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현대인-11화 (11/169)

11화

"알비레오! 싹 다 날려버려!"

"알겠습니다!"

-쾅! 쾅! 쾅!

알비레오는 역시 폭발 마법의 전문가였다. 내 지시가 내려지자마자 사정없이 마법을 갈겨대는 알비레오의 폭발 아트에 나는 감탄을 보내며 엄지를 치켜세워주었다.

알비레오는 폭발 마법을 갈기다가 내 엄지에 마주 엄지를 세우고는 정신을 잃었다. 마나가 다 소진된 것이다.

"완전 아티스트라니까."

"이 정도면 아티스트가 아니라 그냥 미치광이 아닙니까?"

"예술은 미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법이지."

알비레오를 칭찬하는 내 모습에 리오는 말을 잊고는 고개만 젓고 있었다.

"에일렌. 이제 평평하게 다듬어 줘."

"네!"

알비레오가 무작위로 날려버린 지반을 에일렌이 대지 마법으로 고르게 만들어 주었다.

단 두 명의 마법사가 겨우 몇 분 만에 몇 시간 분의 작업을 해준 것이다.

"촌장! 어때? 이 정도면 새 경작지를 만들기에 충분하지?"

내 말에 촌장이 땅에 털썩 엎드리며 나와 두 마법사를 찬양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늘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촌장과 영지민들의 찬양을 받기 충분한 세계였다.

"영주님. 곧 리비아 상단이 영지를 방문할 시간입니다."

"아- 깜빡했네. 그럼 영주성으로 돌아갈까?"

오늘은 아렌달에 처음으로 상단이 들어오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다.

나는 볼튼에게 정신을 놓은 알비레오를 맡기고 리오와 함께 영주성으로 돌아왔다.

내가 영주성으로 돌아오고 잠시 후 리비아 상단이 영지에 들어왔다.

"영지 방문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렌달 백작님. 저는 리비아 상단의 부 단주 랄프라고 합니다."

랄프는 기사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매끈한 근육을 자랑하는 상인이었다. 하지만 빠르게 눈을 굴리며 관찰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상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렌달을 찾아 주어 고맙네."

"이익을 낼 수 있다면 어디든지 가는 것이 상인의 기본이지요. 아렌달에서도 좋은 거래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럼 리비아 상단이 가지고 온 물건을 한 번 볼까?"

리비아 상단은 주로 철이나 목재 등 원자재를 거래하는 상단이고, 이번 아렌달 행에는 철괴와 숯을 준비해 왔다고 했다.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대장장이를 영입해 대장간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것이 분명했다.

"좋은 상품을 가지고 왔군. 우리 영지에 대장간이 들어설 예정이라 마침 철과 숯이 필요하던 참이었네."

"백작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거래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 십니까?

혹시 아렌달에 광석이나 목재 자원이 있다면 그것으로 대신 받아도 괜찮습니다만···"

"아쉽게도 우리 아렌달에는 마땅한 자원이 없네. 어쩔 수 없지만 셀링으로 거래를 하고 싶은데."

그 대답에 순간적으로 랄프의 얼굴에 실망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금방 표정을 고치는 것이 수준급이었지만, 내 눈에는 그 감정이 분명히 보였다.

'아렌달에 자원이 없다는 말에 실망한 것이겠지. 먼저 들어와서 거래에 대한 우위를 가지고 싶었겠지만, 미안하게도 아렌달은 정말 거지 같은 영지라서.'

"정말 상품성이 있는 자원은 하나도 없습니까?"

랄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한번 끄덕여주었다.

마나석의 존재는 일부러 숨긴 것이다. 마법 연구소에서 충전식 마나석이 있지만 아직은 공개할 단계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아직 드레인 마법진의 효과가 어떨지 제대로 계산이 되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아렌달은 마나석을 지킬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당장 아렌달에서 마나석이 나온다는 게 알려진다면 국왕뿐 아니라 다른 영주들도 아렌달에 관심을 보일 것이다. 마나석은 그만큼 가치가 높은 자원이기 때문이다. 충전식 마나석이라고 해도 마나석은 마나석인 것이다.

