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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42화 (42/169)

42화

엔나 남작이 선전포고를 해왔다는 소식에 영지군을 이끌고 급하게 아렌달로 달려왔다.

"뭐야? 엔나 남작은 어디 있어?"

"그게··· 아직 영지의 경계를 넘지는 않았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기껏 급하게 달려왔건만, 엔나 남작은 아직 영지를 벗어나지도 않았다니. 갑자기 맥이 확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럼 선전포고는?"

나인은 밀랍으로 봉인된 편지를 건네주며 말했다.

"엔나 영지의 기사 한 명이 아렌달 성으로 와서는 선전포고와 함께 이걸 전해주고 갔습니다."

나는 엔나 영지의 문장이 찍힌 직인을 확인하고, 밀랍 봉인을 뜯어내고 편지를 읽었다.

[아렌달 영주의 간악한 행위를 규탄한다.]

첫 멘트부터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하- 내가 무슨 간악한 행위를 했다는 거야?"

[나는 베르겐 왕국의 백성을 이끄는 한 사람의 영주로서 백성들의 눈물을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아렌달 영지민들은 강제로 노역에 끌려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 영지민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하는 건 맞지만, 강제로 끌려와 노역하는 것은 아닐 텐데?"

[아렌달 영지민들이 식량도, 의복도 그리고 농기구까지 지원받지 못하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이는 영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책임을 등한시하고, 영지민들의 고혈을 빨아 재산을 불리려는 목적임이 틀림없다.]

"영지민들의 고혈을 빨아? 내가?

영지민들이 일한 만큼 돈을 주잖아?

생활에 필요한 물품은 자기가 번 돈으로 알아서 사는 거지."

[이에 나는 결단을 내려 아렌달 백작으로부터 고통받는 백성들을 구원하려 한다.]

"백성을 구원한다니? 자기가 뭔데 영웅행세야?"

[하지만 나는 영주이자 기사로서 아렌달 백작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선택의 기회를 주겠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여 본 영주의 검 아래 무릎을 꿇던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본 영주의 검 아래 심판을 받든지 선택하라.]

"잘못한 게 없는데 무슨 선택을 하라는 건지···"

[잘못을 인정한다면 20만 셀링과 수레 100대분의 밀과 식량을 준비하라. 그렇지 않다면 유혈사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피에르 엔나 남작]

"뭐? 유혈사태? 자기가 간디야 뭐야?"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영주님. 엔나 남작의 기사가 말하기를 아렌달이 항복하지 않으면 기사단 60명과 영지군 1천 명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무슨 영지군이 1천 명이나 돼? 그리고 언제 또 기사가 그렇게 늘었어?"

과거 용병 탈주 사건 때까지만 해도 엔나 영지의 기사 숫자는 40명이었다.

그리고 영지군도 200명 정도에 불과했는데,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기사는 60명, 영지군은 1천 명이 되어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영지군 1천 명은 말이 안 되는데?

엔나 영지의 인구가 5천 명 정도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병력이 1천이나 돼?"

내 의문에 헤돈이 말했다.

"영주님. 아무래도 외부의 힘을 빌려온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영지군이 1천이나 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엔나 남작을 지원하는 다른 귀족이 있다면 그것 또한 골치가 아픈 문제였다.

"엔나 남작 뒤에 어떤 자식이 있는 걸까?"

"아무래도 영주님의 성장을 견제하려는 세력 아니겠습니까?"

"나를 견제하려는 세력?"

나르비크의 내전에 신경 쓰고 있는 국왕이 나를 견제할 것 같지는 않다. 나도 방계지만 왕족이었고, 내가 왕위를 노린다는 모습을 보인 적도 없으니 나를 견제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덴프린스 역시 나를 자기 하수인쯤으로 생각하고 있을 테니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한 놈밖에 없네. 벨파스트 후작."

그 역시 내가 덴프린스 계의 귀족으로 파악하고 있을 테니 견제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늙어서 그런지 감이 떨어질 때로 떨어진 것 같네. 그리고 엔나 남작도 바로 이웃 영지에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파악하지 못하는 건가?"

