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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0화 (10/169)

10화

"마법사들의 마탑처럼 기사를 양성하는 장소는 없나?"

"없습니다. 기사들은 대부분 귀족 가문 출신이거나 기사의 종자 생활을 하다가 기사가 됩니다. 간혹 용병으로 칼 밥을 먹다가 귀족님 눈에 띄어 기사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흔한 일은 아닙니다."

"볼튼은?"

"저 역시 종자 생활을 하다가 기사가 되었습니다."

기사들은 대부분 이미 왕국이나 귀족 가문이라는 소속이 있고, 소설에서처럼 방랑기사로 돌아다니는 기사는 거의 없다고 한다.

따라서 마법사처럼 외부에서 영입하기가 어렵고, 거의 영지에서 재능이 있는 소년들을 기사로 키우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소드마스터 같은 건 없나?'

이곳에는 마나도 있고, 마법사도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소드마스터라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볼튼. 혹시 기사 중에는 마나를 다루는 사람은 없나? 막, 마나를 검에 덧씌운다든지, 마나로 신체를 강화한다든지 그런 거 있잖아?"

"혹시 마나 소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있어?"

"당연하지 않습니까? 영주님의 선조이신 초대 아렌달 변경백께서도 소드마스터셨지 않습니까?"

소드마스터가 존재할 뿐 아니라 내 선조가 소드마스터란다. 방계 왕족에 소드마스터의 후손이라니. 알고 보면 데우스라는 놈도 보통 혈통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 반응에 볼튼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선조가 소드마스터인데 그걸 왜 물어보냐는 얼굴이었다.

볼튼의 표정에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아는 게-사실은 다른 사람이지만-헤돈뿐이라는 사실을 떠올린 나는 황급히 말을 고쳤다.

"맞아! 내가 그것을 왜 잊어먹었었지? 나에게도 소드마스터의 피가 흐르고 있었는데 말이야. 하하-"

"예. 영주님께서도 지금이라도 열심히 검술 수업을 받으시면 몸속에 흐르는 기사의 피가 눈을 뜰지도 모릅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사수업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한번 기사들의 검술 연습을 따라 해봤다가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느끼고는 다시는 기사들과 함께 검술 연습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면 이자르 후작님과 마찬가지로 소드마스터가 되실지도 모르지요. 아니! 영주님이라면 분명 소드마스터가 되실 겁니다. 저는 영주님의 재능을 믿고 있습니다."

나는 또 다시 급발진하려는 볼튼을 제지하며 물었다.

"이자르 후작에 대해 잘 알아?"

"베르겐의 기사로서 이자르 후작님을 모를 수는 없지요. 어려서부터 검술의 재능이 하늘에 닿아 3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검의 극의를 깨우치신 살아있는 전설이신 분이니 말입니다.

소드마스터가 되신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베르겐의 기사라고 하면 누구나 이자르 후작님을 떠올립니다. 이자르 후작님이시라면 동대륙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기사일 겁니다."

왕국의 기사니 어느 정도 콩깍지가 씌여 있겠지만, 그래도 첫손에 꼽힐 거라는 말을 할 정도면 이자르 후작이 정말 검술이 뛰어난 기사인 건 분명했다.

'언젠가 이자르 후작을 만나게 되면 친분을 만들어 두는 게 좋겠는데.'

"이자르 후작 말고 다른 소드마스터도 있나?"

"베일리 변경백께서도 소드마스터지요. 우리 베르겐에는 이자르 후작님과 베일리 백작님 두 분의 소드마스터가 계십니다."

베일리 변경백은 아렌달과는 정 반대쪽에 자리한 영지로 아렌달처럼 바깥이 아닌 아스타나 왕국과 마주하고 있는 진짜 국경 영지였다.

같은 변경백이라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당장에 만날 인연은 없을 것 같았다.

역시, 예상대로 스미스가 여관으로 찾아왔다. 같이 있던 세 명의 소년을 대동하고 나를 찾아온 스미스를 나는 기쁘게 맞아주었다.

기사를 제외하면 마법사와 대장장이를 영입했으니 왕도에 온 목적을 조금은 달성했다고 할 수 있었다. 더 왕도에 머무른다고 해도 이 이상으로 인재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기에 이만 아렌달로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국왕에게 영지로 돌아간다는 인사는 하고 돌아가야겠지?'

아렌달로 돌아가겠다는 보고를 하기 위해 볼튼을 데리고 왕궁을 찾은 내게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왕도에서 아렌달 백작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

"스톨 백작님. 지난번에는 영지에 급한 일이 있어서 인사도 못 하고 돌아갔습니다. 죄송합니다."

"허허허- 괜찮네. 영지에 급한 일이 있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나는 잽싸게 스톨 백작에게 인사만 남기고 사라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쉽게 도망치지 못했다.

"아버지. 여기 계셨어···!!!"

"허업!"

"허허허- 인사하게나. 내 여섯째 딸인 샤를로트라네."

"처, 처음 뵙겠어요. 스톨의 샤를로트라고 합니다."

"······"

태연하게 처음 뵙는다는 인사를 하는 샤를로트에 나는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아렌달 백작입니다."

"어머. 우리 스톨 영지의 이웃인 아렌달의 영주님이셨군요."

정말 뻔뻔하게도 연기하는 샤를로트였다. 그런 샤를로트의 인사에 스톨 백작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허- 마침, 샤를로트의 짝을 찾으러 왕도에 왔는데, 이렇게 어울리는 둘을 보니 어렵게 왕도까지 올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겠군."

순간 샤를로트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나 역시 이 꼬맹이와 결혼할 생각은 없다.

