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바다의 생동감을 도시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영지민들이 적극적으로 바다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다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것과 미관은 무슨 상관이지?"
"뉴렌달 안으로 들어오면 이곳이 바다를 가진 도시라는 걸 느낄 수 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왕도나 다른 도시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죠. 외부에서 관광을 온 사람들에게 뉴렌달이 바다와 밀접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겁니다."
"도시 안에도 바다를 느낄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어반의 말에 나는 곧장 반박했다.
"바다를 느끼고 싶다면 해안가를 찾으면 되는 것 아닌가? 오히려 바다를 나타내는 상징물들은 도시의 미관을 해칠 수도 있지.
나는 도시는 도시로서의 기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뉴렌달은 이미 뉴렌달만의 특색이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콘크리트 건물들이 주는 안정감.
덕분에 뉴렌달은 성벽이 없음에도 다른 도시들보다 훨씬 견고함이 느껴지지 않나?"
내 말에 어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그렇군요."
"물론, 더 적극적으로 바다를 사용해야 한다는 말은 나도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지금까지 항구나 어업에 종사하는 영지민들을 제외하면 바다를 이용하는 영지민도 얼마 없었지.
외부에서 관광을 오는 사람들도 더 바다를 즐기지 못하고 돌아가는 느낌도 있었지."
그 말에 어반이 눈을 반짝였다.
"이미 바다를 이용할 방법을 생각하고 계셨군요?"
"맞아. 올해부터는 뉴렌달에 해수욕장을 열 생각이다.
그리고 해안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산책로와 드라이브를 할 수 있는 도로 공사도 계획되어 있지."
"역시 공작님께서는 계획이 다 있으셨군요."
조금 아쉬워하는 어반의 모습에 나는 리오에게 말했다.
"공사를 맡겨도 괜찮겠어?"
"아직 현장 경험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현장이야 경험 있는 작업자들이 붙으면 어떻게든 굴러가겠지."
입을 다문 채 기대하는 어반의 모습에 나는 씨익 웃었다.
"눈치도 빠른 것 같네.
어반 너는 오늘부터 일반 행정업무가 아닌 도시 공사업무로 이동한다.
뉴렌달에 위성도시가 필요하다고 했지? 정확한 타이밍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수 있게 준비해."
"감사합니다!"
"자신 있으면 현장에서 한번 굴러봐."
"네!"
도시의 인구가 늘어나고 규모가 커지면서 자영업자의 수도 조금씩 늘어났다.
상단에서 운영하는 프렌차이즈 상점들도 영지의 관리 아래서 자영업자들과 경쟁하며 영지의 바닥 상권을 성장시키고 있었다.
가끔 도시 시찰을 나올 때면 영지민들의 삶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브룩. 장사를 시작한 게 얼마나 되었지?"
"요리대회의 상품으로 가게를 열어주셨으니 5년 정도 되었습니다."
"5년 만에 이만큼이나 성장한 건가?"
"다 영주님의 은혜 덕분입니다."
가게 벽면에 장식되어있는 요리대회 상패가 눈에 띄었다.
브룩 역시 내 시선을 느꼈는지 웃으며 말했다.
"그날 삽자루를 놓고 요리 대회에 나간 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입니다."
그 말에 나는 브룩이 내온 양념치킨을 보며 말했다.
"요리 대회에서 양념치킨을 만들었다면, 브룩이 우승했을지도 몰랐을 텐데…"
"이 양념의 비법은 영주님께서 팁을 주신 것 아닙니까?
만약 이 양념치킨으로 우승을 했다면 분명 우승자가 내정되어 있던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을 겁니다."
"그렇게 되는 건가?"
볼튼의 말에 브룩이 어색하게 웃었다.
역시 닭은 튀겨야 맛있다.
적당히 맛만 보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배를 채우고 말았다.
나는 쌓여있는 닭 뼈를 보고 말했다.
"적당히 배도 채웠으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볼까?"
그 말에 브룩이 긴장한 얼굴로 주방에서 나왔다.
차마 나와 같은 테이블에는 앉을 용기는 없었는지 브룩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새로운 가게를 열고 싶다고?"
"그렇습니다."
내가 브룩의 가게를 찾아온 이유는 브룩이 새로운 치킨집을 열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여러 개의 가게를 소유하려면 그만큼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
"상인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상단이 운영하는 상점의 확장을 막기 위해 상점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세금 역시 늘어나는 식이었다.
그 세금의 증가 폭이 만만치 않았기에 평범한 영지민이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새 가게를 열려는 브룩에 나 역시 조금은 놀라고 있었다.
'브룩이 다른 이들보다 세금을 많이 내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욕심을 부릴 정도로 돈을 모았을 줄은 몰랐는데.'
"탈세만 하지 않는다면 새 가게를 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
이미 영지민들에게 건물의 소유도 허가해줬는데 가게를 더 여는 것을 막을 생각은 없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상단들에게도 딱 하나의 상점만 허가를 해줬을 거야."
허가해 준다는 내 말에 브룩이 머리를 땅에 숙였다.
하지만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호점은 어디에 낼 생각이야? 여기 먹자골목에 가게를 열 생각은 아니겠지?"
"가능하면 해안가나 항구 인근에 가게를 열고 싶습니다.
앞으로 해안가에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 같아서요."
슬며시 내 눈치를 보는 브룩을 보니 해안 쪽에서 진행될 사업을 어디선가 들은 모양이었다.
'닭을 튀기는 것 이상으로 장사에도 재능이 있었네.'
생각해보면 나나 친위대 기사들도 따로 주문하지 않았는데 각자 취향에 맞는 메뉴를 준비했던 브룩이었다.
