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완결) #
태범은 스캐너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능력을 주는 스캐너가 누구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태범에 손에 건네지게 됐는지 말이다.
“회장님,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진실을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말하기에 앞서 부탁드리지만, 이 석판과 마찬가지로 외부에는 절대 알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태범의 표정은 여느 때보다 심각했다.
이근휘 회장도 긴장과 진지함이 감도는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로 하겠습니다. 제가 죽던 한이 있더라도 외부로 발설하지 않을 테니, 편하게 말해주시지요.”
태범의 심장은 빠르게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이제는 웬만한 일을 다 경험해 봤고 긴장이 될 만큼 두려운 상황이 없었지만, 스캐너의 진실을 말하자니 떨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태범은 긴장을 줄이기 위해 숨을 크게 한번 내뱉고는 입을 열었다.
“후…… 그게 말입니다. 사실은 제게 엄청난 물건이 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없는 물건이죠.”
“혹시 이 석판과 같은 물건입니까?”
“네, 맞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기괴하면서도 신기한 물건입니다.”
“어허…… 그렇게 또 존재한다니, 도대체 그 물건이 뭐죠?”
“스캐너입니다.”
능력을 주는 스캐너가 외부에 처음 발설되는 순간이었다.
죽을 때까지 숨기고 싶은 비밀이었지만, 이는 석판 그리고 샘성과 많은 연관이 돼 있어 보였다. 차마 모든 비밀을 털어놓은 이근휘 회장에게까지 비밀로 할 수 없었다.
“스, 스캐너?”
“네. 사진을 컴퓨터 이미지로 변환하는 기계, 스캐너를 말합니다.”
“그게 어쨌다는 거죠?”
“스캐너를 이용해 인물의 사진을 스캔할 시, 그 인물의 능력이 사용자에게 각인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이근휘 회장은 눈을 크게 뜨고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정말 그런 게 존재한다고요? 말도 안 돼.”
“이미 저희가 보고 있는 건 이성적인 판단 수준을 넘어서지 않았습니까? 애초에 이 석판들도 그렇고 모두 말이 안 되는 것투성이고요.”
“그럼 그 능력이란 게 무엇이죠? 인물의 능력이라는 게…….”
“모든 게 가능합니다. 그 사람의 지식이든 아니면 가지고 있는 재능, 능력, 심지어 기억까지 말이죠.”
“그럼 태범 대표가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게…… 설마 모두 그것 때문에?”
“네, 맞습니다. 저는 한 인간으로서 가질 수 없는 능력을 지녔죠. 사실상 말이 안 되죠. 한 분야에 인생을 바쳐도 얻을까 말까 한 성과를 저는 짧은 시간에 모두 얻었으니 말이죠.”
“허허…… 들어도 이해를 못 하겠군요. 세상에 그런 게 있다니!”
태범은 모든 걸 털어놨고, 이근휘 회장은 경악 수준으로 놀라워했다.
“사실 이 말씀을 드리기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믿고 지지해 주는데, 혹여나 이 스캐너가 저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저버리지는 않을까 걱정했거든요. 사실 보면 지금의 이는 순수한 저의 힘이 아닌 이 스캐너의 힘 덕분이었으니까요.”
태범의 진지한 고백에 이근휘 회장은 입술을 꾹 다물고, 잠시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옅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아니요. 아무리 대단한 물건의 도움을 받았더라도, 어쨌든 강태범 대표가 이뤄낸 결과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물건을 손에 쥔 강태범 대표 또한 그 자체로서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근휘 회장은 태범이 기가 죽지 않도록, 좋은 말로서 포장해줬다.
태범은 그런 이근휘 회장의 태도에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그렇게 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나한테 감사할 게 아니죠. 본인 스스로한테 감사하세요.”
스캐너에 대한 존재에 대해서 말했고, 이제 능력을 주는 스캐너가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었다.
그저 사람 재미있자고 만들어진 물건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태범은 아직 풀지 않은 이야기들을 계속 이어갔다.
“더욱 중요한 건, 이 스캐너가 아마도 이명춘 선대회장님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 같다는 겁니다. 여기에 적힌 구절을 보시죠.”
태범은 석판의 윗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위 기술을 통해 귀인을 만들어내라, 이것이 이 부분에 적혀 있는 의미입니다.”
태범은 본인만 알고 있는 이 언어를 이근휘 회장에게 해석해줬다.
