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현대인-85화 (85/169)

85화

* * *

아렌달 건설의 책임자.

건설 산업이 주력인 아렌달에서 그 자리는 핵심 직책 중 하나였다.

사실상 산업 분야에서 가장 높은 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자리였다.

그런 자리를 자신에게 맡긴다는 데우스의 말에 체스터 남작은 기쁜 마음과 함께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자신의 부족한 경험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아렌달 사람이 맞는 건가?"

체스터 남작은 아렌달의 주요 직책을 맡은 다른 사람들과는 가지고 있는 배경이 다른 사람이었다.

베르겐 왕국의 남작이자 체스터 영지의 적통. 처음부터 아렌달이 고향인 사람이나, 아렌달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체스터 남작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렌달 건설을 자신에게 맡긴다는 말에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체스터 가문의 저녁 식사는 조용하다.

체스터 남작도 남작 부인도 명문 귀족 가문의 출신답게 기품있는 식사 예절을 가지고 있었고, 그 자식들 역시 식사 예절만큼은 남들과 비교가 될 정도로 깔끔한 모습이었다.

조용하고 기품있는 식탁에서 체스터 남작이 입을 열었다.

"데우스님께서 아렌달 건설의 책임자 자리를 내게 맡기신다고 하네."

"정말요?"

"정말이에요?"

"그래."

"아렌달 건설의 책임자라면 엄청 높은 자리잖아요."

체스터 남작의 끄덕임에 아이들은 식사 중이라는 사실도 잊었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얘들아. 아직 식사 중이란다."

"앗. 죄송합니다. 어머니."

남작 부인의 지적에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도무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아이들에 남작 부인도 결국 식사를 중단하고 체스터 남작에게 말했다.

"이제는 확실히 인정을 받으셨군요. 축하해요."

"고마워."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요?"

"그게… 아직 데우스님의 제안에 답을 드리지 못했거든."

체스터 남작의 말에 남작 부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죠? 드디어 데우스님께 인정을 받으신 거잖아요?

그리고 데우스님은 아무에게나 그런 중요한 자리를 맡기실 분도 아니지 않나요?"

"그렇지. 능력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맡기지 않으시는 분이니까."

"당신. 무슨 고민을 하는 거예요?"

"……"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눈동자에 체스터 남작이 말했다.

"아렌달 사람이 아닌 내가 그런 중책을 맡아서 잘할 수 있을까?"

"아렌달 사람이 아니라니요? 그게 무슨 소리죠?"

"엄연히 따지고 보면 우리는 베르겐의 귀족 가문이잖아? 나는 베르겐 왕국의 남작이고.

그런 내가 진심으로 아렌달을 위해 다른 사람들처럼 일할 수 있을까?"

체스터 남작의 고민에 남작 부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예요?

당신은 이 마을을 버리고 베르겐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이 마을은 당신이 만든, 당신의 이름을 이어받은 체스터 마을이라고요. 이 마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투자했는지 잊은 건 아니죠?"

"…그, 그랬지."

"그리고 나는 이 마을을, 아렌달을 떠날 생각이 없어요.

베르겐 왕국, 아니 동대륙 어디에도 아렌달만큼 발전된 곳이 없는 건 우리보다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잖아요?

이런 환경을 포기하고 베르겐 왕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에요?"

"……"

남작 부인의 말에 체스터 남작은 입을 다물었다.

"데이비드. 너는 아렌달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고 싶니?"

"아니요. 저도 여기서 살 거예요. 왕도에서 살 때 보다 아렌달이 훨씬 좋은걸요."

"윌리엄은?"

"저도요."

"나도 아이들도 아렌달을 떠날 생각이 없으니, 아렌달을 떠날 생각이라면 당신 혼자 떠나세요.

마을의 관리야 어차피 저와 가신들이 해오던 일이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가족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에 체스터 남작은 자신의 고민이 정말 쓸데없는 고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의 고민이 베르겐 왕국의 남작이라는 작위 때문이라면, 그 작위를 버리세요."

