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
“당신 어떻게 내 모든 걸 알고 있는 거지? 혹시 스파이라도 심어 놨나?”
“스파이라…… 하하하.”
버니 회장의 물음에 태범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전화를 타고 들려왔다.
혼자 마음껏 상상을 펼치며 고민했을 버니 회장의 모습이 떠올라 웃은 것이다.
버니 회장은 풀지 못할 숙제를 풀고 있는 것과 같았다.
“심지어 절 죽일 계획까지 하고 계셨더군요. 쯧쯧. 아무리 그래도 사람의 목숨까지 그래야 했습니까?”
태범은 질문을 한 단계 더 높여,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들의 계획까지 예견했다.
마지막 계획까지 모두 들켜버린 버니 회장은 적 앞에서 온몸이 다 벗겨진 느낌이었다.
그는 더 이상 숨길 게 없었다.
“아니, 뭐야. 당신. 어떻게 그걸…….”
“굳이 어떻게 알았는지 알 필요가 있을까요? 이미 결론이 나 있는데 말이죠.”
“그럼 나한테 원하는 게 뭐지?”
“사실 이번 싸움이 시작한 것도 모두 당신들 때문 아닌가요? 어쨌든 싸움을 거셨으니 그에 합당한 대가는 돌려받으셔야죠.”
“날 무너뜨리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너 같은 애송이가?”
“아직도 상황파악이 되지 않는 모양이군요. 뭐, 좋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든 그건 본인 자유니 말이죠. 하지만 본인에게 다가올 대가에는 피할 수 있는 자유가 없을 겁니다.”
“뭐!”
태범은 약이 잔뜩 오른 버니 회장을 벼락 끝까지 밀고 나가고 있었다.
협박과 회유, 그 어떤 것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태범의 태도에 버니 회장도 말이 턱! 하고 막힐 뿐이었다.
“그럼. 몸조리 잘하시고,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이봐! 강태범!”
태범에 의해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 버니 회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고 결국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바닥에 부서진 휴대폰 잔해들이 버니 회장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완전히 으스러졌다.
“회, 회장님!”
옆에 같이 있던 전무이사를 포함해 직원들도 놀라긴 마찬가지, 대충 분위기만 봐도 버니 회장이 얼마나 벼랑 끝에 내몰렸는지 알 지경이었다.
“다…… 끝났어.”
“회장님,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강태범 그놈이 뭐라고 한 거죠?”
“당장 여길 떠야 돼.”
버니 회장은 전의를 상실한 패잔병의 모습이었다.
* * *
[세계 1위 제약회사, 마틴의 굴욕.]
[영국 정부, 마틴 회장을 포함 임직원 구속.]
[이권세력은 어떤 식으로 변화를 거부했나?]
[마틴과 동반 관계를 맺은 이권세력에 대한 조사 실시.]
그렇게 세계 1위 제약회사 마틴은 한순간에 몰락했다.
지금까지 탄탄하게 쌓아온 그들의 입지가 있었지만, 전 인류의 건강을 담보로 파렴치한 행위를 해온 마틴은 모두의 비판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태범이 흘린 정보는 마틴이 빼도 박도하지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으로 몰고 갔다.
그리고 마침내 마틴은 공중분해 직전까지 오게 됐다.
* * *
“강태범! 강태범! 강태범!”
이번 사건을 마무리 짓기 위해 마련한 기자회견이었다.
기자회견장의 있는 기자들은 일제히 태범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했다.
객관적인 정보를 전해주는 기자들은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것 이전에 그들 또한 사람이었고, 이번 사건을 통쾌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의 감정으로써 태범은 세상을 정화시킨 영웅과도 같았다.
환호 소리를 받고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태범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온 장수의 모습과도 닮았다.
척추와 어깨를 쫙 펴고 등장해, 자신만만한 자세로 이번 싸움의 결과를 본인 생각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인류 전체적인 성장이 될 수 있던 부분을, 개인적인 사욕 때문에 방해하고, 음모하고, 심지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까지 하는 파렴치한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애꿎은 사람들만 피해를 봤고, 인류발전에 큰 악을 끼치게 됐죠.”
