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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75화 (75/169)

75화

특허를 통해 기술을 보호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지만, 모든 기술에 특허를 신청하는 것은 조금 생각해봐야 할 문제였다.

특허를 등록하고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그 기술을 세상에 공개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지의 기술 중 정말 중요한 핵심 기술들은 특허를 신청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었다.

특히 마법 연구 단지에서 다뤄지는 기술들은 섣불리 공개해서는 안 되는 기술들이었기에 레이와 세공사들의 특허 신청은 고민을 해봐야 하는 문제였다.

"근데 왜 자크가 아니라 레이가 특허를 신청한 거지?

마나석 세공사들의 기술은 자크의 기술이잖아."

"글쎄요. 그건 자크님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게 낫겠지."

레이와 함께 나를 찾아온 자크가 말했다.

"영주님. 저는 이제 일을 그만두려 합니다.

끝까지 매달려 보고 싶었지만, 더 이상은 힘들 것 같습니다."

자크가 시력을 거의 상실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손의 감각만큼이나 시력도 중요한 세공일이었기에 보이지 않는 자크로서는 더 이상 일을 하기에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레이와 세공사들에게 기술의 권리고 넘겨주는 건가?"

"저야 자식도 없으니, 제자들이 자식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정말 더 이상 세공 작업을 하기 어려운 건가?"

"그렇습니다."

"가능하다면 전문 학교의 수업이라도…"

"영주님. 그 말씀은 정말 감사하지만, 이제는 잘 보이지 않아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어렵습니다."

이제 충분하다는 자크의 표정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자크의 은퇴를 받아들인 나는 레이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레이와 이야기를 해야겠군.

마나석 세공 기술이 우리 영지의 핵심 기술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겠지?

핵심 기술은 공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기술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어째서 특허를 신청했는지 들어볼까?"

"저와 세공사들이 특허를 신청한 이유는 마나석 세공 기술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빼앗긴다니?"

내 말에 레이는 자크를 살짝 바라보고는 말했다.

"누구보다 먼저 저희가 시작한 기술 아닙니까?

저희가 시작했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처음이라는 타이틀이 가지고 싶었던 건가?"

"그렇습니다."

그 말에 이해할 수 있었다.

기술의 원조 시비야 어디에서나 들려오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세공사들도 다른 왕국이나 영지에서도 마법 용품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만약 다른 곳에서 세공 기술을 먼저 공개해 버린다면 이들이 처음 마나석을 세공했다는 사실을 주장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마나석을 세공하는 것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기술이 아니었나?

아렌달에서 시작했다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데?"

"마법사들이 하던 세공과 저희 세공사들이 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마법사들은 저희 세공사들처럼 세세한 작업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4등급 마나석을 세공할 수 있는 것도 저희 세공사들뿐이지 않습니까?"

레이의 말에 갑자기 생각났다.

"세공사들이 4등급 마나석을 세공할 수 있는 건 돋보기 때문이지.

그건 내 덕분에 시작한 것 아닌가?"

"……"

레이의 당황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아렌달의 마나석 세공 기술에 내 지분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지."

"죄송합니다. 영주님."

"어떤 생각으로 특허를 내게 되었는지는 알겠다.

하지만 아직 마나석 세공 기술 같은 핵심 기술들은 외부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 말에 레이가 침울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마나석 세공 기술에 내 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나도 다른 이들이 원조라는 이름을 가져가는 걸 보고 있을 수는 없어졌다."

특허를 등록하는 동시에 기술을 공개하는 것은 기술 발전에는 도움이 되지만, 기술 권리에 대해서는 조금 문제가 있는 부분이었다는 게 생각났다.

짧은 기간만이라도 기술을 공개하지 않는 기간을 주어 특허권자들의 권리를 챙겨주는 것이다.

원래부터 권리를 챙겨준다고 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었다.

특허법을 개정해 일정 기간 독점권을 주겠다는 말에 기술을 숨기고 있던 장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특허를 신청했다.