조금만 아렌달에 관심이 있었다면 이런 식으로 도발 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선전포고를 해 놓고 먼저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도 어이가 없었다.

얼마나 나를 개무시하고 있으면 저런 식으로 여유를 부리고 있는지···

기사라는 허울에 갇혀서 자존심을 부리는 것인지? 자기 주제도 파악하지 못하는 멍청이인지는 확인해보면 알 것이다.

"그리고 몬스터가 날뛰는 시기에 갑자기 선전포고를 해?

헤돈경! 빨리 처리하고 돌아가야겠지?

바로 영지군을 이동시켜."

"알겠습니다!"

"아직도 나를 X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 생각을 고쳐줘야지."

"스톨 백작님한테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다고, 굳이 영지군을 움직이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처리한다고 전해."

"알겠습니다."

굳이 스톨 영지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아렌달 영지의 군사력을 조금이나마 공개할 생각이었다. 이제 아렌달 스스로 영지를 지킬만한 역량이 충분했으니 굳이 힘을 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드마스터도 있는데 겁날 게 뭐가 있겠어?"

"엔나 남작의 기사단 따위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나가서 다 묻어버리고 오겠습니다!"

보통 기사들은 베어버린다고 하지 않나?

아무튼, 볼튼도 있고 충분한 개량을 마친 마법 무기도 있다.

엔나 남작이 숫자만 믿고 덤빈다면, 나에게 다가오기 전에 쓸어버릴 만한 화력이 있었다.

"마침 나타나는군."

아렌달과 엔나의 경계, 과거 용병 탈주 사건 때 엔나 남작과 마주쳤던 장소에 도착하자 엔나 남작도 기사단과 영지군을 끌고 나타났다.

그리고는 멈추지 않고 자신만만하게 내 앞으로 다가왔다.

"영지군을 이끌고 오다니! 결국, 유혈사태를 부를 생각이군. 아렌달 백작."

엔나 남작의 허세 가득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다니. 정신을 놓았나 보군."

"엔나 남작. 한 가지만 물어보자.

뒤에서 남작을 부추긴 세력이 누구지? 설마 그 빈약한 군사력으로 나에게 선전포고를 한 건 아닐 것 아니야?"

"부추긴 세력이라니! 그런 건 없다. 나는 베르겐의 영주이자 기사로서 아렌달 백작의 간악한 행위를 규탄하기 위해···"

"하- 뭔 개소리야?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개, 개소리? 방금 개소리라고 한 건가!"

"아직도 나를 시골의 명함뿐인 영주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다면 그 생각을 고쳐줄게."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것 같은 엔나 남작의 모습에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총을 꺼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영주 전용의 A5 권총.

"네가 귀족으로 태어난 걸 감사하게 생각해라."

"이런 건방진!!"

나는 위기를 느꼈는지 검을 뽑으려 하는 엔나 남작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팡!

"크악!"

A5에서 발사된 마력탄에 엔나 남작이 말에서 떨어졌다.

충분히 그의 머리를 날려 버릴 수도 있었지만, 이세계에는 귀족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신분사회에 정말 어울리는 개 같은 법이 있었기 때문에 일부로 빗겨 맞춘 것이다.

엔나 남작이 말에서 떨어지는 모습에 기사단이 엔나 남작을 지키기 위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며 달려오는 기사단에 헤돈에게 말했다.

"기사들은 전장에서 죽어도 억울하지 않겠지?"

"오히려 전장에서 죽는 것이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봐줄 필요 없지."

순식간에 다가오는 기사단에 손을 앞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헤돈경!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힘의 차이를 보여줘."

"전원 사격 개시! 파이어!"

-펑! 펑!

-퍼퍼펑!

"마, 마법이다! 피해!"

"크악!"

A2 소총과 A3 기관총에서 뿜어지는 화력에 엔나 남작의 기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굳이 볼튼과 마법사들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기사들을 따라 달려오던 엔나 영지군도 마법 무기가 뿜어내는 화력에 걸음을 멈추고 무기를 버릴 정도였으니까.

