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현대인-32화 (32/169)

32화

"이야기를 쓴다니? 설마 소설이라도 쓰는 거야?"

내 말에 샤를로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학소녀라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샤를로트의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시도 배웠다고 했었지.'

"왕도에서 연극을 본 적이 있는데 멋지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연극에 빠져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귀족 아가씨가 소설을 쓴단다.

'진짜 스톨 가문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소설 속에 나오는 악덕 귀족인 줄 알았던 스톨 백작은 핵인싸에 꼬인 것도 하나 없는 사람 좋은 영주님이었고, 후계자인 큰아들은 들어보니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하고 있는 좋은 영지 관리자였다.

심지어 또 다른 아들은 왕국에서 소드마스터가 되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왕국 기사단의 부단장이 아니던가.

그런데 여기에 연극에 빠져서 소설을 쓰는 딸까지 나타났다.

"혹시 백작님도 연극을 좋아하시나요?"

눈을 반짝이며 묻는 샤를로트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취미는 없는데···"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백작님은 공사 말고 다른 곳에는 관심이 없으시잖아요."

공사판 일에 집중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다른 곳에 관심이 없지는 않았다.

'마법 용품 개발이나 먹거리 산업에도 관심이 있는데··· 이것도 다 영지 일에 관련된 일뿐이네.'

그래도 나에게 문학적 감성은 없어도 문학적 지식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내 관심에 샤를로트가 다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런 이야기에요."

대충 들어보니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시골 영주님과 부유한 귀족 아가씨의 사랑 이야기였다.

살짝 내 눈치를 보는 샤를로트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영지 관리하기에도 바쁜 영주님이 아가씨를 만나기 위해 매일 같이 영지를 비운다니. 그곳의 영지민들이 불쌍하네.

나는 절대 이러지 않을 거야."

"소설이라구요!"

입술을 삐쭉이는 샤를로트에게 말했다.

"차라리 이런 이야기를 쓰는 건 어때?"

"?"

"서로 원수 가문의 도련님과 아가씨가 첫눈에 반해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서로 사랑해서는 안되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거지.

비극이 될 게 분명했지만, 그래도 막을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 어때?"

내 말에 샤를로트의 턱이 저절로 벌어졌다.

"재밌어··· 백작님. 이런 취미는 없다고 했잖아요?"

샤를로트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그런 내 모습에 샤를로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감이라도 떠올랐는지 그 어느 때보다 샤를로트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저 이만 돌아갈게요. 좋은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나는 서둘러 돌아가려는 샤를로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설마 저러다 대문호가 되는 건 아니겠지?'

파종이 끝났는데도 나는 여전히 아렌달에 있었다.

짧은 시간 만에 마법 연구소에서 휴대용 마법 통신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통신 마법이 그리 어렵지 않은 마법이라는 것도 있었지만, 보통은 개개인이 연구했을 텐데 보너스를 받기 위해 팀을 만들어 마법 연구를 마친 것이다.

'독립성이 강한 마법사들이 보너스 때문에 프로젝트팀을 만들다니···'

정말 자본주의 만세다.

"······여기서 이렇게 마법 회로를 연결 시키고 주문을 외우시면 됩니다."

미리아의 설명에 나는 마법 통신기를 쥐고 주문을 외웠다.

"메신져! 아- 아- 마법 연구소. 여기는 아렌달 백작이다. 들리나?"

-백작님. 잘 들려요.

"그쪽에서도 뭐라도 말해봐."

-백작님 보너스는 언제 주시는 거예요?

"영주성으로 와서 리오한테 달라고 해."

-감사합니다!

내 대답에 작은 소음이 들리고는 마법 연구소와 통신이 끊겼다.

"뭐야?"

"레이첼이 좌표에서 움직인것 같아요."

"지정된 좌표에서 벗어나면 통신이 끊기는 건가?"

"네. 통신을 보내는 건 어디에서나 상관없지만, 받는 쪽은 고정된 좌표가 아니면 안 되어서···"

미리아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쪽이 고정되는 건 아쉬웠지만, 이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였다.

