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베르겐 왕국을 관통하는 고속도로의 공사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뉴렌달 브랜드 역시 베르겐 전역으로 빠르게 유통망을 만들어 갔다.
그동안 왕도를 거쳐 전해지던 상품들이 각 영지로 직접 전해지면서 뉴렌달 브랜드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일부 영주들은 영지 내에서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는 것보다 뉴렌달 브랜드의 상품을 공수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 영지 내에서 생산을 포기하고 뉴렌달 브랜드에 의존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목재나 광석등의 천연자원만 생산하며 2차 생산을 포기한 것이다. 오히려 원자재는 내가 확실하게 구매해주기 때문인지 서로 윈-윈 관계라고 좋아하는 영주들도 많았다.
"저러다가 내가 유통을 끊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러는 걸까?"
"영주들도 모르지 않겠지만, 2차 생산을 포기하고 원자재만 생산해내는 것이 영지의 소득에는 더 이득이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저희 영지는 자원 개발이 더디지 않습니까? 그만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원자재에 대한 여유를 부리는 거겠죠."
하지만 영주들의 생각만큼 아렌달의 자원 개발이 더딘 것은 아니었다.
이미 귀족들의 마을 공사를 준비하면서 찾아놓은 광물 자원도 꽤 되었고, 그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바깥의 땅에는 얼마든지 베어도 좋을 만큼의 나무도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부족한 자원은 사람밖에 없지.'
그리고 영지의 크기에 비해 인구가 부족한 것뿐이지 도시가 원활하게 굴러갈 만큼의 인구는 충분했다.
"리오. 지난번 골프 대회 때 귀족들 사이에서 돌던 정보들에 대한 정확도는 얼마나 확인했지?"
"나르비크 왕국이나 아스타나 왕국에서 마법 아이템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이미 베르겐에서는 몇몇 영지에서 마법 아이템을 만들기 시작했지."
"그렇습니다. 이제 다른 왕국에서도 본격적으로 마법 아이템을 만들기 시작하면 저희가 독점하고 있는 시장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동대륙 말고 다른 대륙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거지?"
"울드 상단이 전한 이야기로는 그렇습니다."
리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물결이 이제 겨우 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상단들, 그리고 상품의 생산자들을 모두 불러야겠어.
이제부터 아렌달에서는 사소한 기술도 모두 재산이 될 거야."
상인 길드를 중심으로 한 상단들과 뉴렌달 브랜드를 생산하고 있는 귀족들, 그리고 나에게 위탁을 받아 상품을 만드는 영지들까지 모두 뉴렌달로 모여들었다. 아렌달 영지의 경제를 움직이고 있는 주체들이었다.
"스톨 백작님께서 직접 걸음을 하시다니.
전 스톨 백작님과 다르게 영지에서 잘 나오지 않으시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엔나 영지에서는 후계자인 마르코님께서 참여하신답니다."
"마르코님이야 오랫동안 뉴렌달에 있으셨으니…"
"기르만 남작님이나 다른 귀족님들도 직접 걸음을 하셨다니 가벼운 자리는 아닐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아렌달 영지의 영향을 받는 귀족들이 직접 움직인 것은 내가 새로 제정하고자 하는 특별법 때문이었다.
"나는 아렌달 영지에 새로운 법인 '특허법'을 제정하려고 한다."
"특허법이요?"
"그렇다. 앞으로 기술이나 상품에는 특허를 주어서 개발자나 생산자에게 권리를 줄 것이다."
내 간단한 설명에 경제의 주체들은 흥미롭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시 경제를 굴리는 사람들답게 대부분 특허의 가치를 금방 이해하는 모습들이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아렌달의 기술을 다른 그 어떤 곳보다 독창적이며 진보적인 기술이다.
건설 공법이나 상품의 생산방법뿐 아니라 뉴렌달 브랜드의 상품들 역시 다른 어떤 곳과 비교해도 우수하다고 할 수 있지.
나는 이 모든 기술과 상품에 특허를 매겨 권리를 인정받으려고 한다."
"공작님. 그렇다면 지금까지 저희가 생산하던 상품들도 아렌달에서 독점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 특허를 가지고 있다고 모두 독점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특허를 받은 기술을 사용하고 싶다면 그 기술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면 얼마든지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특허권자가 자신의 기술을 독점하고 싶다면 기술의 사용을 막을 수도 있다."
내 말에 일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공작님. 저는 이 특허라는 게 얼마나 유지가 될지 의문입니다.
이미 공작님께서도 아시겠지만, 뉴렌달에서 만들어지는 마법 아이템들을 따라 만드는 영지들이 많습니다.
베르겐 왕국뿐 아니라 다른 왕국에서도 그 움직임이 포착되는 것은 공작님도 아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때문에 이 특허법이라는 것을 만든 것이겠지요.
하지만 아렌달에서 특허를 받는다고 다른 왕국에서 특허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외부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아렌달 내부에서 법으로 제약한다면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특허법을 만들게 된 이유가 아렌달 외부에서 아렌달의 기술을 따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특허는 분명히 필요하다."
"왜 그렇습니까?"
"그래야만 다른 곳이 아닌 아렌달이 기술을 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선도 말입니까?"
"그렇다. 아렌달에서는 이미 특허와 비슷한 권리가 하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
내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쉽게 답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바로 저작권이다."
