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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90화 (90/169)

90화

귀족들이 아렌달에 방문한 가장 큰 목적은 당연히 백화점의 경매 때문이었지만, 그것 말고도 아렌달에는 귀족들의 시선을 빼앗을 만한 것들이 많았다.

"형님. 체스터 영지에도 꼭 축구팀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골프를 즐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못 들은 거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체스터 영지에서도 스포츠를 도입했다."

"형님. 골프보다는 축구가 낫지요. 무조건입니다. 무조건.

아렌달에서 왕국이나 영지들과 교류를 위해서 친선 축구 경기도 준비하고 있다고요.

아렌달과 더 깊은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축구팀이 필요합니다."

"…친선 경기라고? 아버지께 말씀드려보마."

아렌달에서 열리는 축구경기를 관전하고, 자신의 고향에서도 축구나 스포츠를 시작하겠다는 귀족들도 있었고,

"이블린이 얼마나 이야기를 하던지… 그래서 요크 영지에도 극장을 만들어 극단을 받을 생각이에요."

"요크 영지에도 새로운 문화가 꽃을 피우겠군요."

"우리 영지에서도 극장이 성공적으로 열릴 수 있게 아렌달에서 많은 조언을 주셨으면 해요."

"후작 부인께서 괜찮으시면 제가 극단의 주인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연극이나 소설 등 문화에 관심을 보이는 귀족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귀족들의 시선을 빼앗은 것은 아렌달의 첨단 기술이었다.

건설, 철강, 조선, 인쇄, 그리고 마법 공학까지 귀족들의 눈과 귀를 현혹하는 기술들이었다.

"백화점도 그랬지만, 어떻게 저렇게 건물을 높게 쌓은 것인지…"

"들으셨습니까? 아렌달에서 만드는 배는 바람이 없어도 바다를 가를 수 있다고 합니다."

"신문? 이렇게 도시의 정보를 막 뿌려도 괜찮은 겁니까?"

"마법으로 이렇게 완벽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말인가? 사진? 이게 그림이 아니라고?"

특히 처음 방문한 귀족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으며 도시를 즐기고 있었다.

"데우스님. 오늘 방송은 어떻게 할까요?

오늘도 라디오 방송이 없는지 문의하는 백성들이 많습니다."

"아침에 라디오 방송이 없었나?"

"귀족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3일 전부터 방송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마법 통신망을 숨기기 위해 라디오 방송을 잠시 멈춰두었다고 했다.

"통신 마법은 매우 쉬운 마법이라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왕국이나 영지에서 기술을 모방할까 방송을 잠시 멈춰두었습니다."

"방송은 따라 한다고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그래도 아렌달의 기술이 쉽게 밖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아예 그 기술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리오의 말에 과거 공사장에서 점검이 올 때마다 공사를 잠시 멈춰두었던 것이 떠올랐다.

"잘했어. 하지만 내일부터는 다시 라디오 방송을 해도 괜찮을 거야.

통신 마법은 분명 쉬운 마법이지만, 방송하기에는 쉽지 않으니까.

다른 영지에서는 우리만큼 통신 마나석을 심을 역량이 안되고, 결정적으로 제일 중요한 게 없거든."

"제가 괜한 일을 했군요.

내일부터 라디오 방송을 다시 시작하라고 전하겠습니다."

"이 기회에 그동안 준비한 걸 라디오로 내보내는 건 어때? 아렌달의 새로운 문화를 퍼트리기에 좋은 기회잖아?"

"그럼 내일 방송에서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라디오 방송을 탄 이후에 새로운 문화 컨텐츠로 준비한 것이 있었다.

"이제 나오려나?"

짧은 오늘의 뉴스가 전해지고, 이후에 기다리던 새로운 문화 컨텐츠가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음- 역시 라디오는 이거지!"

통신 마나석 너머에서 악기 소리와 목소리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울림을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 동안 뉴렌달에서는 오직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만이 들려왔다.

"아- 오늘 방송은 정말 좋았어."

첫 음악 방송에 만족하며 커피를 홀짝이자,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리오가 내 집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데, 데우스님! 지금 관청으로 귀족님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소리를 들어보면 귀족뿐만이 아닌 것 같은데?"

"…네. 백성들도 이곳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아렌달의 백성들은 음악 방송에 들뜬 분위기를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리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집무실의 문을 열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데우스! 방금 방송 뭐예요?"

"샤를로트. 오늘 방송은 어땠어?"

"그, 그게 말로 설명하기가…"

"좋았지?"

"…네."

살짝 달아오른 얼굴만 봐도 샤를로트 역시 오늘 방송에 만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허, 허가 없이는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비켜보게! 방금 그 목소리에 대해 꼭 들어야겠네."

집무실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샤를로트가 굳은 얼굴로 돌아섰다.

"하- 아버지. 거기서 뭐 하세요?"

"아렌달은 또 뭘 만든 것이냐?!"

장인의 흥분된 목소리에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아렌달의 새로운 문화입니다."

라디오를 통해 처음 선보인 음악 방송은 엄청난 파장을 주었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방송을 통해 흘러나오는 풍성한 노랫소리에 백성들은 단번에 매료된 것이다.

"데우스님! 다시 한번 방송을 틀어주십시오. 도대체 그 음악은 무엇입니까?"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려주세요! 꼭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습니다."

백성들의 흥분된 목소리에 나는 손을 들어 진정시켰다.

"오늘 라디오를 통해 나온 음악은 내가 준비한 아렌달의 새로운 문화다.

앞으로 종종 라디오를 통해 오늘처럼 가요와 음악 방송을 내보낼 생각이다."

