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나르비크 왕국과 국경 인근에 출입관리소도 만들고 있었다.
바깥 영토를 분양받았던 귀족들이 자신의 마을에 출입관리소를 만들겠다고 다투는 헤프닝이 있었지만, 출입관리소는 영지군의 거점에 만들기로 했다.
치안을 생각해서도 영지군이 직접 관리하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이었다.
"위성도시의 건설을 조금 서두르는 게 나으려나?"
"나르비크에서 이주민이 얼마나 발생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음- 그런가?"
"그리고 지금은 도시 건설에 투입될 인력도 없습니다.
나르비크 왕국 방면의 고속도로 공사도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고. 얼마 전에 스톨 영지로 인력이 빠져나가기도 했잖습니까?"
"음- 스톨 영지에 공사 인력을 괜히 빌려줬나?"
"앞으로 있을 신도시 건설을 위해 경험을 쌓고 오라고 보낸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인력을 괜히 빌려준 건 아니죠.
데우스님. 너무 서두르시는 것 같습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일을 벌이다가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 주십시오."
"하긴. 예전에도 한 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하다가 꼬인적이 있었지."
적절히 제동을 걸어주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의 말대로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아렌달 상단이 많은 공을 들였음에도 나르비크 왕국에서 넘어오는 이주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르비크의 귀족들도 바보는 아니었는지, 그냥 백성들을 쉽게 내어주지는 않았다.
백성들의 이동을 더욱 어렵게 해서 자유민이라고 해도 쉽게 나르비크 왕국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급하게 일을 벌이지 않아서 다행이네. 자칫하면 첫 삽만 떠놓고 공사를 멈춰놔야 했을지도 몰랐겠는데."
"제가 그렇게 서두를 필요 없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바로 공사를 시작했었다면, 맨땅에 버리는 셀링이 어마어마했을 겁니다. 하하-"
자신의 공이라는 듯 말하는 리오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주민이 많지 않은 덕분에 치안은 굉장히 좋습니다.
뉴렌달이나 귀족들의 마을이나 큰 사건 없이 잘 굴러가고 있고요."
인구의 유입이 적은 것은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아렌달의 동력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나르비크 왕국이라는 새로운 시장 덕분에 뉴렌달 브랜드의 생산량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뉴렌달 브랜드의 상품을 생산하는 귀족들은 부를 쌓으며, 베르겐의 영주들보다 훨씬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귀족들보고 마을에 투자 좀 하라고 해야겠어. 앞으로 일정 이상 소득을 올리면 마을이나 도시에 투자를 해야한다는 법이라도 만들어야지."
"네? 갑자기 그러면 반발이 있을 텐데요?"
"반발하는 귀족들에게는 뉴렌달 브랜드의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 되지."
"그, 그렇군요."
"돈은 계속 흘러야지, 고이게 되면 경제에 좋을 게 없다고.
도시에 투자할 만한 게 없나 찾아보자. 귀족들이 돈을 쓸 수 있도록 말이야."
"마탑도 투자가 필요하지?"
내 물음에 자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투자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역시… 마법사는 이래야지."
"그런데 갑자기 투자 이야기는 왜 꺼내신 겁니까?
어디서 금광이라도 터진 겁니까?"
"그건 아니고, 귀족들이 돈을 너무 안 쓰는 것 같아서 투자를 조금 받을까 생각 중이야."
"그, 그건 말이 투자지 그냥 귀족들의 주머니를 털겠다는 것 아닙니까?"
"어허! 주머니를 털다니? 내 덕분에 많은 돈을 벌었으니 조금이라도 아렌달을 위해 써달라는 거지."
"……"
내 말에 자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야? 그래서 마탑은 안 받을 거야?"
"저는 안 받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서둘러 대답하는 자하에 나는 피식 웃었다.
"이참에 마탑을 증축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여기서 더 높게 올리실 생각이 십니까?"
"마탑이라면 조금 더 높아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앞으로 마법사들이 계속 늘어날 텐데 새로운 마법사들을 위해서라도 마탑을 증축할 필요는 있잖아."
"그렇겠네요. 아무래도 마법 연구의 효율은 마나 스팟 위가 가장 좋을 테니까요."
자하의 대답에 나는 남은 커피를 마시고 일어났다.
"바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아니. 방위 기술 연구소에서 신무기의 보고를 들어야 해. 마탑에 잠깐 들린 것도 그것 때문이다."
"알비레오가 아침부터 마탑을 뛰어나간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군요."
"함선에서 사용할 무기 개발이 끝났다고 하니까 직접 확인해봐야지 않겠어."
"아마 충분히 만족하실 겁니다."
"그래?"
내 물음에 자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동대륙의 바다는 아렌달의 것이라고 공표해도 될 겁니다."
마력탄이 철판을 녹이는 모습에 나는 손뼉을 쳤다.
"이거 한방이면 웬만한 것들은 전부 녹아버릴 겁니다."
"이건 굳이 바다 위에서 사용하지 않아도 되겠는데."
"네? 마력탄의 열기가 너무 강해서 지상에서 쓰면 그 일대가 전부 불타버릴 텐데요?
지면까지 불이 붙어서 주변을 전부 태워버릴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폭격 마법을 써도 주변이 초토화되는 건 똑같은데 뭐."
"그, 그렇군요."
새로운 무기가 보여준 퍼포먼스에 만족한 나는 마무와 알비레오에게 말했다.
