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현대인-45화 (45/169)

45화

"병원 건설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빨라야 올해 말쯤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발더가 말하기를 지금 진행하고 있는 공사가 너무 많아서 인력을 나누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럼 학교는?"

"학교도 영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만들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학교 쪽은 임시로 항구 쪽 창고 건물을 개조해서 사용하려고 합니다."

"급하게 진행하려고 하니 오히려 더 늦어지는 느낌이네.

역시 건설은 확실한 플랜을 만들어서 해야 하는 건가?"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병원의 건설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 같았다.

"그런데 아직 영지민들이 의무 교육이라는 시스템에 의문이 있는 듯합니다.

아무래도 농부들이나 수공업자들은 가정 내에서 기술을 물려받으면 되지, 다른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당연한 것이다. 지금 농사를 짓는 영지민이나 수공업을 하는 영지민이나 부모로부터 그 기술을 물려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아버지, 할아버지 혹은 그보다 위의 조상부터 물려받았던 가업이니 자신의 자식들에게도 가업을 잇게 하겠다는 건 당연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업을 잇는다고 다른 지식이 불필요하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영지를 위해서도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체계적인 기초교육은 반드시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영지민들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적극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어차피 의무 교육이라고 하면 그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 벌을 받도록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일을 시키겠다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부모에게는 죄를 물어서 벌금을 물도록 하면, 벌금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지 않겠습니까?"

리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대한민국에서도 의무 교육을 받아야 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법적으로 부모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영지민들의 불만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아직 이곳에서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라는 법이 없었으니까.

영주의 명으로 강제적으로 시킬 수는 있었지만, 그렇게 강제하면 내 평판만 나빠질 뿐 별로 도움이 되는 방식은 아니었다.

"차라리 교육비를 주는 건 어떨까? 어린아이들은 일터가 아닌 학교에서 소득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거지."

"학교에 오는 것만으로 돈을 준단 말입니까? 그건 그것대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아무 조건 없이 돈을 주면, 열심히 일하는 영지민들의 불만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었다. 나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데, 일도 안 하면서 돈을 받는다니.

그게 아무리 어린아이라고 해도 영지민들의 마음에 불만이 생길 수 있었다.

어쩌면 자신도 일터가 아니라 학교에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이런 말을 꺼낸 것은 아니었다.

"교육비를 주더라도 일터에서 받는 임금만큼 주겠다고 한 적은 없어.

학교에 다니면서 받을 수 있는 교육비를 용돈 수준 정도로 주면 어때?"

그렇게 한다면 영지민들의 불만이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이다. 임금과 확실한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일단은 돈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에게 아이가 학교에 갈 수 있도록 이유를 만들어 줄 수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교육비 명목으로 돈을 지원하면 분명 출산율이 올라갈 것이다.

아직도 영지의 성장에 비해 영지민의 숫자가 적었기 때문에 출산율은 중요한 부분이었다.

단순히 교육을 위한 지원뿐 아니라 출산 정책의 일환이라고 하면 아이들에게 지급할 교육비는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자영업자들을 육성하면서 세금도 많이 늘어났으니 그 정도는 문제없잖아?"

"그럼 영주님의 말씀대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 교육비를 주겠다고 공표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방법이 잘 될지는 모르겠네요."

"음- 처음에는 어느 정도 강제성도 있어야 할까?

그럼 아까 리오가 말했던 대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는 것도 같이 공표를 해.

물론 어떤 처벌을 받는지는 알리지 않고, 말만 그렇게 하자.

이러면 조금이라도 빨리 효과를 보여주겠지."

처음 의무 교육이라는 것에 부담을 느끼던 아이들이었지만,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며 금세 학교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익숙해지며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에 영지민들은 다시 한번 나에게 신뢰의 눈빛을 보내주었다.

"역시 우리 영주님께서 하시는 일에 틀린 건 하나도 없다니까."

"그럼! 우리 영주님이 누구인가! 삽 하나로 맨땅을 일궈 영지민을 배부르게 만들어 주신 분 아닌가?"

"영주님께서 우리를 이끌어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아직도 왕도 구석탱이에서 빌어먹고 살았을 거야."

영지민들의 목소리에 당연한 일이라고 맞장구치는 볼튼을 제지하며 오랜만의 손님을 기다렸다.

"아- 저기 마차가 보이는군요."

"소드마스터가 되면 저렇게 멀리 있는 것도 보이나 봐?"

"저는 원래부터 눈이 좋았습니다."

"그랬나?"

볼튼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조금 기다리자 내 눈에도 마차가 보였다.

왕도에서부터 찾아온 손님, 체스터 남작이었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렌달 백작님."

"오랜만이네. 체스터 남작. 오는 길에 어려움은 없었나?"

"어려움이라니요? 도로가 너무 좋아서 마차를 타고 있다는 것도 깜빡할 정도였습니다."

체스터 남작의 호들갑에 살짝 웃으며 그의 가족들을 환영해주었다.

"그런데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도시가 훨씬 발전한 것 같습니다.

겨우 1년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때야 뉴렌달로 이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으니까. 지금과는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그렇군요. 그래도 이런 도시를 만들어 내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렌달 백작님."

체스터 남작의 거듭되는 찬양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러다가 체스터 남작에게 전염되서 볼튼도 급발진하겠군.'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지. 멀리서 온 손님을 길바닥에 세워둘 순 없으니까."

체스터 남작이 방문한 이유는 그가 권리를 받은 땅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체스터 남작이 다른 누구보다 먼저 땅을 받을 준비를 한 것이다.

