는 하루.

그것만으로도 백성들의 삶에 대단한 활력을 주었다.

그만큼 일터에 돌아온 백성들은 다음 휴일을 기다리며 열심히 일했다.

리오가 걱정하던 영지의 생산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사소한 사고들이 줄어들며 불필요한 피해도 같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데우스님은 휴일이라는 게 이런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란 걸 어떻게 아신 겁니까?"

"가끔 쉬면 기분이 좋지 않아? 그러니까 기분 좋은 상태로 일터에 돌아오면 능률이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인 거지."

"데우스님도 쉬는 날이 없지 않았습니까?

아가씨들께서 태어나셨을 때를 제외하고는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신 적도 없으시고요."

날카로운 볼튼의 질문에 나는 그냥 웃었다.

"내가 경험이 없다고 해도 보이는 건 있으니까.

친위대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 교대를 마치고 휴식을 충분히 취한 친위대의 눈빛은 확실히 달라져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군요."

"그리고 나도 가끔은 정말로 쉬고 싶을 때가 있거든.

그럴 때마다 나름대로 요령을 부리면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따지고 생각해보면 쉬는 날 없이 일한다고 해도 백성들과 나를 똑같이 보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백성들은 산업현장이나 공장에서 기계처럼 일하는 사람들이고, 나는 영지를 발전시킨다는 명목으로 마음 가는 대로 일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도 이제부터는 정확하게 휴일을 챙길 생각이야.

내가 휴일에 쉬어야 백성들도 나를 따라서 쉬지 않겠어?"

"백성들보다 데우스님 본인을 먼저 생각하셔야 합니다. 아렌달에 있어서 누구보다 중요한 것은 데우스님이니까요."

볼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휴일은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

생각해보니 아리아가 아기일 때 같이 보낸 추억이 거의 없어.

아리스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에게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이야."

"그것도 데우스님보다는 아렌달 가문을 위한 생각 아닙니까?

저는 데우스님께서 본인의 중요성을 더 아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소드마스터를 항상 곁에 두고, 온갖 마법 아이템으로 무장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야.

내가 그 중요성을 모른다면 이렇게까지 하겠어?"

"…알겠습니다.

그래도 데우스님은 계속해서 본인의 가치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데우스님께서 무너지시면 아렌달이 무너지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거듭되는 볼튼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공사판의 부품이나 다름없던 내가 이세계에서는 그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있자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는 회사 기숙사에서 부족한 잠을 채우는 것으로 휴일을 보냈다.

핸드폰 게임 말고는 딱히 취미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방바닥에 딱 붙어서 핸드폰을 잡고 시간을 보내다가 낮잠도 자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여유로운 휴일을 보내곤 했다.

'그때가 좋았지.'

그런데 이세계에서의 휴일은 그런 한량 같은 하루를 보낼 수는 없었다.

얼마 전 아이를 가진 샤를로트와 한창 뛰어다니는 아이들 때문에 그냥 잠만 잘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샤를로트의 시녀들이 있어서 내가 크게 도울만한 일은 없었지만, 문제는 아이들이 나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아빠. 이것 보세요. 엄마가 사줬어요."

"이쁘네. 아리아랑 잘 어울려."

꽃장식 머리띠를 하고 와서 자랑하는 아리아에게 이쁘다는 칭찬을 하자 옆에 있던 아리스가 조그만 핀을 내게 줬다.

"아빠!"

"해달라고?"

"네!"

아이의 머리를 한 번도 만져 본 적이 없어서 내가 어물쩍거리자 옆에 있던 시녀가 다가와 알려줬다.

"데우스님. 이렇게 잡고 들어 올려서 찝으시면 됩니다."

"그, 그렇군."

혹시 잘못 당겨서 아프다고 할까 조심스레 아리스의 머리카락을 잡아서 머리핀을 꽂아주자 아리스는 눈을 반짝이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아리스의 얼굴이 점점 울상으로 변해갔다.

그 모습에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아!! 잘 어울려. 아리스는 정말 이쁘구나."

"이뻐요?"

"그, 그래. 이뻐."

다시 밝아지는 아리스의 얼굴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휴- 다행이다.'

아리아에게 머리핀을 보여주는 아리스의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 시녀가 내게 말했다.

"아가씨들을 데리고 갈까요?"

"내가 좋다고 여기서 놀고 있는 건데 가라고 하면 싫어할 거야.

그냥 여기서 놀라고 하지."

"샤를로트님께서 데우스님의 휴식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라고 하셔서…"

"곧 있으면 아이들이 낮잠 잘 시간이니까, 그때 데리고 가도록 해."

"알겠습니다."

아이들이 낮잠에 빠져 시녀들이 데려간 후 나는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집무실에서 쉬기로 했다.

갑자기 모습을 보인 나 때문에 행정관들이 잠시 소란을 피웠지만, 그냥 무시하고 없는 사람 취급해 달라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 결혼한 행정관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내기도 했지만, 나는 무시하고 집무실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을 보내고 있자 누군가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그러는 리오는 왜 여기 있는데?"

"집에 있어 봐야 뭐 합니까? 그래서 여기 있는 거죠."

"기껏 좋은 저택을 만들어 줬더니, 막상 시간은 밖에서 다 보내는구나."

"휴일인데도 여기 계시는 걸 보니 드디어 깨달으셨군요.

제가 여러 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결혼은 무덤입니다. 하하-"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게 말하는 리오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그런데 볼튼과 친위대는 어디 있습니까?"

"나도 모르지."

"설마 밖으로 나오시는 데 친위대도 없이 혼자 나오신 겁니까?"

"여기가 밖이야?"

"당연하죠."

"관청이랑 집이랑 붙어있는데?"

독립하기 이전에는 영주관이라고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던 곳이었다.

지금이야 따로 관청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여기도 내 집이나 마찬가지인 곳이었다.

"그래도 여기는 외부인도 많이 들어오는 공간인데, 혼자서 돌아다니시면 어떡합니까?

당장 볼튼과 친위대를 부르겠습니다."

"아- 그러지 말라고."

"데우스님! 그렇게 데우스님의 안위를 무시하다가 자칫 위험이라도 생기신다면 아렌달은 끝장입니다."

"충심으로 하는 말인 건 알겠지만, 그것도 계속 듣다 보면 지겹다고."

그 말에 리오는 한숨을 쉬었다.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참에 친위대 없이 도시로 나가볼까?"

"네?!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열렬히 반대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리오였다.

"암행이라고 하나? 그런 것 있잖아?

왕이나 높으신 분들이 다른 사람으로 위장하고 도시의 시찰을 다니면서 백성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말이야."

"암행도 호위 기사들과 함께 가는 것이지 그렇게 혼자서 다니시는 게 아닙니다!"

"누가 혼자래?"

"네? 데우스님 혼자 가시려던 게 아닙니까?"

"당연하지. 혼자 무슨 재미로 암행을 나가?"

내 대답에 리오는 안심했는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 잘 생각하셨습니다. 혼자서 암행이라니 말도 안 되죠. 당장 볼튼을…"

"준비해. 지금 바로 나갈 거니까."

"준비하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 허업!"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리오에 나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오늘은 리오가 내 호위를 해줘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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