앞서 특허를 신청하며 기술을 공개했던 장인들은 불만을 표했지만, 영지에서 마땅한 보상을 해주자 곧장 목소리를 낮추었다.

"레이 덕분에 더 많은 기술을 밖으로 끌어낼 수 있었군."

"자크님은 이대로 은퇴입니까?"

"눈이 보이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마나석 세공은 앞으로 레이가 이끌어 갈 거야."

"그렇군요."

아쉬워하는 리오의 목소리에 나 역시 같은 감정을 느꼈다.

영지의 산업을 이끌었던 주요 인물 중 처음으로 은퇴하는 사람이 나왔으니, 어딘가 허전해지는 느낌을 감추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많은 사람이 떠날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들을 대체할 사람들도 분명 나타날 것이다.

새로운 봄의 시작과 함께 영지에는 새로운 인재들이 모습을 보였다.

전문 학교의 수업을 마친 인재들이었다.

새로운 기술자들은 모두 현장으로 나가 각자 배운 기술을 뽐내기 시작했고, 행정가들은 뉴렌달의 행정을 배우며 도시가 돌아갈 수 있도록 머리를 굴렸다.

외부에서 들어왔던 유학생들은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일부는 뉴렌달에 정착하기를 희망하며 계속해서 도시에 남아 일을 배웠다.

덕분에 부족한 인력으로 고생을 하던 사람들은 처음으로 여유를 느끼고 있었다.

"도로 공사도 곧 있으면 마무리되는 건가?"

"영주님들이 자신의 영지민들을 투입하면서 공사를 진행하지 않았습니까?

아마 베르겐 역사상 가장 많은 인력이 투입된 공사일 겁니다."

"그렇긴 하지."

체스터나 베일리나 누가 먼저 도로를 완성하는지 내기라도 붙은 듯 공사를 진행했기에 그 큰 공사가 어느덧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북부든 동부든 도로 공사가 마무리되면 자동차를 끌고 한번 달려봐야겠어."

"직접 가실 겁니까?"

"왕국을 관통하는데 얼마나걸릴지 궁금하지 않아?"

"궁금하긴 하네요."

지금 떠올려 보면 처음 왕도로 갈 때는 무려 7일이나 걸렸다.

물론 그때는 내가 말을 잘 타지도 못했고, 영주들과의 관계도 없어서 빙글빙글 돌아가느라 그랬지만, 말도 안 되게 긴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자동차를 타고 달렸다면 몇 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했을 거리를 7일이나 걸렸으니 말이다.

지금 뉴렌달에서 아렌달 성까지 몇 시간 걸리지 않는 걸 생각하면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시간을 버린 것이다.

"아마 뉴렌달에서 베일리까지 달려도 하루 정도면 도착하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겨우 하루 만에 도착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먹고 달리면 도착하고도 남을걸?"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교통의 혁명이 아닐 수 없겠네요."

베일리 백작이 뉴렌달까지 온 목적을 충분히 만족시켜줄 수 있는 결과였다.

"도로가 잘 깔리게 되면 분명 자동차를 사려는 귀족들도 많이 나타나겠지."

"영주님. 새 금고를 미리 만들어 놓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2천 셀링이 없어서 빌빌대던 게 엊그제 같은데 금고가 넘쳐서 새 금고를 만들어야 한다니!"

내 말에 리오도 그 당시를 생각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영지에 돈이 없다는 말에 영주성에 팔 물건이 없냐고 물으시던 게 기억나네요.

그때 영주님께서 국왕 폐하께 돈을 빌리러 가던 모습은 아직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의 추억 얘기는 이쯤에서 멈추고, 이제 할 일을 해야지."

"앗! 알겠습니다."

내 말에 정신을 차린 리오는 준비했던 서류들을 테이블에 깔면서 말했다.

"뉴렌달 인근의 자원은 전부 확인했습니다."

