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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6화 (6/169)

6화

올해 농사는 지금까지 아렌달의 역사상 가장 큰 풍년이라고 할 만큼 성공적이었다.

농지가 늘어난 것뿐 아니라 이삭 밟기 농법으로 뿌리가 깊게 박힌 밀에 많은 이삭을 매달려 수확량이 눈에 띌 만큼 늘어난 것이다. 오죽하면 촌장은 나를 농사의 신으로 추앙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수확이 끝난 시기가 되니 아렌달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 영지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 거지 같은 영지는 겨울이 되려니까 어떻게 할 일이 아무것도 없냐?"

강을 끼고 있지만, 폭이 넓지 않은 강이라 어업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고, 변경 영지면서 바다를 끼고 있지도 않다. 광산 자원도 없으니 영지민에게 광석이나 캐라고 시킬 수도 없다.

너무나 당연하게 추수를 마치자마자 집안에 틀어박히는 영지민을 보며 나는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헤돈경. 작년 겨울에는 무엇을 했지?"

"영주님께서는 사냥을 즐기셨습니다."

"아- 그래. 사냥에 나섰다가 굴렀다고 했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겨우내 시간이나 때우고 있을 건 아니지.'

아직 국왕에게 빌려온 돈도 충분하다. 겨울에 일이 없다면 돈을 쏟아부어서라도 일을 만들어야 영지의 경제가 멈추지 않는다.

"리오에게 공사 터를 빨리 잡으라고 해야겠어. 겨울 동안 영지민을 때려 넣어서라도 하수처리장의 기초 공사를 마무리 한다."

"겨울에는 땅이 얼어서 삽질이 쉽지 않을 텐데요?"

"자하가 있잖아? 대충 마법 몇 방 갈기면 땅이 뒤집히겠지. 한번 뒤집어엎은 땅은 삽이 들어갈 것 아니야?"

"마법사를 이런 식으로 대우하는 귀족은 영주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마법사 자하께서는 영지를 위한 마법을 사용하기 싫다는 거야?"

"누가 싫다고 했습니까? 합니다. 해요."

어차피 할 것이면서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자하였다.

"저기 영지민들 삽 들고 기다리는 거 보이지? 그럼 군말하지 말고 빨리 마법이나 갈겨."

"알겠습니다. 위험하니 조금 뒤로 물러나 계십시오."

자하의 말에 내가 뒤로 물러나자 그는 구시렁거리는 것을 멈추고 마법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익스플로젼!"

-쾅 쾅 쾅

연속된 마법에 땅이 뒤집히는 모습에 생각했다.

'이거 마법사를 몇 명 더 잡아 와야겠는데?'

중장비를 들여서도 몇 시간을 뒤집어야 할 공사 터를 마법 몇 방으로 날려버릴 수 있다니. 심지어 기름을 먹거나 많은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는다. 마법이란 게 방금 같은 폭발 마법만 있는 것도 아니니 유틸적인 측면에서도 아주 뛰어났다.

녹봉과 연구비로 줘야 하는 돈이 조금 많다는 것을 빼면 이보다 훌륭한 공사 장비는 없었다.

"오늘은 더 못 씁니다."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더 쓰지?"

"무리하다가 마나라도 역류하면 저 죽을지도 모릅니다. 안 돼요! 안 돼!"

"촌장이 감자를 구해왔는데 심을 장소가 없잖아! 저기 절벽 아래 언덕만 살짝 뒤집어 주라고!"

촌장이 어디서 구했는지 감자를 가지고 왔다. 겨울철 심을 작물도 필요했고, 식량 자원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기에 촌장에게 감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추수가 끝난 밀밭은 이미 토양을 회복시키기 위해 재를 잔뜩 뿌려 뒤집어둔 상태라 감자밭으로 돌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밀밭 너머 낮은 산을 살짝 날려서 감자를 심을 생각이었다. 구황작물이니 산지에서도 잘 자랄 테니까.

"화전을 치는 것보다 자하가 마법으로 뒤집어엎는 게 훨씬 빠르잖아?"

"저는 공사 장비가 아닙니다!!!"

