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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23화 (23/169)

23화

"···벽을 세워라. 큐브."

마법을 사용한 달리아의 무릎이 꺾였다. 대규모 공간 마법이라 마나의 소모가 커서 똑바로 서 있기도 힘든 것이다.

"오랜 시간 붙잡지는 못해요."

"알았어."

달리아의 말에 서둘러 달리아가 마법을 사용한 장소로 달려갔다.

그리고 마법의 벽에 갇혀있는 4명의 용병이 보였다.

우리가 나타나자 용병들도 각자 무기를 꺼내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중에 한 명, 용병 대장 바쿠가 탈취했던 A2소총을 들고 있었다.

바쿠는 긴장한 표정 속에서도 자신감을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다가가는 나와 영지군에 소리쳤다.

"더 이상 다가오면 마법을 쓰겠다! 마법의 위력은 영주님도 잘 알겠지. 누구 대가리가 날아가고 싶지 않다면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

"지금 그걸 위협이라고 하는 거야?"

"위협이 아니다! 다가오면 진짜로 마법을 쏘겠다!"

총을 들고 협박하는 바쿠였지만,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같잖은 위협에 불과했다.

그래도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알고 싶어 총구를 겨누고 있는 바쿠에게 말했다.

"혹시 누구의 사주를 받은 거냐?"

"······"

바쿠는 침묵했지만,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이런 짓을 벌인것은 아닌것 같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왕도에서 나에게 관심 가지고 있는 귀족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바쿠를 고용할 것을 예상하고 아렌달로 잠입시킬만한 위인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다면 이렇게 빨리, 그리고 시끄럽게 사건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 그냥 총이 가지고 싶었던 건가? 그 총이 있으면 용병으로 돌아가 뭐라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나 보지?"

"······"

단순히 무기에 대한 욕심으로 이런 짓을 벌였다는 게 우스웠지만, 바쿠의 당황하는 표정을 보면 이게 정답인 것 같았다.

"하아- 멍청한 새끼."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감히 용병 따위가 귀족에게, 그것도 영지를 가지고 있는 고위 귀족에게 시비를 건 것이다. 그것도 겨우 무기 하나 때문.

나는 긴장하고 있는 바쿠의 모습에 실소를 내뱉으며 말했다.

"큭- 엔나 영지 쪽으로 도망치던 걸 보니 나르비크 왕국의 국경을 넘어서 도망칠 생각이었나 본데 그게 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해?"

"더 다가오면 정말 마법을 쏘겠다!"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구나. 설마 내가 그런 위험한 무기를 만들면서 아무런 장치도 안 했을 것 같아?"

"뭐?"

"자칫하면 내게 위협이 될 수도 있는 무기를 내가 함부로 영지군들에게 주었을까? 충성을 맹세한 기사들도 아니고 병사들에게?

내가 X신인 줄 알아?"

그제 서야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달았는지 용병들이 심하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대, 대장. 어떻게 하죠?"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오면 그 대갈통을 날려주겠어."

바쿠의 목소리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살짝 손을 들었다. 자신의 목소리에 내가 걸음을 멈춘 줄 알았는지 바쿠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그려지는 순간.

-펑

"끄악!"

바쿠가 들고 있던 A2소총이 폭발을 일으켰다. 내 신호에 준비하고 있던 자하가 소총에 장착되어있던 보안 장치 터트린 것이다.

"내, 내팔이!"

폭발로 인해 양손이 피로 물든 바쿠의 절규에 나는 들고 있던 손을 내렸다.

그와 함께 대기하고 있던 헤돈과 영지군이 용병들을 포박했다.

"배, 백작님! 사, 살려주십시오!"

"저희는 그냥 바쿠 대장이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입니다!"

"칫-"

살려달라고 비는 용병의 모습에 나는 혀를 찼다.

아니- 용병들 때문이 아니었다. 다가오는 뿌연 먼지구름 때문에 혀를 찬 것이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렌달 백작님."

엔나 남작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일도 아닙니다. 엔나 남작.

영지에 사소한 문제가 생겨서 그런 겁니다."