"그런데 이건 얼마나 쓸 수 있는 거야?"

"마법을 얼마나 쓰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루 정도는 여유롭게 쓰실수 있을 거예요."

휴대폰도 하루에 한 번씩 충전했으니까 나쁘지 않은 효율이었다.

"마법의 유효 거리는? 여기서 뉴렌달까지 한 번에 보낼 수 있나?"

"마법의 유효 거리가 아직 확실하지 않고 거리가 멀어지면 소모되는 마나량도 많아서요.

그건 다음에 영주님께서 확인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알았어. 이것만으로도 나쁘진 않네."

아렌달에서 뉴렌달까지 한번에 통신이 되지 않아도 중간에 중계기를 설치하면 해결 될 일이었다.

원래 지구에서도 통신을 위한 중계기는 이곳저곳에 다 깔려 있었던 걸 생각해보면 하나도 다를 게 없는 것이었다.

중계소를 어디어디 설치할까 고민하는 나를 미리아가 불렀다.

"저 영주님."

"왜?"

"저도 보너스를···"

"아- 그래. 리오한테 가봐."

"네! 감사합니다!"

레이첼이 보너스를 꿀꺽할까봐 서둘러 뛰어가는 미리아의 모습에 볼튼이 말했다.

"마법사들은 정말 다루기 쉬운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 욕심이 딱 한 곳을 향하고 있으니 귀엽잖아?"

마법사들이 저렇게 욕심을 부리는 이유가 오직 마법 연구라는 사실이 재밌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마법사들중에 권력을 탐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왕국이나 귀족 가문에 속해서 이런저런 일을 돕고, 심지어 전쟁에 투입되더라도 마법사들은 항상 마법 연구를 하고 있었다.

오래전 자하에게 어째서 그만한 능력을 가졌는데도 권력이나 정치에 관심이 없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자하는 이렇게 대답했다.

"권력을 가지는 것보다 진리를 깨닫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즉, 권력에 대한 욕심보다는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욕심이 더 큰 것이다.

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생각해보면 참 다행이었다.

'그러고 보니 마법사들은 결혼도 안 하잖아.

신이 아니라 진리를 쫓는다는 것만 빼면, 성직자의 삶이랑 다를 게 없네.'

대장간에서 생산해낸 빔들이 1톤 마차에 실리고 있었다.

나는 빔을 싣고 출발을 기다리는 마차들을 보며 스미스에게 말했다.

"내가 없더라도 빔은 계속해서 보내야 한다는 거 알지?"

"하하하- 혹시 제가 죽더라도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보내라고 하겠습니다."

"죽는다니! 스미스가 아직 해줘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리를···"

내 말에 스미스가 이를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영주님. 이제는 모루를 때릴 힘도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망치질을 멈출 생각은 없잖아?"

"하하하- 그건 당연한 말씀이지요."

스미스의 말에 나는 안심하며 말했다.

"다음에는 스미스도 뉴렌달에 같이 가자고. 스미스도 바다를 봐야하지 않겠어?

그리고 뉴렌달에 제철소가 만들어지면 스미스가 가마에 불을 켜줘야 하잖아."

"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영주님."

스미스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함께 자재들이 다 실렸는지 마무가 소리쳤다.

"영주님. 다 실었습니다."

"오케이. 그럼 바로 출발해."

마차가 하나둘 출발하는 모습에 나 역시 말에 올랐다.

다시 뉴렌달로 가야할 시간이었다.

"아- 아- 마법 연구소 들리면 대답해라."

마법 통신기에서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 아- 마법 연구소!

음- 여기까지가 통신 마법의 한계 거리인가?"

아렌달에서 뉴렌달로 가는 길의 4분의 1지점에서 끊겼으니 생각보다 유효 거리도 나쁘지 않았다.

"레이첼. 마법이 닿은 마지막 포인트가 어디였지?"

