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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21화 (21/169)

21화

"리오. 그동안 영지에는 별일 없었지?"

"바깥에서 고블린 무리가 모습을 보였습니다만, 헤돈경과 영지군이 모두 처리했다고 합니다. 그것 외에는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엔나 남작은? 그쪽은 가만히 있었어?"

"네. 일단은 조용합니다."

근래에 엔나 영지가 시끄럽게 구는 일이 많아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내가 왕도에 가 있는 동안은 가만히 있었다.

"왕도에 가셨던 일은 잘됐습니까?"

"이주민은 문제없이 올 거야. 덴프린스 공작에게 조금 빚을 지기는 했지만, 공작이 요구했던 게 생각보다 작은 일이라 걱정할 필요도 없지."

덴프린스 공작에게는 지금까지 영지군이 잡아 왔던 몬스터의 시체를 대충 던져줘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마법사들은?"

"어제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마법사를 다섯 명이나 영입하신 겁니까?"

"마탑에 마나석을 조금 기부하기로 했지. 리오에게는 미안하지만, 한동안은 돈이 쪼들릴 거야. 조금 많이 주기로 했거든."

"마나석이야 또 광산에서 파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보다 마법사가 한 번에 많이 영입된 게 더 걱정입니다."

"달리아를 빼면 다들 원소 마법밖에 모르는 어린애들이라 녹봉을 많이 줄 필요는 없을 텐데?"

"그게 아니라··· 마법사들은 자꾸 뭔가를 하지 않습니까? 영주님이 안 계시는 동안 알비레오가 날려 먹은 게 한둘이 아니라서···"

"또 뭘 해 먹었어?"

이전에도 알비레오가 폭주를 하면 날려 먹은 게 조금 있었다. 그래도 큰 사고로 이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간단한 사고가 다였기에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주민들이 살 건물 몇 채를 날려 먹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손해 본 목재가 조금 됩니다. 그리고 도로 공사를 도와준다고 가서 애먼 곳에 폭발 마법을 써서 지반을 다시 메우는데 에일렌이 고생을 조금 했습니다."

"다친 사람은 없지?"

"네."

다친 사람이 없다면 괜찮았다. 사고를 친 알비레오에게는 그에 합당한 처벌을 주면 되는 것이다.

"알비레오는 날려 먹은 자원만큼 감봉."

"이미 조치했습니다."

"그리고 황무지 개간 작업에 투입될 마법사는 알비레오가 고정이야."

"그건 벌이 아니라 상 아닙니까? 그 녀석 한계까지 마법을 쓸 수 있으면 좋아하지 않습니까?"

리오의 말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바깥을 개발해도 된다는 국왕의 허락도 받았으니 본격적으로 황무지 개발에 열을 올려도 괜찮았다. 알비레오가 제어를 포기하며 폭발 마법을 쓰면 황무지 개발에 속도를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더 보고할 사안은 없지? 그럼 나머지는 내일 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내가 없는 동안 있었던 일들에 보고를 마친 리오는 그대로 내 집무실을 나가려 했다가 돌아섰다.

"아! 영주님. 손님이 찾아오시기로 했습니다."

내가 영지를 비우고 있는 동안은 영지에 손님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영주가 영지를 비웠는데 함부로 영지에 들어왔다가는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돌아오는 날에 맞춰서 손님이 온다니,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가 찾아오는 것이 분명했다.

'리오가 손님이라고 부를 정도면 귀족일 텐데? 스톨 백작은 아직 왕도에 있을 거고. 스톨 백작 말고 아렌달을 찾아올 만한 사람이라면?

엔나 남작일 확률이 높네. 국왕에게 바깥의 개발을 허락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오는 것일 수도 있어.'

귀족들과 교류가 거의 없었기에 예상할 수 있는 손님은 그 정도가 고작이었다.

"돌아오자마자 손님맞이인가? 그래서 누가 오는 거지?"

내 예상은 보기 좋게 틀려버렸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해요. 아렌달 백작님."

"나는 환영해 준 적이 없는데?"

내 대답에 샤를로트는 쌩긋 웃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그렇게 부끄러워하시지 않으셔도 괜찮답니다."

그리고는 황당해하는 나를 쓰윽 지나쳤다.

"점점 더 뻔뻔해지는 것 같은데?"

"스톨 백작님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 아버지에 그 딸인 거지요."

"그 말 샤를로트가 들으면 난리 날걸?"