"가요와 음악 방송입니까?

목소리의 주인공도 알려주십시오!"

가수를 공개하라는 백성들의 요청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공개했다가는 백성들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할 것 같았다.

"가수들의 공개는 다음에 하도록 하겠으니, 이만 물러가도록 하라."

내 해산 명령에 백성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돌아섰다.

백성들이 물러나자 이번에는 귀족들이 목소리를 내었다. 처음 듣는 방송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오늘 들었던 목소리는 무엇입니까?

라디오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렌달에서는 무엇을 만들고 있는 겁니까?"

"대단한 기술도 아닙니다. 통신 마법을 이용해서 백성들에게 아렌달의 목소리를 들려준 것뿐이죠."

"허어- 이것도 마법이란 말입니까?"

내 설명에 귀족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신문물에 다시 한번 아렌달의 기술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깨달은 것이다.

"혹시 스톨 영지에서도 그 라디오를 들을 수 있겠나?"

"음- 스톨 영지까지는 가능할 겁니다. 물론 방송을 위해서 마나석이 많이 필요하겠지만요."

"마나석이라면 구하면 되는 것 아닌가. 아무리 시장에 매물이 없다고 해도 구해보겠네."

그때 한 젊은 귀족이 내게 말했다.

"통신 마법은 저도 사용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통신 마법을 이렇게 대규모로, 그것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제가 알기로 통신 마법은 거리에 따라 마나의 소모량이 늘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 귀족의 말에 일부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라디오는 비정상적인 마법이었을 것이다.

광역으로 동시에 같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통신마법이라니, 얼마나 많은 마나가 필요할지는 마법사가 아니라도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광범위한 통신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마나 스팟."

"…역시. 아렌달에는 마나 스팟이 있었군."

일부 귀족들이 멀리 보이는 마탑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그렇다면 저건 말로만 마탑이 아니라 정말 마탑이라는 말인가?"

"아렌달은 어째서 왕국에 마나 스팟의 존재를 알리지 않은 겁니까!"

마나 스팟은 법에 따라 왕국에서 관리해야 하는 특별한 장소였다.

그런데 마나 스팟의 존재를 알면서도 나는 알리지 않았다.

베르겐의 귀족들로서는 내가 마나 스팟을 독점하기 위해 왕국법을 어겼다는 사실이 불쾌했을 것이다.

"아렌달의 뛰어난 마법 공학은 마나 스팟을 독점했기 때문이었군요."

"아렌달의 마법 공학이 마나 스팟 덕분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지.

마나 스팟이 아렌달에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마나 스팟만으로 마법적 역량을 키울 수 있다면, 왜 왕국들은 수십, 수백 년 동안 마법적 역량을 키우지 못했는가?"

"그, 그건…"

"큼-"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아렌달이 베르겐 왕국으로부터 독립된 지역이라는 것이다.

이제 아렌달은 마나 스팟을 가지고 있다고 이들에게 비난받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베르겐 왕국의 영지일 때부터 마나 스팟을 독점한 것 아닙니까?"

그 말에 일부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대부분은 고개를 저으며 불쾌한 감정을 지웠다.

"그래도 아렌달의 기술은 아렌달의 역량입니다.

마나 스팟을 독점했기에 이만큼 발전했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억지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리고 베르겐 왕국에서 아렌달에 있는 마나 스팟을 관리할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다시 말하지만, 아렌달의 기술은 마나 스팟이 있었기 때문에 발전한 것이 아닙니다.

연구를 위해 충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특허를 통해 기술자들의 권리를 존중해 주었기 때문에 기술들이 모여 발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랍니다."

그 말에 귀족들도 하나둘 돌아섰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전 스톨 백작이 나에게 말했다.

"그래서 통신 마나석만 있으면 스톨 영지에서도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이지?"

귀족들이 돌아간 이후, 곧바로 베르겐 왕국으로부터 아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마나 스팟을 숨겨왔다는 것에 대한 비난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마법 무기를 넘겨주겠다는 약속으로 비난의 목소리를 잠재웠다.

괜히 베르겐 왕국에서 트집을 잡아 시장을 막지 않도록 말이다.

다행히 베르겐 왕국에서도 마법 무기를 받는 조건으로 더 이상 마나 스팟에 대한 문제는 꺼내지 않기로 약속했다.

"괜히 귀족들에게 문화를 전파하겠다고 방송을 틀었다가 마법 무기만 넘겨줬네."

"덕분에 아렌달의 뛰어난 문화력을 귀족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키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베르겐 왕국에는 진작부터 마법 무기를 수출했으니 마법 무기 몇 개로 지금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괜찮은 것 아닙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야. 베르겐 왕국이 남도 아니고, 우리에게는 중요한 왕국이니까."

어차피 A2 소총은 아렌달에서는 가장 떨어지는 무기였다. 몇 개 던져줘 봐야 큰 위협이 되지도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별로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렌달의 문화력과 기술력을 자랑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앞으로 방송 시간을 조금씩 늘려보는 것도 좋겠어."

"지금보다 방송 시간을 늘린다는 말입니까? 그러다가 백성들이 방송에 빠져서 제대로 일하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겨우 방송 시간 조금 늘렸다고 사람들이 일을 안 하겠어?

오히려 방송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 수 있으니 더 의욕적으로 일하겠지.

정해진 휴일도 없이 일하는 백성들에게 그런 재미라도 안겨줘야지."

"음- 저는 너무 백성들에게 즐길 거리만 제공하는 게 아닌지 걱정됩니다."

"괜찮아. 어차피 이제 곧 일거리가 엄청나게 늘어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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