당연히 아렌달의 마나석을 탐내서 검은 손길을 보내는 귀족이 있을지도 몰랐다. 겨우 기사 8명과 영지군 20명으로는 그 검은 손길을 이겨낼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아렌달에는 거래를 할 만한 자원은 없지만, 다행히 철괴를 사줄 셀링이 있다네."

"알겠습니다. 오늘 가지고 온 철괴와 숯은 모두 아렌달 영지에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철괴의 대금을 너무 많이 쳐주신 것 아닙니까?"

리오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물론 더 싸게 거래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것 역시 리비아 상단을 이용해 아렌달을 광고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었다.

아렌달 백작은 물건값을 후하게 쳐준다는 인식을 만들어 다른 상단도 아렌달을 찾아오도록 한 것이다. 아렌달의 첫 거래인 만큼 일부로 호구 잡혀준 것이다.

"앞으로 두세 상단 정도는 더 물건값을 후하게 쳐주도록 해. 그래야 아렌달을 찾아오는 상단이 늘어날 테니까."

"그러다가 남은 셀링이 다 떨어지고 말 겁니다."

"지금 얼마나 남았는데?"

"이제 겨우 1만 5천 셀링정도 밖에 없습니다."

겨우 1년 조금 지났을 뿐인데 국왕에게 빌려온 4만 셀링 중에 절반이 사라졌다. 지금까지도 쉬지 않고 이루어진 영지의 공사와 늘어난 인력에 빠지는 녹봉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영지를 위한 투자가 아니었던가. 조금도 아깝다는 마음은 없었다.

2년 후에는 국왕에게 이자까지 더해서 갚아야 하지만 쫓기는 마음은 없었다. 2년 안에 충분히 4만 셀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머리에 있는 현대 지식으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팔고, 늘어난 농지에서 나오는 식량자원을 거래하면 충분히 매울 수 있는 돈이었다. 그리고 정말 급해지면 왕궁이나 마탑에 조용하게 마나석을 팔면 되는 것이다.

"그 1만 5천 셀링도 올해 안에 다 써버려야겠군."

"영주님. 국왕 폐하께 빌려온 셀링을 갚지 못했다가는 큰일이 날 수도 있습니다."

"큰일이라고 해봐야 이자나 더 붙이겠지. 설마 방계지만 왕족인 나에게 영지를 빼앗기라도 하겠어? 인구 2천에 자원도 없는 영지를 누가 탐낸다고 말이야."

나는 머리를 젓는 리오에게 걱정하지 말라 하며 일어났다.

"어딜 가시려고 그러십니까?"

"철과 숯이 생겼으니 대장간에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달라고 해야지."

"새로운 상품이요?"

"천연자원이 없어도 팔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

좀처럼 이해가 안 된다는 리오였지만, 천연자원 하나 없이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가 내 머리에 있지 않은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정말 이런 농기구가 있는 겁니까?"

"물론. 감자나 텃밭을 일구는데 이만한 농기구는 없지."

내가 그려온 그림에 스미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농기구를 만들어 왔지만, 스미스도 이건 처음 보는 물건이었는지 그 효과를 의심하는 눈치였다.

"이건 호미라는 물건이다. 쪼그려 앉아 땅을 일구는데 최고의 구조를 가진 농기구지."

인터넷에서 한국산 호미가 서양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텃밭을 가꾸거나 정원을 가꿀 때 최고의 도구라고 말이다.

"감자밭을 일구는 영지민들에게 사용해보라고 하면 분명 효과가 나타날 거야."

"알겠습니다.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스미스는 호미의 효과를 의심하면서도 왠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지금까지 만들어 본 적 없는 새로운 물건을 만든다는 점이 그를 자극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 상단을 통해 들어온 철괴와 숯은 영주성에 있으니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가지고 가도록 하고.