나와 볼튼의 대화에 역시나 그 아버지의 그 딸인지 샤를로트가 고개를 홱 돌렸다. 스톨 백작만큼이나 귀가 좋은 것이 분명했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노려보는 샤를로트에 볼튼과 나는 시선을 돌리고 딴청을 피웠다. 아무 말도 안 했다는 듯이 말이다.

결국, 샤를로트는 딴청을 피우는 나의 모습에 '칫-'하고 혀를 차며 영주성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근데 왜 온 거야?"

"으으~ 바로 이거야!"

입에 스푼을 문 채로 소리치는 샤를로트가 나는 어이가 없었다.

"겨우 그것 때문에 내가 영지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는 거야?"

"네. 그런데요?"

"그냥 스톨 영지에서 만들어 먹어도 되잖아? 거기도 요리사는 있을 거 아니야?"

"이런 맛이 안 나니까 그렇죠! 이 아이스크림은 아렌달에서 밖에 못 먹는다고요."

아이스크림이라고 해봐야 연유를 얼린 정도에 불과한 것이지만 샤를로트의 입맛에는 딱 맞는 듯했다.

사실 저렇게 투덜거리는 샤를로트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샤를로트가 아렌달을 찾은 이유가 바로 아이스크림 때문이란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이유였지만, 샤를로트의 표정을 보면 정말 아이스크림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 먹었으면 이제 스톨로 돌아가는 게 어때?"

"아직 다 안 먹었는데요. 그리고 이거 다 먹고 하나 더 먹을 거예요."

나는 샤를로트의 말에 일어나서 냉장고를 확인했다.

"나는 영지에 있지도 않았는데 누구 먹으라고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야!"

이 냉장고로 말하자면, 에일렌이 내 지시 감독 아래서 밤새우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완성한 이세계 최초의 냉장고다.

물론, 아직 시제품 단계라 개량이 많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아이스크림의 보관 정도는 가능했다.

그리고 스톨 백작을 따라서 아렌달에 왔던 샤를로트의 눈에 들어 지금의 상황이 된 것이다.

"근데 정말 냉장고 하나만 만들어 주면 안 돼요? 냉장고 값은 얼마든지 드릴게요."

"이거 아직 완성품 아니야. 그리고 네 돈도 아니면서 쉽게 이야기하는구나."

"제가 부탁드리면 냉장고 하나 정도는 사주실 걸요?"

샤를로트의 말대로 스톨 백작은 냉장고 하나쯤은 쉽게 사줄 것이다. 금광을 가진 영주님이니까.

하지만 나는 아직 마법 용품들을 영지 밖으로 내보낼 생각이 없었다.

완전히 개발이 끝난 후에 본격적으로 외부에 팔 생각이다. 시제품을 함부로 팔았다가 다른 영지에서 모조품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보안을 위해 마법 장치도 더 설치해야 했고, 혹여나 다른 누군가가 모방품을 만들더라도 개량한 신제품을 만들어 기술적 우위를 가져야 아렌달 제품에 확실한 프리미엄이 생기는 법이다.

"그보다 정말 냉장고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은 거지?"

"말하면 스톨 영지에 선전포고를 하신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말해요?"

처음 샤를로트가 냉장고를 발견했을 때 했던 협박이 잘 들어 먹혔는지 샤를로트가 놀란 얼굴로 대답했다.

다른 귀족이었다면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면 아렌달에 새로운 마법 용품이 있다고 하면 외부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샤를로트는 비밀을 지켜줬다. 정말 내 협박이 들어 먹힌 것인지, 따로 바라는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까지는 냉장고의 비밀을 아는 외지인은 샤를로트가 유일했다.

"나중에 완성품이 나오면 스톨 영지에 제일 먼저 팔아줄게. 그때까지는 아무도 모르게 해줘."

아이스크림을 한 개 더 꺼내 건네주며 말하자 샤를로트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아이스크림을 받았다.

"방금 한 말 진짜죠?"

"그래."

"이거 얼마에 파신다고 했죠? 1만 셀링이었나?"

샤를로트의 말에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냉장고의 존재를 들켰을 때 샤를로트에게 대충 지른 금액이 1만 셀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도 샤를로트는 1만 셀링을 낼 테니 냉장고를 팔라고 했었다.

'금광을 가지고 있다는 건 도대체 어떤 삶일까?'

"근데 왕도로 시집가는 건 포기했어? 왕도로 시집가면 스톨 백작이 아니라 네 남편이 사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 몰라요!"

