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
방사선보건원.
“강태범 씨. 검사 결과 나왔습니다.”
“네. 어떻게 나왔죠?”
태범은 스캐너에서 방사선이 방출된다는 사실을 알고, 방사선보건원에 찾아가 실제 피폭량을 검사했다.
스캐너 작동 시 방사선 측정기로 확인했을 때, 위험 경고음이 강하게 울릴 만큼이나 높은 수치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정말 이대로라면 태범의 신체 내부에 피폭이 의심됐고, 최근 겪고 있는 신체적 이상 현상이 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의심되기도 했다.
이는 의심을 풀기 위해서는 필요한 검사였다.
태범은 인체의 축적된 방사선량을 측정할 수 있는 전신 계수기를 통해 내부 피폭량을 측정했고, 그 결과가 지금 나왔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고 다니기에, 이렇게 피폭이 되신 겁니까? 어디 방사선이 노출된 위험한 곳이라도 다녀오셨습니까?”
의사는 완전히 기겁하고는 태범에게 물었다.
도대체 얼마나 심하면 저러는지, 항상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던 태범이 겁이 날 정도였다.
“도대체 얼마나 심하면, 그러는 거죠?”
“이것 보세요. 지금 살아 계시는 게 신기한 정도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당장 병이 생기셔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결과표를 보고 의사는 물론, 태범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안전기준치를 훨씬 넘어서, 신체적인 변형을 일으킬 만큼이나 높은 수치의 방사능이 검출된 것이다.
“흠…… 심하네요.”
“당연하죠! 전 지금 이게 제대로 측정된 건지도 의심이 가는 상황입니다. 사실상 이 정도 수치면 태범 대표님이 지금 이렇게 걸어 다니는 것조차 말이 되지 않거든요.”
의사는 이 사실을 차마 믿기 힘들어했다.
초인도 불사신도 아니고,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불가능이 현실 앞에 펼쳐지니 의사는 억지로 믿을 수밖에.
“혹시 이 정도 피폭량을 가진 사람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태범이 의사에게 물었다.
“아니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겁니다. 애초에 그런 사람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테니 말이죠.”
“역시 그렇군요.”
태범 본인이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신체를 가졌음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능력을 주는 스캐너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이라고 생각하는 기능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표님, 이건 일반 장소에서 얻은 피폭이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되셨는지?”
의사는 다시 한번 피폭의 원인을 궁금해하며 질문했다.
피폭이 된다는 건 일반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연 방사선이나 X-RAY, 암 치료 등 많은 곳에서 방사선을 받을 수 있지만, 태범의 몸에 축적된 방사선의 양은 이런 일반적인 부분에서 발생할 수 없는 정도였다.
인근 원자력 발전소가 폭파됐거나, 핵폭탄이라도 떨어진 지역에서나 얻을 만한 피폭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특별한 연구 중에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선생님도 TV나 인터넷 보셨으면 잘 아실 겁니다. 제가 투자만큼이나 과학기술에도 관심이 많다는 거.”
태범은 연구를 변명 삼아 둘러대며 말했다.
무슨 X-RAY도 아니고, 스캐너에서 방사선이 방출된다면 누가 믿을까.
그리고 의사라 할지라도 이 사실을 공개하고 싶지도 않았다.
비밀이라는 건 조금 세어나는 순간, 세상에 알려지는 건 금방이다.
“오늘 결과 어디 가서든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꼭 비밀 지켜주세요.”
태범은 비밀유지를 강조했다.
세계의 시선이 태범에게로 향하고 있는 만큼, 부정적인 이슈거리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비밀을 유지해야 할 스캐너로부터 발생한 방사능이라, 괜히 자칫하다가 스캐너가 노출될까 우려가 있었다.
이 사실은 의사와 태범 단둘만이 아는 사실로 끝나야만 했다.
“네. 물론 검사 결과는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외부로 노출될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태범 대표님이 너무 걱정되네요.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오늘내일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정말 위험한 상황입니다. 지금은 기적으로 간신히 살아 계실 정도라니까요.”