내 말에 일부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저작권을 만들어 샤를로트를 챙겨주고 있다는 사실은 귀족들에게 익히 알려진 이야기였으니까.
"뉴렌달에서는 작가들에게 저작권을 인정해주어 작품의 주인에게 권리와 함께 소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그로 인해서 극작가들이 뉴렌달을 찾아왔고, 작품이 늘어난 만큼 많은 공연이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덕분에 그 공연들은 뉴렌달 문화의 한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작가들에게 저작권을 준 것처럼 기술이나 상품에도 특허를 주어 권리를 인정해준다면 더 많은 장인과 기술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낼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아무리 외부에서 아렌달의 기술을 따라 한다고 해도 아렌달은 계속해서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며 앞서갈 수 있을 것이다."
방직기나 증기기관 등의 기술 혁신이 산업혁명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특허야말로 혁명을 움직인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상인과 장인들에게 기술에 대한 재산권을 인정하면서 그들이 숨기고 있던 기술들이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그 기술들을 토대로 산업이 가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분명 새로운 법에 적응하며 많은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특허법으로 인해 새로운 물결은 본격적인 흐름을 타게 될 것이다."
내 말에 일부 눈치 빠른 사람들이 눈동자를 빛냈다.
경제인들이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며 떠난 이후 라이언이 내게 말했다.
"아렌달 공작님께서는 정말 신기한 분입니다."
"?"
"제가 공작님께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게 언제인지 아십니까?"
라이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공작님께서 저희 스톨 영지에서 야반도주를 한 날입니다."
그 말은 나를 처음 본 날부터 주목하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신기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아렌달 영주께서 부유한 스톨 영지와 연을 만들 기회를 버리고 도망치시는 모습이 말입니다."
라이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을 만들 기회?"
"그날 밤 샤를로트를 만나지 않으셨습니까?"
"아, 알고 있었나?"
내 물음에 라이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톨 백작이 아니라 라이언이 샤를로트를 내 방에 밀어 넣었을지도 모르겠네.'
"그때까지는 그저 신기한 이웃이라고 생각했는데, 영지로 돌아가신 공작님은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저수지와 도로를 만들고, 생전 처음 보는 하수처리장이라는 시설뿐 아니라 마법 연구소를 만들어 계속해서 무언가를 해나가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공작님께서 고대의 지식이라도 얻으신 줄 알았습니다."
"고대의 지식이라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드셨으니까요."
라이언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고대의 지식이 아니라 현대의 지식이지.'
"그런데 아무리 고대의 지식을 얻었다고 해도 그걸 만들어나가는 공작님을 보니 공작님은 그런 지식이 없더라도 영지를 발전시키셨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렌달의 발전을 지켜보면서 하루하루가 즐거웠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이웃 영지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시기와 질투가 아닌 즐거움을 느꼈다니.
라이언 역시 스톨이었다.
"사실 공작님과 샤를로트를 이어주고 싶어서 아버지를 부추긴 것도 접니다."
"그, 그랬습니까?"
큰오빠가 뒤에서 부추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샤를로트가 뭐라고 말할까?
크게 화를 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샤를로트는 나를 선택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렌달이 발전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봐온 사람이 샤를로트였으니까.
도시로 시집을 가겠다는 소망을 가진 샤를로트였으니 두말할 필요 없이 샤를로트는 나에게 왔을 것이다.
"그래서 그러는데, 다음에는 무엇을 하실 생각이 십니까?"
"다음이라니?"
"이미 공작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베르겐 왕국이 품기에 아렌달은 너무 크다는 사실을…"
"!"
"공작님께서 원하시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튀어나올 겁니다.
작은 주머니에 송곳을 넣어봐야 결국 튀어나오지 않습니까?"
"지금 이야기는 못들은 걸로 하지."
내 말에 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공작님께서 어떤 선택을 하시든지 스톨은 함께 하겠습니다."
며칠간 라이언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미래의 일보다는 눈앞에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았다.
한창 마무리를 향해가는 대규모 도로공사와 신규 마을 건설, 영지민들의 생활을 살피는 등 영주는 신경 써야 할 일이 참 많은 직책이었다.
특히 이번에 도입하는 특허법은 이세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법인 만큼 사소한 것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럼 마법 연구 단지에서 만들어진 기술들은 모두 특허로 등록이 된 거지?"
"네. 가장 먼저 특허로 등록하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 외의 뉴렌달 브랜드의 상품들 역시 특허 준비를 마쳤습니다."
"브랜드 상품들뿐 아니라 제철소의 기술이나 도로 공법 같은 건설 기술도 놓치지 말고 전부 특허로 등록해야 한다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장인들이나 상인들이 등록하는 특허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관리해서 권리를 보장해 줘야 더 많은 기술이 영지로 모이게 될 거야."
기술을 끌어모으라는 내 지시에 행정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술만능주의자인 내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인 만큼 그들 역시 기술을 중시하는 사상이 배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영주님. 특허를 신청한 사람 중에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누구? 특이한 사람이라도 있나?"
"그게… 마나석 세공사들도 특허를 신청했습니다."
"자크가 특허를 신청했어?"
"아니요. 자크님이 아니라 레이와 세공사들이 세공 기술에 대한 특허를 신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