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현대인-46화 (46/169)

46화

"다음 작품···"

"그러고 보니 다음 작품은 언제 다 쓰는 거야?"

내 물음에 샤를로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다음 작품이라니요? 이제 소설 안 써요."

"왜?"

"백작 부인이 됐는데 어떻게 소설을 쓰고 있어요?

잘못하면 아렌달 영지의 명예에 흠을 생길지도 모르는데."

"무슨 소설을 쓴다고 영지의 명예에 흠이 생겨?"

"영지의 안주인이 되었으면 영주를 보필해야죠. 소설을 쓴다고 제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귀부인들 사이에 어떤 말이 돌겠어요?

저 때문에 당신이 안 좋은 소리를 듣는 건 싫어요."

"······"

샤를로트가 이런 생각을 가졌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렇게 당돌했던 아이가 이렇게 변할 줄이야.

"왜 그렇게 보는 거예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칫-"

내 속마음을 읽은 것인지 뾰로통한 샤를로트에 나는 급히 말을 돌렸다.

"아! 이제 소설 안 쓰면 요즘 쓰고 있는 건 뭐야? 매일 매일 쓰고 있잖아?"

"···일기."

"뭐?"

"일기를 쓰고 있어요. 아기랑 같이 있는 순간을 기록하려고···"

"아-"

'샤를로트가 이렇게 감성적일 줄이야···'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감성이다.

'그런데 이거 태교 일기 아닌가? 이세계에도 태교 일기라는 개념이 있는 건가?'

그냥 샤를로트가 특이한 것이겠지?

"여기서부터 저기 보이는 큰 바위 부근까지 마을이 자리를 잡을 거고, 저쪽에 보이는 언덕 아래에 체스터 남작의 저택이 들어올 거야."

"저택이라면 어떤 형식으로···"

"설계도만 준비해 준다면 원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주지."

"그렇다면 설계도를 준비해 보겠습니다."

"그래."

커스텀 제작은 공사비가 더 늘어나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지만, 체스터 남작은 명문 귀족 가문 출신답게 돈이 많은 것 같으니 조용히 하기로 했다.

"그 밖의 시설도 원하는 게 있다면 전부 만들어주겠네."

"감사합니다."

새로 들어설 자신의 마을을 상상하며 감격하고 있는 체스터 남작에게 말했다.

"그리고 아직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네? 또··· 또 뭔가 있습니까?"

왠지 두려워하는 체스터 남작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공사비가 늘어나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 휴우-"

"체스터 남작은 처음 투자도 많이 해주고, 마을 건설도 가장 먼저 시작하는 만큼 추가 선물이 있네."

"추가선물이요?"

"뉴렌달까지의 도로 공사와 농경지에 물을 쉽게 댈 수 있도록 저수지, 마지막으로 우리 영지에만 있는 하수처리장까지 모두 만들어주겠네."

내가 주는 추가선물에 체스터 남작의 눈이 번쩍 떠졌다.

"저, 정말이 십니까?"

"원래대로라면 수천에서 수만 셀링은 더 받아야 하는 시설들이지만, 그동안 체스터 남작이 내게 보여준 모습이 있는데 이 정도 선물은 해줘야지 않겠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왕도에 돌아가서도 아렌달과 뉴렌달에 대해 이야기 좀 잘 해줘."

"물론입니다."

체스터 남작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알려지면 다시 귀족들 사이에 경쟁이 붙을 것이다.

앞으로 뉴렌달에 있는 대형 건설 현장이 마무리를 짓게 되면 새로운 일터를 만들어야 할 텐데, 귀족들의 영지 공사를 새로운 현장으로 돌리기 위해서 나는 체스터 남작을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공사비도 나가는 것 없이 돈을 끌어오기만 할 수 있지.'

건설업으로 끌어올린 경제는 한순간에 거품이 확- 빠질 수도 있기에 미리미리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하는 법.

