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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7화 (7/169)

7화

바깥에서 오크가 침입했다. 그리고 침입한 오크는 황무지 인근에 만들고 있던 하수 처리장을 공격해 공사 중이던 영지민 일부가 목숨을 잃었다.

갑작스러운 오크의 침략 보고에 내가 당황하자 헤돈이 볼튼에게 말했다.

"볼튼경. 오크의 수는 얼마나 되지?"

"몬스터에 쫓겨 온 영지민의 말대로라면 수는 대략 30마리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30마리면 많은 거야?"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빨리 막지 않으면 더 많은 영지민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숫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지? 맞아! 자경대. 자경대를 빨리 소집해서 막아야지!

헤돈경. 곧장 영지의 자경대를 소집하고, 기사들을 이끌고 오크를 막아."

내 명령에 헤돈과 볼튼이 무릎을 꿇었다.

"기사 헤돈. 죽어서라도 명을 완수하겠습니다."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와."

"예!"

그리고는 볼튼과 함께 굳은 얼굴로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오크의 침략이라니. 이세계에서 눈을 뜨고 처음 겪는 위기였다.

"아무 문제 없겠지?"

"영주님.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헤돈경이라면 반드시 오크를 물리칠 겁니다.

기사 한 명이면 오크 하나둘 정도는 쉽게 상대할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영주님의 충성스러운 기사들이라면 문제없을 겁니다."

리오의 말에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8명의 기사와 영지의 자경대를 믿기로 했다.

헤돈과 기사들이 영지에 침입한 오크를 무찌르고 돌아왔다. 돌아온 기사들의 모습을 보니 오크와의 전투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갑옷에 들러붙은 피딱지와 편치 않은 표정을 보니 부상을 당한 것 같았다.

"기사 헤돈. 영주님의 명을 완수하고 돌아왔습니다."

"수고했어. 헤돈경과 기사들 덕분에 영지가 다시 안전해졌어. 고마워."

"기사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나는 돌아온 기사들에게 치하의 말을 건네고 따라온 자경대를 확인했다.

기사들만큼이나 지친 모습이었다.

'자하를 함께 보냈어야 했는데, 완전히 마법사의 존재를 깜빡하고 있었어.'

갑작스럽게 찾아온 위기에 나는 자하의 존재를 잠시 깜빡했고, 헤돈 역시 아렌달에 마법사가 없던 시기가 길어서였는지 내게 자하를 붙여달라고 하지 않았었다.

자하가 함께 했다면 분명 희생을 더 줄일 수 있었겠지만, 이미 늦은 결과였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리오에게 말했다.

"리오. 오크를 무찌르고 돌아온 기사들과 자경대에게 식사와 휴식을 제공해주도록 해."

"영지를 침략한 오크는 총 27마리였습니다. 빠르게 자경대를 모아 막은 덕분에 다행히 27마리 모두 놓치지 않고 숨을 끊을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네. 그럼 기사들이나 자경대에 피해는?"

"볼튼과 보브가 다치기는 했지만, 목숨에는 지장을 받지 않을 작은 부상입니다. 하지만 자경대로 따라온 마을 청년 중 6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영주님. 공사 중 오크의 습격을 받은 영지민 1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한, 12명이 부상을 입어 다시 공사에 투입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X발."

헤돈과 리오의 피해자 보고에 절로 욕이 나왔다. 이세계에서 눈을 뜨고 지금까지 몬스터를 크게 위협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구에는 없던 위협이었기 때문에 안일한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분명 내 책임이었다.

아렌달은 변경백이다. 변경에서 생기는 위협을 막으라고 자치권을 인정받은 영지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안일하게도 나는 군사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몬스터 27마리 때문에 죽은 사람이 19명에 다친 사람도 12명이나 된다. 침략해 온 몬스터의 숫자보다 더 많은 영지민이 피해를 입었어.

앞으로도 이 같은 일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당장 몬스터로부터 영지를 지킬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해.'

당장에 정규군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젊은 남자들을 모아 정규군을 만들면 당장 진행하고 있는 공사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아- 그래도 외부의 위협을 막는 게 먼저겠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그래도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는 알고 있다.

