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현대인-91화 (91/169)

91화

뉴렌달로 이주하면서 만들었던 첫 번째 공장.

제철소의 불가마는 오늘도 철을 생산하기 위해 마법의 불을 꺼트리지 않고 달아오르고 있었다.

철은 '산업의 쌀'이라고도 불리는 만큼 각종 산업이 발달하고 있는 아렌달에서도 어마어마한 양이 소비되는 자원이었다.

농기구를 시작으로 건설장비나 마법 무기, 자동차 등 마법 아이템까지 철이 빠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어마어마한 양을 소비하고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철광산이 계속 발견되면서 지난해부터는 조금씩 철이 남기 시작했다.

그래서 남는 철을 사용하기 위해 머리를 굴린 결과 한때 포기했던 운송 시설을 만들기로 했다.

'동력 장치의 출력은 증폭 마법으로 끌어 올릴 수 있고, 이제 차량이나 화물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기술도 있다.

그동안 미뤄왔던 이유는 철. 레일을 깔 만큼의 철이 부족했기 때문이지.'

철도!

철도만 있으면 더 많은 물량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백성들의 이동 수단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다.

자동차가 상용화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기에, 철도는 백성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뉴렌달 광장을 중심으로 항구과 공장지대를 연결하는 레일이 깔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또 무엇을 만들고 계시길래 저렇게 많은 철을 땅에 심으시는 거지?"

"철길을 만들고 있는 거야."

"철길?"

"귀족님들이 타시는 자동차 알지?"

"말이 없는데 달리는 이상한 철 상자 말이야?"

"그래. 저 철길 위에 그런 자동차가 올라간다고 하더라.

이름이… 철차? 기차? 그런 이름이었는데 말이 없이도 철길 위를 달릴 수 있다고 했어."

"너는 그런 정보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내가 몇몇 행정관들이랑 술도 마시고…"

정거장이 만들어지는 광장에는 백성들이 보내는 기대의 목소리가 매일 들려왔다.

"레일 위에 올릴 차량은?"

"마탑에 들어가 있습니다."

"시험 운행을 하려면 레일을 빨리 깔아야겠네."

"차량 정비소 인근에 시험 운행을 위한 레일 공사가 거의 끝났습니다."

"차량 정비소에?"

"처음부터 백성들이 지나다니는 도로를 달렸다가는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차량을 보관할 정비소에도 따로 시험 운행을 위한 레일을 만들었습니다."

시험 운행을 위해서 전용 레일을 깔고 있다는 대답에 나는 손뼉을 쳐주었다.

"그렇지. 그게 맞는 거지."

시험 운행을 위한 레일은 철도 공사를 계획하며 만들었던 계획서에는 없던 지시였다.

그런데 행정관들이 알아서 필요한 부분을 더해 공사를 진행하다니.

신분 사회인 이세계에서 권력자의 지시를 멋대로 해석해서 변경한다니? 그것도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는 사업을.

생각하기도 어렵고, 실행하기는 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렌달의 행정관들은 더 좋은 계획이 있다면 서슴없이 그런 짓을 하고 있었다.

"그럼 나는 마탑에 가볼 테니 뒤는 알아서 정리하라고."

"알겠습니다. 공사의 진행은 따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아렌달 최초의 도시철도인 메트로 원은 지금 마법 장치들을 설치하기 위해서 마탑에 들어와 있었다.

"레일 위에 올라간다는 것만 빼면 그냥 시내버스 같네."

버스보다 조금 길고, 내부 공간이 넓다는 것을 빼면 버스의 외관을 똑 닮은 메트로 원이었다.

"최대 100명이 탈 수 있게 공간을 만든다고 했는데… 100명이 타면 조금 좁을지도 모르겠네."

"말이 100명이지 설마 진짜 100명이 타겠습니까?"

말도 안 된다고 고개를 젓는 자하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지옥철을 경험해보면 절대로 저런 말이 안 나오겠지.'

