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현대인-79화 (79/169)

79화

전 스톨 백작은 자신의 사진에 엄청난 만족감을 보여주고 영지로 돌아갔다.

특별히 제작한 액자에 넣은 자신의 사진을 싱글벙글 웃으며 자동차에 싣는 모습은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가능하면 자식들을 모두 모아 놓고 가족사진을 찍고 싶다는 스톨 백작의 말에 샤를로트가 질색을 하기도 했지만, 베르겐 곳곳으로 흩어진 스톨 가문을 사람들을 모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기에 그저 희망 사항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달리아가 찍어온 아렌달의 풍경은 아렌달의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졌다.

베르겐의 백성들에게 바다의 모습이나 발전된 도시, 드넓은 바깥의 영토를 보여주며 아렌달에 와보지 못한 귀족들과 부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왕도나 지방 영지에서 아렌달의 엽서를 구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림이 아닌 사진으로 보니까 더 현실감이 느껴지겠지. 그만큼 직접 와보고 싶은 마음도 커졌을 테고."

"사진으로 아렌달의 모습을 보여준 것뿐 아니라, 여름에는 해수욕장의 개장도 있으니 아렌달을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해안가 산책로의 정비를 빨리 끝내야겠네.

좋아. 오늘의 보고는 여기까지인가?"

"아직 한 가지 더 남았습니다."

"아- 축구 대회 이야기지?"

"네. 올해도 대회가 열리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회의 개최를 가장 기대하는 사람이 저 사람이고 말이야."

그 말에 체스터 남작이 말했다.

"영주님. 올해는 다르다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체스터 남작은 필드에서 뛰지도 못하는데 뭘 보여주겠다는 거야?"

"더러운 리버의 계략에 작년 우승을 빼앗기지 않았습니까? 이제 기사 출신은 대회에서 뛰지 못하니, 올해의 우승은 저희 맨체스터가 따놓은 단상입니다."

"작년에는 영토 확장 때문에 영지군이 참가하지 않았던 것도 기억해야지?

영토 확장이 끝난 만큼 영지군도 참가하려고 할 텐데. 휴가를 걸고 뛰는 영지군의 사기를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것 아니야?"

내 말에 체스터 남작이 잠깐 표정을 굳혔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도 저희 맨체스터가 우승할 겁니다. 두고 보십시오."

"기대해보지."

"영주님. 그럼 축구 대회는 개최하는 겁니까?"

"그래. 아예 정기 대회로 준비를 해.

올해뿐 아니라 매년 개최하는 정기 대회로 만든다."

축구 대회의 개최에 체스터 남작이 주먹을 쥐었다.

'단기 대회가 아니라 리그의 형태로 발전시키는 것도 생각해 봐야겠는데.

그리고 나중에는 월드컵 같은 것도 만들면 좋을 것 같네.'

샤를로트의 작품인 아렌달의 상인의 공연을 마친 배우들이 무대 위에 모여있었다.

"조, 조금 무섭지 않아? 사진에 찍히게 되면 영혼을 빼앗길 수도 있다던데?"

"그게 사실이라면 영주님과 공작 부인께서 가장 먼저 사진을 찍으셨을 리가 없잖아?

그리고 볼튼님과 오드리님도 같이 사진을 찍었다고."

"그, 그런가?"

"공작 부인께서 우리의 공연이 마음에 드셔서 상을 내리시는 건데, 어떻게 그런 불순한 생각을 품을 수가 있냐?

공작 부인께서 우리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알면서 말이야."

"하긴, 지금 내가 한 말은 못들은 걸로 해줘."

웅성거리던 배우들은 마법사가 들어오자 잔뜩 긴장한 채 입을 닫았다.

그런 배우들의 모습에 오드리가 말했다.

"다들 마법사님이 들고 계신 마나석을 바라보면 돼요."

"그럼 찍겠습니다."

마법사의 목소리에 맞춰 사진을 찍고 나자 샤를로트가 배우들에게 말했다.