석판의 첫 부분에 있는 귀인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귀인을 만들라니, 그럼 그 스캐너로 당신을 만들어냈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저를 새롭게 태어나게 해준 것이죠. 물론 생물학적인 탄생은 아니지만, 전 스캐너를 얻고 난 후 모든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서 있고요.”
“이게 그런 거였다니…….”
“놀라운 건 더 있습니다. 샘성의 기술의 원천이 여기 이 석판에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상상 이상입니다. 제가 가진 스캐너를 만든 기술도…… 그리고 여기에 적힌 모든 기술은 지금까지 인류가 이뤄낸 모든 문명을 한참 앞서가고 있습니다.”
태범이 가리킨 문자의 기술은 곧 능력을 주는 스캐너를 만들어낸 양자 기술을 말하고 있었다.
시간과 장소를 초월할 수 있는 이 양자 기술은 스캐너를 설명하는 데 충분했다.
인류문명의 시대를 뛰어넘는 기술임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혹시 이 석판의 문자를 해석할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스캐너 때문에?”
“네. 맞습니다. 이근휘 회장님의 아버지 이명춘 선대회장님의 지식을 제게로 스캔했습니다.”
“허허…… 이럴 수가. 그러면 이 모든 게 내 아버지의 계획이었다는 건가?”
이근휘 회장은 아버지의 계획에 탄복하며 고개를 저었다.
모든 미스터리가 양파껍질 벗기듯 하나씩 풀렸고, 이는 마치 미래를 예견이라도 한 듯 이명춘 선대회장의 완전한 계획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근휘 회장이 알고 있던 석판 위의 내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그저 무선 통신과 반도체 기술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석판에는 그 이상의 상상하지도 못한 기술들이 나열돼 있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스캐너의 핵심인 양자 기술이었다.
“그럼 아버지가 석판에 담긴 내용 그대로 귀인을 만들었다는 건데, 혹시 이 석판의 존재 이유도 알고 있습니까?”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석판의 존재 이유,
인류문명을 능가하는 기술이 왜 이곳에 있고, 떨어졌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만 했다.
분명 누군가의 뜻이 존재했을 것이다.
태범은 이근휘 회장의 질문에 잠시 고민을 하고는 답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다른 문명이 지구에 전달해 준 기술로 보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 기술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라는 뜻이 아닐까요?”
* * *
[TB 자동차, 무중력 자동차 개발.]
[강태범과 데론 머스크의 합작품, 하이퍼루프 곧 상용화. 음속보다 빠른 이동시대가 열려.]
[샘성그룹, TB그룹에 흡수되나?]
태범이 석판의 비밀을 알게 되고 10년이 지났다.
누구에게는 짧은 시간일 수 있는 10년, 하지만 태범에게는 아주 길게 흘러갔다.
태범은 시간을 늘려 놓은 것처럼 10년을 100년처럼 활용했다.
단 10년이었지만, 인류에 수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고 새로운 문명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강태범 회장님, 오셨습니까?”
기술개발팀 팀장 임호진, 그는 광학을 다루는 연구소에서 태범을 맞이했다.
“방사선 흡착기는 제작 완료됐습니까?”
“네! 지시한 설계도에 맞게 제작했습니다.”
“그럼 한 번 확인해 보죠.”
“지금 말씀이십니까?”
“제가 드린 설계도로 그대로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정말 그랬다면 테스트 따위는 필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태범은 몸에 축적된 방사선을 몸 밖으로 배출시킬 생각이었다.
이미 몸 안에 쌓인 방사선은 빼낼 수 없다는 게 정설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달랐다.
태범은 고도의 기술력을 이용해 방사선을 분해, 배출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했고, 바로 지금 본인 몸을 상대로 시험할 생각이었다.
“그럼 기계 안으로 들어 가주시죠.”
태범은 원통으로 된 기계장치 안으로 몸을 넣었다.
그리고 웅~ 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가 작동됐다.
기계는 태범의 몸에 쌓인 방사선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스캐너의 사용으로 발생한 피폭, 태범의 피폭 사실을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다가 이 지경이 됐는지 궁금해했지만, 이근휘 회장을 제외한 누구도 알고 있지 않았다.
“대표님, 실행할까요?”
신체 분석이 모두 완료되고, 이제 작동 버튼만 누르면 된다.
기계를 관리하던 직원은 태범의 지시를 기다리며, 실행 버튼을 주시했다.
“네…… 실…….”
실행을 지시하려던 찰나였다.
입 밖으로 지시 명령이 내려지는 순간 환청이 들려온 것이다.
