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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30화 (30/169)

30화

내가 왕도에 갔다 오는 사이 영지군의 숫자가 200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영주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기초 공사팀은 발더를 따라서 오는 거지?"

"그렇습니다."

"좋아. 그럼 출발하지."

내 신호가 준비하고 있던 마차들이 긴 행렬을 그리며 바깥을 향했다.

멀리 보이는 카스 산맥과 길게 이어진 구스강,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광활한 대지를 보니 가슴이 뻥 뚤리는 기분이었다. 이 모든 땅을 내가 개발한다는 생각에 희열이 느껴질 정도였다.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동안 내 눈에는 새로운 도시와 도로가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그렇게 구스강을 따라 달리기를 며칠, 드디어 내 눈에 푸른 바다가 들어왔다.

"와-"

"영주님. 바다입니다."

볼튼이나 자하마저도 처음 보는 바다에 감격하는지 연신 목소리를 높였고, 몇몇 사람들은 수평선이 주는 감동에 눈물까지 흘렸다.

'새로운 아렌달이 여기서 만들어진다.'

나는 감동에 빠진 사람들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공사 시작하자!"

"알비레오! 싹 다 날려버려!"

"···폭발하라! 익스폴로젼!"

알비레오의 폭발 쇼에 뜨거운 열기가 휘몰아쳤다.

"하핫- 익스플로젼! 익스플로젼! 익스플로젼!"

오랜만에 예술 활동을 마친 알비레오가 쓰러지며 물러나자 에일렌을 비롯한 원소 마법사들이 지반을 평탄하게 뒤집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의 지반 뒤집기를 보며 발더에게 말했다.

"중심지를 잡는 대로 도로공사부터 진행하도록 해."

도시 계획은 이미 다 되어 있었다. 중앙에 광장을 펼쳐놓고 광장에서부터 사방으로 뻗어 나오는 장방형의 도시를 만들 생각이었다.

"마법사들의 지원이 필요하면 누구라도 데려다가 써. 도시 건설의 책임자는 발더니까 말이야."

"감사합니다!"

발더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졌지만, 오히려 자신감 넘치는 얼굴이었다.

그가 스스로 아렌달을 찾아온 이후로 계속해왔던 공사 덕분인지 지금까지 없던 대규모 공사에도 두려움 따위는 느끼지 않는 듯했다.

도시의 포인트로 잡은 지역은 평야 지대의 한복판인 지역이어서 그런지 광산 자원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지역이었다.

영지군이 우선 탐사를 했을 때도 영지의 수입원이 될 만한 자원이 나올만한 지역은 없다고 했었으니 처음부터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자원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평야 지대인 만큼 식량 생산만큼은 수월하게 될 것 같았다.

"그나마 자원이 나올 가능성이 있는 곳은 저쪽인가?"

그나마 서쪽 구릉 지대가 자원을 조금 기대해볼 만한 지역이었다.

아직 몬스터를 전부 몰아내지 못했지만, 도시를 완성하는 데 있어서 꼭 차지해야 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지형을 그냥 놔둘 수는 없지."

높은 곳을 차지하라는 것은 병법의 기초 중에 기초였다.

군대에서 5대기 임무를 하며 배운 독도법을 떠올려봤을 때 고지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 없는 것이었다.

영지군은 이미 구릉 지대를 점령하기 위해 준비를 마쳤다.

열심히 도로를 만들고 있는 공사장 인부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볼튼에게 말했다.

"볼튼경. 검 쓰는 법은 기억하고 있나?"

"이제는 검보다는 삽이 더 익숙하지만, 그래도 영주님을 지키는 건 문제없습니다."

"다행이네."

내 말에 다른 친위대 기사들이 웃었다.

"공사장의 일꾼들만큼, 영지군도 해야 할 일이 있지.

서쪽 구릉 지대를 아렌달의 지배 아래 둔다."

내 말에 준비를 마친 영지군이 서쪽 구릉 지대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메케한 연기가 구릉 지대에서 피어올랐다.

구릉 지대의 몬스터가 우리를 발견하고 공격했지만, 영지군의 화력에 채 다가오지도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와- 내가 만든 무기지만 참 대단해."

