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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22화 (22/169)

22화

이주민 마을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마치 처음 공사 현장에 들어오는 사람들처럼 어색해하면서도 묘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그 안에서 긴장감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벼워 보이는 갑옷과 허리춤에 하나씩 차고 있는 무기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연신 입술을 움직이고 있는 외팔의 기란이 보였다.

"저들이 용병들인가 보네."

"그렇습니다. 용병 대장 바쿠가 이끄는 용병대로 기란이 팔을 잃기 전까지 있었던 용병대라고 합니다. 인원은 기란을 포함해 총 일곱 명으로 몬스터를 전문적으로 사냥하던 용병대라고 합니다."

나인의 설명에 용병대를 자세히 관찰했다.

확실히 몬스터를 전문으로 사냥하는 용병대라 그런지 도시나 전장에서 활동하는 용병들보다 자유로움이 많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무기의 형태도 일정하지 않고 제각각인 것이 정규군과는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용병 대장 바쿠는 바로 바깥으로 나가서 몬스터를 사냥하기를 희망했습니다."

"도감부터 만들어야지?"

"저도 그렇게 말했는데 굳이 용병대 전원이 그럴 필요가 있냐며 기란과 막내 두 명만 도감 작업을 하고, 나머지 인원들은 바로 몬스터 사냥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음- 틀린 말은 아니네."

어차피 용병들이 직접 도감을 쓸 것도 아니었다.

용병들이 모두 글자를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영지군과 함께 실전에서 지식을 전달해 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바쿠 대장에게 그렇게 해도 좋다고 전달 해 줘. 글보다 실전에서 더 확실하게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으니까.

헤돈에게 말해서 용병들을 바로 바깥 탐사에 추가시키도록 해."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아! 혹시 모르니까 용병들에게 너무 강압적으로 하지는 말라고도 해 줘. 잠깐 봤는데도 저런 분위기라면 영지군과 바로 섞이기는 힘들어 보이네."

"알겠습니다."

나인에게 지시를 내리는 내 눈에 기란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는 바로 옆의 남자에게 무언가 말을 하자 남자 역시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저 사람이 용병대장 바쿠인가?'

딱 보기에도 거칠어 보이는 각진 얼굴이 내가 상상하던 판타지 용병에 정말 어울리는 외모였다.

인사를 하며 몇 개나 되는 자신의 무기를 살짝 들어 보이는 모습은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 무기들만큼이나 실력으로도 도움이 되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럼 이주민들은 잘 적응하고 있는 거지?"

"농사를 지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아직 어려워했지만 그래도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굶주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아렌달로 오기를 잘했다는 이주민이 많습니다."

"좋아. 큰 문제는 없어 보이네."

리오의 보고에 나는 조금 안심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이주민이 왔다고 해도 열 명 단위로 상단을 따라 들어온 소수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번에 1천 명. 기존 영지민의 5분의 2에 해당하는 다수의 이주민이 들어온 것이다.

영지에 적응하기까지 문제가 없을 수가 없는 인원이었다. 그런데 큰 문제 없이 잘 적응하고 있다는 말은 안심이 되는 말이었다.

"그래도 한동안은 잘 관리를 해야 할 거야. 영지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긴장이 풀리면서 사고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주의하겠습니다."

리오의 대답하며 물러나자 이번에는 발더가 말했다.

"영주님. 마법사님들을 조금 더 지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본격적으로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공사의 속도를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지금의 속도로는 바깥으로 나가기 전에 기존의 공사들을 마무리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공사가 몇 개였지?"

"자잘한 보수 공사를 제외하고, 신규 대장간과 제분소, 식량창고 등 새로운 건설 공사와 바깥으로 나가기 위한 도로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꽤 많네?"

"이주민 중에 공사 현장에 투입할 만한 인원들을 추리면 어느 정도는 감당이 되는 공사들입니다.

다만 그래도 시간이 지체되는 건 어쩔 수 없어서 마법사님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왕도에서 이주민을 데려오겠다고 동시에 많은 공사를 진행 시킨 결과였다.

그리고 공사라는 게 한 번에 뚝딱뚝딱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책임자인 발더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럴 때 중장비 몇 대만 지원을 받아도 공사가 얼마나 편해지는지 아는 만큼 나는 발더의 요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자하. 지금 진행하는 연구가 조금 더뎌지더라고 발더의 요청을 들어줘야겠다."

"괜찮겠습니까?"

"일단 가장 중요한 개인 화기는 완성했으니까 괜찮겠지."

내 지시에 자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발더의 얼굴이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알비레오는 무조건 현장 투입인 거 알지? 마나가 다 털릴 때까지 마음대로 데려다가 쓰도록 해."

"그거 알비레오는 좋다고 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그럼 다음은 영지군 쪽인가?

헤돈경. 바깥 탐사는 잘 되고 있지?"

내 물음에 헤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구스강을 따라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바쿠 대장과 용병들이 몬스터에 대한 지식을 전수해준 덕분인지 새로운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도 한결 편해졌습니다."

"용병들이 도움이 된다니 다행이네. A2 소총의 보급은?"

"현재 두 개 분대가 완전 무장을 완료했습니다. 마무로부터 며칠 내로 나머지 두 개 분대의 물량도 받기로 해서 바깥 탐사에 더 속도를 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지군의 바깥 탐사까지 잘 진행되고 있다는 말에 모든 게 착착 들어맞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영주님. 엔나 영지에서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또?"

"네. 아무래도 우리 영지 쪽으로 기사들이 자주 모습을 보이는 것이 엔나 남작이 뭔가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생각이라고 해봐야 또 바깥으로 자기네 기사들을 보내겠다는 생각이겠지."

