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뉴렌달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며 영지의 생산력이 안정화되었다.
그리고 새해가 되면서 병원과 학교 등의 건설 공사도 마무리되면서 건설 인력도 안정적으로 분배가 될 수 있었다.
제철소는 이미 공사를 끝냈고, 항만과 조선소도 곧 완공을 앞두고 있었다.
"한동안은 귀족들 마을이나 만들어줘야겠네."
"새로운 공사는 안 하실 겁니까?"
"지금 딱히 필요한 건 없지 않나?"
"그동안 대규모 공사를 계속해와서 그런지 영지에 큰 공사가 없다니 조금 어색하네요."
"발더는 이제야 쉴 수 있다고 좋아하던데?"
"발더는 영주님보다 더 한 일 중독자 아닙니까? 말은 쉰다고 해도 금방 공사판으로 나갈 사람입니다."
리오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발더가 현장에서 지휘를 해주는 덕분에 내가 마음껏 공사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발더는 나에게 있어 정말 큰 도움이 되는 인재였다.
'그런 인재가 자기 발로 찾아와준 게 정말 행운이었지.'
지금은 제철소에서 진두지휘를 하고 있는 스미스와 마나 충전소에서 마나석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자크, 방위 기술 연구소의 최고 기술자 마무까지 모두 아렌달 영지를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해주었다.
그리고 마법사들.
마법사들이야말로 영지가 고속 발전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동력이었다.
이들이 만들에 낸 기적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가지고 있던 현대 지식도 거의 사용하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마침 생각났으니 마탑에나 가볼까?'
내가 마탑에 방문하자마자 자하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영주님. 갑자기 마탑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왜? 내가 오면 안 되는 곳도 아니고··· 뭐 잘못이라도 했어?"
"그, 그건 아닙니다."
당황하면서 시선을 피하는 자하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자하가 왜 이렇게 시선을 피하는 지 알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동력기관의 연구는 어느 정도···"
"하하- 영주님.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올라가셔서 커피라도···"
"아무런 진척이 없나보네?"
"······네."
눈치를 보며 대답하는 자하의 모습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내가 생각해도 결코 쉬운 연구가 아니었으니까.
"그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부분에서 발전이 없습니다."
일단 동력기관을 만들기는 만들었다. 그런데 그 동력기관이 내뿜는 힘이 약해도 너무 약했다.
그리고 또 하나.
"영주님께서 말씀하신 조향 장치라는 건 도저히 답도 안 나옵니다.
대장장이들이나 다른 공방의 장인들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이해를 못 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야?"
"네. 답이 안 나와요."
동력기관을 만들려는 이유는 바로 운송 장비-차량을 만들기 위해서였는데, 조향 장치를 만들어 내기가 너무 어려웠다.
'내가 토목이 아니라 기계를 전공했다면 그 메커니즘을 알았을 텐데···
물론 그랬다면 영지 공사가 이렇게 빨리 진행되지도 않았겠지?'
기계 덕후도 아닌 일반인이 그런 복잡한 메커니즘을 생각하기란 쉬운 게 아니었다.
"그럼 동력기관의 출력이라도 높일 수 있도록 연구해봐. 일단 동력이 세지면 어떻게든 움직이지 않겠어?"
"예. 그럼 마력을 올리는 쪽으로 연구를 하겠습니다."
"마력을 올리는 거라면 알비레오도 연구에 참여해서···"
"안됩니다!"
"?"
"알비레오는 안 됩니다. 그 녀석은 동력기관으로 쓰이는 마나석을 다 터트려 버리는 녀석입니다.
알비레오는 그냥 지금처럼 화력 무기 연구나 하도록 내버려 두면 됩니다."
"그, 그래?"
"네. 요즘에는 영주님께서 지시한 연구에 빠져서 잘 나오지도 않으니까 얼마나 조용하고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탑에 들어온 지 시간이 지났음에도 폭음이 한 번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이런 걸 보면 알비레오도 진짜 마법사는 마법사였다.
