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어때? 왕도의 귀부인들에게 팔릴 것 같아?"
"이건 무조건 팔릴겁니다. 이런 디저트는 그 어디에서도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랄프의 감탄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이미 샤를로트의 반응으로 아이스크림이 이세계에서 통한다는 건 확인했다.
다만 다른 디저트들도 통할 것이라고는 확신하기 어려웠는데 랄프의 반응을 보면 충분히 팔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럴줄 알았으면 카페 같은데도 좀 다니고 그럴 걸 그랬어.'
야근에 쩔어서 살던 공사판 공돌이라 그런지 신상품이라고 생각한 게 고작 아이스크림과 몇 가지 과자가 전부였다.
이것 말고도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팔고 싶었지만, 개념은 있어도 만드는 방법을 모르니 신상품 생산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들이 없었다면 어땠을지···'
속으로 나 대신에 연구에 갈려나가고 있는 마법사들을 위로하며 랄프에게 말했다.
"앞으로 신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물건이 필요해.
아렌달에서 구할 수 없는 과일이나 향신료, 허브등 먹을 수 있는 것들뿐 아니라 철이나 목재 같은 자원도 계속해서 들여와 줘.
상품을 거래하고 받은 대금이 부족하다면 리오에게 요청하면 필요한 자금은 바로바로 채워줄거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상단들이 아렌달에 지점을 세울 수 있도록 제안하는 것도 잊지 말고."
"아직 인구도 적고 너무 변경이라 상단들도 쉽게 지점을 내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그렇겠지. 그래도 영지의 상업을 키워야지. 다른 영지보다 세금도 적고, 초기 임대료도 감면해 준다고 하면 누구 하나는 관심을 가지지 않겠어?
랄프는 실력도 인맥도 있으니까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노력하겠습니다."
어차피 아렌달의 신상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상단들도 신상품을 거래하기 위해 다가올 것이다.
그 사람들을 잘 골라서 아렌달에 묶어두는 게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나는 그들로 하여금 아렌달에 돈이 돌 수 있게 준비하면 되는 것이다.
"오늘도 새로운 맛이네요. 딸기가 들어간 건가? 도대체 몇가지 맛이나 만들 생각이지?"
"31가지."
"뭔가요? 그 애매한 숫자는?"
"있어. 그런 게. 그런데 너는 왜 또 온 거야?"
보고서를 넘기던 나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들어오는 샤를로트에게 말했다.
"그리고 내 아이스크림은 왜 네가 다 먹는 거야?"
"좀 먹으면 어때요! 냉장고에 보니까 많이 있던데."
내 말에 샤를로트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아이스크림 말고 감자는 없어요? 저번에 먹은 버터로 구운 감자는 맛있던데?"
"맡겨 놓으셨어요? 그리고 스톨 영지에서도 먹을 수 있는 걸 왜 여기까지 와서 달라는 거야?"
"스톨에서는 여기서 먹은 거랑 같은 맛이 안 난다니까요."
"감자가 먹고 싶으면 직접 캐서 가지고 와. 그럼 내가 직접 구워 줄 테니까."
직접 구워준다는 말에 샤를로트는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 말 진짜예요?"
"······"
"진짜 백작님이 구워주실 거예요?"
"뭐야? 진짜 감자를 캐러 가겠다고?"
샤를로트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씨-익 웃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저히 모를 미소였다.
"그 흉측한 건 뭐에요?"
엉덩이 방석을 착용한 내 모습에 샤를로트가 질린 얼굴이 되었다.
"리지. 하나 더 줘."
"하나 더요? 설마···"
"그래. 스톨의 아가씨께서 직접 감자를 캐시겠다고 한다."
나는 리지에게 엉덩이 방석을 받아서는 샤를로트 손에 강제로 쥐어 줬다.
그리고 멍하니 엉덩이 방석을 받아든 샤를로트에게 말했다.
"자 딱 한 바구니만 캐와. 그러면 아까 말한 대로 내가 직접 감자 요리해줄게."
내 말에 샤를로트도 오기가 생겼는지 내가 했던 대로 엉덩이 방석을 착용하고는 호미와 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풋- 잘 어울리네."