체스터 남작이 귀족들만 잘 흔들어 준다면, 영지의 건설 경기는 침체 되지 않을 것이다.

여름의 더위가 한결 꺾일 때쯤 나르비크의 내전이 국왕군의 승리로 끝을 맞이했다.

"결국, 오래가지 않았네. 조금만 더 길게 갔다면 더 많은 기술자를 빼 올 수 있었는데."

"그래도 내전이 격화되면서 국경을 넘은 난민들이 확 늘어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는 랄프가 직접 난민들을 데리고 온다고 하니 기다려보시죠."

"난민 중에 나르비크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던 항해사가 있다고 했었지?"

"네. 항해사뿐만 아니라 조선공이나 대장장이 등 기술자들이 많이 섞여 있다고 했습니다."

"랄프가 직접 데리고 올만 하네."

1년에 한 번 뉴렌달에 얼굴을 비출까 말까 하는 랄프였기에 이번에 데리고 오는 난민 기술자들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왕도 생활이 제법 만족스러운가 봐?"

"영주님. 뉴렌달이 왕도보다 살기 좋은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뉴렌달에 뭐가 있다고?"

"상인들 사이에서는 돈을 벌고 싶다면 무조건 뉴렌달로 가라는 이야기가 도는걸요.

기회만 되면 왕도에서 뉴렌달로 거점을 바꾸려는 상단도 많을 겁니다."

상인들 사이에서 뉴렌달의 평가가 이렇게 좋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왕도에 있는 거점을 옮긴다니. 누구보다 돈의 흐름에 민감한 상인들이 왕도보다 뉴렌달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벌써 이렇게 눈에 띄는 건 좋지 않은데···'

영지의 가치가 높아지는 건 좋지만 아직 까지는 조금 더 웅크리면서 몸집을 불리고 싶었다.

'아직은 다른 세력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파악하지 못했으니까. 기초가 되는 인구수가 훨씬 부족한 우리 영지는 한 번이라도 꼬꾸라지면 회복하기가 쉽지 않을 거야.'

"음- 일단은 랄프가 왕도에서 우리 영지에 맞는 상단을 찾아서 알려줘.

이미 자리를 잡은 상단보다는 울드 상단처럼 떠오르는 상단 위주로."

"알겠습니다."

이미 왕도에서 자리를 잡은 상단들의 경우 다른 귀족 세력들과 관계가 깊을 확률이 높았기에 괜한 문제 거리를 물고 올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영주님. 그거 아십니까?"

"?"

"왕도에서 백작 부인의 인기가 엄청납니다."

"누구? 샤를로트?"

"네."

샤를로트는 지금 임신 중이라 두문불출하고 있는데 갑자기 인기라니?

"얼마 전에 왕도의 음유시인들이 백작 부인께서 쓰신 소설로 연극을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엄청나게 히트를 하면서 왕도가 난리가 났습니다."

"정말?"

"네. 길거리에서 연극을 하는 걸 보면 전부 백작 부인의 작품을 하고 있습니다.

왕도의 귀부인들 사이에서는 백작 부인의 소설을 모르는 건 교양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답니다."

믿기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지난번 체스터 남작의 부인이 보여준 모습을 떠올려보면 믿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글을 썼길래 이 정도의 파급효과를 일으켰는지, 나도 샤를로트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대충 로미오와 줄리엣이랑 비슷하게 쓴 것 아니었나?

역시 명작은 시대를 타지 않는 건가?

아니 시대가 아니라 세계까지 타지 않네.'

문뜩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음- 샤를로트가 그 정도로 인기가 많다는 거지?"

"샤를로트. 지금 쓰고 있는 일기를 책으로 내보는 게 어때?"

"제 일기를요?"

샤를로트에게 이런 제안을 한 건 샤를로트의 인기를 한번 실감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일상을 알고 싶고 따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 떠올라서 만약 샤를로트의 일상을 왕도의 귀부인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이 올지 알고 싶었다.

