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현대인-84화 (84/169)

84화

"설마 의무 교육 이후에 추가로 백성들을 교육하실 생각이 십니까?"

"맞아. 의무 교육을 마친 백성들은 추가로 고등 교육을 받는다.

물론 고등 교육은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다면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괜찮아."

내 말에 리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6년의 의무 교육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고등 교육을 한다고 백성들을 잡아두면 일손이 부족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베르겐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인구의 유입도 눈에 띄게 줄어들지 않았습니까?

13살이면 가벼운 일을 시키기에 어린 나이도 아닙니다.

그리고 고등 교육은 전문 학교가 있지 않습니까? 굳이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리오. 전문 학교에 들어가는 학생들의 평균 나이가 어떻게 되지?"

"네? 보통은 20살을 전후로…"

"그럼 의무 교육을 마친 아이들이 고등 교육을 받고 싶다면 약 8년을 기다려야 하는 건가.

6년의 의무 교육 기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교육이 멈춰 있게 되겠군."

"그, 그건…"

내 말에 리오는 당황하며 말했다.

"그 시간 동안 배움이 필요하다면 사교육으로…"

"아까 내가 말하지 않았나?"

"아- 돈이 없으면 교육을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겠군요."

"그래. 자칫하면 재능있는 인재가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사라질 수도 있지."

인구의 양적 성장이 더뎌진 아렌달이니 만큼 이제는 한 명의 인재라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떤 계획이 있으십니까?"

"기초 의무 교육을 마치고 딱 3년. 3년 동안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를 만든다."

"3년… 그 정도라면…"

대한민국에서도 초등학교에서 중학교까지 딱 9년이 의무 교육 기간이지 않은가. 그리고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12년이라는 교육 기간은 지나치게 길었다.

심지어 대한민국에서는 대학에 가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많은 사람이 16년이라는 긴 시간을 학업에 투자하고 있었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배우기보다는 그냥 스펙을 쌓기 위한 시간이 대부분이었지.'

솔직히 불필요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고등 교육을 받게 되는 3년 중 마지막 1년은 학교가 아닌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기 위한 현장 실습 위주로 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

"현장 실습까지 한다면 전문 학교와 다르지 않겠군요."

"고등 학교가 생긴다면 전문 학교도 바뀌어야겠지. 조금 더 전문적인 학문을 수학할 수 있는 곳으로."

"한 번에 너무 큰 변화를 주는 건 아닐까요?"

교육 시스템이 한 번에 너무 많이 바뀌는 것이니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교육 시스템은 애매하게 변화를 주어서는 안 돼.

시스템을 개편할 거면 한 번에, 빠르고 확실하게 개편해야 오히려 혼란이 줄어든다.

느슨하게 진행한다면 어린 학생들에게 혼란을 주고, 변화에 적응하는데 쓸데없는 시간을 소모하게 될 거야."

교육 과정을 개정한다면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교육부 때문에 학부모와 학생들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데우스님. 그럼 사교육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의무 교육 기간에만 사교육을 금지하신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럼 고등 학교에 들어가는 학생들은 사교육을 받아도 괜찮습니까?"

"물론이다. 고등 교육은 전문 교사의 도움을 받으면 생각 이상으로 성취도를 올릴 수 있을 테니까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도 괜찮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는 제약을 걸어야겠지. 우리의 교육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게 말이야."

"제약이라면?"

"예를 들면, 사교육을 하고 싶다면 정식으로 등록된 강사에게 일정하게 정해진 시간에만 강의할 수 있게 해주는 거지.

하루에 한두 시간이라던지, 혹은 5일에 5시간 정도라던지."

"등록된 강사가 정해진 시간만 사교육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교육 시스템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하겠군요."

"그 밖에 추가로 보완이 필요한 점은 행정관들과 아이디어를 모아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자고."

"알겠습니다."

리오는 새로운 일거리에 난감해하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리오는 생각보다 훨씬 일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럼 바로 행정관들을 모아 회의하겠습니다."

"스미스나 교사들의 이야기도 놓치지 말고 들어줘.

그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니까."

"저를 뭘로 보시고.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하하-"

"역시 믿을 수 있는 수석행정관이라니까."

내 대답에 리오는 씨익 웃으며 집무실을 나갔다.

아렌달의 교육 시스템이 새롭게 개편된다는 이야기에 여러 가지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더 오랜 시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불만을 가진 학생들도 있었고, 무상으로 아이들에게 고등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반기는 학부모들, 그리고 자신의 지식이나 기술로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기술자들, 마지막으로 새로운 일꾼의 수급이 늦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현장의 사람들까지.

물론 가장 큰 목소리를 내며 걱정하는 사람들은 현재 교육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면 전문 학교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전문 학교는 조금 더 심화 된 교육 시설이 된다. 고등 학교보다 더 위에 있는 최종 교육 시설이 되는 거지.

앞으로는 전문 학교보다는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될 거야."

그 말에 스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전문 학교의 교사 중 일부가 남는 시간을 활용해 사교육을 하고 있었습니다."

"들어서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 교육 시스템의 개편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무상으로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사교육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이니까."

자신의 지식이나 기술을 이용해 추가 수당을 벌 기회가 줄어들었으니 불만이 생기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교사들의 주머니를 챙겨주고자 새로운 교육 시스템의 개편을 늦출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

"그렇지요. 아렌달을 위해서는 더 많은 인재가 필요하니 말입니다."