도시로 시집을 가겠다고 노래할 때는 언제고, 물어보니 대뜸 성질을 부리는 샤를로트였다.

"돌아갔어?"

"네."

내 물음에 볼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아이스크림 하나 먹겠다고 여기까지 오고 그러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도저히 무슨 심리로 그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대한민국에서도 돈까스 하나 먹겠다고 제주도까지 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공돌이 특유의 효율적인 삶을 추구하는 나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다.

"혹시 샤를로트 아가씨가 아이스크림을 핑계로 아렌달을 찾아온 것은 아닐까요?"

"핑계?"

"네. 어쩌면 샤를로트 아가씨께서는 영주님께 마음이···"

"거기까지."

볼튼의 말을 자른 나는 고개를 저었다.

"샤를로트가 맨날 도시로 시집을 간다고 하는 거 못 들었어?"

"영주님께서도 슬슬 결혼을 생각하시는 게···"

"그래도 샤를로트는 아니지. 이제 겨우 17살이잖아?"

"귀족 영애로서 17살이면 결혼 적령기 아닙니까?"

생각해보니 17살이면 결코 결혼이 빠른 나이가 아니었다. 스톨 백작도, 엔나 남작도 그보다 빨리 결혼을 했다. 오히려 영주이면서 23살까지 솔로인 내가 이상한 경우였다.

'그러고 보니까 왜 나한테는 혼인에 대한 제안이 안 오는 거지?

다른 귀족 가문에서는 결혼 적령기가 되면 정략결혼을 위해 혼인 제안이 많이 온다고 하던데.

설마 나에 대해서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거나 하지는 않겠지?'

만약 그런 소문이 돈다면 내가 아주 건강하다는 것을 알려야 했다. 다른 무엇보다 그것이 시급한 사안일지도 몰랐다.

"...영주님? 영주님?"

"어? 왜?"

"말씀이 없어지셔서."

"아- 잠깐 딴생각 좀 하느라···"

나는 고개를 젓고는 볼튼에게 말했다.

"내일부터는 공사 현장 시찰을 할 거니까 기사들에게 준비해 놓으라고 해."

"내일 바로입니까?"

내 말에 볼튼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감비아의 삽질왕 오마르가 하나도 그리워지지 않을 아렌달의 삽질왕 볼튼의 미소였다.

"핫! 핫! 핫! 핫!"

일정한 호흡으로 삽질하는 기사들의 모습에 어린 마법사들이 입을 떡 벌리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자! 10분간 휴식!"

"10분간 휴식!"

내 말에 복명복창하는 기사들의 목소리에 공사에 투입된 영지민들도 삽자루를 내려놓고 한숨을 돌렸다.

"에일렌! 바람!"

그리고 어느새 이 상황에 익숙해진 에일렌이 바람을 불러와 줬다.

"으아- 시원하다!"

"역시 삽질 후의 바람은 짜릿하군요. 하핫!"

"이 맛에 삽질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사들의 목소리에 레이첼이 에일렌에게 말했다.

"혹시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거야?"

"바람을 불러와 주는 거?"

"그걸 포함해서 이런 상황. 공사장에 마법사가 끌려온다든지 기사들이 삽질을 한다든지 말이야."

"안타깝게도 이게 앞으로 너희들이 겪어야 할 일상이야."

에일렌의 말에 레이첼을 포함한 마법사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공사판의 마법사라니. 감히 상상도 못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렌달에 왔으면 아렌달의 법칙을 따라야지.

"마법사들 뭐해? 빨리 다음 라인 뒤집어 줘야지."

"네~ 지금 할게요."

내 목소리에 에일렌이 주머니에서 마나석을 꺼냈다. 그리고 동료 마법사들에게 말했다.

"자 이거 하나씩 들고 따라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우리 할당량이니까."

"할당량?"

"응. 그거 못 채우면 우리 퇴근 못 해."

에일렌의 말에 마법사들이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 모습에 나는 씨-익 웃어주었다.

"자! 빨리빨리 뒤집어라!"

"영주님! 이주민들이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도착했나 보네."

리오의 목소리에 나는 삽을 놓았다.

"발더. 혹시 기사들의 도움이 더 필요해?"

"아닙니다. 나머지는 저와 영지민들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마법사들도 퇴근시켜도 되지?"

"네. 오늘은 괜찮습니다."

발더의 대답에 마법사들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리고 기사들은 이미 삽을 놓고 노가다꾼의 얼굴에서 기사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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