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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38화 (38/169)

38화

영주성으로 마차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결혼식은 아렌달과 스톨의 친인척만 오는 것 아니었어? 뭐가 저렇게 끊임없이 들어오는 거야?"

"영주님. 샤를로트님의 형제가 몇 명인지 잊으신 겁니까?"

"······아-"

리오의 말에 샤를로트가 스톨 백작의 여섯 번째 딸이라는 게 생각났다.

이세계에서 귀족의 결혼에는 각 친인척만 결혼식에 참가하고, 그와 친분이 있는 다른 이들은 선물만 보낸다고 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결혼식처럼 일일이 손님맞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샤를로트의 친인척만 해도 어마어마한 숫자였던 것이다.

'나는 한 명도 없는데 말이야.'

따지고 보면 나는 방계 왕족이었으니 국왕이나 같은 방계 왕족인 덴프린스 공작 같은 사람을 초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내전에 시달리는 나르비크에 더 관심이 많았기에 일부러 초대장도 보내지 않았다.

그래도 랄프에게 들어보니 왕도의 귀족사회는 아렌달과 스톨의 결혼이라는 주제가 좋은 가십거리로 떠도는 모양이었다.

"혹시 내 결혼을 빌미로 외부에서 스파이들이 아렌달에 잠입할 수도 있으니 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해.

그리고 샤를로트의 친척들이라고 해도 전부 임시 코드를 줘야하는 것 잊지 말고."

"그런 건 저희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영주님께서는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식에만 집중하시면 됩니다."

샤를로트가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빙글 돌았다.

"어때요?"

"······"

"백작님?"

순간적으로 말을 잊은 나는 샤를로트의 부름에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음- 이런 말을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반했습니다.

저랑 결혼해 주세요."

"풋- 그게 뭐예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샤를로트는 정말 환하게 웃으면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마주 웃으며 샤를로트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럼 나갈까요? 아가씨?"

내 물음에 샤를로트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내 신호에 영주성의 문이 열리며 환한 빛과 함께 커다란 함성이 나와 샤를로트를 축복해 주었다.

"영주님! 축하합니다!"

"영주님! 행복하세요!"

영지민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에 손님들도 놀랐는지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형제들이 놀라는 모습에 샤를로트는 더 환하게 웃었다.

"어때? 영지민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영주를 남편으로 삼는 기분이?"

"좋아요. 너무 좋아요."

이제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 샤를로트였다.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나는 스톨 백작과 샤를로트의 형제들에게 인사만 남기고 뉴렌달로 달려왔다.

도저히 그 많은 사람에게 인사할 자신이 없었다. 특히 샤를로트의 언니, 오빠들이 보내는 눈빛이 무서워서 도망치기로 했다.

"나는 이제 샤를로트랑 신혼여행을 갈 거니까 앞으로 7일 동안은 절대 찾지 말 것!"

"네? 영주님. 신혼여행이 뭐죠?"

"결혼을 했으면 신혼여행은 가야 하지 않겠어? 정말 영지가 망할 위기가 아니라면 나를 찾지 마.

샤를로트랑 둘이서만 시간을 보낼 거니까."

"아, 알겠습니다."

이세계에는 신혼여행이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리오나 관리들은 당황했지만, 내 말은 잘 들어주었다.

'이세계에서 처음으로 갖는 휴가인가?'

신혼여행이라고 해봐야 뉴렌달에 지어진 주인 없는 별장 하나를 차지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처음으로 영지의 일을 잊고, 정말 휴식다운 휴식을 보낼 수 있었다.

뉴렌달에 손님들이 찾아왔다.

스톨 백작을 비롯해 바깥 영토에 투자한 귀족들이었다.

"결혼 축하합니다. 아렌달 백작님."

"고맙습니다. 체스터 남작."

체스터 남작을 비롯한 귀족들은 회색 도시를 신기한 듯 구경하며 말했다.

"이렇게 빨리 도시를 만드실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저는 적어도 3년 이상은 걸릴 줄 알았는데, 겨우 1년 남짓한 시간 만에 이렇게 멋진 도시를 만들다니.

