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
이근휘 회장은 태범에게 석판에 대한 모든 진실을 풀어놨다.
그의 말은 이러했다.
샘성 창업자이자 선대 회장이었던 이명춘은 젊은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이 석판과 함께했다고 한다.
석판의 정확한 출처는 알 수 없으나, 이명춘 선대 회장의 말에 따르면 길을 걷다가 우연히 하늘에서 떨어진 걸 발견한 거라 했다.
샘성을 창업하기 전, 쌀 배달 일을 하던 이명춘은 여느 때와 같이 배달을 나가다가, 조명 하나 없는 어두운 밤하늘에서 번쩍거리는 빛을 봤다.
1930년대, 그 당시는 지금처럼 네온사인이 밤거리를 비추고 그런 시절이 아니라, 정말 밤이 되면 암흑이 되던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은 오묘하면서도 신기하게 느껴졌을 것.
평소 호기심이 강했던 이명춘은 호기심을 참지 못해, 배달 일을 제치고 그 빛을 자전거로 쫓아 따라갔다고 한다.
그리고 빛이 마지막으로 끝난 곳은, 인근 산으로 이어지는 언덕 끝자락이었다.
이명춘은 자전거를 내팽개치면서까지 그 언덕 위를 올랐고, 결국 지금 이 석판을 그 자리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이 석판의 도움을 받아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샘성이 태어난 계기였다.
쌀 배달꾼에서 한 기업의 경영자로 뒤바꿀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석판에 있었다는 것이다.
“반도체 기술도 그렇고, 무선, 컴퓨터,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기술들의 원천이 바로 이 석판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저희가 풀지 못한 기술들이 이곳에 수두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석판의 주인은 우리의 문명보다 훨씬 월등한 존재들임은 분명하죠.”
차마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었다.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이 이야기를 듣고서 그냥 농담으로 웃어넘겼을 이야기다.
하지만 태범은 스캐너를 통해 이미 비현실적인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또한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이런 비밀이 숨겨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당연히 그렇죠. 이게 세상에 공개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도 이걸 빼앗기 위해 곳곳에서 우리를 공격할 게 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이 석판을 숨기며, 외부에는 절대 비공개를 원칙으로 삼고 있었죠.”
“그런 비밀스런 물건을 왜 저한테는 보여주시는 건지.”
태범 본인 같았으면 어디에서 말하지 않을 비밀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가족에게도 말이다.
지금 스캐너를 이용하는 것처럼, 어쩌면 이들도 이 석판을 이용해 지식을 얻고 회사를 키운 게 아닌가 싶었다.
“물론 강태범 대표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난 아무 말 하지 않았겠죠. 하지만 귀인을 찾아 이 석판을 전달하는 것도 내가 가진 또 다른 목적이기도 합니다.”
“귀인이요?”
이근휘 회장의 입에서는 난생 듣지도 못한 이야기들이 계속 흘러나왔다.
태범은 그 여느 때보다 눈이 번쩍이며 호기심을 나타냈다.
지금껏 본인만 가지고 있었던 비현실적인 비밀이 또 다른 곳에도 있으니 말이다.
동질감도 느껴졌고, 혹시나 수수께끼와도 같은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기대심도 가지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제게 줄기차게 한 말이 있죠. 하늘에서 귀인이 찾아온다면 이 석판을 전해달라고 말이에요.”
“그게 무슨…….”
“만병을 치료하는 의술가이자, 저 높이 먼 세상까지 날 수 있는 탐험가, 깨달음을 전해주는 교육자, 세상을 뒤엎는 혁명가. 이것이 바로 그 귀인이라고 했습니다.”
“아니, 그전에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건 무슨 의미죠?”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석판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한 말인지, 아니면 정말 귀인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말인지는 말이죠. 뭐, 어쨌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겁니다. 아버지가 말한 귀인이 바로 강태범 대표, 당신인 것 같단 말이죠.”
“제가 귀인이요?”
