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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89화 (89/169)

89화

"데우스님. 저희 로슈 상단은…"

"잠깐!"

서둘러 입찰하려는 로슈 상단주의 말을 끊었다.

"공개 입찰이 아닌 비공개 입찰로 받을 거야."

"예? 굳이…"

"지금 로슈 상단은 A등급에만 관심이 있겠지만, A등급 외의 다른 등급을 노리는 상단들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지.

대형 상단들은 만약 A등급에서 밀리게 되면, 곧바로 B등급에 넣을 생각이잖아?"

"그거야 당연히…"

"그렇게 하면 중, 소형 상단은 계속해서 뒤로 밀리겠지."

그 말에 지금까지 목소리를 내지 않던 몇몇 상단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 소형 상단주들이 보내는 신뢰의 눈빛을 받으며 대형 상단의 주인들에게 말했다.

"1차 입찰에서 자리를 배정한 후, 나머지 빈자리에 2차 입찰을 받을 것이다.

만약 2차 입찰에서 원하는 자리가 없다면, 아무리 대형 상단이라고 해도 아래 등급으로 밀리는 것은 당연하겠지?"

그 말에 대형 상단의 주인들이 빠르게 눈동자를 굴렸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상단 중 대형 상단이라고 불릴만한 상단은 리비아, 울드, 로슈 상단을 비롯해 총 8개.

그 8개의 상단이 모두 A등급의 배정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자칫 재수가 없으면 A등급에서 밀릴 뿐 아니라, B등급, 아니 C등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A등급은 분명 명당자리지만, B등급도 그렇게 나쁜 자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A등급에는 35%라는 엄청난 수수료를 내야 하지 않은가.

명당은 아니더라도 좋은 품질의 상품을 준비한다면, B등급에 배정받더라도 충분히 고객을 끌어올 수 있었다.

"길드장. 내가 가지고 온 입찰 용지를 상단주들에게 나눠 줘."

몇몇 상단주들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커피를 홀짝이자, 리비아 상단주가 내게 말했다.

"데우스님은 정말 무서운 분입니다. 랄프가 상단을 떠나 데우스님께 의탁할 때만 해도 이렇게 무서운 분인 줄은 몰랐는데…

차리라 그때 리비아 상단을 통째로 데우스님께 바쳤다면 어땠을까 생각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랬다면 지금 랄프의 자리는 리비아 상단주의 자리가 되었겠지."

"하하- 그렇습니까?"

"근데 지금도 나쁘지 않잖아? 리비아 상단도 베르겐 왕국 아니, 동대륙에서도 한 손에 꼽힐 만큼 거대 상단이 되었으니까 말이야."

그 말에 리비아 상단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찰 용지를 채웠다.

"거대 상단을 이끄는 총수라면 그 자리에 맞는 선택을 해야겠지요."

리비아 상단을 시작으로 상단들은 하나둘 자신이 원하는 자리를 선택하며 입찰했다.

"울드 상단은 C등급인가?"

"어차피 저희가 취급하는 상품은 거의 데우스님께서 처리해주실 테니 굳이 명당이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B도 아닌 C등급 자리를 입찰하고 여유롭게 구경하는 울드 상단의 모습에 나머지 대형 상단들이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

"이제부터 뽑아보자고. 과연 누가 최고 명당을 차지하게 되는지 말이야."

"그럼 백화점이 개관하는 날 다시 뵙겠습니다."

백화점 1층 입구, 최고 명당의 주인이 된 리비아 상단주는 만족의 미소를 지으며 길드를 나갔다.

그리고 로슈 상단주가 굳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분명 3년 후에 새로 자리를 배정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물론. 그리고 만약 그 이전에라도 어떤 상단이 자리를 빼게 되면 길드를 통해 새로 알려 주지."

"알겠습니다."

로슈 상단주는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며 나르비크로 돌아갔다.

어마어마한 자본의 힘 덕분에 백화점은 빠르게 완성되었다.

