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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65화 (65/169)

65화

베일리 변경백. 과거 아렌달 변경백과 마찬가지로 변경백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영지였다.

다만 몬스터의 땅과 마주하고 있는 아렌달과 다르게 다른 왕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영지로 진짜 변경백이라 불릴만한 곳이었다.

당연히 영주 마음대로 영지를 비워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던 아렌달과 다르게 베일리 백작은 움직이지 않고 국경을 지켜야 하는 임무를 가진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선왕이 죽었을 때도 국경을 지키느라 왕도에 모습을 보이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런 베일리 백작이 아무도 몰래 뉴렌달까지 왔다는 것은 충분히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래도 괜찮은 건가?"

"저를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버지께서도 공작님과의 대화를 마치면 바로 변경백으로 돌아가실 겁니다."

"음- 그럼 조용한 시간에 연락하도록 하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베일리 백작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소드마스터가 되고 변경백을 받아 귀족이 된 인물이었다.

그의 아들인 지크에게서 귀족들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도 그게 어느 정도 이유가 될 것이다.

"영지에서 나오지도 않고, 귀족 사회에서 인기도 없어서 그런지 베일리 백작에 대해서는 별로 정보가 없네."

랄프를 비롯해서 영지 밖의 사람들을 통해 나름 정보를 모아도 베일리 백작에 대한 정보는 생각보다 적었다.

"무슨 생각을 가지고 방문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야기를 들을 필요는 있겠지?"

이곳을 찾은 이유가 무엇이든 먼 거리를 달려와 준 국경의 수호자에게 왕국의 공작으로서 환영은 해줄 생각이었다.

늦은 밤 로브를 쓴 한 사람이 영주관 안으로 들어왔다.

"베일리 백작님인 듯합니다."

"그래?"

"제가 느끼기에는 소드마스터가 확실합니다."

볼튼의 말과 함께 베일리 백작이 로브를 걷어 올리며 말했다.

"곁에 있는 소드마스터를 보니 아렌달 공작님이겠군요."

"어서 오세요. 베일리 백작."

자리를 권하는 내 손짓에 베일리 백작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그의 나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주름진 얼굴과 하얗게 센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젊은이의 것과 다르지 않았고, 왠지 모르게 단단함이 느껴지는 분위기에 그가 국경의 수호자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공작님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마주 보고 있자니 살짝 놀랍습니다."

"무엇이 말입니까?"

"이 젊은 나이에 공작님이 만들어 낸 성과들이 말입니다.

바다를 얻어 내며 영토를 확장하고, 왕국 곳곳에 영향을 줄 정도의 상품들을 만들어 냈을 뿐 아니라, 중앙의 정치꾼들 역시 단번에 찍어 눌러버렸지요.

이 젊은 나이에 이름뿐이었던 변경 영지를 이런 도시로 만들었으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름뿐인 변경 영지라··· 확실히 그랬지요."

같은 변경백이라도 아렌달과 베일리는 차이가 있던 영지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차이가 완전히 뒤집혔다는 것 역시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제 표현이 불쾌하시진 않으셨지요?"

"아닙니다. 틀린 말도 아니니···

그래서 국경을 지키고 있어야 할 베일리 백작님이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본론이라니. 다른 귀족들처럼 말을 돌리지 않아서 좋군요."

대화를 빠르게 진행하려는 내 모습에 베일리 백작이 미소지었다.

"아렌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움이요?"

"이제 나는 늙기도 했고, 내가 물러나면 베일리 혼자서 왕국을 수호하기에는 어려울 테니 말입니다."

"외세의 침공이라면 당연히 왕국에서 막아낼 테니 아렌달 역시 함께할 겁니다."

"아니, 왕국에서 지원이 오기 전에 베일리 영지는 버티지 못할 겁니다."

베일리 백작의 말에 나는 살짝 놀랐다.

"저는 중앙을 믿지 않습니다."

"중앙을 믿지 않는다니요?"