기어코 바구니를 채우는 샤를로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통감자 버터구이를 해주었고, 샤를로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돌아갔다. 품에 감자 바구니를 안은 채로 말이다.
"영주님. 요리도 하실 줄 아셨습니까?"
"감자 굽는 게 무슨 요리라고."
"그래도 저는 영주님을 모시면서 처음 봤습니다. 귀족이 요리를 하는 걸요."
볼튼의 말에 나는 순간 움찔하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이세계는 귀족이라는 존재가 요리할 리가 없는 세계였으니까.
"심지어 맛까지 아주 훌륭하셨습니다."
"그, 그냥 책에서 배운···"
"역시 영주님은 제가 상상할 수 없는 천재십니다. 지금까지 영지를 개혁하시는 모습이나 새로운 무기의 제작하셨을 뿐 아니라 새로운 상품과 먹거리의 개발까지.
도저히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은 천재이자 신의 사자 아니- 신 그 자체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랜만에 볼튼의 급발진에 나는 말을 잊고 말았다.
"저는 알았습니다."
"뭘?"
"영주님을 모시기 위해 제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는 영주님을 따르겠다고 다시 마음먹었습니다. 영원히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영주님."
"아이고. 그러십니까? 참으로 고맙습니다. 볼튼경."
내 말에 볼튼이 활짝 웃었다.
"그만하고 들어가자고. 내일부터 다시 공사 현장 시찰해야 하니까 말이야."
"영주님. 봐주십시오! 드디어 완성했습니다."
영주성이 떠나가도록 소리치며 알비레오가 들어왔다.
"A3 기관총이 완성된 거야?"
"아, 아니요. 그건 아닌데요···"
처음과 다르게 기어들어 가는 알비레오의 목소리에 나는 한숨이 나왔다.
"하아- 그럼 뭘 완성했는데?"
"하핫- 들어보십시오. 영주님. 제가 열기를 머금고 날아가는 폭발 마법을 만들어 냈습니다."
폭발 마법은 기본적으로 화염계 마법이다. 열기를 머금고 있는 게 당연한 마법이었다.
"뭔 말이야?"
"파이프를 녹이지 않고 나가는 폭발 마법입니다. 폭발이 목표점에 도달해서야 열기가 퍼지는 폭발 마법입니다.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사용해도 총열이 망가지지 않는 마법이란 말이죠. 하핫-"
"오-"
이건 제법 괜찮은 성과였다. 지금까지는 영지군이 주기적으로 총열을 교체해왔는데 이 마법진을 사용하면 총열을 교체할 필요가 없는 반영구적인 총기의 완성이나 마찬가지였다.
살짝 감탄하는 내 모습에 알비레오는 멈추지 않고 자신의 성과를 자랑했다.
"그래서 폭발의 규모를 조절하지 않아도 됩니다. 4등급 마나석이 아니라 3등급이나 2등급 마나석을 이용해 대규모 폭발을 사용해도 파이프가 망가지지 않습니다."
"오!"
폭발의 규모를 키울 수 있다는 말은 괜찮은 성과가 아니라 대단한 성과였다.
개인화기를 넘어 중화기나 화포를 만들 수도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잘했어. 알비레오. 역시 내가 믿고 있는 아티스트 다운 결과물이야."
"하하핫! 이게 다 영주님께서 지원을 아끼지 않아 주신 덕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게 다 영주님께서 혜안을 가지고 마법사들을 지원해주신 덕분입니다.
영주님의 천재적인 아이디어가 아니었다면 마법사들도 이런 대단한 성과는···"
"볼튼경. 거기까지."
알비레오의 말에 급발진하는 볼튼을 제지한 나는 알비레오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빨리 A3 기관총을 완성하도록!"
"······"
"왜?"
"상은 없습니까?"
"칭찬해줬잖아? 왜 더 뭐가 필요해?"
"······에일렌은 아이스박스를 완성했다고 보너스도 받고 그랬다는데···"
시무룩한 얼굴의 알비레오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오케이. 알비레오에게 보너스 100셀링!"
"감사합니다! 영주님. 하핫-"
"A3 기관총을 완성하면 오늘 보여준 마법진으로 새로운 무기를 만들 테니까 미리미리 준비해 놔."
"걱정마십시오. 영주님.
