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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56화 (56/169)

56화

'시선을 돌리면 안 돼!'

떨어져 나가는 덴프린스의 머리에 나도 모르게 돌아가려는 시선을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역시 사람이 죽는 모습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림이었다.

뒤집히려는 속을 진정시키며 생각했다.

'지금은 강하게 나가야 한다. 다른 귀족들이 나를 얕잡아 볼 수 없게 지금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

이런 기회는 쉽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분명 덴프린스를 대신해 누군가가 머리를 들고 나를 찍어누르려고 할 것이다.

내가 중앙에 남아있지 않는 한 반드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

그렇기에 미리 나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경고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됐다.

"그리고 또 한 명! 벨파스트 후작을 고발하겠습니다."

"···?"

내 말에 귀족들의 시선이 벨파스트 후작에게로 모였다.

"뭐라고? 나를 고발 한다고?"

"그렇습니다."

"무, 무슨 명목으로 나를 고발한다는 말이냐!!!"

당황하는 벨파스트 후작의 모습에 그의 주변에 있던 귀족들이 한걸음 떨어지기 시작했다.

"벨파스트 후작은 덴프린스 공작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왕도에 있었던 벨파스트 후작은 충분히 덴프린스의 위협으로부터 왕궁을 지켜낼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은 덴프린스 공작의 생각에 동조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벨파스트 후작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중앙 정치계의 다른 기둥이었던 벨파스트 후작이 덴프린스 공작의 움직임을 몰랐을 리가 없다.

당연히 알고서도 막지 않았을 것이다.

나와 덴프린스가 서로의 세력을 갈아먹으며 힘이 빠지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래야만 조금씩 힘이 빠지고 있던 자신의 세력이 다시 부상할 수 있었을 테니까.

"덴프린스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도 막지 않았다니! 전부 아렌달 백작의 주장에 불과하지 않은가?

아무런 증거도 없이 나의 명예를 깎아내리려고 하는 수법이 통할 것이라고 보느냐!"

벨파스트 후작의 말에 일부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괜히 벨파스트 후작을 끌어들인 것은 아니었다.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끌고 와라."

내 지시에 영지군의 손에 포박된 한 사람이 끌려 들어왔다.

"크, 클라이브?"

"벨파스트 남작이 왜?"

"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이건 다 아렌달 백작의 음모입니다."

"클라이브 벨파스트 남작. 여기 있는 귀족분들이라면 이자가 누구인지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나를 향해 손을 뻗다가 볼튼에게 붙잡혀 팔이 부러졌던 벨파스트 후작의 아들.

"제가 벨파스트 후작을 고발하는 이유가 바로 이자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클라이브 벨파스트는 덴프린스 공작이 왕궁을 점거하고 있던 순간에 왕궁 안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왕궁의 변고를 벨파스트 후작 역시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벨파스트 후작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가 덴프린스 공작과 동조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 아닙니다! 저, 저는 그저 왕궁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클라이브는 이번에도 직접 움직이다가 붙잡힌 것이다.

당황하며 손을 흔들어 대는 아들에 벨파스트 후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나에게 붙잡혔으니 그의 주장은 변명에 불과한 상황이 되었다.

"벨파스트 후작도 덴프린스 공작님과 같은 죄라며 즉결 처분해야 마땅합니다."

"그렇습니다. 똑같은 죄를 지었다면 똑같은 벌을 받는 것이 인지상정. 벨파스트 후작을 처형하십시오."

덴프린스 공작의 세력이었던 귀족들이 다물고 있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구심점이 사라진 만큼 상대 진형 역시 끌어내려야 자신들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 아버지!"

"하- 멍청한 놈···"

커지는 귀족들의 목소리에 벨파스트 후작이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기세는 나에게 있었으니 벨파스트 후작은 나를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한 귀족이 손을 들고 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벨파스트 후작은 반역에 직접 적으로 가담했다고는 볼 수 없지 않은가?"

"체스터 후작님?"

"벨파스트 후작이 왕궁의 변고에 움직이지 않은 것은 잘못이지만, 벨파스트 남작의 주장대로 정말로 왕궁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온 것일 수도 있으니 반역에 가담했는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이네."

'칫-'

갑자기 체스터 후작이 이렇게 태클을 걸 줄은 몰랐다.

체스터 후작의 발언에 벨파스트 후작 세력의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 그렇습니다! 벨파스트 후작님께서 반역에 동조했다는 증거는 없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체스터 후작님의 말씀대로 벨파스트 남작은 왕궁을 살피기 위해 갔을 겁니다."

'체스터 후작의 태클만 아니었다면 중앙 정치계에 힘을 완전히 빼버릴 수 있었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체스터 후작님의 주장도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벨파스트 후작이 왕도에 있었음에도 적극적으로 덴프린스 공작을 막지 않은 것은 분명 잘못 아니겠습니까?"

"음- 그렇군. 그것은 아렌달 백작의 말이 맞네."

체스터 후작의 말에 나는 벨파스트 후작을 바라봤다.

조금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일그러진 얼굴을 한 벨파스트 후작이 말했다.

"그래서 나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가?"

"벨파스트는 중앙 정치에서 손을 떼고 영지로 돌아가기 바랍니다."

"그렇소! 벨파스트는 중앙에서 물러나시오!"

"벨파스트의 정치는 왕국에 도움이 되지 않소!"