이런 서비스 능력을 보면 장사꾼으로서 브룩의 재질은 좋은 것이 분명했다.
"좋아. 새 가게를 내는 것을 허가하겠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2호점은 해안가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열거야.
해안가에서 여는 가게는 3호점이다."
"3호점이라니… 그, 그럼 2호점은 어디서?"
"2호점은 왕도에 연다."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 중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먹거리 문화였다.
이미 아렌달 영지의 특산품으로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커피는 많이 알려져 있었다.
나는 여기에 새로운 상품으로 브룩의 치킨을 선택했다.
브룩이 2호점을 내겠다고 요청한 것을 보고 생각난 사람이 있었다.
매주 골목 식당을 찾아다니던 요리하는 사업가.
알고 보면 엄청난 요식업 체인을 운영하는 그분을 떠올리고, 나 역시 뉴렌달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먹거리 상품을 이용하기로 했다.
'굳이 아렌달의 이름이 아니더라도 영지 안의 프렌차이즈를 이용해서 아렌달의 영향력을 넓힐 수도 있겠지.'
이미 뉴렌달 브랜드를 이용해서 마법 아이템이나 생활용품들은 베르겐 백성들에게 스며들어있었다.
거기에 이런 먹거리 상품까지 스며들 수 있다면 뉴렌달의 문화는 더 넓게, 그리고 더 깊게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나는 장사를 하는 법은 몰라. 장사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가게를 지원하는 것은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아렌달 영지뿐 아니라 왕도나 다른 영지들, 그 어느 곳에도 새로운 가게를 열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지.'
장사는 노하우가 있는 자영업자들이 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가게를 열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고 지분만 받아서 챙기면 되는 것이다.
"어때? 왕도에 2호점을 내 보겠어?"
내 제안에 브룩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왕도 한복판에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게가 오픈준비를 하고 있었다.
닭이 그려진 간판을 달고 있는 브룩스라는 이름의 치킨 전문점. 바로 왕도에 열겠다고 했던 치킨집 2호점이었다.
"영주님께서는 이 가게에 기대를 많이 하고 있네. 반드시 영주님의 기대에 보답해야 할 거야."
"물론입니다. 저 역시 제 이름을 걸고 있는 가게인 만큼 실패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좋은 마음가짐이야. 아렌달 상단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찾아오게."
"감사합니다. 랄프님."
랄프의 말에 브룩이 가게 밖을 확인했다.
치킨 전문점이라는 새로운 가게에 왕도의 백성들은 관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그러는데 브룩스의 치킨은 뭔가 다르다고 하더라."
"뉴렌달 브랜드의 고급 기름만 사용한다며?"
"맞아. 그리고 기름의 상태가 나빠지면 바로 교체를 해서 깨끗한 기름만 쓴다더군."
"과연 뭔가 다르다는 말이 나올만하네."
아렌달 상단에서 나온 바람잡이들의 목소리에 왕도 백성들의 기대감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전문점? 치킨만 팔아서 장사가 되는 건가?"
"근데 이렇게 좋은 자리에 가게를 내다니? 어디 귀족님이나 상단과 관련이 있는 가게 아닐까?"
이런저런 이야기가 떠도는 중 드디어 브룩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오픈과 동시에 바람잡이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 놓치면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몰라!"
그 목소리에 왕도 백성들이 반응하며 브룩스의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가게 안을 가득 채우는 백성들의 모습에 랄프는 고개를 저으며 가게를 빠져나왔다.
"치킨 다음은 무엇을 보내시려나? 이왕이면 해산물 전문점을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는데…"
* * *
옷에서 나는 치킨 냄새에 아리아가 소리쳤다.
"아빠! 치킨!"
"아빠는 치킨이 아니란다."
"치킨 냄새나요."
"그렇게 많이 나나?"
"아니요. 그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치킨은 어디 있죠?"
"시녀에게 맡겼어. 곧 가지고 오겠지."
내 대답에 샤를로트가 만족의 미소를 그렸다.
'안 가져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
나는 내 선택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샤를로트 곁으로 다가갔다.
"잘 자네."
"너무 잘 자서 걱정이에요. 아리아도 잠이 많았는데, 아리스는 더 많은 것 같아요."
"아기들은 잘 자야 건강하게 자란다고 하잖아?"
"그래요?"
"그리고 원래 미인은 잠꾸러기라잖아? 아리스가 이쁘니까 잠도 많은 거겠지."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옛말에 그런말이 있더라고."
내 말에 샤를로트가 갑자기 하품을 했다.
"하음~ 하긴 나도 어렸을 때는 맨날 잠들어 있었던 것 같아.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네요."
"……"
"왜요?"
"아니야."
객관적으로 샤를로트가 미인이긴 하지. 그냥 넘어가자.
샤를로트와 아리아가 치킨을 먹는 동안 나는 아리스가 잠든 모습을 구경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런 내 모습에 샤를로트가 말했다.
"벌써 아리스가 아기 때 모습은 잘 떠오르지도 않는 걸 보면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아요."
"그러게. 아리스가 자는 모습도 남겨뒀으면 좋았을 텐데."
"아리스의 자는 모습을 남겨두다니요? 아기의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은 없다고요."
"초상화? 나는 초상화 이야기를 한 게 아닌데?"
"그럼요?"
"사진으로…"
"사진이 뭐예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갑자기 떠오른 사진이라는 단어에 왜 그동안 생각을 안 하고 있었던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분명 공사를 진행하는데도 사진이나 영상이 있었다면 엄청나게 도움이 되었을 텐데, 왜 사진이나 영상을 기록하지 않은 거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내일 아침에 바로 마탑을 찾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