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평민이 영주에게 집의 소유를 허가받았다는 사실이 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준 것 같았다.
그로 인해 영지의 관리들은 자신에게도 집을 소유할 기회가 생길까 내 눈에 들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행정관들과 친분이 있던 상인들의 입을 통해 영지민에게도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뉴렌달의 사회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보답을 받는다.
이 한마디가 도시의 분위기를 다시 한번 끌어올렸다.
영지민들은 그만큼 열심히 일했고, 도시는 점점 더 발전해 나갔다.
"이런 효과를 생각해서 한 일이 아닌데··· 그래도 도시에 활기가 돌아서 좋네."
"발더의 말로는 예정보다 빨리 제철소의 건설을 끝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항만과 조선소 역시 건설에 속도가 붙었다고 하고요.
영지민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일하려 하는 게 보인답니다."
"이러다가 영지의 자금이 일꾼들의 임금으로 다 털리는 것 아니야?
그래도 영지민들이 돈을 많이 벌면 영지의 경제가 활성 될 테니까 나쁘진 않네.
공사장에 임금이 밀리지 않게 귀족들한테 냉장고라도 몇 대 더 팔아야겠어."
외부에서 돈을 벌어다가 영지에서 회전을 시킨다. 영지가 점점 부유해지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냉장고 하니까 생각났는데, 마법사들은 잘 지내나?"
"마법사들이야 마탑이 완성되고 나서는 완전히 마탑에 틀어박히지 않았습니까?
가끔 공사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말고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음- 그럼 생각난 김에 한번 마탑에 갔다 와야겠다.
돈 먹는 하마들이 얼마나 돈값을 하고 있는지 감시도 할 겸 말이야."
마탑에 간다는 말에 친위대 기사들이 전부 따라붙었다.
"공사도 다 끝났는데 삽은 왜 들고 오는 거야?"
내 말에 볼튼을 바라보는 기사들을 보니 어이가 웃음이 나왔다.
어느 순간부터 친위대 기사들이 검보다 삽을 더 많이 들고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은 내 착각일까?
'이러다가 노가다 기사단이라고 불리는 것 아니야?
볼튼도 소드(sword)마스터가 아니라 쇼블(shovel)마스터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네.'
마법 연구단지에 들어오자마자 삽으로 이리저리 찔러대는 친위대 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기사들은 알아서 삽질이나 하도록 내버려 둔 채 마탑으로 들어오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자하가 그 폭음에 한숨을 쉬며 나를 반겨주었다.
"영주님. 오셨습니까?"
"알비레오는 잘 지내고 있나 보네.
얼마 전에 마탑 벽을 또 날려 먹었다면서?"
"그래서 지금 마탑의 모든 벽에 마법진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날려 먹었길래?"
"그게··· 알비레오만 그런 게 아니라···"
"그래. 자하가 고생이 많네."
"영주님이라도 알아주시니 다행이네요. 그만 올라가시죠."
자하는 자조적인 미소와 함께 나와 볼튼을 마탑 안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갑자기 볼튼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영주님. 저는 걸어서 올라가겠습니다."
"왜? 저거 안전하다니까?"
"그래도 붕 뜨는 느낌이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아서···"
볼튼이 걸음을 멈춘 이유는 바로 달리아가 만든 역작-마법 엘레베이터 때문이었다.
달리아가 공간 마법으로 이 엘레베이터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면, 아마 마법사들의 다리가 기사들만큼 두꺼워졌을지도 몰랐다.
"해안가 호텔에도 설치해야 할 텐데, 빨리 익숙해지는 게 낫지 않아?"
"차차 익숙해지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걸 타는 것보다 뛰어 올라가는 게 빠르지 않습니까?
그럼 먼저 올라가겠습니다."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지는 소드마스터의 몸놀림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는 저 야만스러운 몸놀림이 불가능하니까 마법이 만들어 낸 첨단 시설을 이용하자고."
