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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3화 (13/169)

13화

"마법사였기 때문에 마법진을 세공하다가 마법이 발현되는 것일 수도 있잖아? 마법을 모르는 사람이 마법진을 그리면? 그래도 마법진이 발동할까?"

"그,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마법사가 아닌 사람이 마나석을 다룬다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일 것이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위험할 수도 있어."

내 말에 자크는 걱정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이를 먹고 기회를 받지 못해 빈민촌까지 왔습니다. 그런 제게 세공 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만으로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그리고 이 나이쯤 되면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더 무서운 일입니다."

자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따라 마법 연구소로 온 자크와 레이는 한 번도 보지 못했을 마법진과 마법 용품에 눈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평범한 백성들에게도 마법의 존재는 신기할 테니 당연한 모습이었다.

"마나석에 마법진을 그릴 세공사들이다."

"영주님.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자칫 마법이 발동된다면 정말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 점도 설명해주었어."

위험하다는 자하의 말에 자크가 나서서 말했다.

"마법사님. 제가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마법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부족하지 않을 만큼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나석 세공이라니.

지금까지 누구도 못 해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이지 않습니까? 오히려 저는 이런 기회를 주신 백작님과 마법사님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결국, 자크가 이미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는 사실에 자하도 더 이상 말리지는 못했다.

"이게 마나석이라는 물건이군요."

"예. 이 마법진을 마나석에 그리는 겁니다. 그리실 수 있겠습니까?"

"이 정도 크기의 보석이라면 충분합니다. 레이. 나를 도와다오."

"예. 스승님."

자크와 레이는 본격적으로 마나석 세공의 준비를 시작하는 모습에 나는 자하를 불렀다.

"자하가 곁에서 지켜봐 줘. 마나석이 이상한 징조를 보이면 바로 막아달라는 말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안전장치가 하나도 없었기에 나는 자하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고 그의 방을 나왔다. 방 밖에는 마나석 세공에 관심이 있는지 알비레오와 에일렌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주님. 저 세공사가 마나석 세공에 성공한다면 저에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저도 만들고 싶은 마법 용품이 있습니다."

"저도요. 영주님."

"어차피 마나석 세공이 가능하다는 게 확인되면 저 둘은 앞으로 마법 연구소에서 일하게 할 생각이야."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마나석 세공이 가능하다면 당연히 이곳에서 그 능력을 쓰게 만들 생각이다. 어차피 다른 세공이 필요한 곳도 없었다. 마법사들을 도와 마법 용품을 만들게 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보다 마나석의 충전은 잘 되고 있어?"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내 말에 알비레오가 나를 마나석 충전실로 안내했다. 연구소 지하에 만들어 놓은 충전실은 바닥과 천장에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고, 그 마법진 안에는 마나석이 작은 상자에 담겨 충전되고 있었다.

"1등급 마나석을 충전하는 데는 2주일가량이 필요합니다. 2등급은 일주일, 3등급은 3일, 마지막으로 4등급 마나석은 하루면 충전할 수 있습니다."

1등급 마나석은 그 크기가 어린아이 주먹만 한 마나석이었다. 마나석 광산에서도 출토되는 게 극히 적은 최상급의 마나석이었다.

1등급에서 4등급으로 떨어질수록 그 크기도 작아지고, 충전되는 용량도 적었다.

그렇다고 4등급 마나석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4등급 마나석이라고 해도 두, 세 번의 마법은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마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영주성에 옮겨 놓은 마나석은 대부분 4등급이지?"

"네. 4등급 마나석은 마법 용품을 만들기에 어려워서 영주성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리오님이 급한 상황이 오면 거래할 수 있도록 보관하고 있을 겁니다."

마법 용품을 제작하기에는 너무 작아 거의 마나 보조용으로 사용하는 4등급 마나석은 그만큼 거래하기도 쉽다. 운반하기 쉬운 점과 100셀링 정도의 싼 가격도 판매하기 쉬운 이점이었다.

아직 국왕에게 빌린 셀링이 조금 남아있었기에 일단은 재고로 영주성에 모아두고 있었지만, 나 역시 급해지면 당장 팔아버릴 생각이었다.