“사실 하늘에서 온다고 말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으나, 지금까지 저희 아버지에게 들었던 귀인의 특징이 강태범 대표와 많이 일치해서 그랬죠. 본인 스스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귀인에게 붙은 호칭들, 모두 강태범 대표를 말하는 게 아닙니까?”
이근휘 회장의 말에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정말 이근휘 회장의 말대로 귀인이라고 불리는 단어에 붙은 여러 가지 호칭들은 본인을 말하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혹시 내가 스캐너와 관련된 건가?’
태범은 자연스레 능력을 주는 스캐너와 연관 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능력을 주는 스캐너가 제작된 곳은 바로 샘성전자였으니, 이 일련의 불가사의한 일들은 연관이 있어 보였다.
‘사실을 말해야 하나.’
태범도 스캐너에 대한 진실을 이근희 회장에게 말할까 잠시 고민했다.
혹시 능력을 주는 스캐너에 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다.
무엇이 된 듯 간에 스캐너의 생산 업체는 샘성이었으니, 이건 그냥 인연이 아니다.
태범은 입 밖으로 스캐너라는 단어가 나오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며, 목구멍까지 나왔던 말을 삼켰다.
혹시나 이를 잘못 공개했다가는 또 다른 문제의 시작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럼 석판만 떨어진 겁니까? 아니면, 혹시 다른 물건은 없나요?”
태범은 직접적으로 스캐너를 언급하기보다는, 힌트를 얻기 위해 간접적으로 말을 돌렸다.
“그건 저도 자세히 모릅니다. 저희 아버지는 오직 이 석판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셨죠. 나도 이 석판의 진실은 나이 40이 넘고,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쯤에 들을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실체에 믿을 수밖에 없었죠.”
“회장님도 이 석판의 문자를 모르시는 것 같은데, 그럼 이걸 알고 있는 사람은 이명춘 선대회장님밖에 없었습니까?”
“그렇죠. 이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저희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없었죠. 사실 저희 아버지도 이걸 정확히 알고 있는지는 모릅니다. 그저 저 또한 아버지의 입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였기 때문이었으니까요.”
“그렇단 말이죠.”
결론은 이근휘 회장 역시 이 석판의 문자와 관련해 직접적으로 아는 건 없었다.
단지 아버지인 이명춘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로만 들었을 뿐이다.
사실 그러고 보면 이 석판이 이근휘 회장이 말한 대로 비밀을 품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이명춘 선대회장의 거짓말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러기에는 능력을 주는 스캐너라는 확실한 물건이 있기에,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잠깐! 그 방법을 사용하면 되는 거잖아?’
잠깐 고민을 하던 태범의 머릿속에 번뜩 이 문자의 의미를 알아낼 방법이 떠올랐다.
너무 쉬운 방법이었다.
이 문자를 아는 사람은 이명춘 뿐이라고?
세상 그 누구도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강태범이었으니, 그렇다면 이명춘이 되면 되는 게 아닌가!
“그럼 제가 이 문자를 해독해 오겠습니다.”
태범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게 가능하십니까?”
이근휘 회장은 놀란 듯 태범을 쳐다봤다.
“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제게 생각이 있거든요.”
“좋습니다. 그럼, 이 석판을 가져가시겠습니까? 전 강태범 대표가 원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들어 줄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미 석판의 문자는 제 머릿속에 들어 있습니다.”
* * *
이근휘 회장이 공개한 비밀의 석판은 태범을 한동안 혼란 속으로 몰고 갔다.
식사할 때도, 잠을 잘 때도, 일할 때도 모든 생각은 그 석판에 집중되어 갖가지 상상을 낳고 있었다.
그중 가장 많은 상상의 결과는 바로 스캐너와 석판의 관련성이었다.
누가 와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비현실적이고 미스터리한 것이 샘성이라는 같은 이름하에 놓여 있다면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처음 스캐너의 이상한 기능을 발견하곤, 오죽하면 샘성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했을까.
확실히 우연이 아니었다.
분명 샘성이라는 기업과 능력을 주는 스캐너는 큰 관련이 있다고 봤다.