방문을 환영해준 폭발 아티스트 알비레오. 여전히 밤샌 채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있는 에일렌. 또 어디론가 사라진 달리아. 주머니 한가득 마나석들 챙기고 다니는 레이첼과 미리아 등 마법사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들이었다.
다행히 연구비를 허투루 쓰지는 않는 것을 확인하고,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을 찾았다.
바로 영지에서 육성하고 있는 미래의 마법사들이었다.
마탑이 완성되고 제일 먼저 한 것은 5살 이상, 10살 미만의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마력 감응 테스트였다.
테스트를 통해 마력에 민감하게 반응한 아이들이 지금 연구단지에서 미래의 마법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있었다.
물론 마력에만 민감할 뿐 마법에 재능이 없어서 금방 마탑을 떠난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미래를 위해 마법사의 육성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었다.
연구단지 시찰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나를 자하가 붙잡았다.
"그런데 영주님.
리오님에게 저택을 선물해 주셨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마법사들한테까지 그 소문이 돌았어?"
"네. 어제 공사장에 지원 갔다 온 아이들이 들었다고···"
"맞아. 사실이야."
내 말에 자하가 눈을 반짝였다. 생각해보면 자하도 행정관이나 기사들 못지않게 나에게 굴려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자하의 그런 반응이 나는 의외라고 생각했다.
'마법사들은 그런 쪽에는 초연할 줄 알았는데?'
마법사들이 돈에 욕심부리는 이유는 모두 마법 연구에 돈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진리의 탐구가 삶의 1순위인 마법사들이었기에 자하가 이런 모습은 나에게는 의외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자하가 원한다면 자하에게도 저택을···"
"영주님. 마탑에서 나가지도 않는데 저택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럼 다른 거? 연구비가 필요하다면 보너스라도 줄까?"
"아니요."
"그럼? 따로 바라는 게 있어?“
내 물음에 자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는··· 영주님의 비밀을 듣고 싶습니다."
"······"
"영주님이 가지고 계신 지식의 비밀이 필요합니다."
자하의 부탁에 나는 순간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설마 내가 이세계의 사람이 아니라는 걸 눈치챈 건가?
어떻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설마 마법으로 내 속을 들여다본 건가?'
"영주님?"
'내가 이세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게 알려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 전에 자하의 입을 막아야 하는 건가?'
"영주님? 왜 그러십니까?"
"어? 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생각에 빠져있던 나는 볼튼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영주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자하 나의 비밀이 필요하다는 말이 무슨 말이지? 어떤 비밀을 말하는 거야?"
'자하가 마법으로 내 속을 들여 다 본 거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만약의 경우 자하를 위험대상으로 판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까지 하며 나는 자하의 입술에 집중했다.
"그게···"
"그게?"
"저는 영주님의 그 상상력과 창의력을 배우고 싶습니다.
영주님께서 저희 마법사들에게 만들어 달라고 하는 물건들, 그 아이디어들을 어떻게 생각하실 수 있었는지 그 방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
다행히 자하가 마법이나 다른 어떤 방법으로 내 비밀을 알아차린 건 아니었다.
그저 마법사들이 진리를 쫓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지식을 탐구하고 싶었던 것뿐.
정확히 따지자면 내가 가진 현대 지식을 배우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어떻게 생각해 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탐구심으로 반짝이는 자하의 눈동자를 보니 살짝 진이 빠지는 것 같았다.
'괜히 긴장했네.'
땀으로 젖은 손을 닦은 나는 자하에게 말했다.
"욕심."
"네?"
"더 편하고 싶다. 더 잘하고 싶다. 더 가지고 싶다.
이런 욕심들 말이야.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거지."
인간의 발전에 가장 큰 원동력은 욕심이라고 하는 걸 들은 적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마법사들도 같지 않아? 이세상의 진리에 다가가고 싶다는 욕심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마법 연구에 쏟아붓고 있잖아?