"내가 기사로서 충성을 맹세했던 것은 전전 국왕 폐하였지요. 선왕 폐하 역시 얼굴을 본 건 딱 한 번뿐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국왕 폐하는 얼마전까지 이름도 몰랐습니다."

"그, 그건 너무한 것 아닙니까? 베일리 변경백은 왕국으로부터 지원도 많이 받고 있을 텐데요."

"변경백이 무너지면 국경이 뚫리는 건데 지원이야 당연히 해줘야지 않습니까?"

베일리 백작의 뻔뻔한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럼 왕국이 아닌 저의 도움이 필요한 건 무엇입니까?"

"아렌달의 공사 기술이 매우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베일리와 아렌달을 이을 수 있는 도로를 만들어주었으면 합니다."

솔직히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기에 자금이나 마법 무기를 지원해 달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도로 공사를 해달라니,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지금까지도 왕도에서는 베일리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만들어주지 않고 있습니다.

국경이 뚫렸을 경우 침략자가 그 도로를 타고 고속으로 침공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이유 때문이지요."

도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면 침략에 속도가 붙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 때문에 영주들은 외부와 도로를 연결하는 것을 꺼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건 왕국에서의 지원도 늦어진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왕국에서 지원이 오기 전에 변경백이 먼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베일리는 꾸물거리는 중앙보다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아렌달에 도움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나나 공작님이나 자치권을 가지고 있으니 대규모 공사에 대한 명분은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렇군요."

솔직히 베일리 백작의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소드마스터인 베일리 백작과의 인연을 만드는 것은 예전부터 바라왔던 일이다.

그리고 베일리 변경백은 왕도를 중심으로 아렌달과 정 반대에 있는 영지였기에 이 도로 공사는 왕국을 관통하는 고속도로를 만드는 일이었다.

토목을 배운 사람에게 이런 국가 규모의 사업을 지휘하는 것은 꿈같은 일이 아니던가.

거기에 뉴렌달 브랜드의 유통이나 이곳의 문화를 전파하기에도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궁금한 것?"

"영지 간의 도로를 만드는 것이 큰 사업이기는 하지만 굳이 베일리 백작님이 영지를 비우고 여기까지 올 만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 제안은 영지의 후계자인 지크를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데 말이죠."

내 물음에 베일리 백작이 미소지었다.

"그냥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왕국을 이렇게까지 변하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기사의 시대를 끝장낼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었습니다."

"기사의 시대를 끝장내다니···"

내 말에 베일리 백작은 볼튼을 한번 바라보고는 말했다.

"공작님도 알지 않습니까? 더 이상 권력자들은 기사를 키우지 않는다는 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를 키우지 않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물론 나는 끝까지 검을 놓지 않을 생각이지만, 내 아들은 다른 시대를 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국경의 수호자로서 맡은 역할을 다하고 싶을 뿐입니다

아렌달 공작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베일리 백작은 바로 뉴렌달을 떠나 변경백으로 돌아갔다.

국경의 수호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 나는 최대한 빠르게 공사를 시작하겠다는 답을 주었다.

"정말 기사의 시대가 끝나려나 보군요."

"볼튼도 그렇게 생각해?"

"저나 베일리 백작님과 같은 소드마스터가 아니라면 마법 무기에 대응하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소드마스터는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평생 검을 잡아도 깨달음을 얻는 사람은 극소수의 선택을 받은 사람뿐이죠."

"······"

"그리고 소드마스터라고 해도 이자르 후작처럼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나는 소드마스터의 전투를 보고 기사의 시대가 끝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소드마스터라는 존재가 보여준 위엄은 마법 무기를 압도하고도 남았으니까.

하지만 소드마스터들이 이렇게 느끼고 있다는 말에 나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딘지 씁쓸하게 미소짓던 베일리 백작의 모습과 담담하게 말하는 볼튼의 목소리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겨준 것이다.

'정말 기사의 시대가 끝이 나는 건가?'

"그래도 아마 기사라는 이름이 사라지지는 않을 거야."

"그럴까요?"

"조금 오글거리지만, 기사라는 이름 제법 낭만적이잖아? 분명 누군가는 그 이름을 이어가겠지."

