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나에게 달려드는 인영에 볼튼이 그를 붙잡아 땅에 꽂았다.
"커억!"
신음하는 인영에 볼튼이 그를 짓누르며 말했다.
"감히 영주님을 습격하다니! 누구냐!"
"뼈- 뼈가 부러진 것 같아- 사, 살려줘."
"너는?"
볼튼의 밑에서 발버둥 치는 인영의 얼굴을 보자 그가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이, 이런. 알비레오! 이게 무슨 짓이냐!"
처음 마탑에 들어왔을 때 폭발을 일으킨 마법사 알비레오였다.
나는 볼튼의 어깨를 쳐 알비레오를 풀어줄 것을 명하고 그에게 말했다.
"누군지 알겠으니까 풀어줘.
마법사 알비레오.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다니. 이게 무슨 짓이지?"
"아으- 아파!
안녕하십니까! 저는 폭발마법의 전문가인 알비레오라고 합니다. 이렇게 귀족님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한차례 통증을 호소한 알비레오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는 내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갑작스러운 태도의 변화에 마탑주가 머리를 집는 모습에도 알비레오는 멈추지 않고 말했다.
"마법사가 필요하시다면 저를 영입해주십시오. 단언컨대 마탑에서 귀족님의 힘이 되기에 저만한 마법사는 없을 겁니다."
"이놈! 알비레오.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잠깐만. 그대는 내가 누구인지는 알고 자신을 광고하는 거야?"
"마법사가 필요한 귀족님이시지 않습니까? 아직 젊으신 것 같으니 어느 영지의 후계자쯤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치광이는 아닐지라도 어딘가 이상한 마법사는 틀림없었다.
"나는 아렌달 변경백의 주인인 아렌달 백작이다. 그대의 예상과 다르게 영지의 후계자는 아니군."
"백작! 그럼 더 좋지요!"
알비레오의 계속되는 무례에 마탑주가 에일렌의 지팡이를 뺏어 들었다. 그리고는 그 지팡이로 알비레오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알비레오 이놈! 이런 망측한 짓을 하라고 내가 너를 10년이나 가르쳤는 줄 아느냐!"
"커억! 스승님! 아픕니다. 아파요!"
신나게 매타작을 한 마탑주는 나에게 염치가 없는 모습을 보였다며 사과했다.
"못 볼 꼴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백작님. 이 멍청한 놈의 말은 못 들으신 것으로 하십시오."
"아니요. 괜찮습니다."
알비레오는 마탑주의 사과에 슬며시 눈치를 보다가 내 앞에 털썩 엎드렸다.
"백작님! 저를 영입해주십시오. 다시 말하지만 저는 폭발마법의 전문가로···"
"이, 이놈이!"
나는 다시 알비레오를 두들겨 패려는 마탑주를 말리고 알비레오에게 말했다.
"나는 이미 에일렌을 영입하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의 마법사는 필요 없어."
사실 마법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특히 알비레오가 폭발마법이 특기라면 영지 공사에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일부로 그가 필요 없다는 듯이 말을 돌렸다.
"전쟁할 것도 아닌데 나에게 공격 성향이 짙은 폭발마법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리고 마법사가 더 필요했다면 마탑주가 소개해준 글로리라는 마법사를 영입하겠지, 그대는 아니야."
"스승님! 마법의 재능은 글로리보다 제가 낫지 않습니까!"
"너는 재능보다 하자가 큰놈 아니더냐!"
알비레오와 마탑주의 만담에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알비레오에게 말했다.
"그런데 내가 왜 그대를 영입해야 하지?"
"저는 마법사로서 재능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저는 겨우 20살의 나이지만 폭발마법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습니다. 폭발의 크기와 방향, 그리고 시간까지 제 마음대로 조절을 할 수 있습니다.
베르겐 왕국, 아니 대륙 어디에도 저보다 폭발마법을 잘 다루는 마법사는 없을 겁니다."
알비레오의 말에 나는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폭발의 크기와 방향은 그렇다고 쳐도 폭발의 시간까지 제어할 수 있다니. 정말 엄청난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정도 능력이라면 영지 공사뿐 아니라 혹시 모를 위기에서도 엄청난 빛을 볼 수 있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지금 더 간절한 쪽은 내가 아니라 알비레오였다. 나는 일부로 심드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알비레오에게 말했다.