태범은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으나, 의사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며 위험을 알렸다.
사실 의사의 말이 하나도 틀린 건 없었다.
실제 피폭량에 따른 인체의 영향을 보면, 사실상 태범이 가진 피폭량은 죽음에 이르는 양이었다.
그러다 보니 걱정에 앞서 멀쩡히 두 발로 걸어 다니는 태범이 신기할 정도였다.
의사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어리둥절했다.
“저를 신경 써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 몸은 제가 알아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정말 비밀만 꼭 주셨으면 합니다.”
걱정하는 의사와 달리 태범은 태연하게 비밀유지만을 강조한 채 자리를 떴다.
* * *
[천체물리학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38%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39% 진행되었습니다.]
삐삐삐-
‘역시나 이번에도…….’
스캐너에서 강한 빛이 방출되는 순간, 내 몸 안으로 인물의 능력이 각인된다.
그것도 방사선과 함께 말이다.
‘이 방사선이 능력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던 건 아닐까.’
어찌 보면 참 아이러니했다.
물론 방공호는 스캐너를 숨기기 위한 명분이지만, 어쨌든 방공호라는 이름답게 외부의 공격에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런 공간에서 방사능이 배출되고 있다.
‘모르겠다!’
아무리 고민을 해봤자 답을 알 수 없는 문제였다.
더 이상 고민을 멈추고, 태범은 방공호를 빠져나와 집안 서재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항공 물리학과 천체물리학 관련 공부를 시작했다.
세상에 있는 논문과 연구 자료들은 모두 태범의 손을 거치고 있었다.
스캐너로 얻은 능력과 지식 외에, 세상 모든 지식을 머릿속에 담아버리겠다는 태범의 의지가 담기기도 했다.
이는 앞으로 더 미래적이고 규모 있는 투자를 성공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 * *
따르릉-
“아! 뭐야.”
최근 불면증으로 시달리며, 잠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이제야 꿈나라로 가나 싶었는데, 머리맡에 둔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태범은 눈을 감은 채 손만 휘적거리며 핸드폰을 찾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TB 금융 투자의 강태범 대표님 전화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누구시죠.”
“노벨재단에서 전화드리는 겁니다. 축하드립니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시게 되었습니다.”
“네? 노벨재단이라고요?”
잠결에 전화를 받은 태범은 아직 어리둥절해했다.
뜬금없이 이 새벽에 전화가 와서는 노벨 수상을 축하한다고 하니, 무슨 수상 소식을 이 새벽에 전화로 알릴까 싶었고, 장난 전화가 아닌지 의심이 되는 상황이었다.
“놀라셨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저희가 비밀유지 때문에 수상자 발표 전날 이렇게 바로 전화 연락드리고 있습니다. 시차 때문에 좀 불편하시겠지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전화를 건 사람도 많이 겪어본 반응이었는지, 상황을 능숙하게 대처했다.
자세한 설명과 안내에 태범은 감겨있던 눈이 번뜩 떠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 장난 전화 아니죠?”
“하하하. 수상자분들이 간혹 태범 씨처럼 생각하곤 합니다. 아무 예고도 없이 전화로 수상결과를 알리는 것도 좀 이상하니까요. 그래도 어쨌든 장난은 아니니까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저한테 이렇게 위대한 상을 주셔서.”
“아닙니다. 받을 만한 자격이 있으시니 받는 겁니다. 엄격한 심사로 받으신 만큼, 자랑스러워하셔도 됩니다.”
전화를 받는 태범은 피식하며 미소를 지었다.
수상을 했다는 사실이 좋아서 웃는 것도 있지만, 잠옷을 입은 상태에서 침대에 누워 잠결에 일어나 수상 소식을 들으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시상식 일정을 포함해 자세한 정보는 서한을 통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꼭 시상식에 참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입니다. 꼭 가도록 하겠습니다.”
* * *
태범이 수상 사실을 연락받은 이후, 바로 노벨상 수상결과가 세상에 공개됐다.
그리고 예상처럼 언론을 포함해 여론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강태범 대표,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확정.]