아티스트 알비레오. 영주님을 위해 다 준비해 놓겠습니다. 하핫-"
이제 자신을 마법사가 아닌 아티스트라고 말하는 알비레오에 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내 저었다.
A2 소총으로 무장한 60명의 영지군이 영주성 앞에 도열 하고 있었다.
영지군의 맨 앞에 서 있던 헤돈은 내가 모습을 보이자 도열한 영지군을 향해 소리쳤다.
"영주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수백 번 연습이라도 했는지 각이 딱 맞는 경례에 나는 흡족한 미소를 보내며 손을 들었다.
'이렇게 경례를 받으니까 진짜 군대 같은데.'
물론 영지군이 그동안은 군대가 아니었다는 게 아니다. 개인화기를 무장하고 제식을 하는 것을 보니 내가 겪었던 대한민국의 군대와 비슷해졌기에 확- 와닿았을 뿐이다.
"바로!"
내 신호에 헤돈이 명령하자 영지군 60명이 바로 서며 내 말을 기다렸다.
"친애하는 영지군의 모습에 본 영주의 가슴이 웅장해지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그동안 바깥을 탐색하며 많은 성과를 거두어 왔다. 고블린과 오크등 몬스터의 군락을 파괴했고, 공포의 존재였던 오우거를 사살했으며, 그 누구도 가 보지 못한 먼 곳까지 발자국을 찍었다."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영지군 병사들이 감격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본 영주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더 큰 성과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
이번 원정은 다시 없을 도전이며, 그 영광은 오직 아렌달의 전사들인 너희들의 몫이다.
가자! 전사들이여. 바깥의 지나 바다가 보이는 곳까지.
그리고 아렌달에 바다를 가져오도록 해라!"
뭔가 흥얼거리며 이삭을 베고 있는 영지민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벌써 추수가 끝나가는 계절이었다.
"에일렌. 어디가니?"
"안녕하세요. 영주님. 이번 물 정화 담당이 저라서 상수원에 가고 있어요."
"그래. 수고하렴."
짧은 다리로 열심히 뛰어가는 에일렌의 모습에 볼튼이 말했다.
"마법사들도 열심히 사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은 매일 골방에 처박혀서 이상한 사람들인 줄로만 알았는데, 자하님이나 에일렌을 보면 영지를 위해 참 열심히 하지 않습니까?"
"어쩌면 아렌달에 있기 때문에 그럴수도 있지."
"하핫- 그렇군요."
아렌달에서는 마법사도 다른 영지민들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마법사라는 특성 때문에 연구소에 틀어 박혀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들도 저기 밀밭에서 일하는 영지민들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위치에서 일하는 것이다.
알비레오나 달리아가 가끔 기행을 벌이기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이제 헤돈이 돌아올 때가 되지 않았나? 처음 기대했던 대로 아렌달이 구스강의 중간에 위치했다면 바다를 확인하고 회군을 시작했을 텐데?"
"겨울이 되기 전에는 돌아올 겁니다."
"헤돈이 좋은 결과를 가지고 왔으면 좋겠군."
"헤돈경이라면 분명 영주님이 바라시는 결과를 가지고 올 겁니다."
볼튼이나 다른 친위대들의 표정을 보면 헤돈에 대한 신뢰가 단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어. 저렇게 웃는 얼굴로 말이야."
웃는 얼굴로 아렌달에 돌아오고 있는 사람은 왕도에 갔었던 랄프였다.
"영주님. 리비아 상단과 울드 상단에서 아렌달에 지점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역시 랄프야. 내 기대대로 상단 유치에 성공했군."
리비아 상단이야 원래부터 랄프가 몸담고 있던 상단이라 기대했던 상단이었지만, 울드 상단까지 잡아 온 것은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울드 상단은 그동안 아렌달과 거래를 하던 상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울드 상단은 어떤 상단이야?"
"왕도보다는 국경 영지에서 더 활발히 활동하는 상단입니다.
제가 알던 울드 상단은 왕도에서 물건을 가져다가 지방 영지에서 차익을 얻거나 타국에서 들어오는 물건을 왕도에 가져와 파는 상단이었습니다."
"왕도의 상단이 아닌데 아렌달에 지점을 내겠다고 한 거야?"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왕도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아렌달 상품에 관심을 가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