나는 재빨리 볼튼에게 눈짓을 보냈다. 하지만 스톨 백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볼튼을 보니 헤돈과 같은 눈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하아- 스톨 백작님.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국왕 폐하께 급히 보고를 드릴 게 있어서···"

"이런. 내가 급한 백작의 시간을 빼앗았군. 다음에 내가 한번 아렌달에 찾아가도록 하겠네."

"아렌달에는 별로 볼 것이 없어서···"

"다음에 샤를로트와 함께 찾아가겠네. 허허허-"

'쓰읍!'

샤를로트의 표정을 보아하니 속으로 욕을 하는 것 같았다.

"자하. 작업은 다 끝났나?"

"일단은 영주님께서 시키신 대로 하긴 했는데, 이게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효과는 있을 거다. 물론, 아렌달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보이는 시기가 달라질 뿐이지."

나와 자하의 대화에 알비레오가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백작님. 무슨 이야기입니까? 혹시 왕도 안에서 마법을 사용하신 겁니까?"

"음- 마법이라면 마법일 수도 있겠지."

"왕도에서는 왕궁의 허락 없이 마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사실이 아니었나 보군요."

"왕도에서는 마법을 사용하면 안 되는 거였어? 자하와 처음 만날 때 분명···"

"큼큼- 영주님. 그만하시고 아렌달로 돌아가시죠."

서둘러 걸음을 옮기려는 자하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새해 파종이 끝날 때쯤 하수처리장의 공사도 마무리되었다.

겨우내 마무리하기 위해 인력을 때려 넣었음에도 바깥에서 들어오는 몬스터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시설이라는 어려움 때문에 완공이 조금 늦어졌다. 그래도 완성된 하수처리장은 충분히 만족할만한 모습이었다.

하수처리장의 공사가 끝났으니 이제는 상수도 공사를 시작할 준비에 들어가야 했다. 물론 당장은 영지의 우물만으로도 깨끗한 물을 쓰기에 충분했지만, 앞으로 영지의 인구가 늘어나게 되면 분명 상수원이 필요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기대하고 있던 마법 연구소의 건설 역시 마무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마법 연구소라니. 아렌달에는 자하님 말고 다른 마법사는 없지 않았습니까?"

"지금까지 한 명뿐이라고 계속 한 명만 있을 거라는 생각은 너무 일차원적인 생각인데? 그리고 이미 에일렌과 알비레오가 오면서 영지의 마법사가 세 명으로 늘어났잖아?"

"그, 그렇군요."

마탑에서도 없던 마법 연구소라는 타이틀에 마법사들의 눈에 기대감이 어렸다.

"자하. 연구소가 완공되는 대로 마법진 설치가 1순위로 진행되어야 해."

"알겠습니다. 이번에 왕도에 갔다 오면서 마법진 설치를 위한 준비물들도 다 준비해 놨습니다."

"연구소에 마법진을 설치합니까?"

마법진을 설치한다는 말에 두 마법사가 관심을 보였다. 어차피 곧 알려질 일이기도 하고, 두 마법사가 자하를 도와 마법진을 그려줄 테니 나는 마나석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허업! 마나석이라니!"

"쉿! 아직 아렌달에서 마나석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극소수의 인물만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조용히 해."

"아, 알겠습니다."

마법 연구에 있어 마나석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마법사들이 제일 잘 아는 법. 에일렌와 알비레오 두 사람은 아렌달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여기에 대장간을 만들어 주면 되는 거지? 영주성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데 괜찮은 건가?"

"영주성보다 이 자리가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물을 쓰기에도 가마를 지필 장작을 구하기에도 이만한 장소는 없습니다."

"물이나 장작은 스미스가 원하는 대로 내가 끌어다 줄 수 있는데?"

"대장간이 영주성에서 너무 가까이 있으면 영주님께서 일하시는데 너무 시끄럽지 않겠습니까? 허허-"

스미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성에서 떨어져 있다는 게 아쉬웠지만, 내가 생각해도 대장간을 설치하기에 이곳만큼 적당한 장소가 없었다.

"리오. 내일부터 바로 대장간 공사를 시작해."

"알겠습니다."

"그동안 모아 놓았던 철이랑 광석도 다 대장간에 지원해주고, 스미스가 바라는 물건이 있으면 최우선으로 구해주도록."

"이 늙은이에게 다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주님."

"나는 기술을 가진 사람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미스는 아렌달의 첫 번째 장인으로서 충분히 대우를 받아도 될 사람이니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담 없이 나와 리오에게 요청해."

공사판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술자들이라고 갑질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약간의 지원과 쓸데없는 태클만 걸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할 만큼의 성과를 내줄 사람들이었다.

물론 기술이 있다고 해도 나일롱으로 공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들의 기술을 존중만 해주면 그만한 결과물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스미스에게는 아렌달의 첫 번째 장인이라는 상징성도 부여해주었다. 그를 지원해주고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앞으로 기회를 찾아 아렌달로 올 장인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자하가 왕도에서 한 일련의 작업도 모두 아렌달로 사람을 끌어오기 위한 작업이었다.

아렌달에 가면 기회를 받을 수 있다.

기술만 있다면 아렌달 백작은 누구라도 환영해 준다.

왕도에는 지금 이런 소문들이 돌고 있을 것이다.

아렌달 개발 3개년 계획은 이제 겨우 1년이 지났을 뿐이다. 앞으로 2년 안에 식량과 도시 위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현대의 지식을 바탕으로 아렌달은 변화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세계에는 없던 새로운 영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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