"하- 이게 되네."

"그, 그러게요."

내 말에 자하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자크가 마나석 세공에 성공한 것이다. 그것도 자하가 직접 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물건이 되었다. 역시 세공 장인이다.

"어때?"

"앞으로는 제가 만들지 말고 자크님에게 부탁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습니다. 왜 그동안 아무도 세공사에게 마나석 세공을 맡기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네요."

"감사합니다. 자하님."

자하의 극찬에 자크가 고개를 숙였다.

"다, 다음은 제 마나석도···"

"알비레오님! 다음은 제 차례잖아요! 새치기는 안 돼요."

"칫!"

자하의 마법 용품이 완성된 것을 보고 알비레오와 에일렌이 서로 데려가려는 모습에 자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장인으로서 자신의 기술을 인정받는 상황에 감동했을 것이다.

"앞으로 자크와 레이는 마법 연구소에서 마법사들과 함께 일하는 것으로 하지. 필요한 것이 있다면 나와 마법사들에게 요청해. 가능하다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죽을 때까지 아렌달을 위해서 일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자크는 오래 살아야겠군."

"예. 오래오래 아렌달에서 살겠습니다."

자하와 자크가 합심해서 만든 마법 용품은 지금 내 손에 와 있었다.

"볼튼경의 부탁으로 만든 물건입니다."

그 말에 볼튼을 바라보니 자신이 한 일에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얼굴이었다.

"제가 곁에 있어도 만약의 위험이 영주님에게 올 수 있기에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문제없이 마법이 발동되는 것을 제가 확인했습니다."

충성스러운 기사 볼튼이 부탁한 물건은 바로 보호 마법이 걸려있는 목걸이였다.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 마나석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나는 마법 목걸이를 차고 자하가 알려준 주문을 외웠다.

"프로텍트."

주문을 외우자 투명한 마법 보호막이 내 주위를 감싸는 게 느껴졌다.

"이거 마법의 해제는 어떻게 하지?"

"해제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한번 충전에 한번 밖에 사용할 수 없지만 정말 위기 상황에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자하의 말대로 약 30초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마법 보호막이 사라졌다. 나는 보호막이 사라지는 모습에 목걸이를 벗어서 자하에게 돌려주었다.

"한번 사용하면 재충전에 3일 정도 걸리는 건가?"

"예. 3급 마나석을 사용해 만든 거라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3일 충전해서 30초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니, 정말 효율을 따지면 좋은 물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안전을 생각해서 만든 물건에 효율을 따질 생각은 없었다. 효율을 따지다가 목숨을 잃을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자하. 이 목걸이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리지?"

"자크님의 세공 기술이 뛰어나서 하루 정도면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그렇다면 이 목걸이를 21개, 아니 여유분을 생각해서 30개 정도 만들어 줘."

"30개나요?"

"그래. 헤돈과 영지군에 하나씩 줘야겠어."

틈틈이 영지민에게 기초 군사 교육한다고 해도 정규 영지군의 숫자는 무척이나 적은 아렌달이었다. 영지군을 더 늘리기 어렵다면 그 소수의 영지군이라도 정예화시켜야 했다.

마법 용품으로 안전이 도모된 영지군이라면 충분히 정예화된 군대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와 함께 내 머릿속을 한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마법 무기로 무장한 군대라니. 첨단 장비로 무장된 기계화 보병이랑 비슷하지 않나?'

"알비레오!"

마법 연구소를 울리는 내 목소리에 알비레오가 뛰어나왔다.

"찾으셨습니까? 영주님."

"알비레오는 폭발 마법의 전문가잖아? 분명 폭발의 크기와 방향, 시간까지 조절 가능하다고 했지?"

"당연한 말씀입니다. 저 알비레오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지요."

"그럼 폭발 마법이 들어간 마법 무기도 만들 수 있나?"

"마법 용품이나 스크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폭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말하는 거야."

내 말에 알비레오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바로 총이었다.

방아쇠를 당기면 탄환이 아니라 마법이 발동되는 무기를 만들 생각이다.

알비레오에게 생각해보라고 전한 나는 곧장 대장간을 찾았다.