"헤돈경. 앞으로 몬스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얼마의 군사가 필요한지 말해봐. 나보다는 기사인 헤돈이 더 잘 알 것 아니야."

"제가 이끌고 간 자경대의 숫자가 50명이었습니다. 이번과 같은 오크의 침입을 막으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병력이 필요합니다만, 이 숫자로도 몬스터에 완벽하게 대응하기에는 부족합니다."

"50명을 데리고 갔어도 사망자가 나왔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경대의 숫자도 중요하지만, 몬스터를 처리할 기사 역시 더 필요합니다."

"기사를 영입하고, 군사 역시 50명 이상으로 필요하다는 말인가?"

헤돈의 말에 내 미간이 좁혀졌다. 하지만 언제 몬스터가 나타날지 모르니 결정을 뒤로 미룰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알았어. 기사는 당장 구하기 힘드니까, 일단 병력을···"

"그러면 영주님께서 진행하시려는 공사가 늦어질 수 있습니다."

"나도 알아. 리오. 하지만 영지가 몬스터의 침략을 받으면 공사고 뭐고 다 중단되는 거잖아. 뭐가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생각하자고."

"죄, 죄송합니다. 영주님."

한발 물러나는 리오에 나는 헤돈에게 말했다.

"리오의 말대로 당장 공사 인력을 줄이는 것도 문제다. 그리고 당장에 병사들에게 지급할 장비도 없어. 그러니 우선 20명을 병사로 소집해. 거기에 언제든 추가로 병사를 소집할 수 있도록 젊은 남자를 중심으로 기초군사훈련을 한다."

"군사 훈련이요?"

"그래. 50살 이전의 성인 남자는 모두 군사 훈련을 받는다."

당장 정규군을 만들 수 없다면, 일단 예비군부터 만든다. 영지의 사정이 조금 더 나아지면 예비군중에 일부를 정규군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아렌달의 영지민만 충분했다면 이렇게까지 고민하지 않았을 텐데.'

이세계에서 사람의 중요성을 또 한 번 깨닫는 하루였다.

병사로 소집된 20명이 영주성 앞에 모였다. 아직은 군기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모습이지만, 외형적으로는 제법 괜찮은 모습이었다.

"이들이 아렌달의 첫 영지군인가? 확실히 체격은 좋은 것 같네."

"볼튼이 고르고 고른 영지민입니다. 그동안 공사장에서 뛰어난 체력을 보여준 청년들이라고 합니다."

헤돈의 말에 나는 헤돈을 대신해 내 옆에 서 있는 볼튼에게 엄지를 세워주었다.

"이들의 훈련은 누가 주도하지?"

"일단 겨울 동안은 기사들이 번갈아 가며 교육을 할 계획입니다. 이후에 영지군이 늘어나면 병사들 자체적으로 유지를 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헤돈은 한동안 나의 호위보다는 병사들의 지휘를 맡게 될 계획이다.

영지의 기사 중에서도 정식으로 군사 교육을 받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휘 경험이 있는 헤돈이 맡을 수밖에 없었다.

'군사 훈련을 겸해서 지휘관도 키워야겠는데? 겨우내 교보재라도 만들어 볼까?'

이래 봬도 내가 5대기 단골에 분대장 양성 교육에서 우수로 휴가까지 받은 사람이었다. 오래전 기억을 뒤져보면 나름 괜찮은 지식을 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헤돈경. 기초 군사 훈련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내는 두 명을 선정하도록. 그 둘에게는 내가 능력에 걸맞은 직책과 보수를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직책과 보수라는 말에 청년들의 눈에 의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영주에게 인정받을지 모르는 기회였으니 분명 열심히 할 것 같았다.

오크의 공격을 받았던 하수 처리장의 공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갑작스러운 몬스터의 공격을 대비해서 헤돈과 영지군이 정찰과 방위를 맡아주었기에 조금은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자하. 마나석의 연구는 어떻게 되고 있어?"