그리고 영지에 필요한 물건이 있다고 생각하면 주저 말고 만들어 줘. 스미스의 기술이 우리 영지에는 꼭 필요하니 말이야."

스미스는 내 전폭적인 지원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나는 스미스와 작별을 고하고 다시 영지의 외곽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수처리장 너머에서 정찰 임무를 하고 있을 영지군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영주님. 이런 위험한 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우리 영지군이 잘하고 있나 감시하기 위해 왔지. 그보다 바깥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은 없지?"

"3일 전에 고블린 몇 마리가 보이기는 했지만, 큰 규모의 몬스터가 보이는 일은 없습니다.

봄이 되면서 황무지에도 먹을 게 많아졌을 테니 한동안 왕국 가까이 접근하는 몬스터는 거의 없을 겁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병력을 늘리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농지와 공사 현장에 인력을 투입하기에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지금은 틈틈이 일반 영지민들에게도 기초적인 군사 훈련을 시켜서 만약에 사태에 대비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래도 영지민들이 기초 군사 훈련을 착실하게 받아서 이제 자경단도 어느 정도 제구실을 하고 있었다.

리비아 상단은 내 기대대로 움직여주었다. 리비아 상단이 아렌달을 방문한 이후로 벌써 네 번째 상단이 아렌달에서 거래하기를 희망하며 영지에 들어왔다.

"이렇게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카론 상단의 디몬입니다."

"아렌달에 온 것을 환영하오. 디몬. 카론 상단은 어떤 물건을 가지고 왔지?"

내 물음에 디몬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저희 상단에서 가지고 온 것은 바로 노예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물건에 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노예라고?"

"예. 아렌달에 꼭 필요할 것으로 생각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디몬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아렌달에서 가장 급한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노예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다른 문제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영주인 나에게는 영지민이나 노예나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었다. 영지민의 삶과 죽음이 내 한마디 말에 바뀔 수 있으니까.

당장 영지민을 내가 마음먹은 대로 끌고 다니거나 부당한 일을 시켜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렌달에는 노예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백성은 없었다. 내가 이세계에서 눈을 뜬 이후도 단 한 명의 노예도 없었고, 그 이후로도 노예를 만들지 않았으니까.

"전부 15명이며, 그중 12명이 여자 노예입니다. 남자 노예도 아직 어린아이로···"

"그만. 거기까지만 듣지."

아직 내 가치관으로 노예에 대한 설명을 계속 듣기에는 거북함이 앞섰다.

"백작님. 거래는 어떻게?"

"디몬의 생각대로 아렌달에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맞아."

"감사합니다. 백작님."

내 말에 디몬의 얼굴에서 음흉한 미소가 드러났다.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찾아와준 디몬의 수고에 미안하지만, 아렌달에서는 노예를 살 생각이 없다."

"!"

"카론 상단과의 거래는 없던 것으로 하지."

"백작님! 한 번만 재고해주십시오. 분명 아렌달 영지에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싸게 거래할 테니···"

"더 이상 나는 들을 말이 없다. 볼튼경. 디몬에게 돌아가는 길을 안내해주도록."

"알겠습니다."

"백작님!"

단호한 내 목소리에 디몬이 내게 애원했지만, 마음을 바꿀 생각은 없다.

디몬 역시 더 이상 내게 매달리기에는 볼튼의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리오의 안내로 영주성을 나갔다.

노예를 사지 않은 이유는 대한민국에서의 가치관 때문만은 아니었다.

"노예를 한번 사면 계속해서 노예상이 아렌달을 찾아올 거다. 돈이 된다는 것을 알면 인신매매나 납치를 해서라도 아렌달에 팔려고 하겠지."

불행하게 생긴 노예뿐만 아니라 범죄로 만들어진 노예가 아렌달로 팔려올 수도 있었다.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범죄로 만들어진 노예까지 필요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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