그 말에 볼튼이 미소지었다.

"낭만입니까? 나쁘지 않네요."

아렌달과 베일리 사이에 도로를 건설한다는 소식에 중앙의 귀족들이 대대적인 항의 메세지를 보내왔다.

베일리 백작이 말했던 대로 변경백이 뚫렸을 때 침략자들에게 길을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당장 공사를 중단하라는 항의 메세지였다.

하지만 중앙의 귀족들과 다르게 지방 영주들은 이 도로가 자신의 영지를 지나가기를 희망하며 도로 공사의 자신의 영지민들을 투입하겠다는 메세지를 보내주었다.

확실한 입장의 차이를 보여주는 중앙과 지방의 모습이었다.

"근데 왠지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은데?"

"일은 커지고 있지만, 다행히 영지에는 부담이 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베일리 영지와의 도로 건설이 시작되자 이번에는 체스터 후작이 체스터 영지와 도로를 이어보자는 메시지와 함께 공사를 시작했다.

이전에 체스터 가문의 사람들이 뉴렌달을 방문했을 때 노엘이 내게 도로를 연결하고 싶다는 의향을 보였던 만큼, 체스터 영지에서도 망설임 없이 도로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동부의 아렌달 영지와 서부의 베일리 영지, 그리고 북부의 체스터 영지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도로 공사에 중간에 끼인 영지들이 들썩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영주님. 기르만 영지에서도 터미널을 만들고 싶다는 의향을 보내 왔는데 어떻게 합니까?

도로와 터미널을 만들 수 있게 해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전해 왔습니다."

"이번에 영지를 물려받은 기르만 남작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인가 보네."

엔나와 스톨뿐 아니라 구스강 끝자락에 있는 카톤까지 주변 영지들이 부를 쌓는 모습에 기르만도 안달이 났을 거다.

그동안 나에게 찍히는 바람에 지켜보고만 있었지만, 얼마 전 나에게 찍혔던 선대 영주로부터 영지를 물려받은 기르만 남작은 체면보다는 실리를 선택한 것이다.

"기르만이 성의를 보인다면 공사를 해도 좋다고 전해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바깥 영토의 개척은 언제 시작되는지 물어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바깥 영토에 투자하고 싶은 사람이 많나 보네."

"잠깐이라도 뉴렌달을 겪고 돌아간 행정관들이 있으니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뉴렌달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어떻게 해서든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겠죠."

먼저 들어와서 부를 쌓고 있는 귀족들이나 상단을 보면 가만히 있지는 못할 것이다.

"영지군의 준비는 어디까지 되었지?"

"영주님께서 명령을 내려주시기만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굳이 늦출 필요는 없겠지?

새해가 시작되면 곧바로 영토를 확장한다.

왕국에도 미리 바깥의 땅을 점령하겠다고 메세지를 전하도록 해. 국왕이라면 별말 없이 승인하겠지."

바깥의 땅을 점령해 영토를 확장하겠다는 나의 메세지에 보리스 국왕은 열렬한 환영의 메세지를 보내주었다.

덕분에 새해의 시작과 함께 영토 확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구스강을 지키는 일부를 제외한 영지군은 나르비크 방면으로 진격하며 남아있던 몬스터들을 소거시켜 나갔다.

몬스터 군락이 있는 경우에는 마탑에 통신을 넣어 폭격 마법의 도움도 받았기에 영토 확장은 처음 뉴렌달을 향할 때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빠르게 이루어졌다.

"영주님. 새로운 몬스터 군단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위험도는?"

"선제 타격을 해도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을 보면 그리 위험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지원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면 알아서 하라고 해."

"그럼 공격을 개시하라고 하겠습니다."

그 순간 대기가 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헤돈경. 남은 영토를 다 점령하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늦어도 여름 안에는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럼 뒤는 헤돈에게 맡기고 돌아가도 괜찮겠지?"

내 물음에 헤돈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나르비크의 국경까지 아렌달의 영토를 넓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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