"소설이라면 모를까, 사람들이 저의 이야기를 좋아할까요?"

"물론이지. 귀부인들의 다과회에서는 매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며.

그걸 말이 아니라 글의 형식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말이야."

사실 샤를로트를 통해서 보고 싶은 게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아렌달 영지의 문화적 역량이었다.

영지의 발전 속도나 마법사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과학적 역량은 다른 영지들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문화적 역량은 어떻게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랄프나 다른 상단을 통해 아렌달의 명성이 계속 오르고 있다는 사실은 듣고 있었지만, 그게 얼마나 영향력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특정 문화가 다른 곳으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밑바닥에서부터 오랜 시간 스며드는 방법이나 한 명의 스타가 가진 파급력을 통해 급속도로 전파되어야 하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샤를로트라는 스타를 통해 왕도의 귀부인들에게 아렌달의 생활을, 문화를 퍼트리고 싶은 것이다.

"일기에는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도 있는데···"

"그런 건 당연히 빼고 쓰는 거지.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나는 샤를로트가 계속 글을 썼으면 좋겠어.

그냥 아렌달 백작 부인이 아니라, 샤를로트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일을 계속했으면 좋겠어."

"······정말요?"

"응. 계속 글을 쓰고 싶잖아?"

샤를로트가 무언가를 적고 있는 걸 종종 보곤 했다.

짧은 문장에 불과했지만, 그 짧은 문장을 적는 샤를로트는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나도 그 모습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당신이나 영지의 명예에 흠이 생기면···"

샤를로트의 걱정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그리고 나에게는 금이 갈 만큼의 명예는 없는걸."

그런데 내 말에 샤를로트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무리 저를 위해서 한 말이라도, 영주님이 되어서 명예가 없다는 말을 하면 어떡해요!"

"······"

"다시는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돼요."

"······"

'위로를 한답시고 한 말에 이렇게 혼날 줄이야.'

그래도 살짝 들뜬 샤를로트의 모습을 보니 기분은 좋았다.

"그럼 할 거야?"

"네. 해볼게요.

대신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더라도, 저한테 뭐라고 하기 없기에요."

"당연하지!"

샤를로트의 일기가 왕도에서 발표된 이후에 나는 한 명의 스타가 가진 파급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샤를로트의 태교 일기는 임신한 귀부인들에게는 바이블이 되었다. 물론 임신하지 않은 귀부인들도 챙겨볼 정도의 필독서가 되었다.

그로 인해서 뉴렌달의 생활상이 베르겐의 귀족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고, 귀부인들의 입을 통해 부유한 상인들로, 지방의 귀족 가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건 샤를로트가 귀부인들의 워너비 스타가 되어가는 것과 함께 나는 남자 귀족들의 적이 되어있었다.

"영주님. 정말 백작 부인께 이렇게까지 해주고 계시는 겁니까?"

"리오도 봤나 보군."

"저, 정말 사실이군요."

"임신한 와이프가 먹고 싶다는 걸 구해주고, 힘들 때 심부름 좀 해주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 호들갑이야?

겨우 심부름 좀 해주는 걸로 도대체 얼마나 항의를 받는 건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영주님은 영주님이신데 겨우 심부름이라니요?"

"나와 샤를로트의 일이니까 신경끄시죠. 리오 행정관.

그보다 왕도에서 책이 얼마나 팔린 거야?"

"랄프의 말로는 백 권 이상 팔린 것 같습니다. 아니, 필사본까지 도는 것 같으니까 귀부인들은 다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이세계에는 인쇄능력이 떨어지는 만큼 책이 비싸다.

그런데 백 권이나 책이 팔리고, 필사본까지 돌고 있다고 하니 샤를로트가 얼마나 스타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뉴렌달의 생활도 많이 알려졌다.

"그럼 이제 슬슬 반응이 나타날 때가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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