그리고 장인인 전 스톨 백작의 입소문 덕분에 백화점이 개관하는 시기에 맞춰 귀족들이 뉴렌달을 찾아 주었다.

베르겐 왕국을 포함해 나르비크 왕국, 그리고 베르겐의 귀족들과 인연이 있던 아스타나 왕국과 오울루 왕국 등 외국의 귀족들까지 백화점에 관심을 보이며 뉴렌달을 방문해주었다.

"백화점의 개관을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아렌달의 주인이신 데우스 아렌달님을 모시겠습니다."

준비된 연단에 오르는 내게 모이는 시선에 나는 미소와 함께 말했다.

"상단과 귀족들의 도움 덕분에 아렌달에 백화점이 들어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아렌달은 상단들과 협력하여 귀족들이 만족할 수 있는 상품들을 준비할 테니,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아렌달을 찾아 주시길 바랍니다."

내 인사에 귀족들이 손뼉을 쳐주었다.

"그리고 앞서 공지해 드린 대로 오늘은 백화점의 개관을 축하하는 기념으로 특별한 상품에 대한 경매가 열릴 예정입니다."

"……"

일부 귀족들이 긴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 시선에 씩 웃으며 그들이 기다리는 말을 했다.

"오늘의 경매 상품은 마법 무기 A2 소총입니다."

백화점으로 관심을 모으기 위한 내 비장의 한 수에 귀족들은 걸려들 수밖에 없었다.

베르겐의 귀족들은 데프린스 공작의 반역 사건에서 마법 무기의 위력을 확인했지만, 진짜 마법 무기의 위력이 동대륙에 퍼지게 된 것은 베일리에서 있었던 아스타나 왕국과의 전투에서였다.

아스타나 왕국의 병력 수천 명이 소실된 그 전투에서 아렌달 군은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하며 단 한 명도 피해를 받지 않았었다.

마법 무기를 따라 만들고 있음에도 압도적인 화력의 차이를 느낀 타국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아렌달의 마법 무기를 얻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렌달에서 직접 마법 무기를 경매에 내놓는다고 하니 관심을 끊으려고 해도 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인사를 마치고 연단에서 내려오는 내게 스톨 가문의 부자가 다가왔다.

"내가 입소문을 내지 않아도 괜찮았을 것 같군."

"그 입소문이 없었다면 귀부인들이 이렇게 모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저 무기에 관심이 있는 영주들이나 모였겠죠."

"음-"

"아마 상단의 주인들은 입소문을 내준 장인어른께 감사할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허허허-"

장인은 자신이 한 일이 헛된 일이 아니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크게 웃었다.

"데우스님. 그런데 오늘 경매에 참여하려면 멤버쉽이 되어야 한다고 하던데, 그건 또 무엇입니까?"

"멤버쉽은 백화점에서 일정 금액 이상 사용한 고객들이 가입할 수 있는 특별 회원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특별 회원권이요?"

"그렇습니다.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특별한 상품을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마법 무기라면 그 특별함에 어울리는 상품 아니겠습니까?

아무에게나 허락해서는 그 가치가 떨어지기 마련이죠."

"그, 그렇군요."

"그동안 내 주머니를 터는 실력을 봐서 알고 있었지만, 자네는 상단을 차렸어도 대단했겠군."

"이미 아렌달 상단은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상단입니다."

"허허허- 그래. 내가 아렌달 상단을 잊고 있었군."

"아- 그리고 멤버쉽 회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동안 아렌달의 상품을 많이 이용해 주셔서 이미 멤버쉽 회원이시니까요."

"휴- 그것참 다행입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라이언에 장인이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오늘 상품들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머니가 열렸을 텐데."

"그래도 아버지를 제어할 명분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안심입니다."

"허허허- 과연 네가 나를 제어할 수 있겠느냐."

