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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86화 (86/169)

86화

통신망을 새로 만드는 이유는 당연히, 라디오를 송출하기 위함이었다.

지난번같이 중계기에 메세지를 보낼 수도 있었지만, 중계기를 이용할 경우 기존의 통신이 끊겨버리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메세지만 전송할 수 있는 중계기와 메세지를 받을 수 있는 수신용 마나석을 만들었다.

그 결과 엄청나게 많은 마나석을 통신 작업에 사용하게 된 것이다.

"마나석 광산이 몇 개만 더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이제 뉴렌달에는 작업이 거의 끝났으니까 다른 분야로 마나석을 돌릴 수 있겠지."

"근데 정말 라디오라는 게 필요한 겁니까?"

"당연하지."

대중매체가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 것인지는 경험해보면 알 수 있다.

단순히 정보의 전달뿐 아니라, 문화의 전파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고, 거짓 뉴스를 퍼트려 백성들을 선동할 수도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특정 메세지를 전달해 세뇌까지 가능한 것이 대중매체의 힘이었다.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겠지만, 금방 알 수 있을 거야.

라디오와 대중매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말이야."

뉴렌달 방송국은 마탑 바로 옆에 지어지고 있었다.

먼 거리까지 메세지를 보내기 위해서는 마나 스팟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대한 마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메세지의 송출은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한 거지?"

"네."

"그럼 한번 방송을 시작해 볼까."

그 말에 마법사들이 일부 마나석을 조작하며 주문을 외웠다.

"준비되었습니다.

여기에 말씀하시면, 뉴렌달과 아렌달 성, 볼튼경의 호텔, 그리고 대학에만 메세지가 전달될 겁니다."

자하의 말에 나는 빛나는 송출 마나석에 대고 말했다.

"아아- 라디오 테스트, 라디오 테스트. 여기는 아렌달 방송국.

지금부터 아렌달의 첫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다."

나는 첫 방송의 안내와 함께 준비한 뉴스를 전달해주었다.

뉴렌달의 가벼운 사건들과 오늘의 날씨를 약 5분간 이야기했다.

"아아- 여기는 아렌달 방송국.

이것으로 아렌달의 첫 라디오 방송을 마친다."

내 마지막 멘트와 함께 마법사들이 다시 마나석을 조작하며 마력의 흐름을 끊자 빛나던 송출 마나석도 빛을 잃었다.

"잘 된 건가?"

"제대로 되었다면 이제부터 통신이 오겠죠."

자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통신 마나석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여기는 뉴렌달입니다. 아렌달 방송국입니까?

"리오인가? 라디오는 어땠어?"

-항구에서 일어난 사건과 광장의 충돌사고. 그리고 오늘의 날씨에 대한 이야기가 5분 정도 전달되었습니다.

"좋아. 잘 전달됐네."

뉴렌달에는 메세지의 소실 없이 전부 잡힌 것 같았다.

그리고 뉴렌달에 이어서 아렌달 성과 볼튼의 호텔, 그리고 대학에서도 문제없이 라디오가 송신되었다는 통신이 이어졌다.

만족스러운 첫 방송에 나는 웃을 수 있었다.

"첫 방송은 성공적인 것 같네."

그 말에 볼튼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지난번과 같은 유령소동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 참 다행이네."

라디오 방송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신문의 발행도 시작했다.

아직은 제지 기술과 인쇄 기술이 좋지 않아 대량 생산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동안의 투자로 뉴렌달의 백성들에게 소식을 알릴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은 되었기에 신문을 발행하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신문이라는 매체에 아렌달의 백성들은 대단한 관심을 주었다.

대부분 글자를 읽을 줄 아는 아렌달의 백성들이었던 만큼, 신문은 쉽게 스며들며 뉴렌달의 소식들을 백성들에게 전달해주었다.

"자네. 신문 봤는가?"

"신문? 아직 못 봤는데?

뭐 특별한 이야기라도 있었나?"

"음- 아렌달과 나르비크 왕국이 교역을 시작할 것 같더군.

얼마 전 나르비크의 사절단이 왔다 갔었잖아? 그게 교역을 시작하기 위한 사절단이었던 것 같아."

"그러면 나르비크 왕국과의 국경도 열리는 건가?"

"왕국과 교역하려면 국경이 열리는 건 당연한 것 아니야?

왜 나르비크와 국경이 열리면 돌아갈 생각인가?"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고향이니까 그립기는 하잖아."

뉴렌달에는 나르비크 난민 출신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나르비크와 교역 소식에 일부 백성들이 술렁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물론 나르비크로 돌아가겠다고 짐을 싸는 백성은 아무도 없었지만, 이처럼 신문이 전해주는 소식들은 아렌달 백성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은 스파이들에게 아렌달의 정보를 그냥 내어주는 것 아닙니까?"

"볼튼도 그렇게 말했었지."

내 대답에 볼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어차피 다 알려질 이야기였고, 정말로 중요한 정보는 신문에 실리지 않으니까 상관없어.

오히려 이런 정보들을 숨기지 않고 백성들에게 알려주기 때문에 백성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효과가 있지."

"신뢰라… 그렇군요.

앞으로 뉴렌달 신문에서 알려주는 소식들은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겠군요."

"맞아."

신문에 거짓 뉴스를 섞어서 전달한다면 얼마든지 백성들을 선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지만 말이다.

신문을 통해 라디오의 존재를 알린 이후, 뉴렌달에 본격적으로 라디오 방송을 송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나석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소름이 끼친다는 백성들도 있었지만, 라디오가 전해주는 다양한 뉴스에 금방 적응해서 백성들은 매일매일 라디오 방송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오늘은 어떤 방송이 나오려나?"