"크악!"

"사, 살려줘!"

이건 전투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일방적인 화력 쇼였다.

"이, 이게 무슨!"

자신의 기사들이 아무것도 못 하고 죽어가는 모습에 엔나 남작이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보였다.

"볼튼경. 엔나 남작을 끌고 와."

"네!"

"내, 내 기사단이··· 내 기사단이···"

같은 말을 반복하는 엔나 남작에게 말했다.

"아렌달이 어떻게 바깥을 정복했는지 이제 알겠어?"

엔나 남작은 그저 멍하니 고개만 떨구고 있을 뿐 아무런 말도 못 했다.

무장이 해제된 엔나의 영지군이 아렌달 영지군의 감시를 받으며 엔나 영지로 돌아왔다.

엔나의 영지민들은 자신의 가족이 돌아오는 모습에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쉬는 모습이었다.

"바로 이웃 영지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모습일까? 이 사람들은 아렌달 영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지?"

"알고 있었으면 진작에 영지를 탈출하지 않았을까요?"

피골이 상접 한 모습으로 길가에 나와 있는 영지민들을 보니 왠지 기분이 착잡했다.

"이거 승리에 대한 전리품도 하나 못 챙기겠는데?"

"전리품을 챙기실 생각이셨습니까?"

"그래도 처음으로 전쟁에서 이겼는데 트로피 삼아 뭐라도 가져갈 생각이었지."

내 말에 볼튼이 피식 웃었다.

엔나 남작도 이제 정신을 차렸는지 내게 소리쳤다.

"어떻게 같은 영주를 이렇게 모욕할 수 있소! 영지민 앞에서 영주를 모욕하다니!"

"모욕은 당신이 나에게 보낸 그 편지가 모욕이지. 저기가 엔나 영주성인가?"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 영주성의 모습에 엔나 남작의 얼굴에 절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주제도 모르고 덤볐으니 그 책임은 져야겠지?"

"엔나 영지는 지금부터 아렌달 영지의 관리를 받게 될 것이다.

엔나 영지는 앞으로 영지군을 가질 수 없고, 타 영지와 외교를 할 수 없으며, 영지에서 나오는 모든 자원에 대한 거래 역시 할 수 없다.

엔나 영지가 하려는 모든 일은 이제부터 아렌달의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다."

군사권, 외교권, 경제권을 모두 아렌달 영지에 빼앗기게 된 엔나 남작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평등 조약도 이런 불평등 조약이 없을 정도였다.

이제 엔나 남작에게 남은 것은 귀족이라는 이름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기서 뭘 더 가지고 갈 생각이오!"

"엔나 남작의 두 아들은 뉴렌달에서 교육을 받는다."

"!"

"아, 아렌달 백작님! 안됩니다. 제 아들을 데려가지 말아 주십시오!"

내 명령에 엔나 남작 부인이 내 앞으로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엔나 남작의 두 아들은 뉴렌달로 와서 엔나 영지가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직접 깨닫기를 바란다."

"백작님! 제발!"

양손을 빌고 있는 남작 부인이 안타까웠지만, 결정을 번복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엔나 남작의 아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 녀석들도 나중에는 뉴렌달에서 유학을 했다는 게 자신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알게 되겠지.'

물론 인질로 데리고 가는 것이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면 내 결정이 엔나 영지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아렌달의 무력을 다른 영지에서도 알게 되겠지?"

당연히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최소한 엔나 남작을 뒤에서 부추긴 세력은 당연히 아렌달과 엔나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렌달의 압도적인 화력을 봤으면 그에 대한 움직임을 보일 게 분명했다.

"그 전에 다른 놈들의 입을 막아야겠지?"

"어떻게 하실 생각이 십니까?"

"뭐- 어쩌겠어. 아렌달이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알려줘야지."

많은 사람에게 말할 필요도 없다.

한 명만 입을 다물게 만들면 아무런 일도 없을 것이다.

"왕도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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