"칫- 마법 한번 갈겨주면 내가 보너스를 주려고 했는데. 그럼 어쩔 수 없지."

"···방금 하신 말씀. 진심이 십니까?"

"설마 내가 거짓말을 하려고?"

그 말에 자하의 눈빛이 바뀌었다. 가뜩이나 마법 연구에 돈이 많이 필요할 텐데, 나에게 목숨값을 갚는다고 녹봉도 기사들보다 적게 받는 자하였다.

나 역시 기사나 영지민을 투입해서 언덕을 뒤집는 것보다 훨씬 시간을 아낄 수 있었으니, 자하에게 몇 셀링쯤은 보너스로 줘도 아깝지 않았다.

"어, 얼마나 주실 겁니까?"

"그래서 해줄 거야?"

"하아- 자칫 마나가 역류하게 되면···"

"100셀링."

"말씀하신 언덕이 어디죠?"

"익스플로젼!"

-쾅

"크헉!"

마법으로 언덕을 날려버린 자하가 기침을 토하며 주저앉았다. 내 눈치를 보는 것이 연기일 게 분명했지만, 오늘만큼은 봐주기로 했다.

"역시 마법사라니까. 우리 영지는 자하가 없으면 안 되겠어. 하하하-

리오에게 자하의 녹봉을 지급할 때 100셀링 더 주라고 말해둘게."

"영주님. 감사합니다!"

보너스라는 말에 바로 일어나서 고개를 숙이는 자하에 나는 피식 웃으며 촌장에게 말했다.

"촌장. 마법사 자하님이 영지민을 위해 감자밭을 만들어 주었다. 반드시 감자 농사에 성공하도록!"

"감사합니다. 영주님. 감사합니다. 마법사님.

반드시 감자 농사를 성공시켜 영주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감자밭에서 나왔다는 거지?"

"예. 영주님. 혹시 보석일지도 몰라서 가지고 왔습니다."

촌장이 특이한 돌을 가지고 영주성을 찾아왔다. 감자를 심기 위해 땅을 고르는 데 나왔다고 했다.

푸른색의 투명한 돌은 마치 깨진 유리가 오랜 시간 마모되어 만들어진 것 같았다.

'이거 아렌달에서 광산 자원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촌장을 돌려보내고 서둘러 리오를 불렀다.

"리오. 아까 감자밭을 만들려던 언덕에서 이 보석이 나왔다는데 이게 무슨 보석인지 알겠어?"

"저도 처음 보는 물건입니다."

"리오도 모른다고?"

"예. 그런데 보석치고는 조금 무른 느낌인데 정말 보석입니까?"

"음- 그럼 보석이 아닌가?"

나와 리오가 이 돌의 정체에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영주님. 죄송하지만 아까 주신다고 하셨던 100셀링을 먼저··· 으엇!"

자하가 조심스레 내 방으로 들어오다가 놀라서는 나에게 달려들었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영주님! 이걸 어디서 구해오신 겁니까?"

"응? 이 돌? 촌장이 감자밭에서 주워서 가지고 왔는데."

"이, 이건 마나석이 아닙니까?!"

나는 리오와 자하 그리고 기사들을 대동하고 곧바로 감자밭으로 향했다.

아직 밭 고르기 작업을 하던 촌장과 영지민들은 갑자기 돌아온 나를 의아함으로 쳐다봤지만, 영지민들의 시선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촌장! 이 돌 어디서 나왔어? 그리고 이것 말고 더 나온 게 있으면 전부 가지고 와."

"예? 예. 알겠습니다."

촌장은 내 명령에 감자밭에서 나온 마나석 5개를 더 가지고 왔다.

"이걸 찾은 게 누구지?"

"댄이 찾았습니다. 불러올까요?"

"빨리!"

내 재촉에 촌장이 화들짝 놀라며 아직 앳된 얼굴의 남자아이를 불러왔다. 댄은 내 앞으로 오자마자 머리를 땅에 박으며 말했다.

"사, 살려주십시오. 영주님."

"네가 잘못을 저질러서 부른 게 아니니까 빨리 일어나."

"넵!"

"댄. 네가 이 돌을 주워왔다고 하던데?"