"사진은 액자로 만들어서 극장에 걸어두도록 하죠."

"이렇게 멋진 상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작 부인."

"제 작품을 멋지게 연기해줘서 고마워요.

다음 공연도 기대하고 있으니 좋은 연기 부탁해요."

샤를로트의 말에 일부 배우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렌달에 오기 전까지는 천민이나 다름없는 생활에 백성들에게도 무시 받는 게 일상이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공작 부인이라는 절대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었으니 이렇게 감동하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저희 역시 공작 부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배우들의 목소리에 샤를로트는 웃으며 극장을 나왔다.

극장을 나온 샤를로트는 극장의 간판을 보고 있는 내게 말했다.

"뭐 하세요?"

"음- 연기하는 모습이나 배우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서 팜플렛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

"네?"

"이렇게 글자로만 공연의 내용을 알려주는 것 보다 사진으로 어떤 연기를 하는지, 어떤 배우들이 나오는지 알려주면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그럴까요?"

"티켓 파워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

작품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특정 배우의 연기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을 간판으로 삼는 거지."

"연극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아니었어요? 연극에는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연극에 관심이 없는 것과 다른 문제인데.

이건 영지의 문화 사업을 생각해서 떠올린 방법이니까."

내 말에 샤를로트는 입술을 삐쭉거렸다.

"그럼 그렇지. 나는 또 당신이 연극에 관심을 가진 줄 알았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걸 너무 사업 거리로만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뾰로통하게 말하는 샤를로트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공작 부인.

이제 그만 돌아가실까요?"

능청스러운 내 말에 샤를로트는 나를 한번 흘겨보고는 환하게 웃었다.

"근데 그거 아세요?"

"아마 모를 거야."

"일부 극단들이 귀족들의 요청을 받고 있대요. 자기네 영지에서도 연극을 공연해 달라고요."

"정말?"

"네. 이블린의 고향인 요크 영지에서도 연극을 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있었나 봐요.

그래서 언젠가 요크에 갈 기회가 된다면 꼭 극단을 데리고 갈 거래요."

"극단을 데리고 간다니. 체스터 남작 부인은 정말 연극을 좋아하나 보네."

"체스터 남작이 축구에 빠져있는 것 만큼 이블린도 연극에 빠져있을 거예요."

각자 취미에 열정을 다하는 걸 보면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체스터 남작은 팀까지 만들었으니, 체스터 남작이 더 심하지 않을까?"

"그거야 모르죠. 이블린도 자신의 극단을 만들지도 모르잖아요."

"그, 그런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럼 연예 기획사를 만드는 건가?

나중에 영상이나 미디어가 발달하게 되면 연예 사업이 부상할지도 모르겠네.'

미디어가 가진 힘을 알고 있는 만큼 나는 극장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미디어라… 만들어 볼까?'

아렌달의 풍경을 담은 사진과 소식이 담긴 활자들이 한 장의 종이에 가득 담겨 있었다.

행정관들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본 신문이었다.

"아렌달 일보. 모양은 괜찮은 것 같네."

"영주님. 그게 무엇입니까?"

"신문."

"신문이요? 또 새로운 상품을 만드신 겁니까?"

"상품이 아니라 아렌달의 소식을 전하는 매체지.

아렌달의 모습이나 일상을 종이에 담아서 알리는 목적으로 만든 매체."

"아렌달의 모습과 일상이라니. 적들이 관심을 가질 물건이군요."

볼튼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확실히 아렌달에 적의를 가진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질 물건이긴 하네."

이세계에는 아직 신문이 없었기에 볼튼의 생각은 일리가 있는 생각이었다.

'신문을 만들어 봐야 읽을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까.'

아렌달이야 기초 교육으로 글자를 배우게 되어있으니 대부분 글을 읽을 수 있지만, 이세계의 사람들은 대부분 읽고 쓸 줄 모른다. 이세계에 아직 대중 매체가 없는 이유였다.