"광장에서 항구까지 빠른 걸음으로 가도 1시간은 걸릴 텐데, 저걸 타면 겨우 10분밖에 안 걸릴걸?

그런데 저걸 안 탈 것 같아?"

"기차를 이용하려면 비싼 요금을 내야 하지 않습니까? 겨우 몇 분을 아끼자고 돈을 쓰는 건 너무 아까운 것 같은데요?"

"이미 합승 마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는데?

절대 아까워하지 않을 거야."

마탑주가 되어서도 돈 걱정을 하는 자하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나중에 마탑에도 레일이 깔리게 되면 분명 자하도 타고 다닐걸?"

"음- 저는 그냥 마법 연구를 위한 재료나 사겠습니다."

"그래. 그때 가서 보자고."

자하의 말에 어깨를 으쓱한 나는 메트로 원에 들어가는 마법 장치들을 살펴봤다.

"마나석이랑 마법진이 이렇게 많이 들어가는 건가?"

"구동 장치에 쓰이는 마나석만 14개입니다. 속도 제어 장치, 제동 장치 등등 하나하나 따지면 결코 적은 게 아니죠.

이 기차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차원의 마법 장치들이 들어갔는지 들어보시면 분명 놀라실 겁니다."

"아니- 듣지 않아도 이미 놀라고 있어. 그리고 들어봐야 나는 이해도 못 할걸?"

마법이라는 개념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내가 놀라는 것은 지구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계 공학이 발전해 가는 모습 때문이었다.

그리고 만들어 달라고만 하면 진짜로 만들어내는 마법사들의 능력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조정이 많이 필요해서 며칠 시간이 걸릴 겁니다."

"레일을 다 깔지도 않아서 건설 쪽도 시간이 필요할 테니 천천히 해도 괜찮아."

차량 정비소에서 시험 운행까지 마친 메트로 원이 처음으로 뉴렌달의 궤도 위에 올려졌다.

광장으로 천천히 들어오는 철 상자의 모습을 백성들이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정말 귀족님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랑 비슷한데? 조금 크기가 크다는 것만 빼면 말이야."

"저런 걸 만들겠다고 그 많은 철을 사용하다니.

아렌달이 부유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놀라울 정도야."

마침내 정거장에 멈춰서는 메트로 원에서 내가 내리자 백성들이 큰 박수와 함께 환호의 목소리를 보내주었다.

나는 그 환호에 손을 들어 화답해주었다.

"생각보다 기차의 흔들림이 적어. 오늘 당장 운행을 시작해도 괜찮겠어."

"오늘 당장 말입니까?"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도 새로운 시설에 기대하는 모습이잖아?

오늘은 첫 운행인 만큼 소수의 지원자만 받아서 공장지대와 항구에 딱 한 번씩만 운행해 봐."

그 말에 리오가 고개를 끄덕이고 행정관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행정관들은 광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 중 몇몇 인원들을 추려 기차에 탑승할 기회를 주었다.

"우왓!"

"움직인다!"

메트로 원에 탑승한 승객들이 천천히 속도를 올리자 목소리를 내면서 광장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기차에 광장에 남은 사람들이 말했다.

"내일은 나도 타봐야겠어."

"공장지대에도 다닌다고 했는데… 내 일터까지는 얼마나 걸리려나?"

기대감 어린 사람들의 목소리에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동차도 만들었고, 동력선도 만들었고, 기차도 만들었다.

그럼 다음은…'

내 눈에 큰 날개를 가진 바닷새 한 마리가 날아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얼마 전 예상했던 대로 아렌달 백성들의 일거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뉴렌달에 방문했던 외국의 귀족들이 본격적으로 뉴렌달 브랜드를 소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뉴렌달 브랜드의 상품을 보내 달라는 귀족들의 요청으로 도시의 공장들은 쉼 없이 돌아갔고, 상단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운송장비를 동원해 물건을 옮겼다.

"데우스님. 베르겐의 일부 영지에서 이번 달에 들어오는 상품의 물량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베르겐 쪽은 문제가 없잖아?"