"사소한 문제 때문에 영지군을 전부 끌고 엔나 영지의 경계를 넘으신 겁니까?"

"엔나 영지의 경계라니요? 아직 경계를 넘지는 않았습니다만?"

어떻게 해서는 꼬투리를 잡으려는 엔나 남작에 나는 헤돈에게 영지군을 물리라는 신호를 주었다.

하지만 엔나 남작은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 끌고 온 기사들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외부의 병력이 엔나 영지의 경계를 넘었을 때 어떻게 했지?"

"항상 대가를 치렀습니다."

자신만만한 기사의 대답에 엔나 남작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명백한 엔나 남작의 도발이었다. 분명히 말하자면 경계에 걸쳐있기는 하지만 아렌달 영지군이 경계를 넘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확 날려버려?'

대충 보니까 엔나 남작이 끌고 온 기사나 지금 우리 영지군이나 숫자는 비슷했다.

아직 영지군 전원이 무장을 마친 상태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숫자라면 한번 붙어볼 만한 규모였다.

하지만, 그건 생각으로나 할 수 있는 단순한 비교일 뿐이다. 엔나 영지의 힘은 지금 여기있는 게 전부가 아니었으니까.

지금 끌고 오지 않은 영지군이나 남작과 관계를 맺고 있는 귀족들의 힘도 생각해야 한다. 섣불리 엔나 남작과 힘 싸움을 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리고 겨우 이런 상황에서 아렌달의 힘을 외부에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사소한 분쟁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렌달은 이만 물러날 테니···"

"사소한 분쟁이라니요? 군사의 움직임에 사소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가뜩이나 바쿠 때문에 기분이 잡쳐있는 상태에서 계속 내 속을 긁으려는 엔나 남작에 순간 이성이 날아갈 뻔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

"아렌달 영지군이 엔나 영지를 넘어왔으니, 우리 엔나의 병력도 아렌달 영지를 넘어갈 수 있게 해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결국, 또 이 이야기였다. 자신의 기사들이 아렌달을 마음대로 지나다닐 수 있게 하려는 수작에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하- 지금 뭐 하자는···

저건 또 뭐야?“

내 말에 엔나 남작의 시선이 돌아갔다. 엔나 남작이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뿌연 먼지구름이 보였기 때문이다.

-두둥 두둥

북소리와 함께 새로운 병력이 나타났다. 깔끔하게 정비된 군대의 무장 상태를 보면 제법 무장에 돈을 투자한 느낌이 드는 군사들이었다.

그리고 군사들을 이끌고 온 기사들 사이에서 한 대의 마차가 보였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모양의 마차였다.

기사가 열어주는 마차에서 살집이 든든하게 오른 얼굴이 삐쭉 튀어나왔다.

"스톨 백작님."

"스톨 백작께서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갑자기 등장한 스톨 백작의 모습에 나도 엔나 남작도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가 스톨 영지의 경계도 아닌데 기사들뿐 아니라 영지군까지 끌고 온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는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아렌달과 엔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서 말이네. 허허허-"

걱정된다고 영지군을 움직이는 게 도통 이해가 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나는 오히려 이 상황에 머리가 식는 것을 느꼈다.

'스톨 백작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엔나 남작과 한판 붙을 뻔했다.

차라리 이 상황이 나에게는 나쁠 게 없어.'

엔나 남작은 다 잡은 기회가 틀어지는 것이 신경 쓰이는지 스톨 백작에게 말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군사를 끌고 오신 것은 조금 무례한 일 아닙니까?"

확실한 명분도 없이 두 영지의 경계를 타고 군사를 움직였으니 스톨 백작은 무례를 범한 것이 맞았다.

꼬투리를 잡고자 하면 언제든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스톨 백작의 표정에서는 걱정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무례라니? 내 딸에게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 무슨 무례라는 건가?"

"네? 딸이라니요?"

"지금 내 딸이 아렌달에 있는데 아렌달과 엔나사이에 전투라도 벌어졌다가 내 딸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한단 말인가?"

스톨 백작의 말에 엔나 남작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와 다르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샤를로트를 핑계로 대는 건가?'