마지막 10년 전을 끝으로 사라졌던 환청이었다.
태범은 잠시 말을 멈추고, 환청을 집중해서 들었다.
알 수 없던 소음에 불과했던 환청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변했고, 마지막 이 두 문장을 남기고는 사라졌었다.
하지만 오늘 아무 예고도 없이 나타났다.
과거와는 달랐다.
환청은 단지 문장이 아닌, 태범의 이름을 거론하며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태범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지자, 임호진 팀장은 걱정스레 물었다.
“난 괜찮아요. 잠깐 중단하고 있다가 다시 하죠.”
“혹시 무슨 일이라도?”
“큰일은 아닙니다. 갑자기 혼자 생각할 게 생겨서요. 잠시 자리 좀 비켜주실래요?”
“네! 알겠습니다.”
난데없는 상황에 일단 같이 있던 임호진 팀장을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태범은 이 의문의 환청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혹시 나한테 한 말입니까?”
헉! 분명히 귓속에 들려오는 환청은 대답하고 있었다.
이는 일방적으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닌, 대화였던 것이다.
태범은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질문을 계속 이어갔다.
“당신은 누구시죠? 어떻게 제게 말을 걸어온 겁니까?
“저를 지켜봤다고요? 지금 어디서 저를 보고 말하는 거죠?”
“외계 생명체라도 된다는 겁니까?”
태범은 넋이 나갈 정도로 놀라운 순간이었다.
지금껏 자신을 괴롭혀 왔던 그 환청이 외계의 생명체의 말이었다니…….
“하나라뇨? 그게 무슨 말이죠.”
“저희 문명의 발달을 기다리셨나 보군요.”
태범은 이쯤에서 저들의 목적을 눈치챘다.
그리고 스캐너의 진짜 존재 이유가 밝혀졌다.
바로 외계 문명과의 접촉, 그리고 지구의 우주 공동체 편입.
낯선 이들은 스캐너를 매개체로 강태범이라는 인물을 키워내, 지구 문명을 발달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외계 문명에 낯섦이 없을 정도의 수준이 됐을 때, 인류는 새로운 세상을 맞게 되는 것이었다.
낯선 존재는 태범의 머릿속에 우주 지도와 좌표를 입력시키고. 그들이 사는 장소로 초대했다.
그곳은 외계와의 만남의 장소이자, 인류의 새 시작을 알리는 곳이었다.
* * *
또다시 10년 후.
“지구 역사상 가장 긴 시간 동안 우주여행을 할 우주인들이 막 이곳을 도착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과연 이번 탐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질지 기대가 됩니다.”
TV 속, 아나운서는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한 채, 역사적인 순간을 실시간 보도하고 있었다.
어떤 채널을 보든, 모두가 같은 곳, 같은 사람을 찍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강태범이 있었다.
곧이어 태범과 데론 머스크, 그리고 몇몇 우주인들이 특수한 우주복을 입고 나타났다.
그들 앞에는 거대한 우주선이 있었다.
태범은 인류를 대표하는 대부분 인물의 능력을 스캔으로 흡수한 상황이었다.
그것과 더불어 석판의 기술이 더해지며, 지구 상의 모든 능력과 지식이 합쳐져 만든 것이 바로 이 우주선이었다.
그런 의미로 이 우주선은 단지 태범의 것이 아닌, 모든 인류의 것이었다.
우주선이 출발하기 전, 태범은 우주인을 대표해 카메라 앞에 섰다.
그리고 짧게 한마디를 건넸다.
“우리 인류는 지금껏 어항 속 물고기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후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어항 속에서 나와 넓은 바다로 가려고 합니다. 잘들 지켜봐 주십시오.”
이 순간, 태범의 부모님은 물론 가족, 친구까지 모든 사람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은 인류의 축제였다.
세상의 모든 전쟁이 멈추고, 사람의 모든 시선은 이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태범은 인사 한마디를 끝으로 우주선에 탑승했다.
그리고 카운트다운과 함께 전 인류가 숨을 죽이며 이를 지켜봤다.
3.
2.
1.
“드디어 발사됐습니다. 오늘부로 인류는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발을 내디뎠습니다!”
우주선이 하늘로 치솟자, 아나운서는 흥분된 목소리로 발사 소식을 전했다.
슈욱~
태범이 탄 우주선은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는 분명 다시 돌아올 겁니다. 강태범, 그가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의인이니 말이죠!”
능력을 주는 스캐너(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