"하하하- 나는 알고 있지."

"알고 있다고?"

"그래. 오늘은 극단 배우들의 목소리가 나올 거야."

"라디오에서 극단의 배우들이 나온다니? 그거 진짜 괜찮은데?

근데 자네는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내 동생이 극단에서 일하고 있지. 오늘 자기네 배우들이 방송국에 간다고 내게 말해줬어."

오늘은 라디오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기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 관청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이제 라디오가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알겠지?"

내 말에 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쉽게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줄은 몰랐습니다.

특히 배우들의 목소리가 나온 날, 여자들의 모습은 조금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그날은 뭐… 방송국이 마법 연구 단지 안에 있지 않았다면,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지 않았을까?"

"분명 그랬을 겁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라디오를 탔을 때는 정말 도시가 난리가 나기도 했다.

인기 배우들의 팬들은 그 목소리를 한 번 더 듣고 싶다고, 다시 라디오를 송출해 달라는 목소리를 관청에 보내기까지 했다.

'역시 미디어를 확실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연예인들이 필요한 법이지.'

그 다음날 극장을 찾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라디오를 통해 뉴스 위주로 이야기가 나갔다면 앞으로는 상업적이나 문화적인 메세지도 보내도록 할 거야.

이미 눈치 빠른 상단들은 신문에 광고를 낼 수 있는지 문의를 해왔잖아? 분명 라디오에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문의가 들어오겠지.

덕분에 다시 한번 내 주머니가 무거워지겠군."

"설마, 돈을 받고 허가해 주실 생각이 십니까?"

"그럼 공짜로 해주게? 통신망에 들어간 마나석이 얼마인데 그걸 공짜로 쓰게 해줘?"

"……그, 그렇긴 하죠."

리오의 대답에 나는 씨익 웃었다.

"앞으로 기대하라고. 미디어를 지배하는 사람이 어떤 힘을 갖게 되는지 말이야."

나르비크 왕국과 교역을 시작하게 되면서 많은 상단이 뉴렌달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보다 많은 상단이 뉴렌달 브랜드의 상품을 싣고 나르비크 왕국으로 들어갔다.

"호오! 이것은 무슨 상품입니까? 이렇게 신기한 상자는 처음 봅니다."

"이건 아이스박스라는 물건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이렇게 온도를 보존해주는 상자입니다."

"그렇다면 저건 무슨 상품입니까?"

"저건 냉장고라는 상품입니다. 냉장고는 아이스박스처럼 온도를 보존해주는 것을 넘어, 냉기를 뿜어 차갑게 해줄 수도 있는 마법 상자입니다."

"그런 신기한 마법 상자가 있다니!"

"무려 하나에 5천 셀링이나 하는 마법 아이템입니다."

"커헉! 5, 5천 셀링이요?"

"처음에는 1만 셀링도 넘던 물건이었습니다."

"……"

뉴렌달의 상품들을 처음 본 나르비크의 상단들은 크고 작은 충격을 맛보고 있었다.

"저러다가 끌고 온 마차를 다 채우고 돌아갈 수나 있겠어?"

"그래도 최대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상인이 어떤 사람들인데요."

"적당히 채워서 돌아갈 수 있게 행정관들이 도와주도록 해.

저러다가 나르비크의 상인들이 자기네 시장을 보호하려고 국경을 막아달라 할지도 모르니까."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상인들이 너무 후려치지 않도록 관리하겠습니다."

리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베르겐 왕국에서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는 거지?"

"네. 나르비크 왕국과 교역을 시작한다고 진작에 알리지 않았습니까?

지금까지 별다른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독립하며 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했던 약속을 보리스는 착실하게 지켜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아렌달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따로 메세지를 보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렌달을 완전히 독립된 연방으로 생각해주는 모양새였다.

"아- 베르겐 왕궁이 아닌 몇몇 영지에서는 메세지가 있었습니다."

"?"

"뉴렌달에서 활동하는 극단을 보내 달라거나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스포츠 경기를 제안해 왔습니다."

"아아- 그 이야기는 들었던 것 같네."

뉴렌달의 문화를 접하기 시작한 귀족들로 인해 연극이나 스포츠는 이미 베르겐 왕국 곳곳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베르겐 영주들의 요청은 웬만하면 다 들어주도록 하고, 나르비크 왕국에도 뉴렌달의 문화가 잘 전파될 수 있게 상인들을 이용하자고."

"알겠습니다."

물론 나르비크의 상인들도 바보들은 아닐 테니 마냥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렌달의 상인들이 나르비크 왕국을 털어 오는 것이 훨씬 클 거라는 것이다.

자칫하면 겨우 얻은 새로운 시장이 다시 막혀버리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나르비크와 국경을 개방하는 것은 다른 이점도 있었다.

인구의 유입.

베르겐 왕국으로 독립하면서 줄어들었던 인구의 유입이 조금이라도 늘어날 수 있었다.

'아직 인구가 부족한 아렌달은 새로운 인구의 유입이 필요해.

베르겐 왕국은 더 이상 인구의 유입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런 만큼 나르비크 왕국에서 새로운 유입을 받아야 한다.'

이미 어반이 만든 도시 계획에 따라 위성 도시의 건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도시들을 채워줄 인구가 아렌달에는 필요한 상황이었다.

'아렌달 상단을 통해 아렌달의 소문이 나르비크 왕국 전역으로 퍼질 수 있도록 수를 써놨지.

이제 아렌달에 들어온 나르비크의 상단들이 돌아가게 되면 그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나르비크의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아렌달로 들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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