"저기를 보십시오. 영주님.

아예 절벽 한쪽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알비레오가 전력을 다해서 폭발 마법을 쓰더라도 저 정도의 위력은 안 나올 것 같습니다. 하하-"

볼튼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볼튼이 영지군과 마법 무기들을 띄워주기 이렇게 위해 말했지만, 알비레오가 진심으로 폭발 마법을 쓰면 분명 방금 영지군의 화력보다 더 큰 폭발을 일으킬 것이다.

알비레오도 마나가 고갈되어 쓰러지겠지만, 결코 마법 무기가 진짜 마법을 압도할 위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도 마법 연구소에서는 새로운 마법 무기를 만들기 위해 연구 중이다. 어떤 위협이든 대응하려면 조금이라도 더 화력을 갖춰야 하니까 말이다.

"대충 보이는 몬스터는 다 정리된 것 같은데?

헤돈경. 그럼 오늘은 이만큼만 하고 슬슬 돌아갈까?"

"알겠습니다. 영주님.

상황을 정리해라. 거점으로 돌아간다."

헤돈의 명령에 영지군들이 구릉지대를 정리하면서 모였다.

나는 하나둘 몬스터 전리품을 챙기는 영지군을 보며 생각했다.

'몬스터는 이렇게 많으면서 어떻게 광산 자원은 하나도 나오질 않는 건지?

금광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철광산 하나면 나왔으면 좋겠는데···'

철광산 하나만 있어도 공사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생각하며 나는 땅에 굴러다니는 돌을 걷어찼다.

그리고 내 발길질에 회색의 부스러기를 남기고 굴러가는 돌멩이를 보며 생각했다.

"돌이 생각보다 무르네."

굴러간 돌이 남긴 회색 부스러기를 손에 들고 비벼보자 손가락에 회색 가루가 묻어 나왔다.

그리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그 회색 부스러기에 혀를 데었다.

"?!"

입안에 퍼지는 기분 나쁜 냄새에 몇 번이나 침을 뱉은 나는 다시 굴러간 돌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직 입에 돌고 있는 냄새와 손가락에 묻어있는 회색 가루를 보며 말했다.

"이거 시멘트 아니야?"

"최대한 곱게 빻아."

내 지시에 친위대 기사들이 회색 돌을 해머로 내려쳤다. 삽질만큼이나 숙련된 해머 질에 돌은 어느새 잘게 부서져 가루가 되었다.

나는 그 가루 위에 준비한 자갈과 모래를 뿌리고는 말했다.

"비벼!"

내 지시에 기사들이 가루와 모래가 완전히 섞이도록 비비기 시작했다.

나는 두 재료가 완전히 섞인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물을 부어 주었다.

"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계속 비벼!"

기사들이 삽질하는 모습에 대학교 실험실에서 삽질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물과 섞여 절벅절벅 뭉쳐지는 모래 자갈에 나는 기름칠 한 나무 상자를 옆에 두었다.

"삽 줘봐."

그리고 직접 삽을 받아들고 기사들이 열심히 비벼서 만든 결과물을 상자에 담았다.

그리고 며칠 후 나무 상자에서 단단히 굳어버린 결과물을 보며 나는 소리쳤다.

"콘크리트!!!"

서쪽 구릉 지대눈 그냥 모래나 흙 지반이 아니라 석회암 지대였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도시 계획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정된 도시 계획을 보며 생각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공사를 진행 시킬 수 있다.'

처음 도시 계획을 설립할 때, 영지민을 이주시키기 위한 건물에 소모되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그런데 콘크리트가 있다면 그 시간을 비약적으로 줄일 수가 있었다.

일일이 석재를 쌓거나 목재를 조립하는 것보다 그저 틀이 되는 거푸집을 짜서 콘크리트를 때려 부으면 건물 따위는 금방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 대장 기술로 철근 자재를 만들 수 있을까?

아니야. 굳이 철근 자재는 필요 없어. 기둥 골조가 되어줄 H빔만 있어도 콘크리트 구조물은 쉽게 무너지지 않아.'

세세한 철근을 박아 넣을 수 없다면 기둥 골조만이라도 빔으로 세우면 된다.