"여기도 투자가 필요하지?"
"이번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어서…"
"네! 투자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역시. 마법사들이란…"
상반된 두 사람의 대답에 웃음이 나왔다.
"이봐. 아티스트. 마법 연구에 대한 투자는 마탑에서 받으라고."
"하하- 제가 하는 마법 연구는 마법 무기 개발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까?"
마탑과 방위 기술 연구소, 양쪽에서 지원을 받는 알비레오였다.
"아무튼, 그동안 수고했으니 잠깐이라도 휴식을 가지도록 해."
휴가를 준다는 말에 마무는 활짝 웃었다.
휴가라고 해도 뉴렌달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휴가는 휴가였다.
"마무. 괜찮다면 내가 호텔의 방을 마련해 주겠다."
"볼튼경. 그게 정말이 십니까?"
호텔을 이용할 수 있다는 말에 마무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런데 해안가 호텔은 혼자 쓰기에는 너무 부담스럽지 않아?"
"음-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아, 아닙니다! 꼭 호텔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저 혼자 쓰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 말에 나는 마무를 바라봤다.
"마무는 솔로 아니었나?"
"그, 그게…"
내 말에 마무는 어색하게 웃었다.
"뭐야? 무기 개발한다고 연구소에서만 지냈던 사람이 언제 애인을 만든 거야?
혹시 마법 무기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한 스파이라거나…"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볼튼 마무에게 호텔의 꼭대기 층을 열어줘."
"꼭대기 층을 말입니까?"
"!"
귀족들도 사용하지 못하는 꼭대기 층을 주라는 말에 마무가 굳어 버렸다.
그런 마무를 두고 알비레오에게 말했다.
"알비레오는 필요한 것 없지?"
"저는 마나석만 주시면 됩니다! 1등급으로, 이왕이면 주먹만 한 크기로 몇 개만…"
"주먹만 한 크기의 마나석이 지금 어디 있냐!"
"중계기로 심은 통신 마나석 몇 개만 캐서… 헙! 아닙니다!"
내 눈빛에 알비레오가 황급히 입을 막았다.
"자하에게 달라고 해. 몇 개 있겠지."
"감사합니다. 하하-"
"마탑 박혀서 연구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밖에도 나와보라고.
마무를 보라고 저렇게 연애도 하고…"
"저는 마법사인데요?"
"아- 마법사는 연애도 결혼도 안 하지?"
"시간 아깝게 연애는 무슨 연애입니까?
진리를 추구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네~ 그러시겠죠."
내 말에 알비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알비레오의 고갯짓에 마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법사는 정말 결혼을 안 합니까?"
"?"
"저, 정말로 결혼은 안 하는 겁니까?"
"?"
"그, 그러면 안 되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마법 연구 단지에서 보내는 마무였다.
그런 마무의 눈에 들어온 사람이었으니 마법 연구 단지에서 생활하는 사람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마법사가 연애라니? 저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그래?"
"그럼요! 진리를 추구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그 아까운 시간을 겨우 연애에 투자한다니?
가짜 마법사가 분명합니다."
"가짜 마법사? 가짜 마법사가 마법을 쓸 수 있어?"
내 물음에 알비레오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대답했다.
"그건… 불가능하네요.
마나를 느끼고 마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리의 문 너머를 봐야 하니까요."
대답하면서도 알비레오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알비레오 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도 제법 놀라고 있었다.
언젠가 마탑주에게 당당하게 지원을 요구하고, 지원이 없다면 아렌달로 가겠다고 말했던 그녀.
미리아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설마, 마법 연구를 위해 마무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한 것은 아니겠지?"
"데우스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큼- 농담이야."
미리아의 표정을 보면 정말 마무의 이야기에 즐거워하는 것이 보였다.
그때 마무가 미리아에게 어떤 말을 하자 미리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마무가 이번 휴가 때 해안가 호텔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자신과 같이 휴가를 가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볼튼의 중계에 나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미리아를 바라봤다.
잠시 뜸을 들이는 미리아는 쉽게 답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미리아! 우리는 진리를 추구해야 할 마법사다!"
"쉿! 조용히 해!"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알비레오를 붙잡고 미리아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답을 내렸는지 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무의 제안을 미리아가 받아들였습니다."
"호오- 그래?"
"마, 말도 안 돼! 마법사가 어떻게…"
마무도 놀랐는지 벌떡 일어났다.
마무를 보고 웃고 있는 미리아의 모습에 나는 생각했다.
'마법사는 변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마법사도 조금씩 변하는 건가?'
그동안 조금씩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에서도 마법사들은 언제나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알비레오나 달리아처럼 조금 특이한 행동을 보여주는 마법사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본질은 다른 무엇보다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법사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순간 자하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기사의 시대가 끝난다… 그렇다면 언젠가 마법사 역시 사라질지 모르겠군요."
"기사랑 마법사는 다르지 않나?"
"……"
"기사의 힘은 마법 무기로 대체할 수 있지만, 마법사의 힘은 대체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이제는 세공사들이 마나석을 다루고, 마법진만으로도 마법을 발동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새로운 마법은 마법사밖에 못 만드는 것 아니야?"
"음-"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법사는 진리가 우선인 사람들이잖아? 다른 데는 별로 관심도 없고."
"진리… 그렇군요. 마법사들에게는 진리가 있었군요."
그때의 대화와 미리아의 웃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마법사가 진리를 버리면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