"그런데 영주님···"
"?"
"제가 듣기로는 마법사들의 몸값이 많이 올랐다고 그러던데요."
"누가 그래?"
"외부에서 들어오는 상인들이요."
"칫-"
마법 연구에 필요한 물건을 사면서 들었을 것이다.
엔나 남작과의 전투에서 마법 무기가 활약을 한 이후에 마법사들의 몸값이 올랐다.
냉장고나 다른 생활용 마법 물품들을 팔았을 때도 살짝 마법사들의 가치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법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을 뿐.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마법 무기의 등장은 마법사들의 가치를 완전히 바꿔주었다.
이제 영주들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마법사를 영입하려고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마탑과 마나 스팟을 왕궁에서 관리하고 있어서 마법사를 영입하기가 어려웠기에 마법사들의 몸값이 오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러는데 저희한테는 뭐 없습니까?"
능청스럽게 말하는 자하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없어."
"감사합니··· 없어요?"
"응. 없어."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까? 왜요?"
"외부에서 마법사들의 몸값이 올라갔다고 해도, 우리 영지의 마법사들이 제일 많이 받고 있으니까."
"······"
이건 사실이었다.
마법사들의 몸값이 올랐다고 해도 과거보다 몇 배씩 뛴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미 다른 영지의 마법사들보다 몇 배나 많은 녹봉에 마법사들에게 최적의 장소인 마법 연구단지, 그리고 마나석까지 무상으로 지원해주는데 아무리 외부 마법사들의 상황이 나아진다고 해도 우리 영지만큼은 아니었다.
우리 영지에서 마법사가 얼마나 좋은 대우를 받는지는 엔나 영지의 마법사였던 겐드리가 연구단지에 들어오자마자 눈물을 흘리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음- 이래서 마법연구가 진척이 없던 거로군. 마법사가 진리를 탐해야지, 재물을 탐하고 있으니 발전이 없을 수밖에···"
내 말에 자하가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재물을 탐하다니요!"
"이래서는 안 되겠어.
우리 영지도 이제 다른 영지와 똑같이 마법사들의 녹봉을 주고, 마나석도 무상 지원이 아니라 마법사들이 직접 구매해서 사용하도록 바꿔야지."
"아, 안됩니다! 영주님. 그것만은 안됩니다!"
당연히 놀리는 말이었지만, 자하는 진짜 당황했는지 내 앞에 털썩 무릎을 꿇을 정도였다.
"참! 이거··· 제가 이걸 만들었습니다."
"이게 뭔데?"
"아리아 아가씨께 드리는 선물이요. 보호 마법이 걸려있는 팔찌입니다."
"오- 언제 이런 걸 만들었어? 자하도 이제 사회생활이라는 걸 하는 건가?"
"사회생활이라니요? 그동안 영주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만든 선물입니다."
"고마워. 아리아한테 잘 어울리겠네."
"그, 그럼 아까 하신 말씀은?"
"뭐? 녹봉이랑 마나석?"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자하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거 장난이야."
이제 조금 여유를 부리나 싶은 시기에 왕도에서 연락이 왔다.
국왕의 호출이었다.
"음- 원래 이런 거야?"
"저도 잘 몰랐는데 체스터 남작님께 물어보니 가끔 이런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에이- 귀찮게. 그냥 소식을 들었으면 알아서 족보에 올려주면 되는 거지 굳이 바쁜 나를 부르는 이유가 뭐야!"
"근래에는 조금 여유로워지시지 않으셨습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국왕의 호출 이유는 아리아 때문이었다.
가끔 잊어버리곤 하지만 내 혈통이 일단은 왕족이었기 때문에 왕가의 족보에 올려야 한다는 핑계로 나를 부른 것이다.