"그래도 폭발마법은 전투계열의 마법이 아닌가? 당장 나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마법이야."
"하핫- 백작님. 세상일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법 아닙니까! 무슨 일이든 대비하는 게 좋지요.
저같이 능력 있는 마법사를 구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저를 거두어만 주신다면 언제든 백작님이 필요하신 곳에 사용되겠습니다."
"음-"
내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며 마탑주를 바라보자 알비레오가 머리를 푹 숙였다. 그리고는,
"백작님! 추,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마탑에서 저 좀 꺼내 주십시오! 마탑에서 꺼내만 주신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라며, 내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 모습에 마탑주는 어이가 없었는지 "허허-"하며 헛웃음을 흘리며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도 자신의 제자가 마탑을 떠나려는 모습에 아쉬워하기보다는 응원을 보내는 눈빛이었다.
마탑주의 눈빛을 보면 알비레오는 문제는 일으켜도 심성이 나쁘진 않은 것 같았다.
"마법사 알비레오. 분명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다. 그대를 아렌달의 마법사로 영입하도록 하지."
"저, 정말이 십니까?"
"그래. 하지만 많은 녹봉을 기대하지는 말도록. 그대는 추가 영입이니까."
"가,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그 모습에 속으로 생각했다.
'마법사를 또 꽁으로 주웠네.'
성공적으로 마법사를 영입하고 마탑에서 돌아온 나는 또 다른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움직였다.
왕도 서쪽으로 오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영주님. 이곳이 왕도의 장인 거리입니다."
뚱땅뚱땅 쇠 때리는 소리에 귀는 시끄러웠지만, 가슴이 뛰었다.
"저기가 왕도에서 제일 큰 대장간인가?"
한눈에 보기에도 가장 큰 불가마가 있는 대장간을 들어가자 뚱땅대는 소리는 더욱 커졌고, 바로 옆에 있는 볼튼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손님! 이쪽으로! 오세요!"
다행히 대장간은 손님을 받는 게 익숙한지 한 소년가 내가 다가와 소음이 적은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으아- 그나마 여기는 조금 괜찮네."
"이분은 아렌달 변경백의 주인이신, 아렌달 백작님이시다."
"백작님께서 직접 대장간에 오시다니!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년은 귀족과의 대화가 처음이 아닌지 다른 영지민이나 백성들과 다르게 머리를 땅으로 숙이지는 않았다.
"찾는 물건이 있으십니까?"
"물건이라기보다는 사람을 찾고 있다."
"사람이요? 저희는 노예를 취급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노예를 사려고 한다고 착각하는 소년에 볼튼이 말했다.
"영주님께서는 노예가 아니라 실력 있는 대장장이를 영지에 영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런 일이라면 제가 어떻게 대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저희 대장장이를 불러오겠습니다."
소년은 내 허락에 다시 불가마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근육질에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를 데리고 왔다.
"귀족나으리께서 무슨 일이요?"
툭 던지는 대장장이의 말에 칼을 뽑으려는 볼튼을 제지하고 대장장이에게 말했다.
"나는 아렌달에서 일할 대장장이를 찾고 있네. 혹시 이 대장간에서 내게 대장장이를 소개해 줄 수 있나?"
"음- 우리 대장간에서는 내어 줄수 있는 대장장이가 없소. 지금도 일손이 부족한 형편인데 우리 장인을 빼앗길 수는 없지."
"나와 함께 가는 대장장이에게는 많은 지원을 해 줄 생각이네. 왕도를 떠나서라도 자신의 대장간을 가지고 싶은 대장장이를 찾을 수 없을까?"
내 말에 대장장이는 곤란한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귀족이 직접 와서 인재를 영입하려고 하는데 마냥 물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장장이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역시 우리 대장간에는 안 되겠소."
그리고는 옆에 있는 종이에 뭔가를 그리고는 내게 건네주었다.
"이곳을 한번 찾아가 보시오."
"이게 뭐지?"