그리고 아직 제지와 인쇄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신문을 만들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대중 매체로서 역할을 하려면 대량 생산을 해서 모두가 볼 수 있게 해야 하는 데 아직은 그것도 불가능하지.'

그나마 뉴렌달은 제지업과 인쇄업이 발달한 도시였다.

샤를로트의 영향인지 작가들이 많이 모인 도시였기에 자연스럽게 발달한 것이다.

거기에 다른 도시보다 월등하게 많은 서류를 다루는 영지의 행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래 봐야 대중 매체를 만들 만한 기술력은 아니었지만.

"제지 기술과 인쇄 기술을 더 키워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으로 만족해야지."

아직 신문을 대중 매체로서 이용하기에는 이세계의 문명 수준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며, 나는 신문을 접어 넣었다.

"그런데 읽는 것보다는 듣는 게 편하지 않습니까?"

"그거야 사람마다 다르지. 나는 개인적으로 읽는 쪽이 편해. 더 정확한 정보를 얻기에도 읽는 게 확실하고."

"저는 글자에 약해서."

"그럴 수도 있지. 하긴 신문보다 라디오를 좋아하는 사람도…"

순간 머리가 띵했다.

"영주님?"

"왜 라디오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우습게도 통신 기술은 이미 있었다.

정확한 좌표가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양방향 통신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통신 마나석을 스피커 삼아서 메세지를 방출하면 그게 라디오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나는 바로 일어났다.

"마탑에 가자."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좌표에 메세지를 보내시겠다고요?

그리고 다시 메세지를 받을 필요 없이 일방적이니 메세지의 전달만 되면 충분하고요."

"맞아. 정확하게 이해했어.

동시에 여러 개의 마나석에 메세지를 전달하는 거지. 그냥 이쪽이 전달하고자 하는 목소리만 보내면 되는 거야."

내 설명에 자하가 말했다.

"음- 뭔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개념이군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좌표에 동시에 메세지를 보낸다라…"

"가능할 것 같아?"

"네. 가능할 것 같네요."

"그래?"

"중계기하고 비슷한 것 아닙니까?

여러 개의 중계기를 거쳐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나 여러 개의 통신 마나석에 메세지를 보내는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

이미 아렌달 영지 곳곳에는 통신 중계기가 있었다.

"그럼 한번 해볼까요?"

"바로 가능해?"

"영주님. 통신 마법은 굉장히 쉬운 기초 마법입니다."

"그, 그렇구나."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인 자하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하고는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법진 중앙에 주먹보다 큰 마나석을 가져다 놓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전달한다. 메세지!

영주님 이 마나석에 대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게 끝이야?"

"네."

"아아- 라디오 테스트. 라디오 테스트."

돌아오는 메세지가 없었기 때문에 잘 된 건지 확인은 되지 않았지만, 마나석이 빛나는 것을 보니 마법은 제대로 써진 것 같았다.

"그런데 이거 어디 어디 좌표에 연결한 거야?"

"아렌달 영지에 있는 모든 중계기에 연결을 한 건데요?"

"……"

"!"

"일단 이거 끊어."

"…알겠습니다."

서둘러 마법을 끊는 자하의 모습에 나는 창문 너머로 도시를 바라봤다.

"왠지 비명 소리가 들리는 건 내 착각일까?"

"영주님. 저에게도 들립니다."

볼튼은 나랑 다르게 정말 영지민들의 목소리가 들리는지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날 나에게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샤를로트의 모습에 나는 오늘의 사건이 영지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있었다.

"유령이 아니라니까."

"그, 그래도… 다들 들었는걸요."

"그러니까 사실은 내가 마탑에서…

아니다. 이렇게 있는 것도 나쁘지 않네."

며칠 동안 아렌달 영지 곳곳에서 유령 소동이 일어나는 걸 보며 생각했다.

'라디오는 잠시 미뤄 두는 것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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