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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2화 (12/169)

12화

리비아 상단의 마차를 타고 일단의 사람들이 아렌달 영지로 들어왔다.

"아렌달을 또 찾아와주어 고맙네. 랄프 부 단주."

"이렇게 다시 한번 거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작님."

"그런데 저 사람들은 누구인가?"

"아렌달로 이주를 희망하던 백성들입니다. 저희 상단에 호위를 요청해서 함께 오게 되었습니다."

카론 상단과 마찬가지로 노예를 데리고 온 줄 알았는데 왕도에서 이주를 희망하던 이주민들이라고 했다.

스스로 아렌달을 찾아올 정도로 왕도 백성들에게 아렌달의 소문이 잘 퍼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리비아 상단은 항상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가져와 주는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리비아 상단과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에도 철과 숯을 가지고 온 건가?"

리비아 상단은 이번에도 철괴와 숯을, 그것도 지난번보다 거의 2배에 가까운 양을 가지고 왔다. 첫 거래 때 워낙 좋은 값을 쳐주었기 때문에 확실한 상품이라고 생각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내가 지난번과 같은 값을 제시하자 랄프는 환하게 웃으며 철괴와 숯을 전부 아렌달에 넘기기로 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잠깐만."

거래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랄프를 붙잡은 나는 리오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주었다.

아렌달에는 따로 가지고 갈 자원이 없다고 생각했던 랄프가 흥미를 보이며 말했다.

"혹시 아렌달에서 새로운 자원을 발견한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우리 행정관이 가지고 올 물건을 봐주었으면 해서 말이야."

"물건이요?"

랄프의 의문에 리오가 호미와 낫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처음 보는 물건이군요. 그리고 이건 낫인가요? 제가 알고 있는 낫보다는 조금 작군요."

"이 새로운 물건은 호미라고 부르는 농기구네. 텃밭이나 정원을 가꾸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농기구지.

그리고 이건 조선낫이라는 농기구네. 기존의 낫보다 날이 두꺼워 적은 힘을 들여도 쉽게 벨 수 있는 물건이네. 조금만 힘을 들인다면 얇은 나뭇가지도 쉽게 베어버릴 수 있지."

"호오~ 대단하군요."

아무래도 랄프는 호미보다 익숙한 모양의 낫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두 농기구의 사용법을 한 번 보는 게 어떻겠나?"

"가능하다면 꼭 한번 보고 싶군요."

확실한 거래를 위해서는 상품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게 당연했다. 나는 미리 준비한 대로 랄프를 이끌고 인근의 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모습을 보이자 기다리고 있던 촌장이 다가왔다.

"영주님. 오셨습니까?"

"여기 리비아 상단의 부단주에게 호미와 낫의 사용법을 조금 보여주었으면 하는데."

"알겠습니다."

촌장의 신호에 영지민들이 호미로 밭을 갈기 시작했다. 호미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랄프도 여성 농민이 땅을 쉽게 뒤집는 모습에 놀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자들도 저렇게 쉽게 땅을 갈아엎을 수 있다니. 성능이 굉장히 뛰어난 농기구로군요."

"저기 조선낫의 성능도 한번 보게. 날이 두껍고 모양도 안으로 많이 꺾여서 작업하는데 더욱 안전하지. 기존의 낫보다 적은 힘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네."

"호오~ 아렌달에서 신기한 물건을 만들어 냈군요."

"이게 다 지난번 랄프 부 단주가 우리에게 철과 숯을 전해준 덕분이네."

"제가 가지고 온 물건이 도움이 되었다니. 영광입니다. 백작님."

내 치하의 말에 랄프가 고개를 숙였다.

"여분의 호미와 조선낫이 있다면 저희 리비아 상단에서 전량 가지고 가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당연히 그것을 위해 랄프에게 호미와 낫을 보여준 것이다.

"그 이야기는 우리 행정관과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 좋은 거래가 되기를 바라고 있네."

농기구의 거래를 리오에게 맡긴 나는 바로 영주성으로 돌아왔다.

내가 영주성으로 돌아오는 모습에 영주성 한 켠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땅에 머리를 숙였다. 리비아 상단을 따라서 아렌달로 온 백성들이었다.

"고개를 들어도 좋아."

내 말에 이주민들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렌달에서는 일을 준다고 해서 왔습니다."

"기술이 있다면 누구나 환영을 해 준다고 해서···"

"아렌달에 온 것을 환영한다. 이주민을 이끄는 게 누구지?"

내 물음에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앞으로 나왔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작님. 저는 자크라고 합니다."

"다시 한번 환영하네. 자크. 함께 온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예. 백작님. 이주민은 저를 포함해 모두 38명입니다. 남자가 22명이고, 여자가 10명, 어린아이가 6명입니다.

대부분 빈민촌에서 하루하루 일을 받아서 먹고 살던 사람들입니다."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나?"

내 말에 자크가 뒤를 돌아보자 두 명의 남자와 한 소년이 앞으로 나왔다.

"저와 레이는 세공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건축가 발더입니다."

"마무라고 합니다. 대장간에서 일을 배웠습니다."

이주민 중에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무려 4명이나 있었다. 그리고 정말 필요했던 건축가가 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손뼉을 칠 정도였다.

"다른 기술자는 더 없나? 사소한 기술이라도 좋다."

내 말에 이주민 중 한 아이가 눈치를 보다가 손을 들었다.

"우리 엄마는 바느질을 잘해요!"

