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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37화 (37/169)

37화

스톨 백작의 마차가 별장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마차에서는 스톨 백작이 아닌 다른 사람이 내렸다.

"샤를로트?"

"아렌달 백작님?"

"다른 사람은? 설마 혼자서 여기까지 온 거야?"

마차에서 내린 사람은 샤를로트 혼자였다.

그녀가 아렌달에는 종종 혼자서 찾아온 적이 있었지만, 여기는 아렌달이 아니라 뉴렌달이었다.

아무리 고속도로를 만들었다고 해도 혼자 오갈 수 있을 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심지어 샤를로트는 귀족 가문의 아가씨가 아니었던가.

'그보다 어째서 아렌달에서 통신이 오지 않은 거지? 스톨 백작의 마차라면 아렌달에서도 알아봤을 텐데?'

"어떻게 된 거야?"

"그냥요. 종종 혼자 아렌달에 오고는 했잖아요?"

"여기는 아렌달이 아닌데?"

"······그냥 오고 싶었어요."

스톨 백작의 별장이라고 해봐야 아직 외형만 완성되었을 뿐이었기에 나는 샤를로트를 데리고 영주관으로 돌아왔다.

샤를로트는 잠시만 뉴렌달에 있고 싶다며 왜 뉴렌달까지 혼자 왔는지 그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샤를로트에게 쉬라고 일러두고 리오와 헤돈을 불렀다.

"영주님. 무슨 일입니까?"

"샤를로트가 뉴렌달에 왔어."

"샤를로트 아가씨가요?"

"그래. 그것도 혼자서 여기까지 왔다."

내 말에 둘도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리오. 아렌달에서 따로 통신을 받은 건 없지?"

"네. 없었습니다. 한번 확인을 해보겠습니다."

리오는 서둘러 아렌달에 통신을 넣어 샤를로트가 아렌달에서 모습을 보였는지 확인했다.

"영주님. 확인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헤돈. 1번 초소에서 스톨 백작의 마차를 봤는지 확인해주겠어?"

내 지시에 헤돈은 아렌달 인근에 있는 1번 초소에 통신을 보냈다.

"스톨 백작님의 마차가 아렌달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네. 아렌달에서 일을 똑바로 하지 않았거나, 아렌달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모르는 루트가 있거나."

"곧바로 영지군을 움직이겠습니다."

아렌달에서 관리하지 못하는 새로운 루트가 있는 것은 곤란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내게 집중했다.

"샤를로트는 어떻게 영주관이 아니라 스톨 백작의 별장으로 올 수 있었을까?

아직 스톨 백작에게는 별장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는데 말이야."

"!"

스톨 백작이나 덴프린스 공작 등이 아렌달 영지에 눈길을 보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들이 딱히 위해를 가하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무시하고 있었다.

오히려 스톨 백작에게는 도움을 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건 그냥 무시하고 넘길 사안이 아니었다.

아렌달은 그동안 외부의 관심을 받기 어려운 영지였다.

인구는 베르겐 왕국에서 손에 꼽을 만큼 적었고, 돈이 될만한 자원도 없을뿐더러, 변방 중에 변방에 있었기에 지리적인 이점도 전혀 없었다.

유동인구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정보를 통제하기에 굉장히 쉬운 영지였다.

솔직히 말해서 스파이 활동을 하기에 아렌달은 적합한 영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었다.

바다를 얻게 되면서 뉴렌달이라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

계속해서 인구가 유입되었고, 돈의 흐름을 보고 들어오는 상단들로 인해 유동인구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정보의 통제가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누가 스톨 백작에게 정보를 제공했을까?

그 별장이 스톨 백작의 별장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얼마 없는데."

"영지의 관리 중에 스톨 백작에게 정보를 보낸 사람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겠지. 별장을 지은 건설 인부 중에 그 별장이 스톨 백작의 것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없잖아?"

내 말에 리오의 표정이 굳어갔다.

"아무리 스톨 영지가 우리에게 호의적이라고 해도 영지의 정보를 함부로 내줘서는 안 되는 것 아냐?"

"영주님. 그래도 외부에서 들어온 영지민 중에···"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까지 영지민들 중에 이상한 행동을 보인 사람이 있던가?

지금도 각자의 일터에서 노동에 모든 시간을 들이고 있을 텐데."

근래에 아렌달에 들어온 이주민 중에 외부의 스파이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 이전에는 아렌달이 그만한 가치를 보여주지 않았으니 스파이가 없었더라도, 지금은 바다를 가지고 발전해나가는 아렌달을 주목하는 시선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덴프린스 공작같이 아렌달에 관심이 많은 귀족이나, 왕도의 구석에서 정보를 사고파는 정보 상인들이라면 반드시 스파이를 심어 놓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스톨 백작은 아니다.

스톨 백작은 아렌달에 관심이 없다.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나-아렌달 백작뿐이었으니까.

스톨 백작에게 정보를 제공하던 범인은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왜 그랬데?"

"그게··· 영주님과 스톨 영지의 관계를 생각해서 그랬다고 합니다."

"스톨 영지와의 관계?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래도 샤를로트 아가씨와 관련해서···"

"그걸 변명이라고 한 거야?"

"네."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영지의 정보를 외부로 유출 시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주민 등록 말소시키고, 영지에서 추방하도록 해."

내 결정에 리오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비슷한 경우가 나오면 예외 없이 다 추방이야. 만약 영지에 위험을 불러오는 사람이라면 그보다 큰 벌이 내려질 것이고.

이 사실을 영지민 모두가 알 수 있게 공표하도록 해."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무실을 나갔다.

리오가 집무실에서 나가자 볼튼이 말했다.

"영주님. 앞으로를 위해 지금이라도 영지민 전부 검증해야 하지 않습니까?"

