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도대체 무슨 연구를 하고 있길래 저런 불기둥이 올라올 수 있는 거냐?"
바로 마탑에 통신을 보냈더니 자하가 급한 목소리로 받았다.
"자하. 마탑에서 올라오는 불기둥은 도대체 뭐야?"
-영주님이 십니까? 갑자기 불기둥이라니요. 저는 모르겠는데요?
"빨리 확인해봐. 지금 영주관에서도 불기둥이 보일 정도로 큰불이 일어났으니까."
-네··· 뭐, 뭐야! 저 불기둥은?!
영주님. 일단 통신을 끊겠습니다.
"하아-"
마탑의 관리자인 자하도 모르는 불 쇼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얼마 후 불기둥은 점점 작아지더니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불기둥이 만들어진 이유가 뭐야?"
"마나석을 연결해서 증폭 실험을 하다가 생긴 불기둥입니다."
"증폭 실험?"
"네. 1급 마나석 10개를 연결해서 마나를 증폭시켜봤다고 합니다.
마나량이 얼마나 증폭되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화염계 마법을 썼는데 그게 불기둥으로 변해서 도시에도 보여진 것 같습니다."
제법 거리가 떨어진 영주관에서도 보일 정도면 마나의 증폭량이 만만치 않은 것 같았다.
"그 마력량으로 알비레오가 폭발 마법을 썼다면 마탑이 날아갔겠네."
내 말에 자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알비레오는 특수 상황이 아니라면 1급 마나석에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알비레오뿐만 아니라 다른 마법사들에게도 위험한 마법을 사용할 때는 조심하라고 해."
"아, 알겠습니다."
이제 아렌달 영지는 과거 논밭을 일구던 작은 영지가 아니었다.
뉴렌달이라는 도시를 가진 가장 떠오르는 영지가 되었다.
그만큼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도 많아졌기에 최대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영지를 원활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상인 길드를 제압한 것처럼 해야 했다.
"저 영주님."
"더 할 말 있어?"
"네. 운송용 차량 있지 않습니까. 바퀴의 방향을 바꾸는 것을···"
자하의 말에 나는 기대를 가지고 그를 바라봤다.
"방법을 찾았어?"
"그게··· 그냥 기계적인 조작이 아니라 마법으로 방향을 틀어버리면 안 되는 겁니까?"
"?"
"마법의 힘으로 수레의 방향을 돌릴 수 있다고 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지 않습니까?"
처음 차량을 고안했을 때 자하가 그런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그거 차량이 무거워지면 필요 마나량이 급격하게 늘어난다고 했던 거잖아?
그러면 가성비가 너무 떨어져서 남는 게 없다고."
"그랬죠. 그런데 이번에 저희 마탑의 마법사들이 마나석을 연결해서 마나를 증폭시키지 않았습니까?"
지금 자하가 내 앞에 와서 보고를 하고 있는 이유도 증폭 마법이 만들어낸 불기둥 때문이 아니었던가.
"원래대로라면 1톤 마차를 회전시키기 위해서는 2등급 이상의 마나석이 필요했는데, 마나석을 연결해 증폭시키면 4등급 마나석으로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럼 4등급 마나석이 많이 필요하잖아?"
"마나석은 이제 많지 않습니까?"
"아!"
자하의 말대로 영지에는 이제 마나석이 많았다.
덴프린스가 가지고 있던 마나석 광산에서 생산하는 물량이 전부 뉴렌달로 들어오고 있어서 마탑에서도 그런 불기둥 쇼를 보여준 것이다.
"그럼 조작은? 일반인들도 조작이 가능한 거야?"
"그냥 수레에 마법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문제없습니다.
영주님께서도 쉽게 통신 마나석을 다루시지 않습니까?
마법 장치를 만드는 게 어려운 것이지 사용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럼 당장 시작해야지."
영지의 행정부터 마탑의 연구, 그리고 도시로 들어오는 사람들까지 관리하려니까 몸이 10개라도 부족한 기분이었다.
"요즘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에요?"
"무리라니? 영주로서 당연한 일을 하는 거지."
"그래도 이전에는 이렇게 바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전에도 나는 바쁘게 움직였는걸. 근데 다른 영주들도 다들 이렇지 않나?"
"제가 아는 한 아버지는 아니던데요."
"스톨 백작님이야 뭐-"
샤를로트에게 대답하며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확실히 요즘은 조금 바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그런데 이세계로 와서 내가 바쁘지 않았던 적을 생각해보면 한 번도 없었다.
휴식이라고는 샤를로트와 결혼하고 신혼여행이라고 쉬었을 때 한 번.
그리고 아리아가 태어나고 육아 휴직이라고 리오와 행정관들에게 일을 맡기고 쉬었을 때가 전부였다.
"그래도 요즘은 많이 피곤해 보여요."
"걱정해주는 거야?"
"그럼요? 우리 공작님을 내가 아니면 누가 걱정해줘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작부인."
"칫- 그게 뭐예요."
감사의 말과 함께 샤를로트를 바라보자 샤를로트가 내게 말했다.
"그거 아세요?"
여전히 주어를 생략하고 말을 꺼내는 샤를로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리아가···"
"아리아가 왜? 어디 아파?"
"아니요. 아리아가 이제 혼자서 일어서기 시작했어요."
"정말? 아리아가 혼자서 일어섰다고?"
내 물음에 샤를로트가 나를 흘겨보면서 말했다.
"봐요. 내 말대로 너무 무리하고 있다니까.
아리아의 일이라면 하나도 놓치지 않고 챙기던 사람이 아리아가 일어서기 시작했다는 것도 모르고 있잖아요."