"넵! 저, 저기 절벽 아래에서 반짝이는 게 있길래 주워왔습니다."

"절벽 아래?"

"넵!"

댄의 말에 나는 자하에게 눈길을 주었다. 자하는 내 눈길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절벽을 향해 손을 들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익스플로젼!"

-쾅!

자하의 촉발 마법이 절벽을 터트리며 무너트렸고, 흙먼지가 가라앉은 절벽 아래를 기사들이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초조하게 바라봤고, 곧 손을 번쩍 들고 소리치는 볼튼의 목소리가 들렸다.

"있습니다! 마나석이 있습니다!"

"절벽은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봉쇄했습니다."

"잘했어."

리오의 보고에 나는 자하에게 말했다.

"아까 하던 이야기 계속해."

"마나석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원래부터 마나를 가지고 있는 마나석과 가지고 있는 마나는 없지만, 마법을 이용해 마나를 충전할 수 있는 마나석이 있습니다.

당연히 그중에서 마법사들이 선호하는 마나석은 전자의 것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나의 소모 없이 마법을 사용할 수도 있고, 마법 용품을 만들기에도 좋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후자의 충전식 마나석도 마나를 충전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마력을 충전만 하면 사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마나석은 후자의 것이다. 이 말이지."

내 물음에 자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시중에서 거래가 되는 마나석은 전자의 마나석이다. 충전식 마나석은 마력 충전에 불편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 역시 차이를 보였기에 기대한 만큼 아쉬움도 생겼다.

"바로바로 금전으로 바꾸기 어렵다니 그 점은 아쉽네."

아쉬움을 표하는 내 목소리에 자하가 내게 말했다.

"영주님. 잠시 영주님과 둘이서만 이야기가 가능하겠습니까?"

"단둘이? 헤돈이나 리오가 들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인가?"

"일단은 영주님과 단둘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자하의 말에 나는 헤돈과 리오를 내보내고 물었다.

"나에게 하고 싶은 비밀이야기가 뭐야?"

"영주님과 처음 만났을 때 제가 한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제가 마탑에서 고대 마법진을 공부했다는 말이요."

기억이 난다. 자하는 그 마법진을 이유로 나와 협상을 하려고 했었다.

"그 고대 마법진이 바로 마나를 끌어들이는 드레인 마법진입니다."

"마나를 끌어들인다면?"

"네. 그 마법진이 있으면 충전식 마나석에 빠르게 마나를 충전할 수 있습니다."

"허업!"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다. 그냥 주점에서 마법사를 하나 주웠을 뿐인데 알고 보니 엄청난 기술을 가진 인재 중에 인재였다. 자하는 주점 주인에게 그냥 맞아 죽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저에게 기회를 주시면 드레인 마법진을 완성해 마나석을 충전할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나나 리오에게 바로바로 말해. 가능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지원해 줄 테니까."

영주성 바로 옆에 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마나석 충전소를 겸하는 마법 연구소였다.

이곳에 드레인 마법진이 설치가 되면 본격적으로 마나석 광산을 파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은 마나석의 존재를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엄중히 관리하고 있었다.

"마법 연구소가 다 지어지려면 아직 멀었나?"

"아무래도 목조 건물이 아닌 석조 건물로 짓느라 시간이 조금 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하님이 요구하신 건물의 구조도 쉽게 공사하기 어려운 구조라 이번 겨울 안에 완성하기는 조금 어려울 듯합니다."

"건설 기술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나?"

이 세계에 콘크리트가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거푸집을 만들어 그냥 때려 붓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석조 건물을 지으려면 하나하나 돌을 캐다가 자르고 깎아서 규격을 맞춰야 했기에 시간이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자하님이 열정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어서 건설 기간이 많이 단축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마법사가 이렇게나 공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정말 마법사라는 존재는 대단한 것 같습니다."

리오의 말에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자하가 마법으로 중장비의 역할을 해주는 것을 보면 당장이라도 새로운 마법사를 영입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때,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며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허억. 허억. 영주님 큰일입니다."

"볼튼경. 갑자기 무슨 일이야?"

"오크가··· 오크가 영지로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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