"영지민을 전부?"

"네. 마법사들의 도움을 받으면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지 않습니까?"

볼튼의 말대로 마법을 이용하면 영지민들을 검증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다지 의미도 없고, 비효율적이야."

"만약을 위해서···"

"그래. 만약을 위해서는 아렌달에 주민 등록된 영지민 모두의 사상을 검증하는 게 좋겠지. 그런데 그런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앞으로도 인구가 계속 유입될 건데, 그럼 유입되는 모든 사람의 사상을 검증해야 할까?

그리고 영지민이 아닌 상인들은 어떻게 하지? 아렌달에 들어올 때마다 검증을 받으라고 해야 하나?

그건 아니잖아."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볼튼이야 충성심으로 말한 것이니까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마법까지 사용하면서 사상을 검증하는 것은 내가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강제적으로 사상을 주입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렌달의 영지민들은 나를 따르고 있지 않은가.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며 사상을 주입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현대인인 내 상식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렌달에서 추방당한 행정관은 스톨 영지에서 받아주기로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스톨 백작에게 사과의 메세지가 도착했다.

"진짜 놀랍도록 꼬인 게 없는 사람이네."

스톨 백작이 사과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

자신이 몰래 아렌달의 정보를 취하고 있던 것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다니. 정말 그가 귀족이 맞나 의심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스톨 백작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겸허히 사과를 받아들였다.

정말 스톨 백작은 이세계 사람인지 의심이 될 정도의 사람이었다.

스톨 백작의 메세지를 받은 나는 곧장 샤를로트를 찾았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부르시는 건 너무한 것 아닌가요?"

"늦은 시간이라니? 아직 저녁 시간도 안 됐는데.

그보다 스톨 백작님께서 네 걱정이 많으신 것 같던데?"

"······설마 제가 여기 있다는 걸 아버지께 전하신 거예요?"

샤를로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스톨 백작은 샤를로트의 행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를 돌려보내실 건가요?"

"원래대로라면 임시 코드가 없으니 곧바로 추방이긴 하지."

"임시 코드가 뭔데요?"

"아렌달 영지에 들어오는 외부인은 모두 받게 되는 것. 그게 없으면 앞으로 영지에는 못 들어올 거야."

"그럼 저도 주세요."

당돌하게 요구하는 샤를로트에 나는 피식 웃으며 준비한 임시 코드를 넘겨주었다.

"잊어버리지 말고 잘 가지고 있어. 그리고 스톨 영지로 돌아갈 때 잘 반납하고."

"그럼 올 때마다 이걸 받아야 하는 거예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샤를로트는

"그건 너무 귀찮은데···"

라고 혼잣말을 하며 내 눈치를 봤다.

"너는 주민 등록을 한 영지민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어."

"칫-"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혀를 찬 샤를로트가 갑자기 나를 붙잡았다.

"바다에 가고 싶어요. 데려다주세요."

"갑자기? 곧 저녁 시간인데?"

"그냥 한 번만 데려다주시면 안 돼요?"

샤를로트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눈치였다.

"아~ 시원하다."

바닷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샤를로트를 보니 나도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저 별장이 아버지에게 줄 별장이면, 백작님의 별장은 어디에요?"

"내 별장은 없어."

"왜요? 여기는 다 백작님의 영토잖아요?"

"나는 나중에 호텔이 완성되면 꼭대기 층을 가질 생각이니까."

"호텔이요?"

"응. 한 10층짜리 호텔을 지을 생각이야."

내 말에 샤를로트가 눈동자를 반짝였다.

"10층이면 엄청 높겠죠? 그런 곳에서 바다를 보면 얼마나 멀리까지 보일까요?"

"멀리까지 볼 수 있다고 해봐야 다 파란색일 뿐인데?"

"백작님은 참 감성이 없는 사람이네요."

공돌이에게 감성이라니. 그쪽은 내 영역이 아니다.

"그보다 이제 말해주는 게 어때?"

"···뭘요?"

"네가 뉴렌달에 온 이유. 그것도 혼자서 말이야."

"······"

대답을 요구하는 내 말에 샤를로트가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는 잠시 침묵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말 안 할 거야?"

"···백작님. 그거 아세요?"

"주어를 생략하고 말하지 말라니까."

내 말에 샤를로트는 결심을 했는지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왕도에서 청혼서가 왔어요."

"···청혼서?"

"네. 제가 쓴 소설 때문에··· 백작님이 알려주신 그 이야기들 때문에 청혼서가 왔다고요.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몇 개나 되는 가문에서 스톨 영지로 청혼서를 보냈어요."

샤를로트의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

"저한테 하실 말씀 없으세요?"

"음- 그러니까 왕도의 귀족이 너에게 청혼을 했다 이 말이지."

"네."

"······그럼 좋은 거 아니야? 너는 왕도로 시집을 가고 싶다고 했잖아?"

내 말에 샤를로트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나 스스로도 오답을 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잠시의 침묵에 샤를로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가 시집가고 싶었던 곳은 왕도가 아니라 도시라고요."

"도시···"

샤를로트의 말에 나는 시선을 돌려 콘크리트 건물 가득한 회색 도시를 잠시 바라봤다.

그런 내 시선을 따라오며 샤를로트가 말했다.

"백작님. 그거 아세요?"

"······"

"저 벌써 20살이에요."

14살이었던 샤를로트는 어느새 20살의 아가씨가 되어서 내게 말했다.

고개를 돌리자 바닷바람이 차가워서인지 샤를로트는 조금 떨고 있었다.

나는 그런 샤를로트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영주관에서 보면 도시가 잘 보이는데. 같이 볼까?"

이번에는 정답을 말한 것 같았다.

샤를로트가 더없이 환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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