“솔직히 말해서, 이번에 터진 제약, 의료산업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에서도 지금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 않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 존경하는 기자 그리고 국민 여러분들이 감시자 역할이 돼주어 세상을 잘 살펴주셨으면 합니다.”
사건의 전말부터 시작해, 태범은 개인적인 의견까지 모두 털어놓았다.
그리고 시작된 질문시간. 기자들의 공통된 질문은 이러했다.
“마틴에 대한 모든 정보는 어떻게 얻으십니까? 아무나 얻기 힘든 정보였을 텐데 말이죠.”
정보 습득 방법은 기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었다.
세계 1위의 제약회사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만큼, 정보를 얻었다는 건 일반적은 방법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그 방법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차마 말할 수 없는 비밀에 태범은 여전히 이를 숨겼다.
“저만의 정보 습득 루트가 있습니다. 그건 일에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차마 말씀드릴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 그러시군요.”
평소의 기자였다면, 끝까지 파고들었을 질문도 태범의 단 한마디의 부탁에 조용해졌다.
태범에 대한 신뢰가 쌓인 결과였다.
그들은 궁금하면서도 꾹 참은 채 태범을 믿고 있었다.
“모두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제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깨달은 게 있다면,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본인이 죽고 나서라도 밝혀지는 것이 바로 비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인생 또한 영원한 숨김이 없다는 걸 전제하에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태범의 말은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 * *
“태범 씨, 이번에 스낵피쳐 사용자 수가 급등한 거 알고 있어?”
“응. 보고 받아서 알고 있지.”
“정말 이러다가 비시지북 따라잡을 것 같아. 안 그래도 이번 마틴 사건으로 하루 종일 스낵피쳐 이야기로 떠들어대더라고. 태범 씨 예상대로 큰 도움이 됐어.”
캐서린은 태범과 전화통화를 하며 스낵피쳐의 대성공을 알리고 있었다.
태범이 공격의 출구로 사용하던 스낵피쳐는 전 세계인의 관심과 함께 세계 1위 SNS인 비시지북을 넘볼 정도로 성장하고 있던 것이다.
태범의 생각이 들어맞았던 것이다.
무엇이 됐든 간에 사람들 귀에 익숙해지며 관심도가 높아질 거라 생각했고, 스낵피쳐의 기능도 다른 SNS에 비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이건 성공을 떼 놓은 당상이었다.
“캐서린, 일이 마무리되면 영국으로 놀러 갈게. 중요하게 할 말이 있거든.”
“나야, 언제든 환영!”
* * *
“박사님. 조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오해를 풀 수 있게 되셔서 다행입니다.”
국민적인 사기꾼이었던 양동건 박사는 이제 다시 명예를 찾을 수 있었다.
태범 앞에 앉아 있는 그는 이제 모든 걸 이뤘다는 표정으로 함박웃음을 한껏 지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태범 대표님이 아니었으면 전 아마 억울해 죽었을 겁니다. 저승에 가서도 억울한 마음에 저승도 못 가고 이승을 떠돌았을 겁니다.”
양동건 박사의 두 손은 태범의 손을 꽉 쥐고 있었다.
그의 감사함이 몸으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이나 가슴속에 담겨 있어 보였다.
“그럼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생각이십니까? 이제 더 이상 박사님에게 눈초리를 보내고, 방해하는 그 누구도 없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다시 한번 내가 국민들에게 보여드리지 못했던 배아 줄기세포를 연구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게 감춰지고 숨겨졌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정말 두려울 것 없이 내가 원하는 것 모두 하겠습니다.”
사기 사건 이후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대한민국에서 완전히 막히다시피 했었다.
명목은 생명윤리 문제로 연구를 금지시켰지만, 사실상 양동건 박사의 논문조작 사건으로 일궈진 여파로 금지가 된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이권세력의 방해 공작으로 일어난 일이라는 걸 알게 된 이상, 정부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 보였다.