빔을 기둥 골조로 삼고 콘크리트를 굳히면 외력을 받아도 쉽게 건물이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철근이 해풍에 약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철근 콘크리트보다는 그냥 콘크리트만 사용하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고대 로마에서도 콘크리트에 철근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2천 년이 넘는 시간을 버티지 않았나.

'그래. 대장간을 돌려 기둥 재료만 빠르게 만들어 내자.'

"발더. 나는 아렌달로 돌아간다. 가서 준비해야 할 게 있어."

"영주님이 돌아오시기 전까지 도로공사를 끝내 놓도록 하겠습니다."

해를 넘기고 나서 아렌달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석회암의 발견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아렌달로 귀환했다.

그리고 아렌달로 돌아오자마자 대장간부터 찾았다.

"스미스 농기구 생산이 많이 밀려 있나?"

"아니- 영주님. 벌써 돌아오신 겁니까?"

"중요한 변수가 생겼어. 그보다 아직 생산해야 할 농기구가 많이 밀려 있어?"

"이제 추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지라 부족한 농기구가 많습니다.

그리고 랄프 상단주가 요청한 호미나 조선낫도 아직 수량이 부족해서 시간이 필요합니다."

스미스의 대답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저었다.

바깥의 공사가 급한 건 사실이나 당장은 추수가 더 급한 사안이었으니까.

그리고 다른 영지와의 관계를 생각해서도 농기구 생산을 뒤로 늦추기에는 어려웠다.

"이런 사정을 알았으면 급하게 아렌달로 오기보다는 천천히 오는 것이었는데."

괜히 급하게 왔다는 사실에 나는 붕 떠버린 시간이 너무 아쉬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전화도 없는 이세계에서는 직접 오가지 않으면 소식을 전할 수 없었으니까.

"잠깐만··· 왜 이렇게 답답한 상황을 가만히 있었지?"

24시간 스마트폰을 붙잡고 살았었는데 전화기의 존재를 까맣게 망각하고 있었다.

나는 대장간을 나오자마자 마법 연구소를 찾아 마법사들을 불러 모았다.

"혹시 멀리 떨어져 있는 상대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마법은 없을까? 메시지가 아니라도 내 뜻을 전달할 수 있는 마법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내 말에 마법사들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건 통신 마법이 아닙니까?"

"통신 마법이 있어? 원래 있는 마법이야?"

"네. 그렇게 어려운 마법도 아닌데요?"

마법사들의 대답에 나는 말을 잊었다. 통신 마법이 원래 있었을 뿐 아니라 어려운 마법도 아니란다.

"그런데 마법을 사용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정확한 좌표를 알아야 합니다."

아렌달의 모든 좌표는 이미 달리아가 지도 제작자들과 함께 다 따놓은 상태였다.

통신 마법을 사용하는 데 있어 마나의 소모량이 큰 것도 아니었으니 마나석이 충분한 아렌달에서는 당장에 사용이 가능한 마법이었다.

"그런 편리한 마법이 있는데 왜 그동안 통신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거야?"

내 물음에 마법사들은 멀뚱히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나에게 말했다.

"굳이 마나석을 소모하면서까지 통신 마법을 사용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전달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면 우편을 써서 보내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냥 종이에 써서 내용을 보내면 되는데 굳이 마법까지 사용할 이유가 있을까요?"

"······"

문득 지구에서 처음 전화가 발명되었을 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당시에도 마법사들이 방금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이 나왔었다.

익숙한 편지가 있는데 복잡한 전화기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말이었다.

'하하- 지구에서나 이세계에서나 인간이란 똑같은 건가?'

며칠씩 걸려서 도착하는 편지에도 답답함을 못 느끼는 게 당연한 세상이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빠른 지시와 보고를 위해 당장 통신 마법 아이템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마법사들로 하여금 최대한 빠르게 통신 아이템을 만들게 하는 주문을 알고 있었다.

"보너스 300셀링."

"네?"

"지금부터 가장 먼저 휴대용 통신 아이템을 만드는 마법사에게 보너스로 300셀링 준다."

"!"

내 주문과 함께 마법사들이 연구실로 뛰어 돌아갔다.

아마 한동안 마법 연구실의 불은 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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