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
샘성그룹 이근휘 회장 예술작품 보관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샘성가만의 특별한 창고.
한 작품에 수억, 수십억씩 달하는 작품들이 즐비해 있는 이 공간은 지금껏 샘성가가 수집해 온 작품들이 놓인 곳이었다.
일반적으로 흔히 아는 그림, 조각, 공예뿐만 아니라, 오래된 컴퓨터, 우표, 희귀 장난감 등 가치를 지닌 별의별 물품들이 있었다.
바깥 빛을 보지 못하고, 이렇게 보관실 한편에 있는 게 아까울 정도로, 대부분이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오래전부터 샘성그룹이 해왔던 재테크 중 하나였다.
인간사에 특별한 가치를 지닌 예술품들은 시간이 지나도 감가상각이 되지 않으니, 안전한 자산 관리 느낌으로 모으고 있던 것이다.
샘성가의 예술적 취향이 어떠한지 이곳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샘성의 초대회장은 주로 도자기나 동양의 고미술품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초창기에는 이 창고를 고미술품 창고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근휘 회장부터는 달라졌다.
그는 과거와 현대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을 좋아했고, 분야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작품을 사들였다.
텔레비전을 통해 표현한 작품인 비디오 아트부터 시작해 세계최초의 휴대폰, 유명 기업의 첫 번째 컴퓨터 등 기계적인 작품들도 많이 보였다.
그가 수집하는 작품에는 소재나 시기를 따지지 않았고, 대다수 사람이 가치를 인정한다면 그것 자체가 뛰어난 예술작품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최근 이근휘 회장이 빠져있는 예술작품은 바로 태범의 그림이었다.
‘역시 그림마저 대단해.’
이근휘 회장은 며칠 전 낙찰 받은 태범의 그림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벌써 이 보관실에 걸려 있는 것만 6점이 넘었다.
태범의 미술작품의 값어치를 올린 장본인이 이근휘 회장이라고 불릴 만큼, 태범의 작품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이근휘 회장이 태범의 작품을 사들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물론 태범의 작품이 뛰어난 가치를 가졌음은 만인이 아닌 사실, 게다가 노벨상을 수상함으로써 가치는 엄청나게 상승했다.
또한 태범의 행보를 보아 앞으로도 대성과를 가져올 거라 예상할 수 있으니, 자연스럽게 작품의 가치도 상승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 재테크 수단으로도 딱 맞았다.
하지만 진짜 수집이유는 재테크에 있지 않았다.
어린 학생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물품을 모으는 것처럼, 규모는 다르지만 이근휘 회장도 비슷한 격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근휘 회장은 태범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태범은 생명에 은인이랑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세상과 거의 단절한 채 병원 침대에 누워 하루하루를 살던 날이었다.
앞으로 외부활동은 전혀 못 할 거라는 의사에 말도 있었다.
그렇게 이근휘 회장은 노년의 인생을 병원 침대 위에서 지낼 줄만 알았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신체의 노화와 모든 질병은 막아 낼 수 없었다.
이 사실에 처음에는 좌절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을 포기하게 됐다.
‘될 대로 되라’의 마음으로 몇 년간 병실 침대 위에서 살아왔다.
근데 정말 될 대로 된 것인가.
이근휘 회장에게 구세주와 같은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바로 강태범.
지금 두 발로 서서 이 보관실의 작품들을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그것이 태범의 손에 의해 현실이 됐다.
도롱뇽 프로젝트라고 불리던 세포재생 기술을 통해 잃었던 건강과 함께 새 노년의 삶을 찾은 것이다.
그 때문에 이근휘는 태범의 열렬한 추종자가 돼 있었다.
* * *
노벨상 시상식은 12월 10일, 오후 4시 반에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콘서트 하우스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노벨 평화상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는 모두 이곳에서 시상된다.
노벨상 종목과 관련해 세계 각지에서 온 권위자 천여 명이 시상식장의 자리를 채워줬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온 기자단들도 시상식에 초청돼 자리를 채워주고 있었다. 과거에는 대한민국 기자단이라 해봤자 5명 이내로 초청됐었지만, 오늘만큼은 그의 열 배인 50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는 뭐니 해도 대한민국의 두 번째 노벨상이 탄생한다는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세계가 주목하는 인물, 강태범의 수상이니 노벨재단 입장에서는 태범의 당사국인 대한민국의 기자들은 대거 초청했다.
태범 한 명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이 바뀐 셈이었다.
4시 30분이 되는 순간.
왕과 그의 가족의 입장을 알리는 팡파르 곡이 흘러나왔다.
단상 바로 옆에 특별히 마련된 자리에 왕과 가족들이 앉았다.
왕이 자리에 앉고, 노벨재단의 이사장의 개회식이 시작됐다.
“노벨상은 인류에 큰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수여가 되는 상으로, 수상자분들은 모두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그을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항상 이런 선구자들에 의해 변화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저희가 수상하는 노벨재단은 이러한 인류 변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사람을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희가 찾은 선구자들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개회식 발언이 모두 끝나고, 본격적인 시상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물리학상 수상자가 단상에 올랐다.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배너 비리시입니다.”
스웨덴 왕이 직접 노벨상 수상자들에게 메달과 함께 상장을 전달했다.
금빛 메달에는 노벨상의 설립자인 노벨의 상반신 초상이 새겨져 있었다.
투박하면서도 조그마한 메달이지만,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권위 있고 명예로운 상이었다.
