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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51화 (51/169)

51화

"설마 공간 이동마법으로 보내겠다는 건 아니지?"

"그래도 됩니까?"

될 리가 있나?

거리와 무게에 따라 필요한 마나량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하는 마법을 유통에 쓰겠다니.

인천에서 서울까지 감자 한 상자를 보내는데 비행기를 띄우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는 소리였다.

"그게 아니라 이동하는 수레에 좌표 입력해서 그 좌표 지점까지 수레가 달리도록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 봤습니다."

'이거 자율주행 아니야?'

나는 그저 자동차를 만들어 보라고 던져줬는데, 갑자기 몇 단계를 뛰어넘어 자율주행을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래 봐야 직선 주행밖에 안 되는 거잖아?

아무리 고속도로를 만들었어도, 모든 구간이 직선은 아닌데 어떻게 길 위에 올려놓으려고?"

"통신 중계기를 심어 놓은 것처럼 특정 포인트까지 달리게 하고, 그곳에서 방향을 틀어 놓는 겁니다."

"음-"

자하의 설명을 들어보니 머릿속에 어떤 그림이 그려지기는 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 일인지는 아직도 의문이었다.

'GPS처럼 위성 신호를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일단은 누가 끌지 않아도 수레가 달릴 수는 있다는 말이지? 그게 가능해?"

"가능은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일단 해보자. 해보면 보완점도 나오겠지. 보완점을 계속 개선하다 보면 어떻게든 답이 나오지 않겠어?"

자하가 제안한 방법이 제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속으로 엄청나게 놀라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진리에 대한 탐구를 위해 누구보다 깊게 생각하고 그것을 위한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기적 덕분에 내 현대지식이 빛을 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겨우 몇 가지 지식을 던져줬다고 그보다 몇 단계를 뛰어넘어 버리는 생각을 가지고 올 줄은 몰랐다.

내가 가진 현대지식으로 문명 수준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마법사들에 조금 두려운 마음도 생겼다.

발전 속도가 적응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면 그것조차 문제를 만들 수 있으니까.

'그래도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니까. 좋게 생각해야겠지.'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면 그것을 유통할 방법도 만들어야 하는 법.

자하와 마법사들에게 차량을 만들게 한 이유도 그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자동차보다 열차를 만드는 게 유통을 위해서는 더 맞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조향장치도 아직일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레일을 깔 능력이 안 돼.

지금 당장 철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만약 레일을 깐다고 해도 아렌달까지 깔 수나 있으면 다행이지.'

이세계에서 철의 가치를 생각하면, 분명 설치한 레일을 누군가가 뜯어가고 말 것이다.

그래서 만들고 있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음- 역시 이쪽은 잘 돌아가네."

"이쪽은 방향타도 이미 있고, 동력 기관만 잘 작동하면 되는 거니까요."

"문제는 이걸 달고 물 위에서 운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거지."

"그거야 항해사들이 연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열심히 돌고 있는 프로펠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꽤 만족스러운 결과물이었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배를 띄울 수 있는 동력선을 만들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지금 시험주행을 하고 있는 차량이 잘 굴러가면 내륙의 유통은 그쪽이 담당하겠지만, 바다를 가진 뉴렌달로서는 해상 무역도 준비해야 했기에 동력선의 존재는 매우 중요했다.

"근데 이거 가성비가 너무 떨어지는 것 아니야?"

"바람을 타는 것을 우선으로 하면서 보조 장치로 사용하면 큰 도움이 될 거라고 그러던데요."

"누가?"

"아론님이요."

항해사 아론. 내전을 피해 베르겐으로 망명한, 나르비크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던 항해사였다.

"랄프가 직접 데리고 왔던 사람이지?"

"네."

내가 바다를 얻고 나서 오매불망 기다리던 기술자였다. 무려 20년 넘게 동대륙과 남대륙을 오가던 항해사였으니 그 능력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통통배로 실험했을 때 생각보다 잘 움직였습니다. 바다로 나가는 건 더 실험을 해봐야겠지만, 구스강 정도는 역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스강을 역행할 수 있으면 충분해. 이제는 배로도 물건을 옮길 수 있겠네."

"네. 가성비는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도움은 될 것 같습니다."

구스강은 폭이 넓은 강이 아님에도 수량이 매우 풍부한 강이었다.

당연히 그만큼 유속이 빠른 강이었기에 강을 역행하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동력선이 완성된다면 충분히 역행이 가능해지기에 새로운 유통의 활로를 만들어 줄 것 같았다.

"덴프린스가 마나석의 공급만 끊지 않았어도 이렇게 가성비가 떨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뉴렌달산 마법 용품들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마나석 가격이 폭등하지 않았습니까? 어쩔 수 없는 거죠."

"남 대륙에 가면 마나석이 엄청 많다며? 빨리 큰 배가 완성돼서 해상 무역이 가능해지기를 바라야지."

"네. 그럼 그렇게···"

"영주님!!!"

그때 리오의 말을 자르며 행정관 한 명이 다급한 목소리로 달려왔다.

"뭐야? 무슨 일인데 그렇게 뛰어오는 거야?"

"그, 그게··· 큰일 났습니다."

"큰일? 몬스터 군단이라도 나타났어? 아니면 덴프린스가 쳐들어오기라도 한 거야?"

"그게 아니고··· 사고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행정관 뒤로 심각한 얼굴을 한 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걸 어떻게 합니까?"