"리지!"

아이 엄마가 깜짝 놀라 아이의 손을 내리고 고개를 숙였다.

물론 이세계에서 여자라면 누구나 바느질을 할 수 있지만, 바느질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어디인가.

나는 바느질도 경지에 오르면 충분히 기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바느질도 실력에 따라서는 기술이 될 수 있다."

"가, 감사합니다."

"다른 기술이 없다고 해도 걱정하지 마라. 우리 영지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계속 넓혀가고 있으니까. 그대들이 원하는 만큼 일을 주도록 하지."

내 말에 이주민들에게서 기쁨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스미스를 알아?"

"그렇습니다. 저 역시 스미스가 아렌달 영지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이주를 결심했습니다."

자크와 스미스는 비슷한 연배의 사람답게 서로 아는 사이였다. 현역에서 은퇴했던 스미스가 아렌달에서 새로운 시작을 했다는 말이 자크를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마무도 스미스에게 기술을 배웠을 겁니다."

"잠깐이지만 스미스씨에게 대장 기술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렇군."

스미스는 진짜로 왕도의 장인 사이에서는 제법 이름을 날린 장인이었다.

"그렇다면 마무는 스미스의 대장간에서 같이 일을 하면 되겠군."

"저 역시 바라던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스미스의 대장간은 제법 크게 만들어주었으니 대장장이 하나 정도는 늘어나도 문제없을 것이다.

"발더는 리오와 함께 일을 하면 될 거야. 물론 앞으로는 건축보다는 토목 공사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거야.

물론 건물도 짓겠지만, 영지의 발전을 위한 토목 공사가 더 많을 테니까."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실 따지자면 건축과 토목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하지만 나는 발더에게 설계와 함께 현장 관리 위주로 시킬 생각이다. 이른바 현장관리자라는 거다.

각자 일터를 받은 마무와 발더는 한결 후련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자크와 레이는 그렇지 못했다.

'문제는 세공사인가?'

기술자를 환영한다고 했지만, 막상 아렌달에 필요 없는 기술을 가지고 온다면 일터를 만들어주기 어려웠다.

세공이라는 기술 특성상 아주 고급기술임에는 분명했다. 대부분 보석이나 장식품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렌달에는 보석이 없다. 보석은커녕 금속 광산 하나 없는 영지가 아니던가.

그리고 나는 장식품같이 비효율적인 물건에 관심도 없다. 영주인 내가 장식품을 안 놔두는데 영지의 누가 장식품을 만들겠는가.

"영주님. 저희는 농사를 배워도 괜찮습니다."

내 고민에 자크가 먼저 나서서 다른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고급기술임에도 활용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웠지만, 나 역시 다른 방법은 떠올리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쾅

커다란 폭음이 내 귀를 때렸다.

"뭐, 뭐야?"

"으억!"

마법 연구소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깜짝 놀라는 이주민들에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긴 나는 곧장 마법 연구소로 내려갔다. 연구소를 빠져나오는 알비레오와 에일렌을 발견한 나는 다가가 말했다.

"알비레오! 무슨 일이야!"

"영주님. 저 아닙니다!"

알비레오는 찾는 내 목소리에 알비레오가 소리쳤다.

'알비레오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폭발을?'

연구소의 한쪽 벽을 날려버린 폭발에 나는 데자뷰를 느끼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메케한 연기 속에서 기어 나오는 자하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어디서 본 장면이지 않아? 마법사 자하."

"아. 하. 하. 죄송합니다."

"내가 여관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하라고."

기어오는 자하를 일으켜 주고 에일렌에게 말했다.

"에일렌. 바람을 일으켜서 연기부터 날려줘. 그리고 날아간 벽도 메우고."

"넵."

"그럼 무슨 일인지. 설명해 보실까?"

"그렇게 된 겁니다."

"하-"

자하의 설명을 들은 나는 어이없음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충전된 마나석을 만지다가 마법이 발동됐다. 이거네?"

"마법 용품을 만들어 보려다가···"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도 이랬던 거야?"

내 물음에 자하가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자하를 책망할 생각은 없었다. 날아간 벽이야 이미 에일렌이 복구를 하고 있었고, 마법 용품을 만든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영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법 용품은 어떻게 만드는데?"

"보통 마법 용품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특정 물건에 마법을 부여하는 방법과 마나석을 가공해서 물건을 만드는 겁니다."

"그중에 후자의 경우로 폭발이 일어났겠군."

"그, 그렇습니다."

"마나석을 가공하는 건 마법으로 하는 건가?"

"굳이 마법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마나석에 마법진을 세공해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법이 아니라도 충분하죠.

다만 이게 마법사가 마법진을 만지다가는 자기도 모르게 마법이 발동되는 경우도 있어서···"

자하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자하에게 말했다.

"그 마법진 세공을 꼭 마법사가 해야 하는 건가?“

아렌달에는 보석광산이 없다. 하지만 마나석 광산은 있다.

보석을 세공하는 기술이 있다면, 마나석도 세공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글쎄요. 마법사들 말고 마나석을 다루는 사람을 본 적은 없습니다만···"

"하핫- 영주님. 마나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마나석을 다룬다는 말입니까?"

자하의 말에 알비레오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마나석을 세공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그 생각은 접어 두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자하는 내가 무리한 짓을 한다고 생각하는지 나를 말렸다.

"내가 하려는 게 아니야. 내가 무슨 기술이 있다고 마나석을 세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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