"스미스!"

"아이고. 영주님.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내가 만들고 싶은 물건이 있는데 한번 봐줄 수 있겠어?"

"영주님께서 만드시려는 물건이라면 당장 나서야지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스미스의 말에 나는 그려온 총의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내 기억에 박혀있는 개인화기. 바로 k2 소총이었다. 죽기 전에 이미 예비군도 끝나갈 시기였지만, 그래도 2년 가까이 만지던 물건이었던지 머릿속에는 어떤 구조였는지 상세하게 박혀있었다.

"이건··· 또 새로운 물건이로군요. 단순한 대장기술이 아니라 세밀한 금형 기술이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차피 총알이 아니라 마법을 사용할 물건이라 가스 조절기도 노리쇠도 필요 없다. 하지만 총열을 만드는 것이나 개머리판, 장전 손잡이를 만드는 것도 이세계에서는 대단한 기술이 필요할 것은 분명했다.

"가능하겠어?"

내 물음에 스미스는 고민을 해보더니 한쪽에서 모루를 두드리고 있던 마무를 불렀다.

"금형 기술이라면 저보다 마무가 더 낫습니다.

마무. 이리 와서 영주님께서 그려오신 것을 보거라."

"이게 무엇입니까?"

"영주님께서 만들어 달라고 하신 새로운 물건인데, 세밀한 금형 기술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스미스의 말에 마무는 한참이나 그림을 살피고는 말했다.

"와- 만들려면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얇은 파이프를 만들려면 얼마나 정교한 금형 기술이 필요할지 상상도 안 되는군요."

"어렵나?"

"예. 왕도의 대형 대장간들도 쉽지 않은 물건입니다."

"거푸집 같은 걸 만들어서 찍어내기에는 어렵겠지?"

"네. 이런 모양의 형틀을 만드는 기술도 없습니다."

역시 이 시대에서 총을 만들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마무의 말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영주님."

"?"

"어렵겠지만, 기회를 주시면 제가 한번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이 그림을 토대로 조금씩 변형해도 된다면 한번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마무의 도전의식에 스미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마무를 도와주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마무에게 총의 제작을 맡길게. 지원이 필요하거나 궁금한 점이 생기면 언제든지 영주성으로 찾아와.

그리고 마무에게는 앞으로 마법 연구소의 출입을 허가해주도록 하지. 마법사들과 이야기를 나눠서 마나석을 달기 최적의 포인트를 찾는 것도 마무가 주도하도록 해."

영주성과 마법 연구소의 출입을 허가한다는 말에 마무가 고개를 숙였다.

영주성도 그렇지만, 마법 연구소는 정말 선택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아렌달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였다.

그런 곳에 출입을 허가한다는 말은 마무가 아렌달에서 정말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는 소리인 것이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아렌달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아렌달의 농지가 푸르게 물들어 있었다.

"오늘도 고생이 많군. 촌장."

"아이고. 영주님. 고생이라니요. 이렇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마음인지 모르겠습니다."

촌장은 더 이상 나를 봐도 머리를 땅에 숙이지 않는다.

그런 맹목적인 복종보다는 내가 원하고, 지시하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는 아렌달의 영지민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다.

간혹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숙이는 영지민들은 전부 외부에서 이주해 온 이주민들이었다.

"새로운 이주민입니까."

"맞아. 이번에 데이지 상단을 따라서 아렌달로 온 이주민이네. 아직 새 경작지가 없으니 촌장이 공동 경작지로 안내를 해주도록. 기존의 영지민과 잘 섞일 수 있도록 신경 써 줘."

"알겠습니다."

내 지시에 촌장이 이주민들을 이끌고 경작지로 걸음을 옮겼다.

"이대로 인구가 계속 늘어나게 되면 경작지가 더 필요하겠지?"

"필요하다면 마법사들에게 지시하면 금방 새로운 경작지를 만들어줄 겁니다."

어느새 아렌달에는 100여 명의 이주민이 들어왔다. 아직 비어있는 땅도 있으니 볼튼의 말대로 알비레오와 에일렌에게 부탁하면 금방 새 경작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생각하는 인구 증가의 규모는 이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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