"어떡하긴 뭘 어떡해. 일단 자하에게 시험주행 멈추고, 조향장치부터 다시 만들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럼 귀족들에게 보상은 어떻게···"

"그건 어떻게든 합의를 봐야지."

합의를 봐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세계에서 교통사고로 인한 합의를 봐야 한다니.'

귀족들이 나를 찾아온 이유는 다름 아니라 시험주행을 하던 수레가 교통사고를 냈기 때문이었다.

바깥 영토의 권리를 받은 귀족들이 자신의 영지민들을 데리고 이주하던 도중에 시험 주행하던 수레를 마주쳤다.

이주민들이 먼 거리를 이동하는 피로에 직선으로 달리는 수레를 피하지 못하고 치여 버린 것이다.

수레의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았기에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을 뿐. 만약 수레의 속도가 조금이라도 더 빨랐다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더 어이가 없는 건 내가 보상을 해줄 대상이 수레에 치인 이주민이 아니라 그들을 이끌고 들어온 귀족들이라는 사실이었다.

귀족들이 수레에 치인 게 아니라 귀족들의 재산인 영지민이 치인 것이기 때문에.

'사람을 쳤는데 대인 배상이 아니라 대물 배상을 하라니.'

귀족을 중심으로 한 신분 사회의 면모를 다시 보는 것 같아 씁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지금까지 내가 가진 현대지식으로 발전해 왔는데 처음으로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내가 가진 현대지식이 있으면 발전에 시행착오를 겪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

분명 현대지식으로 누구보다 빠른 발전이 가능했지만, 내가 가진 현대지식에도 한계는 분명 있었다.

내가 기계의 메커니즘에 대한 지식이 더 있었더라면 진작에 차량을 완성했을 것이다.

내 지식의 범위에서는 문제가 없었지만, 내 지식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에는 결국, 남들과 같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가진 현대지식으로 답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압도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니까.

조선소에서 본격적으로 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해상 무역을 위한 배가 아니라 구스강에 띄우기 위한 작은 배들이었지만, 그래도 배를 띄울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동력선에 적응하지 못하던 뱃꾼들도 몇번씩 운행을 하고 난 후에는 자연스럽게 동력 기관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몇몇 뱃꾼들은 바람과 물의 흐름을 거스르는 움직임에 대단한 업적이라도 되는 양 나를 찬양하기까지 했다.

"그래 봐야 소금이나 파는 건데 뭐-"

다른 값싼 물건들을 배로 보내기에는 가성비가 안 맞았으니 어쩔 수 없이 비싼 소금이나 해산물, 그리고 마법 용품 정도나 배에 실어 왕도로 보냈다.

비싸거나 필수품이거나 회전율이 엄청나게 좋은 물건이 아니면 배로 보내는 게 오히려 손해가 나는 상황.

"이게 다 덴프린스 녀석이 마나석 공급을 끊어서 그런 거지!"

아렌달에 있는 마나석 광산의 채굴량이 점점 떨어지는 와중에 덴프린스 공작에게도 마나석을 받지 못하니 여러모로 귀찮은 상황이 생겼다.

영지가 발전하면서 마력을 소모하는 물건들이 점점 생기는데 정작 마나석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만들어 질것 같으니 하루라도 빨리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동안 미뤄왔던 바깥 영토의 자원 개발을 시작해야 하나?

마나석 광산 좀 많이 터졌으면 좋겠는데···"

"영주님. 자원 개발을 하기에는 사람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아직 투자한 귀족들의 마을도 다 완성하지 못했는데요."

"왜 항상 결론이 그거야? 언제까지 인력난에 시달려야 하는 건지."

"그래도 영지의 인구가 많이 늘어났지 않습니까?

우리 영지민만 해도 1만 3천 명이 넘고, 귀족들이 데리고 온 인구까지 포함하면 거의 2만 명에 육박하는데요."

"덴프린스 영지의 인구를 다 합치면 30만인 것 알지?"

"덴프린스와 비교를 하시면··· 덴프린스는 왕도보다도 인구가 많지 않습니까."

"북부의 체스터 영지도 8만 명이 넘고, 나름 변방인 스톨 영지도 5만 명 가까이 될걸?"

"크흠- 저희 아렌달 영지도 금방 그렇게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 하루라도 빨리 그렇게 되길 바라야지."

그래도 영지가 부유해진 만큼 인구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역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아이를 많이 낳는 법.

아마 제대로 조사를 해보면 아렌달 영지가 출산율도 제일 높을 것이다.

그리고 진작부터 위생도 좋았고, 병원의 건설로 보건 쪽도 상황이 다른 영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서 태어난 아이의 사망률도 압도적으로 낮을 것이다.

인력난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게 10년, 20년 후라는 것이 문제일 뿐.

'그러고 보니 벌써 이세계에서 눈을 뜬 게 8년째인가?

이렇게 생각하니 10년, 20년도 그렇게 멀지만은 않은 것 같네.'

"아- 지금도 더운데 열 받게 만드네."

한창 뜨거워지는 여름날. 나를 열 받게 만드는 일이 일어났다.

"기르만 남작은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거지?"

"아무래도 덴프린스 공작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내 덕분에 벌어먹은 게 얼마나 되는데 길을 막아?"

열이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가 없었다.

기르만 남작이 왕도로 가는 길을 막아버린 것이다.

육로뿐 아니라 구스강 역시 막아버려서 왕도로 가는 유통이 완전히 막혀버렸다.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좋아 한번 해보자고.

유통이 막히면 누가 더 힘들어지는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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