“박사님,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재개하실 거면, 제가 연구지원을 돕겠습니다. 안 그래도 박사님의 그 기술은 제 세포재생 기술만큼이나 혁신을 가져올 거라 믿고 있거든요. 제가 이래 봬도 투자자입니다. 미래를 보는 안목이 있죠.”
“지금까지 저를 도와주셨는데, 굳이 안 그러셔도 됩니다. 괜히 끝까지 민폐인 것 같아서…….”
“아닙니다. 저를 위해서, 그리고 모두를 위해서 투자를 하는 겁니다. 제 일을 하는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감사하지만…… 내가 계속 도움만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충분히 받으셔도 됩니다. 일평생 연구해 오신 일들이 한순간에 몰락하고, 사기꾼으로 몰렸을 때 그 심정은 아무리 들어도 당사자만큼 모르겠죠. 지금까지의 어려웠던 고생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는 그 어떤 것도 받으셔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거절하지 마시고, 오는 것 다 받으세요.”
앞으로 잃었던 신뢰를 되찾고, 오해를 했던 국민들과 사람들로 의해 많은 보상이 갈 거라 보였다. 태범은 양동건 박사가 조금의 사양도 없이 모든 호의를 다 받았으면 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백 번 천 번,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 * *
두 달이 지났다.
이제 태범은 자신을 노리는 적도 사라졌고, 큰 걱정거리가 하나 떨어져 나가 여유를 되찾던 중이었다.
태범의 승리로 마무리된 이번 싸움의 결과로 TB 금융 투자의 기업 가치는 천정부지로 상승하며, 대한민국 1위 기업으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이 태범의 성공적인 스토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국민 영웅으로 대접해 줄 만큼이나 태범에 대한 신뢰도는 쌓여만 가고 있었다.
슬슬 노벨상 수상에 대한 소문들이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노벨상은 발표 이전까지는 수상자에 대한 정보는 비밀이 유지됐지만, 전 세계의 분위기와 더불어 성과를 보자면 태범이 노벨상 수상을 한다는 건 거의 확정적이었다.
태범은 인간 생명의 역사를 새로 쓴 전 인류의 영웅이었다.
* * *
“으악!”
또 악몽이다.
눈을 감고 침대에 눕기만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귓속에 웅성거리는 환청이 들린다.
낯선 인기척이 이제는 환청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불면증까지 생겼다.
마치 바퀴벌레가 새끼를 까며 지긋지긋하게 번식하듯, 하나의 병은 새로운 병을 낳으며 태범을 괴롭히고 있었다.
“도대체 내게 무슨 말이 들리는 거지?”
불규칙적인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환청에는 일정한 규칙의 패턴이 있었고, 언어와 유사했다.
하지만 언어라고 하기에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
어쩌면 망상 속에 구축된 상상의 언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요즘 따라 신체적 변화가 강하게 느껴지는 만큼 충분히 의심해 볼 만한 생각이었다.
* * *
[천체물리학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30%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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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이 31% 진행되었습니다.]
마틴 회장 이후 다음 인물로 천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능력을 스캔하고 있었다.
루게릭병으로 몸이 불편한데도, 아인슈타인을 이을 물리학자로 불릴 만큼 대단한 사람이었다.
투자의 범위를 우주산업까지 확장하려던 태범에게 딱 적합한 인물이기도 했다.
삐삐삐-
스캔과 함께 태범이 쥐고 검은색 측정기에서 고막을 때리는 경고음이 울렸다.
최근 스캐너에 대해 한 가지 발견한 사실이 있다.
스캐너가 작동 시 발생하는 빛에서 방사선이 배출된다는 것이었다.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스캐너가 신체적 변화를 일으키는지 많은 연구를 했었다.
최고의 방법은 스캐너를 분해하는 것이겠지만, 재복구가 될 수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외적인 작용만 보고 판단해야만 했다.
그렇게 작용을 떠오른 것이 방사선이었다.
방사선은 신체의 DNA에 직접 작용하며 세포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전자파였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 방사선을 측정해 봤는데, 놀랄 만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