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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72화 (72/169)

72화

확실히 영지의 크기에 비해 영지군의 숫자가 부족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인구가 적었기에 영지군의 숫자를 팍팍 늘리지 못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지금까지는 강력한 마법 무기들로 병력의 부족함을 메꾸고 있었는데 이제는 마법 무기만으로 메꾸기에 어려움이 생긴 것이다.

"영지군이 지켜야 할 영지가 너무 넓어졌어. 특히 외국과의 국경이 생겼다는 게 크다."

지금까지 영지군의 숫자는 1%를 넘지 않는 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영지민의 숫자가 이제 겨우 6만 명을 넘었기 때문에 영지군의 숫자도 겨우 600명에 불과했다.

영지 인구에 대비해서는 이상적인 병력의 규모였지만, 아렌달 영지가 가지고 있는 역량에는 절대적인 숫자가 부족한 것도 사실.

지금까지야 전장이라고는 몬스터의 땅인 바깥뿐이었지만, 이제는 외세의 침략도 생각해야 했기에 병력의 절대적인 숫자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

물론, 외세의 침략에는 영지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병력으로 전환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동원군 보다는 상비군의 전력으로 충분할 만큼의 군사적 역량을 가지고 싶었다.

"필요할 때 왕국군이 알아서 움직여주면 좋겠지만, 그걸 기대하기는 어렵겠지."

영지군이 먼저 공격하지 않겠다는 메세지에 왕국군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메세지로 답을 보내주는 상황에서 왕국군이 알아서 움직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영지의 힘만으로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조금이라도 병력의 숫자를 늘려가자.

그래도 확실한 경고를 보냈으니 쉽게 국경을 넘지는 않겠지."

그리고 빨리 투자 귀족들이 이주하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귀족들이 이주해서 자신의 마을을 가지게 되면 그들과 인연이 있는 다른 귀족들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무시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이참에 바깥 영토 일부를 왕국령으로 떼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중앙의 귀족들은 오랜만에 왕도에 방문한 나를 달갑지 않은 눈으로 바라봤다.

물론 그렇다고 내 앞에서 직접적인 비난을 하지는 못했다. 영지를 향해서는 메세지를 아끼지 않았던 것과는 다르게 내 얼굴을 보면서는 말 한마디 못하는 중앙의 귀족들이었다.

"그래서 아렌달 공작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왕국에서 외세의 침략에 적극적인 대응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렌달 영지 역시 베르겐 왕국의 영지 아닙니까?

그런데 나르비크 왕국의 침공에서 왕국은 어떠한 움직임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아렌달 영지의 역량만으로도 나르비크 왕국의 침공을 막아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왕국에서도 외교적인 항의를 멈추지 않았다는 걸 아렌달 공작도 모르지 않을 겁니다."

"외교적인 항의가 무슨 의미가 있었습니까.

직접적인 군사적 움직임을 보여 줘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야 아렌달 영지의 경계에 위치하던 나르비크의 군사들이 이동했을 겁니다."

내 말에 보리스 국왕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1만이었습니다.

내 명령에 모인 영주들의 병력이 겨우 1만이었다는 말입니다."

나 역시 국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겨우 그 정도의 병력으로 나르비크를 때리기에는 부족했을 테니까.

그리고 국왕이 왕위에 오른 이후 왕국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열정을 다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매일 커피를 달고 살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왕궁에 불러 조언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까지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국왕 폐하라면 작은 움직임이라도 취하셨어야 합니다."

"……"

"왕이라면 그랬어야 합니다."

내 말에 국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직 젊은 국왕은 잠시 나를 바라보고는 손을 내저었다.

"공작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피곤하니 이만 돌아가세요."

국왕의 집무실을 나오는 내 귀로 국왕이 책상을 내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책상을 내려친 보리스는 아렌달 공작이 나간 집무실 문을 노려봤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렌달 공작은 당연한 요구를 한 것이다.

나르비크의 침략에 왕국에서도 마땅한 대응을 해줬어야 했는데, 왕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공작이 저런 요구를 한다고 공작을 비난할 수는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달 공작에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감출 수 없었다.

그에게는 왕국의 힘을 키울 능력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렌달에서 왕국에 마법 무기만 제공을 했다면 적은 병력으로도 움직임을 취할 수 있었을 텐데."

그뿐만 아니라 아렌달 만의 독창적인 시공법이나 관리 시스템. 그리고 마법 아이템들과 마법 무기들을 왕국에 제공했다면 자신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아렌달 공작만큼 자신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렌달 공작이 왕국에 처음으로 두각을 보인 것은 10년 전 그가 20살의 나이였을 때가 아니었던가.

지금의 보리스와 같은 나이였다.

오히려 변경중에 변경에서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아렌달 공작보다는 왕궁에서 좋은 선생들에게 배웠으니, 아렌달 공작보다 더 잘할 것이라고 보리스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단 1년 만에 완전히 박살 났다.

오히려 아렌달 공작이 이룬 업적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왕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충고까지 받고 말았지."

조용한 집무실에서 다시 한번 긴 한숨 소리가 들렸다.

* * *

아렌달의 군사력이 외부에 다시 한번 위력을 보이자 귀족들은 안심했는지 본격적인 이주를 시작했다.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귀족들은 새로운 이웃들에 기대와 걱정을 섞어 환영해주며, 그들이 뉴렌달 문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아마 왕도보다 뉴렌달이 훨씬 더 발전된 도시일 겁니다."