"···그래서 마을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체스터 후작께서 큰 결심을 내리셨군."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질책하셨습니다.

아버지보다는 형님께서 저를 많이 도와주셨죠."

"좋은 형이네."

"예. 그 덕분에 제가 어려서부터 영지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었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체스터 남작은 아직 영지에 미련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그 미련의 싹을 잘라버리기 위해 이곳으로 왔을 것이다.

"그럼 영지민의 이주는 언제 할 생각인가?"

"마을이 준비되는 대로 이주할 생각입니다.

형님께서는 언제든지 영지민을 내어줄 테니, 확실한 때에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체스터 영지의 인구가 10만 명을 넘는다고 했지? 그래도 1천 명이나 되는 영지민을 내어주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스톨 가문이나 체스터 가문을 보면 귀족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국왕이나 덴프린스 공작 등을 보면 권위를 내세우는 귀족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귀족도 귀족 나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마을을 만들 장소를 확인하러 가고, 오늘은 이만 쉬는 게 좋겠군."

체스터 남작에게 인사를 하고 일어나려는 순간, 체스터 남작이 나를 붙잡았다.

"저, 저기 아렌달 백작님."

"아직 할 말이 더 있나?"

"저··· 그게···"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는 체스터 남작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지금 말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래야 내일 일정에도 차질이 없을 테니까."'

"아, 아닙니다. 내일 일정이나 그런 게 아니라··· 혹시 가능하면 백작 부인을 한 번만 만나볼 수 있습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뜬금없는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뭔 개소리야 이게? 지가 왜 샤를로트를 만나?'

"······방금 그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이지?"

입으로 하지 않았을 뿐, 눈으로 욕하는 내 모습에 체스터 남작이 당황하며 손을 저었다.

"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만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제 와이프가 백작 부인의 팬이라서···"

"남작의 와이프가 샤를로트의 팬이라고?"

그 말에 아까 전 만난 체스터 남작의 부인을 떠올려봤다.

샤를로트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는데, 조용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체스터 남작과 마찬가지로 명문 귀족 가문의 딸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예. 백작 부인께서 백작님과 결혼을 하시기 전에 소설을 쓰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제 와이프가 그 소설을 읽고 너무 감명이 깊었는지 꼭 한번 백작 부인을 만나보고 싶다고 부탁을 해서···"

"아-"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샤를로트가 자신의 소설이 왕도에서 인기가 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것 때문에 청혼서도 왔었다고 했지?

덕분에 뉴렌달까지 혼자 찾아와서는 나랑 결혼도 했고.'

기대를 품고 나를 바라보는 체스터 남작의 눈빛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곤란해.

샤를로트가 지금 임신 중이라 다른 사람을 만나기에 조금 어렵거든."

"아- 백작 부인께서 임신 중이셨군요. 축하합니다. 백작님."

"고마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샤를로트에게 한번 말은 해 보겠네.

몸 상태가 좋으면 잠깐이라도 남작의 와이프와 인사를 나눠줄 수 있는지 말이야."

"감사합니다! 백작님. 꼭, 꼭 부탁드립니다."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내 약속에 체스터 남작이 연거푸 고개를 숙였다.

'설마 이 녀석 잡혀 사는 건가?'

체스터 남작의 부인이 풍기던 분위기 때문에 남편에게 순종적인 사람일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내 착각이었던 것 같다.

"흐흑-"

'헉?! 갑자기 눈물?'

샤를로트를 만나자마자 눈물을 흘리는 체스터 남작의 부인 때문에 나도 체스터 남작도 엄청나게 당황했다.

"이블린. 괜찮아?"

"괜찮아요. 샤를로트님 죄송합니다. 너무 기뻐서···"

'도대체 얼마나 '빅'팬이었으면 샤를로트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아?'

TV에서 팬들이 연예인을 만나서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때는 말도 안 된다고, 저것도 다 연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보니 그들도 진심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 괜찮은가요?"

"후우- 네. 이제 괜찮아요.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서 죄송합니다."

이제야 끌어 오르던 감정을 가라앉힌 이블린이 샤를로트에게 말했다.

"이렇게 샤를로트님을 만나 뵐 수 있어서 영광이에요. 그리고 임신하셨다는 이야기도 너무너무 축하드려요."

"축하해 주셔서 고마워요. 제가 쓴 소설도 좋아해 주신 것도···"

샤를로트의 한마디 한마디에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블린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저··· 제우스와 샬롯을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리고···"

이블린의 말에 샤를로트가 나를 살짝 바라봤다.

'제우스와 샬롯이라니··· 이거 제목만 봐도 누굴 모델로 쓴 건지 한 번에 알겠는데.'

사실 진작부터 나와 자신을 모델로 썼던 걸 알고 있었지만, 제목까지 저렇게 지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내 눈치를 보는 샤를로트에게 씨익 웃어주자 샤를로트의 귀가 조금 붉게 달아올랐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떠들었죠. 몸도 힘드실 텐데···"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블린. 백작님께서 약속하셨던 시간이···"

"어머! 벌써 그렇게 됐어요?"

시간이 없다는 체스터 남작의 말에 이블린은 발을 동동 구르더니 샤를로트에게 말했다.

"오늘 만나 뵐 수 있어서 너무 기뻤어요.

샤를로트님의 다음 작품도 기다릴게요. 아- 그리고 아이도 건강하게 낳으시길 바랄게요."

"고, 고마워요."

결국, 버티고 버티다가 체스터 남작에게 끌려나가는 이블린의 모습에 나도 샤를로트도 참았던 웃음을 뿜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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