‘결국 이명춘이 비밀을 쥐고 있는 건가…….’
12시가 지나고, 시계의 시침은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라면 12시가 되고 날이 바뀌자마자 스캐너를 실행했을 텐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많은 고민과 생각이 필요했다.
며칠 전 들려왔던, 의문의 목소리. 이건 또 무엇인지.
난 지금껏 살아온 인생 중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 앞에 직면해 있었다.
‘그래. 일단 해보자.’
태범은 포털 사이트에 이명춘의 이름을 검색하고, 이미지 한 장을 찾았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유명인 중 한명이었으니, 그의 사진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빛이 바래고 오래된 사진이었다.
옛 사람답게 대부분 흑백이던가, 옅은 색의 사진만 존재하고 있었다.
양복 곱게 차려입은 이명춘의 증명사진을 한 장을 뽑고, 사진을 스캐너 속에 집어넣었다.
[스캔할 능력을 선택해 주세요.]
[이명춘 능력]
-추진력(0%)
-리더십(0%)
-판단력(0%)
[지식 능력]
-아르탄의 문자(0%)
예상은 적중하다 못해, 미리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다.
[지식 능력]에는 태범이 필요로 하는 것이 눈에 띄게 나타나 있는 것이다.
“아르탄? 처음 들어보는 명칭인데…….”
수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담고 있는 태범조차 처음 듣는 문자 이름이다.
역시 수상한 것이 많은 문자였고, 이를 분명히 알아갈 필요가 있었다.
태범은 지체하지 않고, 이명춘의 지식능력을 스캔했다.
[아르탄의 문자를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0%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10% 진행되었습니다.]
스캔이 되고, 머릿속에 이명춘이 가진 지식이 각인되었다.
그러자 흐릿하게 나타나는 문자의 의미.
머릿속에 모두 암기해 놓은 석판의 문자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양자 기술’
‘중력 발생 장치’
‘시간의 초월’
한눈에 봐도 미래적인 기술의 단어들이었다.
그렇다.
석판 위에 적힌 건 갖가지 기술의 명칭과 이를 구현할 방법들이었다.
아직 스캔이 덜 진행됐고, 문자의 의미가 희미한지라 모두를 해석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스캐너를 진행하는 건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 다른 문제는 없었다.
* * *
태범이 이명춘을 스캔한 지 두 달이 지났다.
단 한 달이었을 뿐이지만, 태범에게는 몇 년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스캔이 진행될수록 문자의 의미가 하나씩 해석되고 있었다.
많은 걸 알아냈다.
일단 이 석판 위에는 지구의 문명을 넘어선 기술이 나열돼 있다는 것이었다.
태범 본인조차 놀랄 만한 것들이었다.
“양자 통신 기술이 현실화가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그뿐만 아닙니다. 앞으로 양자의 시대가 찾아올 겁니다. 시간과 공간에 제약받지 않고 거대한 데이터를 단숨에 처리할 수 있게 되겠죠.”
“아니, 이 문자를 어떻게 풀어낸 겁니까? 저희가 아무리 머리를 맞대도 이 석판의 의미를 풀어낸 사람이 없었는데 말이죠. 역시 강태범 대표입니다.”
해석한 내용을 이근휘 회장에게 전하자, 그 역시 놀라워하고 있었다.
석판 위에 지구 문명을 뛰어넘는 기술이 적혀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지라 놀랄 만한 사실은 아니나, 정말 태범이 확신한 대로 석판의 의미를 알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놀라긴 일렀다.
“회장님, 더 충격적인 사실 하나 말씀해드리죠.”
“뭐, 또 알아낸 게 있습니까?”
“이미 제가 말한 양자학 기술은 사용되고 있었더군요. 그것도 여기 샘성에서 말이죠.”
“뭐라고? 이미 이 석판에 적힌 기술이 사용되고 있다고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샘성이 내 손아귀에 있지만, 난 전혀 모르는 내용입니다.”
“당연히 모르실 수밖에요. 그건 회장님의 아버지, 이명춘 선대회장님의 작품이었으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