"아무래도 외국으로 나가는 물량이 많다는 소식을 들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혹시 자신들에게 오는 물량이 적어질까 봐 걱정하는 걸 겁니다."

"그렇게 물량이 걱정되면 영지민이라도 빌려주던 가.

베르겐에 들어갈 상품은 문제없을 거라고 전달해 줘."

베르겐 왕국은 이미 물류의 유통 라인이 잘 만들어져있기 때문에 물건을 보내기에 좋았다.

아무리 다른 왕국에서 뉴렌달 상품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커진다고 해도 베르겐 왕국이 1순위인 것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르비크 왕국에서 고속도로 공사가 언제쯤 마무리될지 물어왔습니다."

"거의 마무리되지 않았나? 건설 쪽에 확인해서 전달해 줘.

그런데 우리 쪽 도로가 완성된다고 해도 나르비크의 도로가 워낙 형편없어서 크게 달라질 건 없지 않나?"

"뭐- 그렇긴 하죠."

"베르겐 왕국만큼은 아니라도 나르비크 왕국도 도로 정비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베르겐 왕국은 아렌달이 독립하기 전에 왕국을 관통하는 두 개의 고속도로를 만들어 놨기 때문에 물류의 유통이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다른 왕국들은 그와 같은 도로가 없었기에 빠른 유통이 불가능했다.

"뉴렌달 브랜드의 상품을 더 많이 받고 싶으면 먼저 도로공사라도 해야지."

"나르비크 왕국은 공사할 능력도 안 될 텐데요."

가능하다면 베르겐 왕국과 같이 아렌달이 주도해서 고속도로라도 만들고 싶었지만, 당장 아렌달에서 쓸 건설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라 여건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능력이 된다고 해도 자기네 돈을 써가면서 공사를 하겠습니까?

그나마 베르겐 왕국이니까 경쟁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영주들이 투자한 겁니다."

아렌달이 독립한 이후에는 베르겐의 영주들도 영지에 투자하던 금액을 서서히 줄여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 이상 아렌달과 경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순간 주머니를 조인 것이다.

"그래도 스톨처럼 계속해서 투자하는 영지도 있잖아?"

"…그건 스톨이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하긴 스톨이니까 그런 거지."

현 스톨 백작인 라이언 스톨은 더 좋은 것이 있다면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가지고 있는 돈이 워낙 많아서 돈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장인인 전 스톨 백작보다도 손이 더 큰 사람이 현 스톨 백작이었다.

그리고 스톨 백작은 이전에 나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던 스톨은 아렌달과 함께 한다고 했지?'

아렌달이 독립한 이후 베르겐 왕국에서 가장 활기찬 영지가 어디냐고 물어본다면 단연 스톨 영지일 것이다.

왕도나 북부의 체스터 영지도 많은 인구와 공격적인 투자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지역이기는 하지만, 아렌달의 낙수효과를 가장 많이 받고 있는는 스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물론 아렌달의 다른 접경지인 엔나 영지도 뉴렌달 브랜드의 생산기지로서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스톨 영지와는 기본적인 체급이 달랐으니 그 역시 비교할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이번 추수가 끝나기 전에 스톨 영지의 신도시 공사가 마무리될 것 같다고 합니다."

"벌써?"

"스톨 백작님께서 신도시 공사에 돈을 때려 붓고 계시니까요."

"아-"

"그리고 외부 영지로부터 영지민도 엄청나게 끌어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아렌달로 넘어오지 못하는 베르겐 백성들을 스톨에서 전부 받아들이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영지에 돈까지 주면서 영지민을 늘려나가는 것 같습니다."

"신도시에 인구를 채우려면 외부에서 새로운 유입을 받아야 하긴 할 테니까.

그래도 돈까지 주면서 영지민을 받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라이언이 손이 크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미친 듯이 돈을 쓰고 있는 줄은 몰랐다.

"데우스님. 스톨 영지와 이야기를 나눠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

"아렌달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지금 스톨에 모이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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