분명 억지였지만, 샤를로트를 아렌달로 보내고 군사를 끌고 온 것이면 충분히 명분을 만들 수 있었다.

"아렌달 백작. 샤를로트가 영지로 갔는데 혹시 몰랐나?"

태연하게 샤를로트의 이야기를 꺼내는 스톨 백작에 나는 엔나 남작을 살폈다.

'여기서 내가 스톨 백작의 말을 받으면 명분이 확실해진다.

물론 스톨 백작이 원하는 대로 나도 샤를로트와 엮이게 되겠지만, 엔나 남작에게 군사적으로 빌미를 주는 것보다는 이쪽이 낫겠지.'

"아-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잠시 영지에 사소한 문제가 생겨서 급하게 이쪽으로 오느라 만나지는 못했지만요."

"그렇군. 샤를로트가 아렌달로 갈 때마다 얼마나 기쁜 얼굴을 하고 있는지 보는 내가 다 기분이 좋아진다네. 허허허-"

스톨 백작은 그렇게 말하면 엔나 남작을 살짝 바라봤다. 점점 굳어가는 엔나 남작의 얼굴에 스톨 백작이 말했다.

"'사소한 문제'를 해결한 것이라면 더 이상 이렇게 있을 필요가 있나? 이만 군을 물려도 될 것 같은데."

스톨백작의 말에 내가 헤돈에게 눈치를 주자, 헤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르게 영지군을 뒤로 물렸다.

그 모습에 엔나 남작이 살짝 표정을 일그러트리고는 말했다.

"오늘은 저도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군요."

"허허허-"

"스톨 백작님. 나중에 따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엔나 남작의 방문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네."

"그럼."

스톨 백작에게 인사를 남긴 엔나 남작이 기사들을 이끌고 돌아가는 모습에 나는 스톨 백작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오늘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사이에 도움은 무슨. 감사는 이름을 빌려준 샤를로트에게 하면 되지 않겠나. 허허허-"

"그, 그렇군요."

"진짜 와 있네."

"아버지가 가라고 해서 온 거예요."

"알아."

영주성에 돌아와 보니 정말 샤를로트가 있었다.

"이제 다 해결됐으니까 돌아가도 될 거야."

"바로요?"

"아니면 아이스크림만 먹고 돌아가던지."

내 말에 샤를로트가 뾰루퉁한 얼굴을 하고는 냉장고를 확인했다.

"그럼 이것만 먹고 돌아갈게요.

이건 새로운 맛인가? 제가 올 때마다 새로운 아이스크림이네요?

저 때문에 이렇게까지 노력하실 필요는 없는데···"

"뭐?"

"저는 처음 먹었던 연유 아이스크림으로도 괜찮으니까 저한테 잘 보이려고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뭐라는 거야?"

내 말에도 태연하게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샤를로트를 보며 생각했다.

'스톨 백작을 그동안 너무 무시하고 있었다.'

오늘 스톨 백작은 정말 필요한 타이밍에 나타나 주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군사까지 이끌고 말이다.

평소에 아렌달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스톨 백작이 나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다곤 해도 이렇게까지 행동하는 것은 순수한 호의로 보기에는 어려웠다.

'스톨 백작이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건가?'

하지만 지금까지 스톨 백작을 살펴봤을 때 뭔가 음흉한 생각을 품을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아니야. 스톨백작은 그렇게까지 생각이 깊은 사람이 아니야.'

그래서 나는 더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스톨 영지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제 불찰입니다."

헤돈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용병들도 자신들과 같이 영지를 위하고 있다고 생각했겠지. 지금까지 없었던 일인만큼 확실하게 처벌만 하면 된다."

"처벌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태형 10대. 그리고 영지군에 전해. 앞으로 자신의 총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태형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그 책임을 물어서 군에서 쫓겨남은 물론이며, 범죄자 신분으로 노역에 투입될 거라고."

"알겠습니다."

내 지시에 헤돈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태형 역시 만만치 않은 처벌이었지만, 그 정도로 끝났다는 사실에 군사 책임자로서 안심했을 것이다.

"그럼 용병 바쿠의 처벌 이야기도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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