"이해해주니 고맙군."

스미스가 이렇게 나를 찾아온 이유는 그의 밑에 있는 사람들을 걱정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교육 시설이 생기고, 사교육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그들이 누리고 있던 것 중 일부는 빼앗기게 될 것이다.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좋아. 스미스의 부탁이라면 들어주지."

"무슨 이야기인지 듣지도 않고 들어주시는 겁니까?"

"스미스의 부탁이라면… 어차피 밑에 있는 교사들의 권리를 챙겨달라는 부탁이겠지."

내 말에 스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학교의 소속된 교사들은 사교육을 못 하도록 할 거야.

대신 그에 합당한 복지를 해줄 생각이다.

세금의 감면이나, 도시의 시설을 이용하는데 할인 혜택을 줄 수도 있지.

그리고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 한 학교의 교사들은 어디서든 존중을 받을 수 있도록 명예를 줄 생각이다."

"역시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아렌달의 인재를 키우는 사람들이다. 교사는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직책이야."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스미스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럼 딱 한 가지만 더 부탁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한 가지 더?"

"새로운 시스템에는 새로운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안 돼. 아직 스미스 만한 사람이 없다. 아렌달에는 스미스가 필요해."

내 말에 스미스는 환하게 웃었다.

"제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군요."

"……"

"왕도의 구석에서 데우스님께서 저를 찾아오셨을 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날 일 없다고 건방을 떠는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왕도 구석에서 이대로 썩기보다는 저를 필요로 하는 아렌달로 가자고요.

제 대답도 듣지 않고 3일 안에 여관으로 오라는 말만 남긴 채 돌아가셨습니다.

그게 벌써 10년도 전의 일이군요."

"그런가."

"이제 충분히 만족했습니다."

"평생 망치와 모루를 놓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그럴 줄 알았습니다."

스미스의 말에 더 이상 붙잡아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그는 자신이 이룰 수 있는 것을 모두 이루고 만족한 것이다.

"자크에게 낚시를 배워볼까 생각 중입니다."

"그런가?"

"예. 자크 녀석이 그러길 낚시는 손기술이 좋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저도 손기술만큼은 자신이 있으니 좋은 취미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 그럼 스미스도 자크처럼 나에게 물고기를 잡아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데우스님의 식탁에 올라갈 생선은 모두 제가 잡아 드리겠습니다."

미련 없이 미소짓는 스미스에게 나 역시 미소를 지어주었다.

"대장장이 스미스. 그동안 수고 많았네."

아렌달 교육의 책임자인 학장 자리는 아렌달 건설의 책임자였던 발더가 이어받게 되었다.

그리고 발더의 자리는 체스터 남작이 그대로 이어받으며 아렌달에서 일어나는 공사를 지휘하게 되었다.

"정말 제가 아렌달 건설의 책임자가 되어도 괜찮은 겁니까?

저보다 경험 많은 기술자들이 한두 명이 아닌데…"

"발더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니까 상관없지만, 다른 기술자들이 귀족인 체스터 남작 위에 설 수 있겠어?"

"아- 그, 그렇군요."

"아무리 체스터 남작이 편하게 대해줘서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고 해도 체스터 남작이 작위를 가진 귀족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

심지어 체스터 남작은 나처럼 작위를 박탈당한 것도 아니었다. 언제든 베르겐 왕국으로 돌아간다면 남작으로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아렌달에 들어와 있는 귀족 중 거의 대부분은 작위가 없는 귀족들이었기에 체스터 남작은 더 특별한 사람이었다.

베르겐에서 독립했다고 해도 베르겐과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는 아렌달이었기에 아렌달의 백성들에게 체스터 남작은 여전히 남작님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건설 현장의 지휘도 많이 해봤잖아?

국가 단위의 토목 공사의 책임자까지 했던 사람이 무슨 걱정이라고 그러는 거야?"

"겨우 한 파트의 책임자일 뿐이었잖습니까?

아렌달에서 일어나는 모든 공사의 책임자라는 직책과는 그 무게감이…"

"그래서 안 할 거야?"

체스터 남작은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 아니요. 안 하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럼 하면 되는 거지. 뭐가 문제야?"

"그게… 왠지 저만 특별 대우를 받는 느낌이라."

"?"

"다른 기술자들은 차근차근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올라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만 한 번에 몇 단계나 올라가는 것 같으니…"

체스터 남작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게 무슨… 지금까지 귀족으로서 온갖 특권은 다 누리고 살던 사람이 이제 와서 특별 대우라니."

"……"

"나나 체스터 남작이나 보통의 사람들과 같은 기준을 대입하면 안 되는 사람이야.

우리는 태생부터 시작점이 다른 사람이라고."

귀족으로 태어나서 평민들과 동등한 기준을 갖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체스터 남작이 만약 체스터 후작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겨우 스물이라는 나이에 왕궁의 대신이 될 수 있을까?

아무리 체스터 남작이 재능있는 인재라고 해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남작의 작위 역시 체스터 후작의 후광이 없었다면 얻을 수 없었을지 몰랐다.

"체스터 남작. 귀족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까지 거부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체스터 남작이 능력 없는 사람이었다면, 아렌달 건설의 책임자로 앉힐 생각도 없었어."

"데우스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조금만 주실 수 있습니까?"

"아렌달 건설의 책임자는 아렌달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 중 하나라는 것은 알지?"

"네."

"좋아. 체스터 남작의 대답을 기다리겠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