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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52화 (52/169)

52화

"하나도 빼지 말고 전부 쌓아 놓으라고 해.

뉴랜달 브랜드로 나가는 품목 전부 다."

"영주님. 갑자기 그렇게 막아버리시면 문제가 생길 텐데요?"

"저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마법 용품, 아이스크림, 해산물, 초콜릿, 커피 그리고 소금까지 단 하나도 보내지 말고 전부 묶어 놔."

"자칫하다가는 왕도의 귀족들 모두와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습니다."

"덴프린스 공작과 벨파스트 후작 양쪽 세력 모두 이미 나를 적으로 생각하고 있을걸?"

"그,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왕도로의 유통을 끊어버리시는 건···

그럼 최소한 소금만이라도 다른 루트를 통해 왕도로 보내시는 게 어떻습니까?"

리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은 열이 받아서 전부 끊어버리라고 했지만, 소금만큼은 함부로 끊어버리면 안 되는 물품이었다.

필수품인 소금까지 보내지 않으면 그것을 빌미로 더 큰 시비를 걸어 올 수도 있었다.

"알았어. 소금만 다른 영지로 우회해서 왕도로 보낸다.

물론 소금도 이전만큼은 아니야. 수량을 조절해서 왕도의 백성들이 혼란을 느끼지 않을 정도만 보내."

"알겠습니다."

"그리고 기르만 남작이 길을 막았다는 사실을 왕도의 백성들이 모두 알 수 있도록 소문을 내도록 해.

국왕에게도 중재와 함께 기르만 남작의 처벌을 요구하고."

"랄프에게 바로 연락을 하겠습니다."

이제 중앙의 귀족들에게 확실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변방이라고 무시를 하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말이다.

뉴랜달 브랜드 중에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소금뿐이다.

다른 상품들은 타 영지에서 대체품을 찾을 수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물론, 품질의 차이는 많이 나겠지만 만들고자 하면 어떻게 해서든 대체품을 만들 수 있었다.

영지의 특산품인 해산물이나 아이스크림, 마법 용품들이 없다고 사람의 생활이 갑자기 어려워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왕도에서 곧바로 반응이 나타났다.

"귀족들의 항의 서한이 엄청나게 왔습니다."

"나한테 보내지 말고 기르만한테 보내라고 해. 그러면 기르만도 자기 뒤에 숨어 있는 덴프린스에게 보내겠지."

기르만이 길만 열어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테니까, 항의는 내가 아니라 기르만이 받는 게 맞는 것이다.

"제발 초콜릿과 커피라도 보내줄 수 없냐는 귀족들의 서한도 있습니다."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거기에 왕궁에서 온 서한도 있겠네?"

"···네."

국왕은 알아주는 커피 중독자였으니 분명 왕궁에서도 커피를 보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럼 국왕한테 빨리 기르만을 처벌하고 길을 열어주라고 보내. 지금 자신을 지지해주는 신하가 고통을 받는데 국왕이 되어서 가만히 손 놓고 구경이나 하고 있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며칠 만에 풀릴 줄 알았던 기르만의 봉쇄는 왕도의 물가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는 지금까지 풀리지 않고 있었다.

국왕이 아무리 권위적이고 답답한 사람이라고 해도 바보는 아니었다.

내가 힘을 기를수록 중앙 귀족들의 힘이 분산된다는 것을 모를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기르만의 봉쇄가 풀리지 않는다?

이건 뭔가 이상한 냄새가 풍기는 일이었다.

"뭔가 알아낸 것은 없어?"

"아직까지는 정확한 정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왕궁이 너무 조용하고, 백성들의 불만에도 이렇다 할 조치가 없다는 게 전부입니다."

"왕궁 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는 말인가?"

왕도에서 누군가가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왕궁이 그렇게 조용하다면, 귀족들의 움직임은? 덴프린스 공작이나 벨파스트 후작의 세력들은 뭔가 행동을 하고 있을 것 아니야?"

"그게··· 왕도에서 귀족들도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합니다.

랄프가 상인 네트워크를 통해 알아보고는 있는데, 귀족들과의 거래도 확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줄어들어?"

"네. 대부분 영지에서 물건이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희가 물건들을 묶어 놓듯이 다른 영지도 물건을 묶어 놓고 있는 것 같다고···"

다른 영지들에서 물건을 묶어 놓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뉴랜달 브랜드가 잠시 유통을 멈춰있을 때 기회를 봐서 물건을 팔아야지 큰 이득을 남길 수 있는데 영지의 생산품을 묶어 둔다?

"이건 너무 이상하잖아?"

뭔가 감이 안 좋았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차갑게 웃던 덴프린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헤돈에게 영지군이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게 준비하라고 해."

"영지군을요?"

"그래. 영지군이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그리고 마탑에도 준비하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주해 온 귀족들에게 허튼 움직임을 보이지 말라고 경고해 놔."

"귀족들에게까지요?"

"그래. 괜히 나를 불편하게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통신 마나석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틀리기를 바라며 통신 마나석을 연결하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렌달 백작이다. 말해."

-영주님! 랄프입니다. 왕도의 거점이 습격을 받았습니다.

덴프린스 공작의 군사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귀족이 영지의 군사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명분이라는 게 중요했다.

명분 없이 다른 영지를 공격하는 것은 영지와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명예를 중요시하는 다른 귀족들의 지지도 끌어낼 수 있었다.

다른 영지에서 물품을 묶어 놓고 있던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왕도의 혼란.

그 혼란의 책임을 전부 나에게 뒤집어씌워 군사를 움직일 명분을 만든 것이다.

"빌어먹을! 당장 아렌달에 남아있는 영지민을 소거시켜.