"……"

"공작위를 버리신 데우스님도 계시는데 겨우 남작위 때문에 그런 고민을 해서 되겠어요?

내가 좋아하는 당신의 모습은 언제나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리는 모습이에요."

체스터 남작은 빚까지 내면서 바깥 영토에 투자했고, 누구보다 먼저 이주를 실행한 인물이었다.

안정적인 왕궁의 대신 자리까지 박차고 나와서, 문외한이나 다름없던 건설 현장에 뛰어든 사람이었다.

'용기 있는 결단…'

체스터 남작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 * *

체스터 남작의 눈빛을 보니까 답을 찾아서 돌아온 것 같았다.

"대답은?"

"아렌달 건설. 제가 맡겠습니다."

"좋아. 잘 생각했어."

그 말에 체스터 남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데우스님. 저를 아렌달의 사람을 받아주십시오."

"?"

"저도 베르겐 왕국의 작위를 버릴 생각입니다."

"굳이?"

"작위가 없다고 해서 사람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앞으로는 체스터 남작이 아닌 리암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체스터 남작의, 리암의 결단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나는 진작부터 아렌달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그렇습니까?"

"당연하지."

머쓱하게 웃는 리암에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아렌달 건설의 책임자가 되었으니 리암의 이름으로 공사를 시작해야겠지?"

"맡겨만 주십시오."

"그래. 나르비크 왕국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들 거야."

"나르비크입니까?"

"나르비크에서 메세지가 도착했거든. 베르겐 왕국에 이어 나르비크 왕국에도 뉴렌달의 문화를 전파한다."

아렌달이 베르겐 왕국에서 독립하자 나르비크 왕국의 사절단이 찾아왔다.

지난번 바깥의 영토를 놓고 분쟁이 있었던 것을 잊고 새로 관계를 시작하자는 메세지를 가진 사절단이었다.

"나르비크 왕국은 바깥의 영토를 아렌달의 영토로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나르비크 왕국의 병력이 바깥의 개발을 빌미로 국경을 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뭔가 대단한 결정이라도 내렸다는 듯 말하는 토르가 백작의 말이었다.

'이제와서 영토를 인정하기로 했다니. 사실은 아렌달의 국경을 침범할 능력이 안 되는 거잖아.'

"그러면 저기 바다 위에서 건들거리고 있는 것들도 치우는 겁니까?"

"바다 위라니요? 나르비크 왕국은 모르는 일입니다."

"아- 그러십니까?"

"크흠- 아무튼, 저희 나르비크 왕국은 아렌달을 베르겐 왕국과 동등한 위치로 대할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일단은 나르비크 왕국의 뜻은 알겠습니다."

내 대답에 토르가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봉쇄되어있는 국경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왕국에서는 더 이상 국경을 봉쇄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렌달에서 원한다면 상단의 통행도 가능하도록 해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상단과 자유민들이 원활하게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아렌달 역시 조치하겠습니다."

국경이 열린다는 말에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아렌달의 가장 큰 약점은 적은 인구로 인해 내수 시장이 엄청나게 작다는 것이다.

아렌달에 베르겐 왕국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뉴렌달 브랜드의 상품을 팔 시장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베르겐 왕국에 이어 나르비크 왕국에도 아렌달의 상품을 팔 수 있다면 경제에 새로운 탄력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렌달에는 다른 곳에 없는 신기한 것들이 많다고 하던데요."

"신기한 것들이요?"

"차가운 과자와 잠이 달아나는 검은 차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이스트림과 커피로군요. 아렌달의 특산품들입니다."

"그리고 말이 끌지 않는 마차와 바람이 필요하지 않은 함선 역시 있다고 들었습니다."

"토르가 백작은 우리 아렌달에 관심이 많이 있으신가 봅니다.

맞습니다. 자동차와 동력선이라고 불리는 것들입니다.

그밖에 다른 곳에는 없는 상품들과 마법 아이템들이 많이 있죠.