"기대되는군요."

"아마 기대 이상일 겁니다. 1차로 투자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실지도 모릅니다. 하하."

"그때는 모두에게 기회가 있던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그랬지요."

과거 덴프린스 세력의 인물들이었던 1차 투자 귀족들과 다르게 다양한 계열의 귀족들이 모여들었기에 조금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수도 있었지만, 아렌달의 역량이 그때와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 봐야 여기는 왕도에서처럼 정치꾼들이 뭔가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만약 영지를 흔들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영주의 권력으로 찍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영지의 권력은 오직 나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있었으니까.

"그래도 너무 권력에 취하면 안 되지."

틈틈이 권력에 취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내 모습에 박수를 보내며 오늘의 일정을 확인했다.

"그럼 새로운 인재들을 만나러 가볼까?"

"오늘 내가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내 특강을 들은 학생들은 나에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시간이 아직 남아있군.

좋아. 질문이 있는 사람은 질문해도 좋다."

그 말에 학생들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거기."

"저는 어반이라고 합니다.

저에게 질문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작님."

"좋아. 어반 나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무엇이지?"

내 말에 어반은 필기를 했던 종이를 보며 말했다.

"뉴렌달을 공사할 때 어떻게 이런 도시 구조를…"

학생들의 질문세례를 물리친 내게 스미스가 말했다.

"어떻습니까?"

"음- 기대보다 학생들의 수준이 높았던 것 같아."

"다행입니다."

"실습에서 얼마나 능력을 보여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수업에 열정을 보여준다면 현장에서도 부족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겠지."

솔직히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인 학생들도 있었다.

"몇몇 친구들은 당장 영주관으로 데리고 가서 일을 시켜도 될 것 같던데."

"그렇습니까?"

확실히 몇몇 학생들은 당장 영지의 관리로 데리고 가도 좋을 정도의 질문을 던져왔었다.

특히 뉴렌달의 도시 설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 친구는 기억에 남을 정도였다.

"앞으로도 종종 이런 시간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

"영주님의 특강이라면 학생들도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학교에서 특강을 마친 나는 마법 연구 단지를 찾았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아닌 어린 마법사들의 성장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마나를 깨닫고 진리를 추구하기 시작한 아이들이 얼마나 되지?"

"얼마 전 2명이 늘어서 21명입니다."

영지에 어린 마법사가 21명이나 된다는 말에 미소가 지어졌다.

외부에서 마법사를 데려오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어린 마법사들의 성장이 꼭 필요했는데, 다행히 순조롭게 마법사들이 성장하고 있었다.

"에일렌. 그런데 정말 나는 마법을 배울 수 없는 거야?"

"네. 영주님은 너무 늦으셨어요.

마나를 느끼고 마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리의 문 너머를 봐야 하거든요."

"근데 소드마스터들도 마나를 느끼잖아?

그렇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마나를 느낄 수 있다는 것 아니야?"

내 말에 에일렌은 볼튼을 한번 바라보고는 말했다.

"마법사의 마나와 소드마스터의 마나는 다른 건데요."

"그래?"

"마법사는 이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마나를 느끼는 거라서요."

그 말에 볼튼을 바라보자 볼튼이 말했다.

"마나가 이세계를 구성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소드마스터는 깨달음을 통한 의지로 마나 소드를 만드는 것이라."

"둘의 말을 들어도 전혀 모르겠는 걸 보면, 아마 나는 마나를 이해하지 못하겠군."

"영주님. 지금이라도 검술을 익히시면 영주님께서도 마나를 느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영주님께서도 소드마스터의 피가 흐르지 않습니까?

분명 영주님께서도 검술에 대한 재능을 가지고 계실 겁니다."

볼튼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처음 이세계에 떨어지고 나서 한번 잡아보고 그 이후로 한 번도 검을 쥔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한테 검이 무슨 필요가 있겠나.

굳이 내가 검을 들지 않아도 볼튼이나 호위기사들이 나를 지켜주고, 마법 아이템들로 보호받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내 전용 마법 무기도 허리춤에 숨겨져 있었다.

'검보다는 총이지.'

검보다는 총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깨달은 나에게 검은 더 이상 가치 있는 무기가 아니었다.

"에일렌. 그럼 나는 이만 돌아갈 테니 수고하렴.

이걸로 마법사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사 먹어."

"와- 감사합니다."

내가 금일봉을 하사하자 에일렌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과거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에일렌의 미소였다.

마나석 충전소로 걸음을 옮긴 나는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는 세공사들을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마나석이 줄어들기는 한 것 같네."

"남대륙에서 가져온 물량 덕분에 아직은 여유가 있지만, 곧 다시 배를 띄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자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렌달에 있던 마나석 광산은 이미 고갈되었기에 영지에 들어오는 마나석은 덴프린스가 가지고 있던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쪽도 생산량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시장에는 이미 마나석이 사라진 지 오래였기에 남대륙에서 수급하려고 했는데, 지난번 전염병 사태 때문에 당장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루빨리 다시 배를 띄울 수 있게 해야겠네.

그리고 영지 내에서도 마나석을 찾도록 자원 개발에 힘을 들여야지.

시장에서는 더 이상 마나석을 구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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