샤를로트의 말에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고 있었다.
"너무 자신을 몰아붙이지 마세요.
이미 잘하고 있고, 잘해 왔으니까요."
언제부터 나는 나를 몰아세우기 시작한 거지?
공작이 되었을 때?
이자르 후작과 덴프린스 공작을 죽였을 때?
아니면 아리아가 태어났을 때?
"모두 영향이 있었겠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책임감이라는 것에 눈이 멀어서 너무 많은 곳에 관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들과 다른 내 장점 역시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마탑의 연구에 참여할 필요는 없지.
나는 그저 내가 가진 현대 지식을 바탕으로 마법사들에게 아이디어를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기초적인 행정 일이나 밀려 들어오는 인구의 관리 역시 리오나 행정가들에게 맡겨도 충분한 일이야.
오히려 꾸준하게 관리를 맡아온 그들이 나보다 나을 수도 있어."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여유로워질 수 있었다.
게으름을 피우겠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현대인으로 가져야 할 효율적인 일 처리능력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잠시 멈춰서 나를 돌아보니 나도 어느새 이세계의 귀족들과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들과 마찬가지로 권위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던 것 같다.
상인 길드를 통해 상업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과연 상단들에게 계속해서 제재만 가하는 것이 옳았던 일일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아니겠지."
아렌달 성이 복구되고 외부에서 새로운 상단들이 들어온 지금 상황은 결코 좋은 그림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영지민들의 생활이 좋아졌냐고 물어보면 그건 아니었으니까.
상단들을 압박하면서 생활이 좋아진 것은 소수의 자영업자들 뿐이었다.
길드 아래에서 상단들끼리 경쟁하며 상업이 알아서 굴러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작은 파이를 가지고 경쟁을 하다보니까 경쟁에 밀려 떠나는 상단도 발생했다.
기존에 파이를 가지고 있던 리비아 상단이나 울드 상단 등은 가지고 있던 파이를 나눌 만큼 여유가 있지도 않았다.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며 성장하고 있다고 해도, 아직 뉴렌달의 시장은 작았으니까.
"내 마음대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일을 한다고 모든 게 착착 굴러가지는 않는다."
나는 그저 남들에게는 없는 현대 지식을 바탕으로 시행착오를 줄이고,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하면 될 뿐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전공인 토목 공사와 관리자로서 인재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토목 공사야 필요하다면 아직 개발하지 못한 바깥의 영토를 넓히면 되는 일이었으니, 지금 해야 할 것은 영지에 있는 인재들을 활용해 내가 부담하고 있던 일들을 하나씩 전문가들에게 넘기는 것이었다.
"결국, 다시 사람인가?"
그런데 막상 전문가들에게 일을 넘겨주려고 했더니 사람이 부족하다.
"분명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늘었는데 왜 또 사람이 부족한 것 같지?"
"그만큼 영지에 일이 많아졌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전에야 저와 나인 단둘이서도 충분할 만큼 작은 영지였지만, 이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리오의 말대로였다.
겨우 2천 명밖에 살지 않던 아렌달 영지에서 뉴렌달에만 2만 명이 넘는 인구가 밀집한 영지가 되었다.
도시 외곽에 있는 귀족들의 마을까지 생각하면 이제 아렌달 영지도 소영지에서 벗어난 지 오래였다.
그런데 뉴렌달은 과거 아렌달 영지나 다른 영지와 산업 형태마저 다르니 그에 따른 관리자급 인재가 더 많이 필요한 상태였다.
"어떻게 하면 인재를 더 모을 수 있을까?"
"뉴렌달의 소문을 듣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인재들이 많이 늘어났지 않습니까?"
볼튼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인재가 뉴렌달까지 오는 경우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중앙 정치계에서도 덴프린스 공작과 벨파스트 후작이 물러나며 생긴 공백을 차지하기 위해 귀족들이 알력다툼을 하며 인재를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베르겐의 새로운 권력가가 되고, 뉴렌달이 떠오르는 도시라고 해도 왕이 있는 왕도에 인재가 더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건강이 안 좋은 국왕을 대신해 보리스 왕자가 대리 청정을 하기 시작하자, 왕도에는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는 인재들이 모이고 있었다.
"영주님.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뭔가 방법이 떠올랐어?"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영지에서 필요한 인재를 키우는 겁니다.
마탑에서 마법사를 양성하듯이 기술자나 행정관 등을 양성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거야 이미 하고 있는 일이잖아?"
대장간에서는 새로운 대장장이들이 기술을 배우고 있었고, 행정관 역시 꾸준히 경험을 쌓으며 영지를 관리할 수 있도록 키우고 있었다.
"아니요.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전문적으로 교육해서 인재를 키우는 겁니다.
관리자급의 인재를 말이죠."
"당장 필요한 사람은?"
"그건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있는 사람을 굴려야죠."
"······"
"행정관들은 제가 앞장서서 굴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관리자급의 인재를 빨리 키워서 투입하면 됩니다."
리오의 자신만만한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그래. 실전 경험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기본적인 교육이 있으면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지.'
아무리 실전에서 배우는 게 많다고 해도, 전문 교육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지금 따지고 보면 나도 대학에서 배운 토목 지식으로 영지를 개발한 것 아닌가.
대학에서 배운 토목 지식이 없었으면, 이렇게 빨리 영지를 발전시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 교육도 중요하지만,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 교육도 필요한 법이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중을 위해서는 리오의 말처럼 영지에서 관리자 급의 인재를 키우는 게 필요했다.
그럼 어떻게 관리자급의 인재를 키워야 할까?
"일단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지?
오랜만에 영지 회의를 해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