아렌달성에 통신을 보내서 영지민 전부 뉴렌달로 이주시켜!"

덴프린스가 이렇게 군사를 움직인다는 것은 국왕에게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었다.

"영지군 전원 무장 상태로 아렌달로 향한다. 내가 직접 이끌고 갈 테니 최대한 빨리 준비해."

"영주님께서 직접 가시기엔 너무 위험합니다."

볼튼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덴프린스의 말이 귓가에 떠돌았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얼굴을 보여야 저쪽에서도 더러운 수를 안 쓰겠지."

"잠깐만 마탑에 가 있어."

"무슨 일 있어요?"

"조금 귀찮은 일이 있어서··· 금방 해결될 테니까 아리아를 데리고 잠시만 마탑에 가 있도록 해."

그 말에 샤를로트는 나를 잠시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하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응. 고마워."

샤를로트의 품에 안겨있는 아리아에게 웃어준 나는 친위대에게 말했다.

"친위대는 샤를로트와 아리아 곁에 남는다."

"알겠습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마탑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 철저히 수호해."

"목숨으로 지키겠습니다."

친위대의 든든한 대답에 나는 샤를로트와 아리아를 한번 안아주며 생각했다.

'누구든 건드리기만 해봐.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복수해줄 테니.'

덴프린스 공작으로부터 서한이 도착했다.

덴프린스를 필두로 귀족들이 나를 규탄하는 내용의 서한이었다.

그리고 왕도의 혼란을 일으킨 책임을 물어 나의 작위를 박탈하고 아렌달 영지의 권리를 모두 압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상의 선전포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이 미친 새끼가. 언제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거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영지의 경계를 넘을 수가 있어?"

"기르만 남작이 길을 막기 전부터 수를 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벌써 엔나 영지를 지날 수는 없습니다."

"우리보다 빠르게 아렌달에 들어오겠지?"

"아무래도 저희가 늦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거리상으로는 절대로 먼저 도착할 수가 없었다.

특히 아렌달 영지는 도로 사정이 엄청나게 좋은 곳이기 때문에 그들이 달리는 속도를 줄일 수도 없었다.

"달리아. 지금 영지의 경계를 넘은 군사가 얼마나 된다고 했지?"

"탐지 마법대로라면 1천 명가량 되는 것 같아요."

"1천 명. 겨우 그게 끝은 아니겠지."

겨우 그 정도의 숫자로는 나를 칠 수 없다는 걸 덴프린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 1천 명의 병력은 선발대일 게 분명했다. 그리고 선발대라면 속도를 계속해서 올릴 것이다.

"아렌달성에서 멈추지 않고 뉴렌달을 향한다면 어디서 마주치게 되는지 계산해봐."

"1번 초소까지는 들어올 것 같습니다. 저희가 먼저 자리를 잡으려면 2번 초소 앞에서 진형을 구축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럼 거기서 기다리기로 하지."

내 지시를 헤돈이 영지군에게 빠르게 전파했다.

병력의 숫자가 많이 늘었다고 해도 이제 겨우 400명.

400으로 1천의 병력을 막아야 하는 데도 영지군 병사들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리고 나 역시 마법 무기로 중무장한 영지군을 보며 두려움을 지우고 있었다.

'선을 넘는 순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덴프린스의 선발대는 예상대로 아렌달 성에서 멈추지 않았다.

아렌달에는 영지민을 소거해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으니 그들로서도 당황했을 것이다.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던 만큼 빠르게 아렌달성으로 들어왔는데, 통신 마법으로 인해 그 계획이 틀어진 것이다.

그러니 병력을 이끌던 하치 남작은 성과를 내기 위해 아렌달을 지나 뉴렌달로 달리기 시작했다.

멀리서부터 먼지를 일으키고 달려오는 병력을 보니 엔나 남작이 영지의 경계를 넘을 때가 떠올랐다.

"그래도 저들은 뭔가 준비를 하기는 했네."

"하지만 저런 조잡한 물건으로는 영지군의 화력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머저리 같은 놈들이지."

나름 마법 무기의 화력을 막기 위해 준비를 한 것 같지만, 그래 봐야 조잡한 방어 마법일 뿐.

하치 남작은 우리 군이 진형을 구축하고 기다리는 모습에 달려오던 발을 멈추며 소리쳤다.

"감히 왕도의 혼란을 일으킨 아렌달 백작은 들어라!

나는 덴프린스 공작님과 국왕 폐하의 명을 받고 아렌달 백작에게 벌을 주기 위해 달려온 하치 남작이다.

지금이라도 순순히 항복한다면 지금까지 아렌달이 이룬 공로를 인정해 벌을 감해 줄 것이다.

아렌달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하치 남작의 말에 내가 조소를 흘리자 영지군 병사들도 하치 남작을 비웃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고 있어?"

"뭐라!"

"그리고 쳐들어올 거면 최소한 이자르 후작이라도 데리고 왔어야지.

겨우 하치 남작? 내가 그렇게 X으로 보여?"

"겨, 겨우! 나를 겨우라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하치 남작이 검을 뽑으려 하자 영지군 병사들이 그를 방향 총구를 겨눴다.

마법 무기의 위력을 알고 있었는지 하치 남작은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는 꽁무니가 빠지도록 도망치며 소리쳤다.

"각오해야 할 것이다!"

"각오는 네가 해야지."

하치 남작의 뒤로 조잡한 방패를 들어 올린 병사들이 진군을 시작했다.

마법 무기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 마법이 걸려있는 방패였다.

하지만 그걸로 막을 수 있는지는 확인을 해봐야 하는 법.

나는 다가오는 병력을 향해 말했다.

"싹 다 밀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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