기사들도 마찬가지고. 더 강해지고 싶다는 욕심으로 수련하고 경지에 다다르는 것이지."
내 말에 볼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추구하는 방향만 다를 뿐, 내가 이것저것 생각하고, 만드는 이유도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그렇군요. 욕심이라···"
따지고 보면 리오가 귀족들처럼 집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다를 게 없었다.
그리??영지민들이 더 열심히 일하는 이유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추수가 끝나고 또다시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전히 영지민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었고, 그 원동력으로 도시는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오늘 보고는 이상입니다."
"음-"
"왜 그러십니까?"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기분이 들어서."
내 말에 리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특별히 이상한 건 없지 않습니까? 추수도 잘 마쳤고, 공사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데요?"
"그게 아니라, 나가는 돈에 비해 들어오는 돈이 너무 적어."
"네?"
리오는 보고서를 다시 돌이켜 보고는 말했다.
"음- 영지민들이 일을 열심히 하는 만큼 임금이 많이 늘어나서 그런 것 아닙니까?"
"그래. 임금이 많이 늘어났으니 나가는 돈이 많아지는 건 당연해.
그런데 왜 그만큼 돈을 쓰지 않는 거지?"
"······"
"생각해보라고. 주머니에 돈이 들어왔어. 그럼 쓰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
근데 왜 소비세로 돌아오는 돈이 이렇게 적냐는 말이야."
"아-"
리오는 그제야 내 말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임금이 늘어났는데도 영지민이 소비하는 비용은 거의 늘지 않았네요."
"일부로 돈을 모으고 있는 건가?
이제 평민도 집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까 돈을 모아서 집을 사려고 그러는 걸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처음 영주님께 집을 가지고 싶다고 말씀드렸을 때, 저 역시 그동안 모았던 녹봉으로 집을 가지려고 했으니까요."
"그럼 곤란한데."
돈의 흐름이 멈추는 것은 영지 경제에 있어서 결코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돈을 회전시켜서 경제를 굴려야 산업도 발전하는 것이다.
영지민들이 돈을 모으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샤를로트의 말 때문이었다.
"그런데 귀족이 아닌 백성들이 돈을 쓸 줄 알아요?"
"당연한 것 아니야? 백성들도 상점에서 음식 재료도 사야 하고, 옷도 사야 하잖아?"
"그것밖에 없잖아요?"
"······"
"귀족들은 더 맛있는 걸 먹기 위해 왕도의 레스토랑에 가거나 다른 영지의 특산물을 사기도 하고, 기술이 좋은 재봉사에게 의뢰해서 의상을 맞춰 입기도 하는데, 백성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아-"
돈을 쓸 줄 모른다.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어떻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내가 행정제도를 개혁하면서 임금으로 셀링을 주기 전까지 영지민 대부분은 셀링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돈을 만져본 경험이 없으니, 돈을 써본 경험도 없었다.
그저 행정관들이 알려준 대로 상단이 운영하는 상점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그에 맞는 금액을 치르는 게 영지민들의 소비였다.
내가 이상함을 느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일을 많이 하게 되면서 돈은 더 벌었는데, 돈을 더 쓰지 않는다.
돈을 번 만큼 쓸 줄을 모르니 자연스럽게 주머니에 돈이 쌓이고 있던 것이다.
영지민들니 돈을 모은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돈이 모였던 것이다.
"영지민들이 돈을 쓰게 만들 방법을 찾았다."
"어떻게요?"
"욕심을 부리게 만들면 돼."
"욕심이요?"
"더 맛있는 걸 먹고 싶게, 더 좋은 옷을 입고 싶게 만들면 자연스럽게 주머니는 열리게 되어있어."
내 말에 리오가 눈동자를 반짝였다.
빨리 내 계획을 듣고 싶어 하는 리오의 모습에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영지에 자영업자를 육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