신상품들을 보기 위해 떠나는 두 사람을 보며 나는 씩 웃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가장 많은 돈을 쓰는 사람은 분명 스톨이지.'

내 예상대로 이날 가장 많은 돈을 쓴 사람은 다름 아닌 스톨 백작이었다. 그것도 전 스톨 백작이 아닌 현 스톨 백작, 라이언 스톨 말이다.

멤버쉽이 되기 위해 주머니를 열은 귀족들이 가면을 쓴 채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붉은 장막으로 가려진 무대가 어서 빨리 열리기를 기다리던 귀족들은 천천히 걷어지는 장막에 눈동자를 빛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 아렌달 백화점에서 준비한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목소리에 준비된 상품들이 차례로 모습을 보였다.

중앙 대륙에서 들어온 도자기나, 보석이 박힌 장검, 용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과일까지.

가히 특별한 상품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하지 않은 물건들이었다.

하지만 귀족들은 쉽게 주머니를 열지 않았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상품이 있었으니까.

"오늘의 마지막 상품은 기다리시던 아렌달의 마법 무기. A2 소총입니다."

사회자의 목소리에 준비된 A2 소총이 무대에 모습을 보였다.

"저게 그 마법 무기라는 건가?"

"평범한 사람이라도 저것만 있으면 쉽게 기사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지."

귀족들의 웅성거림에 사회자는 나를 한번 바라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경매에 앞서 이 소총이 진짜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화력 시연을 하겠습니다."

실제로 마법 무기의 위력을 확인시켜주겠다는 말에 사회자의 말에 귀족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화력을 보여준다니? 아렌달이 마법 무기를 팔기 위해 작정을 했군."

"멤버쉽에 가입하려고 벌써 엄청나게 돈을 썼는데, 화력까지 보여주면 도대체 얼마나 가격이 뛸지…"

귀족들의 목소리에 사회자가 신호를 주자 숙련된 병사가 무대 위로 올라와 A2 소총을 잡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마나석을 결합하고 준비된 마네킹을 향해 화력을 보여주었다.

"파이어!"

-팡!

시원스러운 폭음과 함께 마네킹의 머리가 날아가는 모습에 귀족들이 감탄했다.

"아직 시연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번엔 갑옷을 향해 발사해보겠습니다."

병사의 목소리에 귀족들이 다시 기대의 눈빛을 보냈다.

"파이어!!"

-팡 팡 팡 팡 팡!

머리가 없는 마네킹의 몸통을 향해 연속으로 5발을 발사한 병사는 완전히 일그러진 갑옷과 마네킹을 귀족들에게 보여주었다.

"이것으로 A2 소총의 화력 시연을 끝내겠습니다."

사회자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귀족들이 눈을 빛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경매가 시작되는 것이다.

"준비된 A2 소총은 총 20자루입니다.

경매는 한 번에 5자루씩 총 4회에 걸쳐서 진행되며, 누가 경매에 낙찰받았는지는 철저하게 비밀로 부치겠습니다."

마법 무기를 낙찰받은 사람을 비밀에 부친다는 목소리에 귀족들은 서둘러 자신들의 주머니를 확인했다.

"그럼 지금부터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5, 5천 셀링!"

"6천!

"1만 셀링!"

"……"

급격하게 올라가는 경매 금액에 몇몇 귀족들이 허탈한 한숨을 쉬었다.

'역시 부동산만큼이나 무기 장사 역시 돈이 되는구나.

군수업체들이 돈방석 위에 있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어.'

지금까지 돈을 받고 마법 무기를 팔았던 적이 없어서 비교해보지 못했는데, 바깥의 땅을 분양할 때보다 훨씬 큰돈이 모이는 느낌이었다.

순간적으로 마법 무기를 대량으로 찍어내 팔면 왕국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였다.

"볼튼. 돌아가자."

"끝까지 지켜보지 않으시는 겁니까?"

"더 지켜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더 이상 지켜봤다가는 나도 모르게 무기 장사를 시작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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