[이변은 없었다. 강태범 대표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대한민국 두 번째 노벨 수상자, 대한민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역시 강태범이 받는구나. 응원한다!
└축하드립니다. 강태범 대표님. 앞으로도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 이끌어 나가시는 분이 되면 좋겠네요.
└대한민국에도 이런 인재가 나오다니, 몇 년 사이에 갑작스레 세상이 변하니 알다가도 모르는 세상이네요.
* * *
경매회사인 코리아옥션 열리는 미술품 경매 현장.
코리아 옥션은 조각, 회화, 공예품과 같이 각종 미술품 취급하는 기업으로 주로 고가의 미술품을 경매 중계해 수익을 얻는 회사였다.
오늘은 특별한 미술품이 경매에 올라오는 날인만큼, 사람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가치라는 건 시간과 때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었다.
길거리 돗자리 위에서 만원에 팔리던 미술품이 알고 보니 유명 예술가의 작품이라, 수억, 수십억에 팔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미술품의 가치는 기능이 아닌, 사람의 관심에 따라 정해졌다.
그저 도화지 위에 검은 점 하나 찍은 작품을 수십억에 사 가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렇게 오늘 사람들의 관심과 함께 가치를 가득 품고 있는 작품 한 점이 경매장에 올라왔다.
경매장 앞 스크린에 나타난 건 천사와 악마가 그려진 그림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다르게 천사와 악마 이미지는 흑과 백으로 나누지 않았고, 편견을 뛰어넘는 그림이었다.
“강태범의 천사와 악마의 만찬입니다.”
본격적인 경매를 시작하기 전 경매사는 미술작품을 간단히 소개했다.
그렇다.
이번 경매에 올라올 것은 바로 강태범의 미술작품이었다.
TV 프로그램인 ‘세상에 신기한 일이’에도 잠깐 모습을 나타냈던 적이 있는 작품이었고, 태범의 옛집 거실 한 벽에 걸려 있던 작품이기도 했다.
“1억부터 시작해 300만 원씩 올라갑니다.”
경매사의 시작 멘트와 함께 경매가 시작됐다.
“1억 300만 원!”
시작과 동시에 경매에 참가한 사람들은 각각 지정된 번호 팻말을 들어 올리며 입찰을 신청했다.
시작부터 치열한 것이 전쟁과 다름없었다.
“1억 5천!”
이제는 금액이 천만 원씩 올라갔다.
1억에서 시작한 입찰금액은 벌써 50%를 넘어 1억 5천을 달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세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무조건 이 미술품을 손에 넣을 거라는 의지를 보인 채, 비장한 모습으로 입찰 팻말을 들어 올렸다.
“1억 7천!”
열기가 점점 뜨거워지고, 경매사의 목소리도 잔뜩 흥분된 상황이다.
경매사는 긴장된 분위기를 잔뜩 고조시키며, 입찰가를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1억 8천!”
시작가의 2배에 가까워지자, 그렇게 올라오던 입찰 팻말은 하나둘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사실상 낙찰자의 윤곽이 드러날 때였다.
몇 남지 않은 낙찰 경쟁자끼리 슬슬 눈치 싸움에 들어가기도 했다.
단 한 번의 타이밍에 수천만 원이 움직이니, 괜히 과열된 판에 끼어들었다가 덤터기만 쓸 수도 있기 때문에 잘 생각하고 입찰에 끼어들어야 했다.
“1억 9천!”
“2억!”
경매 시작가의 2배가 되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예상했던 추정가를 뛰어넘고 있었다.
태범이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결과가 나오자, 미술작품의 가치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사람의 가치가 곧 미술작품의 가치로 연결됐다.
“2억 5천!”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 입찰가.
경매장은 긴장으로 가득 차, 과연 얼마로 낙찰이 될지 모두가 궁금해하던 찰나였다.
“3억!”
뜨거운 경매 분위기에 마침표를 찍듯, 저 멀리 누군가 입찰 팻말을 들어 올렸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 있는 노인, 샘성의 이근휘 회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