엔나 남작이 은연중에 기사들을 계속 늘리고 있다는 보고는 이미 수차례 받았다. 자치권이 없는 엔나 영지에서 그만큼의 기사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명분이 필요했는데, 가장 쉽고 좋은 명분 만들기가 바깥의 몬스터들이다.

"지금 엔나의 기사들이 몇 명이나 된다고 했지?"

"거의 4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40명? 우리 영지군의 숫자가 40인데 기사만 40명이라고? 진짜 기사단에 미치긴 했나 보네.

엔나 영지는 영지군도 꽤 되지 않나?"

"200명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인구 5천밖에 안되는 영지에 영지군이 200명에 기사가 40명···

엔나 남작은 어디 누구랑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엔나 영지의 지나친 군사력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엔나 영지는 군사력이 강한 만큼 치안 상태도 좋기는 합니다."

"치안이랄 게 뭐가 있어? 영지가 다른 나라랑 붙어있기를 해? 아니면 몬스터가 많기를 해?"

"큼- 세금을 많이 걷어도 영지민들이 불만의 소리를 내지 못하지 않습니까."

"아-"

리오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에 세금을 내지 않는 아렌달보다 엔나 영지쪽이 세금도 훨씬 쎌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영지가 걷어 들인 세금을 거의 영지 발전에 투자하는 나와는 다르게, 엔나 남작은 투자보다는 군사력을 유지하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강해진 군사력만큼 세금을 많이 걷고, 많이 걷은 세금으로 더 강한 군사력을 유지한다.

'이거 완전 선군정치 아니야?'

어디 북쪽에 붙어있던 동네의 사상과 같은 엔나 영지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혹시라도 영지민들이 야반도주를 해서 아렌달로 넘어오지 않게 엔나 영지 쪽으로 감시를 더 철저히 해야겠는데?

괜히 그러다가 엔나 남작에게 명분을 줘서 귀찮게 되지 않도록 말이야."

"더 철저하게 감시하겠습니다."

"냉장고 개량은 다 끝났니?"

"헉! 언제 오셨어요?"

여전히 부스스한 머리칼과 맨들거리는 에일렌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야근에 쩌들어 살던 나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아니- 매일 연구에 밤을 새우니까 대학원생이랑 같은 건가?'

잠시 헛생각을 하는 내게 에일렌이 말했다.

"개량까지는 아니고 온도를 더 낮추는 것에는 성공했어요.

그런데 아직 마나석의 크기를 줄이는 것과 기술 보호를 위한 보안장치는 아직···"

"결국, 아무런 진척도 없다는 말이구나."

"···죄송합니다."

시무룩해진 에일렌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현대지식으로 이런 걸 만들라고 지시만 내리는 나보다는 에일렌이나 다른 마법사들이 더 고생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완전 클라이언트와 엔지니어의 관계로군.'

"달리아는 어디 갔어?"

"좌표 따야 한다고 아침에 끌려나가셨어요."

공간 마법 전문가인 달리아는 한창 아렌달의 좌표를 따러 다니고 있었다.

물론 자의가 아니라 내 명령으로 지도를 제작하는 사람들에게 끌려다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재미있을 것 같다고 열심히 다니더니 요즘에는 지겨워졌는지 가끔 도망을 친다고 자하에게 보고가 올라오고 있었다.

"다른 마법사들은? 마법 연구소에 아무도 없던데."

"다들 공사장에 끌려가지 않았을까요?"

그 말에 얼마 전 공사 시간 단축을 위해 마법사들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었던 발더의 보고가 떠올랐다.

"근데 넌 왜 자꾸 끌려갔다고 하니?"

"앗! 죄송합니다."

또 다시 사과하는 에일렌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마법 연구소를 나오는 내 눈에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영지군이 보였다.

"무슨 일이지?"

"바깥 탐사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무슨 일이냐!"

"허억- 여, 영주님. 허억- 큰일입니다."

"일단 숨부터 고르고 말해."

"허억- 감사합니다."

숨을 헐떡이는 병사에게 침착하라고 안정을 시키며 말했다.

"큰일이라니? 바깥 탐사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아니면 몬스터가 영지로 침입이라도 했나?"

"그, 그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 사안이 아니라면 이렇게 급하게 뛰어올 상황이 있나?'

딱히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병사의 말에 나는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용병이 총을 가지고 도망쳤습니다."

"···X발!"

"헤돈은 어디 있어?"

"지금 용병을 추적 중입니다."

많은 이주민을 받아들이면서 사건이 생길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하지만, 용병이 총을 탈취하고 도주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감히 용병 따위가 영주의 군사력에 시비를 걸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영주님. 부르신다기에 급히 돌아왔습니다."

"달리아는?"

"여기 왔어요."

나는 내 호출에 급히 달려온 자하와 달리아에게 말했다.

"영지군과 탐사를 나간 용병이 총을 훔쳐서 도망쳤다. 헤돈이 뒤를 쫓고 있는데 아직 붙잡지 못한 것 같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바로 추적하겠습니다."

"다른 영지로 넘어가기 전에 무조건 잡아야 해."

"네."

말을 달리는 내 눈에 헤돈과 영지군의 모습이 보였다.

"헤돈!"

"죄송합니다. 영주님."

"책임은 나중에 묻겠다. 용병을 잡는 게 먼저야."

"예!"

자하의 마법으로 A2소총 하나가 엔나 영지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필이면 엔나 영지 쪽으로 도망치고 있었기에 더 문제였다. 자칫하면 엔나 남작에게 빌미를 제공해 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조건 영지를 벗어나기 전에 잡아야 해."

"알겠습니다."

그 말에 마법을 쓰던 달리아가 말했다.

"영주님. 꼬리를 잡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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