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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78화 (78/169)

78화

아침 일찍 마탑을 찾아가자 에일렌이 나를 맞이해줬다.

"저번에 봤을 때는 조금 깔끔해진 줄 알았는데 여전하구나."

"아, 안녕하세요. 영주님."

내 말에 에일렌은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정리했다.

"그런데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세요?"

"마법사들이 만들어줬으면 하는 게 있어서 말이야."

에일렌은 기대 반 걱정 반의 얼굴로 말했다.

"새로운 마법 아이템인가요?

이번엔 어떤 종류의 마법이 필요한 거예요?

또 원소 계열은 아니죠?"

"아마… 빛이 아닐까?"

뭔가 복잡한 표정을 짓는 에일렌이었다.

'그런데 이미지를 기록하는 마법은 있을 것 같은데.

보통 판타지 소설에서는 기본적인 마법이잖아. 통신 마법처럼 이미 있을 수도 있지.'

나는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에일렌에게 말했다.

"에일렌. 지금 보이는 이 순간을 기록할 수 있는 마법이 있을까?

눈에 보이는 것들을 그대로 담을 수 있는 마법 말이야."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담는 마법이요? 그런 마법이 있을 리가…

아! 있어요. 이미지를 저장하는 마법은 있어요.

근데 이게 빛 계열의 마법이었나?"

"무슨 계열의 마법이면 어때. 있으면 된 거지.

좋아. 같이 가자."

"어, 어딜요?"

"새로운 마법 아이템을 개발해야지 않겠니."

"영주님. 저는 어제 밤을 새서…"

"예전에는 밤을 샌 다음 날에도 공사장에 불려가 놓고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무슨 소리야."

"……"

울상을 짓고 있는 에일렌을 끌고 마탑의 꼭대기 층으로 올라왔다.

"영주님. 오신다는 말씀도 없이 어쩐 일로… 에일렌은 왜 저러고 있습니까?"

"새로운 마법 아이템을 부탁하려고 왔다가 입구에서 만나서 말동무로 데리고 왔어."

안쓰럽다는 듯 에일렌은 바라본 자하는 내게 말했다.

"새로운 마법 아이템이라니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저장하는 마법.

에일렌에게 물어보니까 그런 마법이 이미 있다고 하던데?"

"네. 있습니다. 저는 쓸 줄 모르지만 그렇게 어려운 마법도 아닐 겁니다."

역시 통신 마법 처럼 이미지 마법 역시 존재하는 마법이었다.

"그런데 자하는 못쓰는 마법이라고?"

"네. 시간 계열의 마법이라서요. 그래도 시간 계열의 마법 중에서는 쉬운편에 속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빛이 아니라 시간?"

"빛이요? 눈에 보이는 순간을 기록하는 거랑 빛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음- 아니야."

뭐든 마법이 있으면 되는 거지 굳이 그게 어떤 계열의 마법인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 누가 이 마법을 쓸 줄 아는데?"

"달리아는 쓸 줄 알겁니다."

"달리아는 공간 계열 마법의 전문가 아니야?"

"그렇긴 하지만, 아마 쓸 줄 알 겁니다."

"뭐 알겠어. 달리아는 지금 어디 있지?"

"…모르겠습니다."

"또 어디론가 사라졌나보군.

다른 마법사들은 마탑에 박혀서 매일 연구만 하고 있는데, 달리아는 참 잘 돌아다닌단 말이지."

"그래도 영주님께서 부르시면 바로 돌아오지 않습니까."

내 호출에 마탑으로 돌아온 달리아를 데리고 영주관으로 돌아왔다.

"아리스 아가씨의 모습을 이미지 마법으로 담으라고요?"

"응. 지금 아리스의 모습을 마법으로 기록해 줘."

"알겠어요."

내 끄덕임에 달리아가 마나석에 마법을 쓰기 시작했다.

아리스를 대상으로 하는 마법이었기에 샤를로트가 불안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그래도 달리아의 마법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지금 순간을 고정하라. 픽쳐!"

그렇게 아리스에게 이미지 마법을 쓴 달리아는 마나석을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 마나석에 아리스 아가씨의 모습을 담았어요."