"지금은 은퇴한 대장장이가 계신 곳이요. 아마 이 거리에서는 어딜 가도 대장장이를 내어주지 않을 거요. 그러니 거기서 대장장이를 찾아보시는 게 좋을 거요."
"대장장이의 이름은?"
"스미스. 내 스승이요."
"고맙네."
아론의 소개로 찾아간 곳은 장인 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후미진 곳이었다. 딱 보기에도 여건이 나빠 보이는 장소였기에 기대감이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대장장이가 이상한 곳을 소개한 것 같습니다. 영주님. 당장 대장장이를 잡아 귀족 모독죄로 벌을 내려야 합니다."
"아니, 그렇게 큰 대장간의 대장장이를 키운 스승이라면 가지고 있는 기술만큼은 확실하겠지. 만나 볼 가치는 있어. 어쩌면 진흙 속에서 진주를 만나게 될 수도 있지."
"진흙 속의 진주라니. 영주님의 큰 뜻을 이해하지 못한 제 불찰이군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영주님."
볼튼이 다시 헛소리를 늘어놓기 전에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왕도의 성벽과 붙어있는 끝자락에 와서야 소개장의 인물을 찾을 수 있었다.
"그대가 스미스인가?"
빼빼 마른 장작같이 얇상한 노인이 작은 모루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 옆에서 망치질을 따라 하는 세 명의 소년을 보니 새로운 대장장이를 키우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요?"
"아렌달 백작이다. 아렌달 변경백의 주인이지."
내 소개에 소년들이 화들짝 놀라며 머리를 땅에 숙여 박았다. 하지만 노인은 별일 아니라는 듯 다시 모루를 때리며 말했다.
"귀족 나으리가 나를 무슨 일로 찾으셨는가?"
"아렌달에 대장장이가 필요하다는 말에 대장장이 아론이 그대를 내게 소개해줬다."
"멍청한 놈이 스승에게 짐을 떠넘겼군. 일 없소. 그냥 돌아가시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휘휘 젓는 스미스에 볼튼이 화를 참지 못하고 검을 빼 들었다.
"감히 영주님의 부름에 그따위 행동을 하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스미스는 볼튼의 위협에도 돌아보지 않고 모루를 때렸다. 하지만 자신과 다르게 겁에 질린 제자들의 모습에 망치를 내려놓고는 볼튼에게 말했다.
"그대의 주인에게는 대장장이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여기서 나를 죽인다면 왕도에서는 대장장이를 구하지 못할 거네."
그 말에 볼튼에게 검을 내리라 지시하고는 말했다.
"정말 왕도 대장장이들의 스승인가 보군. 대장장이들의 스승이라··· 맘에 드는 타이틀이네."
"일 없다고 하지 않소?"
"아렌달에는 일이 있지. 대장장이 스미스. 나와 함께 가주지 않겠나? 그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장간을 만들어 주지.
그리고 그대가 만들고 싶어 하는 건 무엇이라도 만들 수 있게 지원해 주겠다.
아직 모루를 두드릴 힘이 있다면 나와 함께 아렌달로 가자. 이런 왕도의 구석탱이에서 썩기보다는 그대를 필요로 하는 나를 따라오게."
"······"
내 말에 스미스는 잠시 침묵하고는 다시 망치를 들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모루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다시 검을 들려는 볼튼을 제지하고 나는 스미스에게 말했다.
"3일 후에 아렌달로 돌아갈 생각이다. 생각이 있다면 광장에 있는 늑대보리 여관 오게. 기다리고 있지."
그렇게 말하고 나는 발을 돌렸다.
"이대로 돌아가도 괜찮습니까?"
"응. 괜찮을 거야."
스미스는 아마 높은 확률로 날 찾아올 것이다. 공사판에서 스미스와 같은 눈을 한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40년 동안 아시바만 짠 김반장이나, 배관공사만 30년째라는 이반장. 그리고 살면서 자신이 태운 용접봉만 10만 개라던 최반장까지, 전부 다 스미스와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장인이다.
죽을 때까지 일만 하다가 죽을 사람들이다. 저렇게 왕도 구석탱이에서 썩을 사람이 아니다.
스미스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죽기 직전까지 쇠를 달구고 모루를 때릴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