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덴프린스 공작의 요구는 간단했다.
"그러니까 국왕 폐하께 넘겨준 것과 같은 마법 무기를 가지고 오라는 말입니까?"
내 물음의 덴프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국왕 폐하께 드리기로 한 물건은 더 없지 않나? 그렇다면 당연히 나에게도 똑같은 것을 가지고 와야지."
이 자식이. 나한테 마법 무기를 맡겨 놓기라도 하셨나?
너무나 당연하게 마법 무기를 가지고 오라는 덴프린스 공작의 말이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덴프린스 공작님도 마법사들을 많이 영입하신 것으로 아는데요. 그리고 근래에는 저에게 보내기로 한 마나석도 보내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다 덴프린스 영지에서 마법 무기를 개발하려고 한 것 아니었습니까?"
"······"
"말이 없으신 것을 보니 마땅한 성과가 없었나 보군요."
내 말에 덴프린스 공작의 눈가가 살짝 찡그려졌다.
A2 소총부터 모든 마법 무기들은 현대 지식과 마법 지식을 복합적으로 사용해서 만든 무기였다.
그것도 단기간이 아닌 오랜 시간 연구와 수차례의 실험 끝에 완성한 것이었다. 당연히 따라 만들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마나석을 충전하는 것이나 세공하는 방법 역시 다른 영지에서는 따라 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얼마나 철저히 관리했는데, 당연히 똑같이 만들려고 해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겠지.'
"많이 건방져졌군. 아렌달 백작."
덴프린스 공작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저는 공작님과 약속한 대로 바깥에서 나오는 자원의 권리와 몬스터의 전리품들을 꼬박꼬박 보내드렸습니다.
그런데 공작님은 아렌달에 무엇을 해주었습니까?"
내 말에 덴프린스 공작이 등을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
"지금 나에게 대가를 요구하는 건가? 미쳤군."
공작의 말에 방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나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에 방안을 살폈지만,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라면 몰라도 볼튼에게까지 숨길 수는 없는 법.
볼튼이 내게 얼굴을 가까이 가지고 오며 귓속말을 했다.
"영주님. 이 방을 기사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때? 괜찮겠어?"
"다행히 저쪽에서 먼저 공격을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기사들의 실력이 뛰어나기는 한 것 같지만,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자신만만한 볼튼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덴프린스 공작에게 말했다.
"저는 딱히 무언가를 바라진 않습니다. 그냥 저를 가만히 놔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지금처럼 아렌달은 공작님과 했던 약속을 지킬 겁니다.
자원의 권리도, 몬스터 전리품도 계속 공작님께 보내겠습니다."
"자원에 대한 권리? 그건 필요 없으니 마법 무기를 내게 보내. 당장 물건이 없다면 설계도라도 먼저 나에게 가지고 와."
태생이 고위 귀족으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가지고 싶은 것이라면 하나도 남김없이 다 가졌던 사람이라 그런 것인지 덴프린스 공작의 요구는 너무나 당연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덴프린스의 요구를 들어줄 필요는 없었다.
"그건 힘들겠군요."
"······"
"이자르 후작과도 결탁한 것 같은데 마법 무기까지 가지게 되면 덴프린스 공작님께서 너무 큰 힘을 가지게 되지 않겠습니까?
한쪽이 너무 힘을 키우는 것보다는 균형을 이루며 발전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다른 세력을 견제하면서 조금이라도 나에게서 신경을 끊을 테니까.
괜히 쓸데없는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리고 너무 한쪽이 큰 힘을 가지게 되면 저에게 위협이 올 것 같아서···"
내 말에 덴프린스 공작이 미소지었다.
"지금은 위협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가?"
"지금도 위협적이니까 더 위협적인 인물이 되지 않게 주의를 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아렌달 백작은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군."
"아렌달은 베르겐 왕국의 영지입니다. 덴프린스 역시 베르겐 왕국의 영지 아닙니까?"