"그 모습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통신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랑 비슷해요. 회로를 연결해서 마법을 사용하시면 조금 전의 이미지가 보이실 거예요."

"그럼. 한번 저장한 이미지는 계속해서 볼 수 있는 거야?"

"그건 아니에요. 저장된 이미지는 딱 한 번만 볼 수 있어요."

다시보기가 안된다는 말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나는 마나석에 저장된 이미지를 확인했다.

"어머! 정말 아리스가 보이네요."

"이미지는 확실하게 저장되는 구나. 마나석이 작아서 작게 보이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손가락 만한 마나석 안에 보이는 아리스의 모습에 샤를로트가 마나석과 아리스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어제 당신이 말했던 사진이란 게 이런 건가요?"

"조금 달라. 내가 생각한 건 마나석이 아니라 종이에 이미지를 저장하는 거였거든.

그리고 이렇게 일회성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기록하는 거지."

"영구적으로요?"

"응. 한번 지나간 순간을 다시 보고 싶을 때가 있잖아?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이라든지, 감동적인 장면을 본 순간이라든지. 그런 순간을 종이에 이미지로 저장하는 거야."

"아- 나중에 보면 그때의 추억이 생각나겠네요."

샤를로트와 대화에 달리아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영주님은 마법사도 아니신데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시는 거죠?"

"그냥 욕심이 많은 거지."

"욕심이 많다고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어깨를 으쓱하는 내 모습에 달리아가 나에게 점점 다가왔다.

달리아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 나는 황급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달리아. 마나석이 아닌 종이 위에 이미지를 저장할 수 있는 마법을 만들 수 있겠어?

그리고 이미지를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다시 봐도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영주님께서는 일단 만들어보라고 하실 거잖아요? 그럼 해봐야죠.

그리고 영주님께서 만들라고 하신 걸 만들면 보상도 두둑하잖아요."

달리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결과물만 확실하다면 보상이야 얼마든지 해줄게."

사진과 영상.

이세계에 얼마나 큰 파급효과를 줄지 기대가 되었다.

자하가 말했던 대로 이미지 마법은 그렇게 어려운 마법은 아니었는지 달리아는 며칠 만에 사진기를 만들어냈다.

"통신 마법하고 원리는 같아요. 통신 마나석처럼, 이 기록 마나석으로 지금 순간을 담아서 다른 곳으로 보내는 거예요."

"그럼 이미지를 현상하는 방법은?"

"기록 마나석과 사진을 담을 종이를 마나석을 녹인 특수 용액에 담그고 마법을 사용하면 종이에 이미지가 현상될 거예요."

"그냥 그렇게만 해도 되는 거야? 따로 빛을 차단하거나 암실을 만들거나 할 필요는 없는 거지?"

"빛이요? 빛을 차단할 필요는 없는데요."

'마법으로 찍는 사진은 정말 빛이랑 상관이 없나 보네.'

오히려 편리해진 사진 기술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세계 최초의 사진을 찍으러 가볼까?"

"어디로요?"

"어디겠어?"

첫 번째 사진은 당연히 아렌달 가문의 가족사진이지.

사진을 찍겠다는 이야기에 샤를로트는 평소에 입지 않는 드레스를 입고 화장까지 하고 있었다.

"어때요?"

"그 드레스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얼마 전에 리지가 만들어준 드레스에요. 제게 어울리는 디자인을 생각했다고 만들어왔더라고요.

그런데 조금 부끄럽네요."

이세계에서는 보기 힘든 몸의 라인이 드러나는 드레스에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잘 어울려. 귀부인들 사이에서 유행이 될 것 같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그래도 잘 어울리는가 보네요."

내 칭찬에 샤를로트도 활짝 웃으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방긋방긋 웃고 있는 아리스는 샤를로트가 안고 아리아는 내 무릎에 앉혔다.

"저기 달리아가 들고 있는 마나석을 보고 있으면 되는 거죠?"

"맞아. 달리아 준비됐으면 바로 찍어 주겠어?"

"네. 그럼 기록하겠습니다. …고정하라. 픽쳐!"