"드레인 마법진으로 동시에 여러 개의 마나석을 충전하는 것까지는 연구가 끝났습니다.

다만 마법진을 일정 크기 이상으로 그렸을 경우 충전이 되지 않는 오류를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중요해. 마나석 한 번에 많이 충전하려면 마법진을 크게 그려야 한다고."

"연구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라···"

"자하는 마법진의 전문가잖아? 거기에 내가 전용 실험실까지 만들어 주고 있는데 그 정도 성과도 내지 못하겠다는 거야?"

"영주님. 마법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좋아. 마법 연구소가 다 지어지기 전에 연구를 끝마치면 자하의 녹봉을 올려주도록 할게."

"저만 믿으십시오! 반드시 영주님의 기대를 만족시키겠습니다!"

역시 자하를 다루는 데는 돈 만한 것이 없었다. 신나서 달려가는 자하의 모습에 리오가 말했다.

"영주님. 그렇게 돈을 막 쓰시면 국왕 폐하께 빌려온 돈이 금방 동날 겁니다."

"아-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자하한테는 녹봉을 올려줘도 다시 돌려받으면 되니까.

그리고 자하의 드레인 마법진만 완성되면 마나석을 만들어서 팔면 되잖아. 투자는 과감하게 하는 거야."

"하아- 돈을 관리하는 저도 생각 좀 해주십시오."

리오의 한숨에 어쩔 수 없이 나는 리오에게도 한마디 말을 건넸다.

"그럼 리오의 녹봉도 20셀링 올려줄게."

"감사합니다! 영주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이 둘이 가장 성적이 좋은 발트와 카잔입니다."

"발트입니다!"

"카잔입니다!"

발트와 카잔은 나에게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둘 다 저수지 공사에서 활약했던 얼굴들이네. 특히 체력이 좋았던 게 기억이 나. 삽질도 꽤 나 잘했지."

"감사합니다."

겨우내 훈련으로 군기가 든 둘을 보니 군대에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마치 분대장 양성교육 표창을 받기 위해 여단장 앞에 서 있던 내 모습 같았다.

"발트와 카잔은 앞으로 각각 한 개 분대를 이끄는 분대장으로 임명한다."

내가 생각한 것은 한국군의 분대 구성이었다. 10명으로 구성된 스쿼드를 짠 것이다. 물론 운전병이나 의무병 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그 구성까지 사용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분대장이 무엇입니까?"

"10명으로 구성된 병력을 이끄는 리더라고 생각하면 된다. 분대장은 지휘관 아래 위치한 직분으로 만약 지휘관이 부재할 시 분대장이 대신 지휘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위치라고 할 수 있지."

내 설명에 두 사람의 눈이 번쩍 떠졌다. 농사나 짓던 영지민이 영주의 인정을 받아 직책을 얻은 것이니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른 병사들도 부러운 듯 둘을 바라보는 게 둘이 대단한 벼슬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 같았다.

'일개 분대장이 무슨 대단한 벼슬이라고 저렇게 바라보는 거야?'

"만약 이후에 새로운 병사들을 소집하게 될 경우는 여기에서 또 우수한 활약을 하는 병사들에게 분대장의 직책을 내려 줄 수도 있다."

목표가 생겨서인지 군기가 바짝 든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벌써 봄이 오는 건가?"

이세계가 지구와 같은 물리 법칙으로 움직이는지는 모르겠지만-마법도 있으니까-, 그래도 겨울이 그리 춥지 않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 같다.

겨우 내 눈이 온 것도 겨우 두 번에 불과했고,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도 없었다.

건물이 올라가며 오픈된 골조 사이로 불어오던 칼바람을 생각하면 이 따뜻한 겨울에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영지를 부탁한다. 리오."

"그럼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영주님."

"그래. 좋은 장비, 아니- 일꾼. 이것도 아닌가? 아무튼, 쓸만한 사람들 많이 구해올게."

리오의 배웅을 받으며 나는 말을 돌렸다.

사람을 구하려면 서울, 왕도로 가야 하는 법.

두 번째 왕도 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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