"그게 아렌달의 대답인가?"
순간적으로 방안의 살기가 짙어졌다.
"흡!"
하지만 나에게는 볼튼이 있다.
볼튼의 기합과 함께 흩어지는 살기에 덴프린스 공작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 기사는?!"
"더 할 말씀이 없으시면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영지의 일이 바빠 왕도에 오래 있을 사정이 안 되어서 말이죠."
아직도 볼튼을 보며 놀라고 있는 덴프린스에게 말했다.
"덴프린스 공작님. 필요한 게 있으면 스스로 얻으려 해야지 남의 것을 빼앗으려 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이제 공작님도 스스로 우물을 파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짜 미쳤나 보군."
나를 노려보는 덴프린스의 눈빛에 나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떠나려는 나의 등뒤로 덴프린스의 경고가 날아들었다.
"이제 딸아이도 태어났는데 괜찮겠나?"
"뭐?"
"지켜야 할 게 늘어났으니 더욱 조심해야지. 안 그래?"
"······"
"아리아라고 했던가? 이름이 이쁘군. 훗-"
차갑게 웃는 겐프린스의 입가에 나는 소름이 돋았다.
'이 새끼가 지금 아리아로 나를 협박하는 거야?'
아리아를 들먹이는 덴프린스를 노려보자 그는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더 할 말 없으니 그만 꺼져."
덴프린스의 말에 나는 그를 다시 한번 노려보고 몸을 돌렸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덴프린스 공작과의 관계가 틀어질 줄은 몰랐다.
하지만 선은 덴프린스가 먼저 넘었다.
'가족은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덴프린스 공작이 아리아를 입에 올린 순간 덴프린스 공작과의 관계는 끝났다.
"영주님. 괜찮겠습니까? 아까 덴프린스 공작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는데."
"아마도··· 괜찮지 않을 거야. 덴프린스의 눈을 보니까 절대 가만히 있을 눈이 아니었어.
그래도 내게 마법 무기와 볼튼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곧바로 움직이지는 않겠지."
볼튼이 보여준 존재감 때문에 바로는 아니어도 덴프린스는 분명 무언가 수를 쓸 게 분명했다.
그게 직접적인 공격일지 간접적인 견제일지는 알 수 없지만, 결코 나를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다.
'알비레오에게는 미안하지만, 조금 더 알비레오를 쪼아야 할지도 모르겠네.'
나와 덴프린스의 사이가 틀어진 걸 어떻게 알았는지 벨파스트 후작 세력이 내게 손을 뻗어왔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바로 뉴렌달로 돌아왔다.
"아렌달성에는 주의를 해놓으라고 지시를 내렸으니 이상이 생기면 바로 이곳으로 통신이 올 거야.
아렌달에서 오는 통신은 하나도 빠짐없이 나에게 보고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지금 들어오기로 한 귀족들은 얼마나 더 들어왔지?"
"체스터 남작님이 큰 이득을 얻는 모습에 다들 급하게 영지민들을 끌고 오고 있습니다.
당장 마을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서를 보내는 귀족들도 있습니다."
일단 덴프린스 쪽의 움직임은 예의 주시하도록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쪽만 신경을 쓰기에는 이쪽의 일도 중요했다. 아니 어쩌면 이쪽의 일이 더 중요할 수도 있었다.
투자한 귀족들 대부분이 덴프린스와 약간이라도 관계가 있는 귀족들이었기에 이들을 붙잡아 두면 덴프린스의 움직임도 어느 정도 제약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쪽의 정보도 덴프린스에게 흘러 들어갈 수 있었지만, 당장 귀족들에게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덴프린스가 아니라 나였으니까 말이다.
'귀족들이 내 쪽에 서주면 자연스럽게 덴프린스 공작 세력의 힘이 빠지게 될 거야.