아렌달 백작님께서 왜 공사의 신이라 불리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제가 공사의 신이라고 불립니까?"

"그럼요. 왕도에서도 유명합니다. 아렌달 영지를 방문했던 상단들이 얼마나 떠들어 대는지 다들 알고 있습니다."

체스터 남작의 말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공사의 신이라니. 공사판 체질인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칭찬이었다.

그렇게 그동안에 있었던 사소한 이야기를 떠든 귀족들은 눈치를 보다가 내게 말했다.

"백작님. 그럼 저희에게 권리를 약속하신 영토는 어떻게···"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영토에 대한 권리는 확실하게 넘겨 드리겠습니다."

내 대답에 귀족들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그래도 오늘은 뉴렌달에 도착한 날이니 내일부터 안내를 해드려도 되겠습니까?

행정관들에게 권리에 대한 서류도 준비를 시켜야 해서요."

"하하- 물론입니다. 당연히 기다려야죠."

안도의 웃음을 내뱉으며 말하는 귀족들에 스톨 백작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은 내 별장에서 파티를 하는 것이 어떻겠나."

"별장이요? 스톨 백작님의 별장이 뉴렌달에 있습니까?"

"그렇다네. 아렌달 백작에게 부탁해서 해안가에 별장을 받을 수 있었지."

스톨 백작의 말에 귀족들은 다들 놀라는 얼굴이었다.

왕도도 아닌 지방 영지에 다른 귀족이 별장을 가진다는 생각은 그들로서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토에 대한 분양보다 건물의 분양이 더 쉽지 않겠습니까? 여기 계신 귀족 여러분들께서도 관심이 있으시다면 분양해 드릴 생각입니다."

"건물의 분양이라니···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개념이군요.

그래도 바로 인근에 저희도 땅을 가지게 되는데 굳이 뉴렌달에 건물이 필요하겠습니까?"

체스터 남작의 말에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오늘 파티 이후에도 그 생각이 변하지 않을까?'

나는 파티를 제안해준 스톨 백작에게 말했다.

"파티에 필요한 음식과 선물은 제가 준비를 해도 괜찮겠습니까?"

"자네가 준비해 준다면 나야 고맙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족들도 나와 스톨 백작의 관계를 알고 있었기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다르게 스톨 백작이 내 장인어른이기 때문에 대신 파티를 준비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이보다 뉴렌달의 특산물을 소개하기 좋은 기회는 없다.'

나는 스톨 백작의 파티를 뉴렌달 특산물 행사장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아까 했던 생각을 조금 고쳐야 할 것 같군요."

"정말 경치가 끝내줍니다."

"부러우면 자네도 나처럼 좋은 사위를 두게나. 허허허-"

귀족들의 부러움 섞인 칭찬에 스톨 백작은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기가 막힌 오션뷰를 자랑하는 스톨 백작의 별장이었으니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나도 스톨 백작에게 주기 아깝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거기에 대부분 바다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기에 그 감동은 더 컸을 것이다.

나는 오션뷰에 빠져있는 귀족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파티에 어울리는 음식이 준비되었습니다. 바다야 얼마든지 보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부터는 눈보다 입을 즐겁게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내 말에 스톨 백작이 눈을 반짝였다.

"그 말을 기다렸네. 어서 가세나."

든든한 풍채가 무색하리만큼 재빠른 스톨 백작의 몸놀림에 나는 웃으며 다른 귀족들을 안내했다.

"허억!"

"이, 이게 다 뭡니까?"

내가 준비한 파티 음식에 귀족들의 눈이 돌아갔다.

"바다에 왔으면 바다에 어울리는 음식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뉴렌달에서 건져 올린 해산물을 준비해봤습니다."

내륙 국가인 베르겐은 해산물이 귀할 수밖에 없었다.

왕도에서도 최고의 레스토랑에서나 맛볼 수 있는 해산물이 테이블 가득 놓여있으니, 다들 귀족이라는 품위도 잃고 입가를 촉촉하게 적시고 있었다.