그동안 아렌달 영지에서는 시멘트의 원료인 석회석을 제외한 광산 자원은 캐내지 않고 있었다.

자원 개발을 할 만큼의 인력도 없었지만, 외부에서 사 오는 원재료로도 영지의 생산을 감당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렌달의 발전을 보며 투자를 시작한 영지들 때문인지 시장에서 원자재의 값이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1차 산업보다 2차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아렌달이었기에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동안 뒤로 미뤄왔던 자원 개발을 시작하기로 했다.

"제일 중요한 마나석과 철광석은 있지?"

"네. 마나석 광산이 하나. 철광산이 네 개 있었습니다."

"마나석 광산이 하나뿐인 건 아쉽지만, 철광이 네 개나 있는 건 다행이네."

"이것도 뉴렌달 인근만 확인했을 뿐이니, 아렌달 영지 전체를 찾아보면 더 있을 겁니다."

이주 귀족들에게 넘겨준 땅을 제외하더라도 지금 아렌달에는 남아도는 게 땅이었다.

"그리고 구리 광산과 은도 찾았습니다."

"금은?"

"아쉽게도 금은 없었습니다."

"칫- 스톨 영지에서는 잘만 나오더니…"

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금이 없는 건 아쉬웠지만, 다른 광산들이 많이 있었으니 만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가장 찾고 싶었던 자원에 대해 물었다.

"석유나 석탄은?"

"영주님께서 말씀하신 검은 자원 같은 건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역시 없는 건가?"

"마법사들의 도움으로 땅속 깊이까지 파내 봤지만, 그 석유라는 검은 액체는 없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세계에는 석탄과 석유가 없다.

분명 나무를 태우면 숯도 만들어지고 재도 나오고 하는데 화석 연료는 없었다.

산업화 시대의 검은 다이아몬드가 없다는 사실에 살짝 멘탈이 흔들린 적도 있었지만, 결국 다른 해결법을 생각해냈다.

이세계에는 화석 연료가 없는 대신 마법이 있지 않은가.

지금 제철소에 불을 붙이고 있는 것도 마나를 이용한 마법의 불이었고, 동력기관을 만든 것도 마법이었으니 마나와 마법은 얼마든지 화석 연료가 없어도 산업을 이끄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남대륙에서는 마나석을 가지고 올 수 있는 거지?"

"아직 다른 대륙까지는 마법 용품에 대한 이야기가 없지 않습니까. 남대륙에서의 마나석 수급은 문제없을 겁니다."

"그건 다행이네."

정보의 전파가 느린 이세계에 감사하며 말했다.

"마법사들에게 새로운 마법 아이템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고, 장인들이나 기술자, 상인들에 대한 지원도 계속해서 아렌달이 산업을 주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른 이들이 따라오지 못할 만큼…"

현장을 비우지 말라는 내 지시를 충실히 이행한 체스터 남작이 돌아왔다.

체스터 남작은 큰 공사를 잘 마무리했다는 사실에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체스터 남작. 수고했어.

공사는 잘 마무리되었나?"

"체스터 영지로 이어지는 도로는 마무리했습니다. 다른 영지로 빠져나가는 도로는 일부 마무리 공사가 필요하겠지만, 베르겐 북부로 가는 길은 문제 없습니다."

베르겐을 관통하는 도로가 완성되어 가면서 뉴렌달 브랜드의 유통이 다시 한번 힘을 받았다.

그동안은 왕도를 거치던 상품들이 베르겐 전역으로 직접 퍼지기 시작하면서 아렌달의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이제 체스터 영지에서도 뉴렌달 브랜드를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일부 영지에서는 뉴랜달 브랜드가 없으면 생활이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백성들의 생활에 완전히 스며들었다는 이야기네."

내 말에 체스터 남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영주들도 선택하겠네.

새로운 흐름에 올라타거나, 그 흐름을 거부하고 봉쇄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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