그리고 최악의 경우 귀족들을 방패로 삼아 시간도 끌수 있겠지.'
"준비되는 대로 다 들어오라고 해. 한동안 건설쪽은 여유로워지는 줄 알았는데, 여유를 부릴 틈을 안 주네."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폭발 마법에 몬스터 군락이 파괴되었다.
불타는 군락에서 뛰어나오는 고블린 무리를 정리하는 영지군을 보며 생각했다.
'이 정도면 일단 화력 테스트에 문제없는 거겠지?‘
왕도에서 돌아오자마자 알비레오를 쪼았더니 알비레오는 내게 지금의 결과물을 가져와 주었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발 마법.
알비레오가 과거 나에게 가지고 왔던 열기를 머금고 날아가는 폭발 마법 최신판이었다.
한발 한발에 담겨있는 마력이 1급 마나석 한 개를 그대로 소모할 정도의 마법.
사실상 화약 무기가 없는 이세계의 최초의 포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기사의 시대가 완전히 끝나버릴지도 모르겠군요."
"음- 그건 아닐걸?"
"소드마스터인 저도 저런 폭발을 맞으면 목숨을 장담 못 하는데요?"
"그거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맞지 않을 자신 있잖아?"
내 말에 볼튼이 씨익 웃었다. 소드마스터의 비인간적인 움직임은 익히 알고 있었다.
소드마스터라면 정신을 놓고 있지 않은 이상 미리 감지하고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화력은 이만하면 될 것 같고, 정확도가 문제인가?
알비레오에게 조금 더 연구를 해보라고 해야겠네."
조금만 더 개량한다면 덴프린스 공작이 어떤 위협을 해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조금만 더 덴프린스가 여유를 부려주길 바라야겠지만 말이다.
마탑에서 알비레오를 만나고 나오다가 자하를 봤다.
그리고 내 시선을 외면하고 도망치려는 자하를 붙잡고 그의 방으로 올라왔다.
"뭐야? 왜 도망치려고 한 건데?"
"도망치다니요! 제가 언제 도망을 쳤다고 그러십니까?"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눈을 피하는 걸 보니 답은 뻔했다.
"아직도 아무런 방법을 못 찾았구만."
"······"
"내가 왕도에 갔다가 돌아오고, 알비레오를 붙잡고 다른 쪽에 신경 썼다고 너무 여유를 부리는 것 아니야?'
"여유라니요? 저도 마법사들도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렇다 할 마법이 잘 만들어지지 않아서 그런 거죠."
자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중세시대 문명 수준에서 차량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정말 마법이라는 게 없었다면 가능성조차 없었겠지.'
기계 장치에 동력을 전달하는 것부터가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일단 동력기관이라도 프로토타입이 있다는 게 대단한 성과였다.
"그래서 조향장치 쪽에는 아무런 진척도 없는 거지?"
"···네."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이 똑똑한 마법사들이 진리를 탐구한답시고 매일 연구를 하는데도 답이 없다는 건 내가 뭘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알고 일어나려는 나에게 자하가 말했다.
"저··· 영주님. 그 조향장치라는 거 꼭 있어야 하는 겁니까?"
"당연하지. 조향장치가 없으면 어떻게 운전을 해? 바퀴가 앞으로만 굴러서는 목적지에 갈 수는 없잖아?
방향을 틀어줄 핸들이 필요한 게 당연한 거 아니야?"
"그, 그렇죠?"
"왜 다른 방법이라도 뭐가 생각난 거야?"
내 말에 자하가 자신 없게 말했다.
"그게 통신 마법을 보고 생각난 방법인데···"
"통신 마법?"
"네. 통신 마법이 특정 좌표로 메세지를 보내는 것처럼, 그 조향장치 없이 수레를 특정 좌표로 보내는 건 어떨까요?"
자하의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말을 잊어버렸다.
굳이 사람이 운전하지 않고, 특정 좌표로 수레를 보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