카메라 플래시가 없었기에 조금 맥없이 사진을 찍었지만, 달리아가 곧바로 현상해 주는 사진에 조금 놀라고 있었다.

'사진관에서 필름을 현상하는 것보다 더 빠른 것 같네. 역시 마법은 편리해.'

그리고 현상한 사진을 확인하고 샤를로트에게 건네주었다.

"와- 이것 보세요. 아이들의 모습이 그대로 담겼어요.

초상화를 그리는 것처럼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그림이 나오다니…"

"아리스랑 엄마에요."

"여기 아리아랑 아빠도 있단다."

"이게 아리아예요?"

사진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가족들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달리아가 말했다.

"영주님. 저도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혼자? 아니면 마법사들이랑 같이?"

"아니요!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아렌달 영지의 풍경을 찍고 싶어서요."

"아렌달의 풍경을?"

"네."

아렌달의 풍경을 찍는다. 방랑벽이 있는 달리아니까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알겠어. 사진기를 만들어준 보상으로 마나석과 종이는 얼마든지 사용해도 좋다."

"영주님. 감사해요."

"대신에 달리아가 찍은 아렌달의 풍경은 나에게도 줘야 해."

"영주님께요?"

"그래. 내 영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나도 보고 싶으니까."

영주관에 걸어놓은 아렌달 가문의 가족사진은 영주관을 들리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아렌달 공작님과 공작 부인, 그리고 아렌달 아가씨들 아니야?

도대체 어떤 화가가 저렇게 완벽한 초상화를 그린 거지?"

"행정관들이 말하기로는 마법으로 그렸다는데? 사진인가 뭔가 하는 기술이래."

"마법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정말 아렌달의 마법 활용 능력은 말이 안 나올 정도로군."

특히 귀족들이나 돈 있는 상인들은 자신들도 사진을 찍고 싶다고 내게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영주님. 다음에는 저희도 사진을 찍을 수 없겠습니까?

저희 집사람이 영주관에 걸려있는 사진을 본 뒤로 매일 사진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 아직 우리 가족도 사진을 못 찍었는데. 귀족인 우리 체스터 가문이 먼저 기회를 받아야 하지 않겠나?"

"그, 그렇다면 체스터 남작님 다음에라도 어떻게…"

"다들 왜 이렇게 급한 거야?"

내 말에 체스터 남작이 볼튼을 가리키며 말했다.

"볼튼경은 벌써 찍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볼튼이야 먼저 부탁을 했으니까 그런 거지."

내 호위 기사라는 특권으로 가장 먼저 오드리와의 사진을 찍은 볼튼이 씨익 웃었다.

그가 오드리의 사진을 매일 가지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사진을 꺼내 보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치사하게 먼저 찍었으면 우리에게도 빨리 알려줬어야지."

"맞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

"아저씨들이 겨우 사진 한 장 찍겠다고 이렇게 투닥대는 모습이라니.

사진기가 돌아오면 바로 찍을 수 있게 해줄 테니까 거기까지만 해."

"앗! 영주님. 다음은 저희 체스터 가문입니다."

"체스터 남작님 다음은 저도 부탁드립니다."

내 끄덕임에 체스터 남작과 리오는 주먹을 쥐었다.

그 순간 한사람이 영주관의 집무실을 열고 들어왔다.

"영주관에 걸려있는 저 초상화는 도대체 누가 그린 것인가?"

"스톨 백작님? 뉴렌달에는 언제 오신 겁니까?"

"굉장한 그림이 있다고 들어서 바로 차를 달려왔네.

정말 굉장한 그림이더군.

도대체 누구인가. 아렌달 가문의 초상화를 그린 사람이?"

"그건 그림이 아니라 사진입니다. 마법을 이용한…"

"마법! 마법이라니! 대단하군.

그렇다면 나도 그 사진이라는 걸 받을 수 있겠나?

대가라면 얼마든지 치르지."

스톨 백작의 말에 체스터 남작과 리오가 나를 바라봤다.

순번이 밀릴까 걱정하는 두 사람에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준비하죠."

"억!"

"영주님!"

서로 사진을 찍겠다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는 생각했다.

'사진이 이 정도면 영상은 얼마나 충격을 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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