그건 최고급 식사만 취급하는 스톨 백작도 다르지 않았다.

"배, 백작. 뭐, 뭐부터 먹으면 되는 건가?"

"먼저 여기 있는 전채요리부터···"

내가 하는 설명이 귀에 잘 들렸는지 모를 정도로 귀족들은 연신 손을 움직였다.

"정말 맛있군! 살면서 이런 식사를 해본 것은 처음이네!"

"이렇게 풍족한 식사라니. 뉴렌달에 오기를 정말 잘했습니다."

계속해서 들어오는 해산물 요리에 귀족들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뉴렌달의 바다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던 바다였다. 당연히 그물을 던지기만 해도 만선이 될 정도로 해산물이 풍부했다.

'귀족들의 반응을 보면 왕도에서도 엄청나게 팔리겠지? 그리고 해산물은 엄청 비싸잖아.'

생각해보면 중학생 때 수산물집 친구 녀석이 엄청나게 부유한 생활을 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돈줄이 생겼다는 사실에 내 얼굴에도 미소가 그려졌다.

뉴렌달에서 만족스러운 첫날을 보낸 귀족들은 기대를 잔뜩 품은 채 나를 따라왔다.

"다들 아시겠지만, 바깥 영토 개발에 가장 큰 투자를 해주셨던 분은 스톨 백작님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뉴렌달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이 구역의 권리를 스톨 백작님께 분양해 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톨 백작이라면 충분히 가장 좋은 땅을 받아도 괜찮다는 얼굴들이었다.

'우리 장인어른께서는 사람 관계가 얼마나 좋으면 질투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네.'

나는 스톨 백작의 인망에 감탄하고는 다음 사람을 호명했다.

"그다음은···"

귀족들은 자신의 이름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듯 주먹을 쥐고 내 입술에 주목했다.

"체스터 남작!"

"좋아!"

자신이 호명되자 체스터 남작이 주먹을 꽉 쥐고는 소리쳤다.

마치 아파트 분양권을 따낸 듯한 체스터 남작의 모습에 속으로 생각했다.

'대한민국이나 이세계나 똑같은 부분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잠깐 든 잡생각을 날려 보내고, 체스터 남작에게 말했다.

"체스터 남작은 스톨 백작님에 이어서 두 번째로 많은 투자를 해준 귀족입니다.

그래서 구스강 인근의 평야 지대의 권리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렌달 백작님."

"강을 끼고 있는 평야라니?!"

"그렇게 좋은 땅을!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무리해도 괜찮았는데!"

체스터 남작이 받게 되는 땅에 귀족들이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조금 더 투자하지 못한 아쉬움에 귀족들이 분을 삭일 때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다음, 세 번째는···"

얼굴에 만족스러움과 아쉬움을 담은 귀족들은 자신이 받은 땅의 권리서를 품에 챙겨 넣었다.

"나도 드디어 땅이 생겼구나."

"이걸로 내 이름도 잊혀지지 않겠어."

그래도 다들 투자한 목적을 달성했다는 기쁨에 얼굴에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이제 나도 영주가 되는 건가? 흐흐-"

"그, 그렇군요. 영주라니.

한때는 영지를 물려받을 형님을 부러워했었는데, 저도 형님과 같은 자격을 가질 수 있겠군요."

"하하. 축하합니다."

서로서로 축하의 인사를 건네는 귀족들의 모습에 나도 웃음이 나왔다.

그때 한 귀족이 나에게 말했다.

"아렌달 백작님. 그럼 제가 받은 땅에도 뉴렌달과 같은 도시가 들어서는 겁니까?"

그의 말에 귀족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제 고향인 체스터 영지도 뉴렌달보다는 시골일 겁니다."

"도시라니. 생각만 해도 좋습니다. 하하."

마치 당장이라도 도시를 가진 듯이 좋아하는 귀족들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귀족들이 한가지 놓치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저는 땅에 대한 권리만 양도해 드렸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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