앞으로 나르비크 왕국과 교역을 시작하게 되면 직접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내 설명에 토르가 백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렇다면 마법 무기도…"

"마법 무기는 아렌달과 적대하면 볼 수 있겠지요."

"베르겐 왕국에는 일부 마법 무기를 수출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직 베르겐 왕국과 나르비크 왕국을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나르비크 왕국과도 좋은 관계가 꾸준히 이루어진다면 언젠가는 나르비크에서도 아렌달이 가지고 있는 마법 무기들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에 토르가 백작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날이 한시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군요."

"저 역시 기대하고 있습니다."

토르가 백작과 나르비크 왕국의 사절단은 그 외에도 뉴렌달을 체험하고 돌아갔다.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고, 사진도 찍어보는 등 다른 곳에서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함을 즐기게 해주었다.

"뉴렌달에 관광을 왔던 귀족들이 광고판이 되어주었듯이 저들도 나르비크 왕국에서 뉴렌달을 홍보해주는 역할을 해주겠지."

"사절단이 축구 경기에 흥분해서 소리치던 모습 보셨습니까?

어쩌면 나르비크 왕국에서도 축구가 유행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두고 봐야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는 정말 월드컵이 열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축구 종가 아렌달이라. 괜찮은데?'

"언제 나르비크와 친선 경기가 열릴지 모르니 팀원들을 단련해야겠군요."

"왕국 간의 친선 경기에는 최고의 선수들을 뽑아서 나가야지. 아렌달의 대표로서 뛰는 건데 최고의 선수들이 나가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야?"

"하하- 데우스님. 저의 맨체스터야 말로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있는 팀이라는 사실을 잊으신 겁니까?

다른 팀의 선수들을 찾을 필요 없이 저의 팀을 아렌달 대표팀으로 삼으셔도 충분합니다."

"근데 친선 경기가 열리는 것도 아닌데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보다 신규 도로 공사의 준비는 다 마친 거야?"

그 말에 리암은 조용히 입을 닫고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리오. 나르비크 왕국의 국경이 열리는 대로 아렌달의 상품을 나르비크로 보낼 수 있게 준비한다.

상품을 끌어모아서 한 번에 풀어버려."

"알겠습니다."

"뉴렌달 브랜드의 뛰어난 상품성에 나르비크의 시장은 얼마나 버틸 수 있으려나 궁금하지 않아?"

이렇게 아렌달의 문화가 베르겐 왕국을 넘어 새로운 지역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현재 이세계에서 제일 비싼 자원은 단연 마나석이었다.

금 광산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마나석 광산을 가지고 있는 영지가 더 큰 부를 쌓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스타나나 나르비크 등 다른 왕국에서도 마나석을 차지하기 위해 타 대륙으로 무역선을 계속해서 보낼 정도로 마나석의 가치는 크게 올라가 있었다.

당연히 모든 원인은 아렌달의 마법 무기와 아이템들 때문이었다.

"결국, 남대륙에서도 마나석 가격이 폭등하고 있군."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왕국들이 앞다퉈서 마나석을 사들이고 있으니까요.

이미 중앙 대륙에서는 동대륙과 마찬가지로 마나석 거래가 막혀있지 않습니까?

리오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 아렌달에서는 이 비싼 마나석을 겨우 통신 마나석으로 만든다고 엄청나게 사용하고 있고요."

"이야~ 이제 보니까 정말 엄청나게 들어갔구나."

"시장에 가져다가 팔면 수십, 수백만 셀링은 벌었을 겁니다."

"마나석 광산에서 나오는 마나석이 여기로 다 들어간 건가?"

"네. 지금 채굴되고 있는 마나석은 거의 다 그쪽에서 사용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덕분에 마탑이나 다른 곳에서 자신들에게 오는 마나석이 줄어들었다고 불만이 많습니다."

"불만이 있어도 어쩔 수 없지. 또다시 유령 사태를 일으킬 수는 없잖아?"

그렇다. 아렌달은 지금 새로운 통신망을 만들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