그리고 상을 받은 수상자들은 수상소감을 한마디씩 하며, 인류 사회에 메시지를 전달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권위자들의 박수 속에 수상자들은 감격을 누리며, 메달을 들어 올렸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강태범 씨입니다.”
드디어 태범의 차례,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던 태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 앞으로 나갔다.
확실히 다른 수상자들과는 다르게 사람들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물론 수상자는 모두 동등한 입장이긴 하나,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격은 그렇지 아니했다.
젊은 나이와 연구 결과를 뛰어넘어 실제 인류 건강에 변화를 가져오는 성과,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서 보이는 천재적 능력은 태범의 가치를 누구보다 크게 생각하고 있었다.
노벨상 수상자들 사이에서도 최고 스타인 셈이었다.
짝짝짝짝-
스웨덴 왕으로부터 상을 수여받으면서 큰 박수 소리와 함께 크나큰 영광을 누렸다.
태범은 감격에 찬 표정을 짓고는 상장과 함께 메달을 손에 쥐고, 소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게 이렇게 대단한 상을 제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도 꿈만 같고 믿기지 않네요.”
강단 위에서 권위자들에게 둘러싸여 밑을 바라보니, 팔에는 닭살이 돋았다.
태범은 지금껏 누렸던 영광 중 최고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이었다.
단지 사적인 영광이 아닌, 전 세계에 큰 공헌을 한 대가로 이 자리에 섰으니 말이다.
“사실 몇 전년만 해도 제가 노벨상을 받을 거란 건 정말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전 단지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었죠.”
모든 게 스캐너 덕분이었다.
지금 소감을 말하는 이 순간에서도 태범은 스캐너를 떠올리고 있었다.
차마 말할 수는 없는 비밀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저의 능력을 믿고 지지해 주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상은 저만을 위한 상이 아닌, 저와 함께해 준 모두를 위한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상에 대한 보답으로 전 여기서 멈추지 않고 모두와 인류를 위해 계속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상소감이 간단하게 끝나고, 관중들은 일제히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이 모든 광경이 전 세계를 통해 생중계됐다.
태범이 소감을 통해 전달한 메시지는 전 세계, 인류를 상대로 새 약속을 한 것이었다.
* * *
태범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나라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켜면 모든 언론사가 태범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전했다.
태범의 일거수일투족을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하며 국민의 관심을 대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온종일 태범의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았고, 태범과 관련된 각종 이슈들이 입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지금 당장 국회의원이 하고 싶다면, 바로 당선될 기세로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가 보내지고 있었다.
국민들의 큰 반응은 대한민국에서 노벨상이 가지는 엄청난 의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실상 대한민국은 노벨상 불모지로, 노벨 평화상 이후에는 전혀 수상 희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기껏해야 평가 기준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문학상 정도만 기대될 뿐, 기술적인 부분은 나오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기초과학은 다른 나라에 비하면 부족한 수준이라 생각하고, 학문적 연구보다는 생산성만 중요시하는 풍토를 욕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본은 20개에 가까운 노벨상인 반에 대한민국은 단 1개에 그치다 보니, 이에 대한 불만이 아주 컸다.
하지만 태범이 노벨상 한 개를 들고 오니, 국민들은 이토록 반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보통의 노벨상과는 격이 달랐다.
태범의 성과는 인류 의학 역사 전체를 뒤흔들 만한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었다.
이론적인 결과에서 끝난 게 아니라,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태범의 개발한 기술을 통해 새 삶을 얻고 있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얼마 없다는 희소성까지 더해져 노벨상 수상자 탄생은 나라를 흔들 정도였다.
“강태범! 강태범!”
스웨덴에서 뜬 비행기가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나타날 때쯤, 기자들은 물론 이를 구경하고 있던 시민들까지 모두 태범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웬만한 한류스타 아이돌 저리 가라 하는 인기였다.
태범을 기다리는 인파가 내뱉는 함성은 공항을 가득 채웠다.
오늘 하루, 태범의 지지자들이 공항을 전세 낸 것만 같았다.
“오오! 나온다. 나와!”
문이 열리고 입국장을 통과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태범이 나타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찰칵찰칵-
기다리던 태범이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지기 시작했다.
태범의 인기를 증명하듯 카메라 셔터는 눈이 부셔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공항을 가득 채웠다.
“노벨상 수상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 기분이 어떠십니까?”
“지금껏 강태범 대표님을 기다려온 대한민국 국민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태범이 지나가는 길마다 기자들은 벌떼같이 달라붙어 질문을 건넸다.
자칫하면 사고가 날수도 있는 상황, 공항 경비인력과 경찰, 그리고 사설 인력까지 총동원되어 태범을 보호하며 포토라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정부에서 미리 준비한 축하 플래카드가 걸린 곳이었다.
그래도 노벨상을 받고 대한민국 땅을 밟았을 때, 횡 지나가는 것보다는 국민들에게 한마디라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계획된 것이었다.
“저를 응원해 주시고, 지지해 주시던 국민 여러분께 정말 감사합니다. 이 순간만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저 스스로에게 자랑스럽습니다.”
태범은 수여받은 금빛의 메달을 국민들 앞에 자랑스럽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 시각, 시상식부터 시작해 모든 동선을 TV를 통해 생중계로 보던 태범의 부모님의 눈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친인척이 모두 부모님 집에 모여 한바탕 축제의 장을 열었다.
그 누구 집안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거라 생각했을까.
자기 자식 학교에서 상장만 받아도 여기저기 자랑하는 부모님들인데, 노벨상은 자랑 수준을 넘어선 경이로운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