"어차피 필요도 없는 거 왕족 안 한다고 하고 가지 말까?"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국왕 폐하께 드리기로 한 마법 무기를 빨리 내놓으라고 영주님까지 부르시는 것 같은데, 잠깐 왕도에 갔다가 오시는 게···"
"아리아랑 놀아줄 시간도 없는데 저 멀리 왕도까지 출장이라니···"
"왕가의 족보에 올려준다는 말은 왕위 계승권도 주겠다는 말이니까 영주님의 명예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나에게는 명예보다 실리가 더 중요했지만, 일단은 나도 귀족이자 영주로서 명예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국왕에게는 벨파스트도 덴프린스도 아닌 국왕의 신하라고 말까지 해놨으니 그의 호출을 무시하는 것은 그림 상으로도 좋지 않았다.
괜히 중앙 정치의 세력들 모두와 척을 지는 바보 같은 일을 할 필요는 없었다.
"방위 기술 연구소에 연락해. 다운그레이드 시킨 A2 20개 준비해 놓으라고."
"알겠습니다."
"준비되는 대로 왕도에 갔다 와야겠네."
왕도에 도착하자마자 국왕의 시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왕궁도 아닌 외성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국왕이 나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국왕 폐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아렌달 백작의 걱정 덕분에 잘 지냈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부쩍 늙어가는 국왕의 모습을 보니 그리 잘 지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르비크의 내전에 쏟았던 게 그렇게 많았나?'
국왕이나 덴프린스 공작이나 나르비크 내전에 많은 것을 투자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의 뒷공작 덕분에 내전이 길어진 것도 있었고, 나름 심력의 소모도 컸을 것이다.
그런데 내전이 끝난 후 베르겐이 얻어낸 것이 그리 크지 않았으니 왕도의 상황도 마냥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득이라는 이득은 아스타나 왕국이 다 챙겼다고 했지?'
동대륙에서는 그래도 최강국이라고 불리는 아스타나 왕궁이었으니 그들도 나르비크의 내전에 개입했고, 내전이 끝난 이후에도 가장 많은 이득을 챙겨갔다.
재주는 베르겐이 부렸는데 돈은 아스타나가 쓸어간 격이었다.
"그보다 그건 가지고 왔나?"
"마법 무기라면 약속드린 대로 20개를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보고 싶군."
"그렇다면 시연을 위한 공간을 내주시겠습니까?"
"알겠네. 기사단의 훈련장으로 가지."
A2가 뿜어내는 화력 쇼에 국왕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얼마나 만족을 했는지 가지고 자신도 한번 써보고 싶다고 달려드는 모습에 시종들이 국왕을 말리기 위해 진땀을 뺄 정도였다.
그리고 국왕이 왕가의 족보에 나와 아리아의 이름을 넣어줌으로써 나와 아리아는 정식으로 왕위계승권을 가진 왕족이 될 수 있었다.
'방계 왕족이라면서 내 이름은 족보에 있지도 않았던 거냐?'
사실 왕위에는 관심도 없으니 있으나 마나 한 족보였지만, 그래도 나름 왕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족보에 이름도 없었다는 사실이 황당했다.
그렇게 왕궁을 나오는 내 앞에 말끔하게 생긴 귀족이 다가왔다.
"아렌달 백작님. 안녕하셨습니까?"
"어디서 본 적이···"
"과거 덴프린스 공작님께서 주최하신 파티에서 뵌 적이 있습니다. 기사 베르몬트입니다."
기억났다.
볼튼 역시 기억났는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이자르 후작가의 사람이었지요?"
"네.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이자르 후작님께서 저의 아버지십니다."
"그런데 왜?"
"덴프린스 공작님께서 아렌달 백작님을 찾으십니다. 그래서 직접 모시기 위해 제가 왔습니다."
"그렇다는 말은···"
"예. 저는 지금 덴프린스 공작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베르몬트의 말에 나는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덴프린스와 이자르가 결탁한 건가?'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는 베르몬트의 얼굴을 보니 조금 귀찮은 상황이 만들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