내 말에 중앙 정치계의 귀족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부 벨파스트 후작 세력의 귀족들 역시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벨파스트 후작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정치꾼들은 어디에나 있네.

중앙 정치계의 두 기둥이 모두 사라지면 자신들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과연 그들의 생각대로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벨파스트 후작이 중앙에서 물러나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중앙에는 나를 건드릴 수 있는 세력이 없다.

마탑주를 포함해 궁정 마법사들의 마법 주문으로도 국왕의 건강은 바로 회복되지 않았다.

몸이 안 좋은 상태로 너무 오래 병상에 누워있었기 때문에 건강을 회복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설마 친위기사들도 덴프린스 공작의 사람일 줄은 몰랐습니다.

아바마마와 왕궁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렌달 백작님."

"아닙니다. 왕가의 일원이자 왕국의 신하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보리스 왕자는 내 대답에 안심이 되었는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같은 왕족이었는데 어째서 덴프린스 공작님은 그런 생각을 가지셨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욕심 때문이겠지요."

"덴프린스 공작님은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또 욕심을 부린다는 말입니까?"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이니까요.

덴프린스는 그 욕심을 좋은 방향이 아니라 나쁜 방향으로 사용했을 뿐입니다."

"그렇군요. 오늘 또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바로 영지로 돌아가신다고요?"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아렌달 영지는 변경백 아닙니까?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왕국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실은 중앙 정치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기 위한 핑계로 변경백을 들이밀자 보리스 왕자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아렌달은 변경백이었죠. 제가 그것을 깜빡했네요."

"그래도 제가 보리스 왕자님의 후견인이 될 것을 귀족들에게 알렸으니 이제 함부로 나서는 귀족들은 없을 겁니다."

내가 중앙에 없다고 해도 내 영향력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후견인이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보리스 왕자가 큰 힘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

"에이스경. 보리스 왕자님을 부탁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새로 친위 기사들이 준비 될 때까지는 제가 보리스 왕자님의 곁을 지킬 생각입니다."

그리고 에이스가 보리스를 지켜줄 것이니 나는 마음 편하게 영지로 돌아갈 수 있었다.

"보리스 왕자님 이것을."

"이게 무엇입니까?"

"보호 마법이 걸려있는 마법 목걸이입니다. 뉴렌달에서 만든 최신 품으로 위험으로부터 왕자님을 지켜줄 겁니다."

"감사합니다. 꼭 지니고 다니겠습니다."

내가 목걸이를 벗어주자 보리스 왕자가 환하게 웃으며 받았다.

과거 국왕에게 선물했던 것과 비슷했지만, 더 좋은 물건이었다.

그리고 이 선물로 인해 나는 보리스 왕자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보리스 왕자가 대리청정을 시작하는 순간 결과로 나타났다.

"데우스 아렌달 백작을 뉴렌달 공으로 봉한다."

보리스 왕자의 칙령으로 나는 단번에 공작이 되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보리스 왕자는 나를 아예 대공으로 봉해 영지를 공국으로 줄 생각도 했던 것 같았다.

대신들의 반대로 대공이 아닌 공작의 작위를 내림으로써 베르겐의 신하로서 남겨둔 것이다.

"작위가 너무 높아지면 귀찮은 것들이 꼬일 텐데?"

"이미 영지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는데요?"

"아렌달 성을 복구하기 전까지는 못 들어 온다는 건 알렸지?"

"네. 그래서 스톨 영지와 엔나 영지가 미어터질 지경이랍니다."

"그래도 아렌달 성을 복구하고 출입에 대한 관리가 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못 들어와.

혹시라도 다른 루트로 들어오려는 사람이 나타나면 무조건 추방해."

"알겠습니다."

출입 관리소의 역할을 할 아렌달 성이 복구되기 전까지는 인구의 유입을 막고 있었다.

지금 서둘러서 이주민을 받고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괜히 서두르다가는 영지에 혼란이 올 수도 있기에 차근차근 이주민을 받을 생각이었다.

중앙 정치꾼들의 힘을 완전히 죽여 놨기에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그럼 이제 다시 영지 발전에 전력을 기울여 볼까?"

"이것 좀 보세요."

샤를로트가 작은 아기 신발을 나에게 보여줬다.

"오- 이쁘네."

"리지가 아리아의 선물이라고 만들어 줬어요."

"옷가게 일로 엄청 바쁠 텐데, 용케도 아리아의 선물을 만들어 줬네."

도시의 상업은 자영업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처음 요리 대회를 통해 식당을 열어준 것을 시작으로 의상실이나 잡화점도 생기기 시작했고, 건설 노동자 중에는 제법 돈을 열심히 모은 사람이 사업소를 차려서 팀을 꾸려 건설 현장을 다니기도 했다.

상단들도 이제는 자신들에게도 기회를 열어달라고 말하며 일꾼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상단들에게는 골목 상권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영지민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소득을 내도록 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상단들이 결집해서 조합을 만들었다고?"

"네. 계속 이렇게 상단을 차별하면 조합의 힘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영지에서는 영주의 명령이 법이다. 상단의 권리고 나발이고 내가 하지 말라고 하면 못하는 게 영지에서는 법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주장을 듣고 보니 웃음이 나왔다.

"길드를 만들었다 이거지?"

그러면 이제부터 길드만 털면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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