"여기요. 영주님."

내 말에 레이첼이 지도위에 한 포인트를 집어줬다.

"레이첼. 친위대와 함께 가서 중계석을 심고 와.

볼튼. 레이첼에게 친위대를 붙여줘. 혹시 몬스터가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전부."

친위대들이 레이첼을 호위해서 마지막으로 통신 마법이 닿았던 곳에 중계석을 심고 돌아왔다.

"아렌달 코드가 001번이고 중계석 코드가 002번이니까 회로를 이렇게 조정하면 되는 건가?"

"네. 맞아요."

레이첼에게 확인을 받은 나는 곧바로 주문을 외웠다.

"메신져. 아- 아- 마법 연구소. 들리면 대답해라."

-마법 연구소입니다. 들립니다.

아까와 다르게 마법 통신기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나는 레이첼에게 엄지를 세워주고는 다시 통신기에 대고 말했다.

"오! 닿았다. 들리면 아무 말이나 해봐."

-영주님. 마법 연구에 필요해서 그러는데 2등급 마나석 하나만 빼서 써도 괜찮을까요?

"안 돼! 끊는다."

-영주님! 제발!

단호하게 끊어버리고 레이첼에게 말했다.

"중계석은 마력이 얼마나 간다고 했지?"

"한달 정도는 유지될 거예요."

2등급 마나석 하나로 한 달이 유지되는 것이었으니 효율도 괜찮았다. 통신 마법이 고급 마법이 아니라 참으로 다행이었다.

"좌표 거리 계산할 수 있지? 뉴렌달로 가는 길에 놓치지 말고 중계석 심어야 해."

"네. 알겠습니다."

내 말에 레이첼이 대답하자마자 친위대 기사가 나에게 말했다.

"저··· 영주님."

"?"

"저도 한 번만 그 통신 마법을 써봐도 될까요?"

마치 신병이 전화하고 와도 되냐고 묻는 듯한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통신기를 넘겨주었다.

"감사합니다."

아렌달에 있는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기사의 말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중간중간 중계석을 심으며 구스강을 따라 달리자 어느새 드넓은 평야 지대가 보였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회색빛의 건축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뉴렌달은 반년사이에 모양을 갖춰가고 있었다.

"벌써 저렇게 건물들이 올라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발더에게 이론적인 것만 알려주고 갔는데 생각보다 훨씬 매끄럽게 건물을 올렸네."

현대 지구의 건축물처럼 몇십, 몇백 층의 건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콘크리트 건물들을 보니 진짜 도시의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발전하면, 언젠가는 빌딩 숲을 재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직은 먼 미래의 이야기일지 몰라도 기분좋은 상상을 하기에 딱 좋은 그림이었다.

내가 뉴렌달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공사를 지휘하던 발더가 거점으로 돌아왔다.

"발더. 생각보다 훨씬 잘 해주었네.

반년만에 뉴렌달을 이렇게까지 만들어 놨을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어."

"아닙니다. 영주님께서 지시하신것만 해도 따라가기 벅찰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콘크리트가 아니었다면 이만큼 건물을 올리지도 못했을 겁니다. 다 콘크리트를 만들어주신 영주님 덕분입니다."

콘크리트를 아무리 때려부어도 건물이라는 게 쉽게 올라가는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현장에서 관리하는 발더의 공이 엄청나게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내가 공치사를 해도 전부 내 덕이라는 발더에 나는 씨익 웃고는 다른 사람들을 찾았다.

"마법사들은 다 공사장에 나갔나?"

"알비레오는 서쪽에 농경지를 만들러 갔을테고, 달리아는 좌표를 따고 있지 않을까요?"

"벌써 농경지를 만들기 시작했어?"

"네. 거주지 건물들이 올라가는 속도가 빨라서 미리미리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공사속도가 빠르다고?"

건물을 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쪽 공사속도도 엄청나게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습니다. 특히 근래에 마법사들이 열심히 해주어서 그런지 공사속도가 많이 빨라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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