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병실 천장의 형광등이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태범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대표님.”
의사뿐만 아니라, 익숙한 직원들도 함께했다.
그들 중 윤희성 이사가 침대 옆으로 다가오더니 물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머리를 아무리 굴려 봐도 왜 병실에 누워있는 건지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분명 회의 중이긴 했는데, 그 이후로는 생각이 나질 않는다.
‘맞다! 이명.’
눈을 뜨기 전 마지막 기억은 귀에서 들려오는 낯선 소리로 인한 고통이었다.
고막을 넘어 뇌까지 후려 패는 듯한 고통. 그렇게 고통을 이기지 못하며 정신을 잃었었다.
“대표님, 갑자기 쓰러지셔서 저희가 병원으로 급히 이송시켰습니다.”
“네. 그런 것 같군요. 근데 제가 왜 쓰러진 거죠?”
태범의 물음에 옆에 있던 의사가 답했다.
“저희가 필요한 검사는 다 해봤습니다. 한데…… 몸에는 아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일시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실신이 아니었을까 추측됩니다.”
태범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트레스요? 그러기에는 통증이 너무 강했습니다. 고막을 찢는 듯한 통증이었어요.”
“들었습니다. 쓰러지기 직전 귀를 부여잡고 쓰러졌다고 하셔서, 귀 내부 검사까지 다 해봤는데 큰 이상은 없으셨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어떻게 사람이 기절할 정도로 큰 고통이었는데, 아무 이상이 없을 수가 있죠.”
“흠…….”
태범의 질문에 의사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골똘히 생각했다.
검사상 이상은 없다곤 하지만, 증상을 보니 그냥 지나치자니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혹시나 결과만 믿고 있다가, 후에 안 좋은 결과가 생겨버리면 의사 입장에서는 크게 곤란해질 상황이기도 했다.
게다가 태범은 VVIP 수준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염려는 더해졌을 것이다.
“아니면 시간이 좀 걸리시더라도 검사를 자세히 받아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급하게 임시로 검사를 하긴 했지만, 혹시 저희가 발견하지 못한 게 있을 수도 있거든요.”
“대표님, 그렇게 하시죠. 일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건강보다 중요한 게 있겠습니까?”
의사는 또 다른 검사를 제안했다.
옆에서 걱정스레 의사의 말을 듣던 윤희성도 그 제안을 거들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스케줄을 조정해서 검사받으러 오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이라 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간단한 병이라도 신경을 쓰고 주시해야 하죠. 특히나 대표님같이 대단한 일을 하시는 분은 더더욱 말이죠.”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럼 오늘은 이만 퇴원해도 되는 거죠?”
“네. 바로 퇴원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혹여나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저희 병원에 연락해 주시고요. 저희 병원장님이 대표님 잘 케어하라고 특별히 지시하셨습니다.”
“하하. 고맙네요. 그거. 그럼 일어나보도록 하죠.”
* * *
“풋…… 어쩜 이럴 수가 있지.”
스캔을 하기 위해 들어온 방공호에서 태범은 어처구니 다는 듯 헛웃음을 지어냈다.
오늘 일어난 기절 사건 때문이었다.
세계 의학계의 획기적 발전을 이뤄낸 태범이 고작 본인 몸 하나 신경 쓰지 못한다면, 그보다 웃긴 건 없었으니 말이다.
지금껏 스캐너의 능력을 어떻게 활용할까 생각만 했지, 정작 본인 몸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너무 목적에만 몰두하다 보니, 가장 가까운 본인 건강에게 소홀했던 것 같았다.
태범은 오늘 경험으로 다시 한번 건강의 소중함을 제대로 느꼈다.
지금껏 스캐너 때문에 기고만장해진 것도 있었지만, 오늘 같은 경험으로 본인 역시 한없이 약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태범은 그렇게 의자에 앉아 12시를 기다리며, 오늘 일을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했다.
‘혹시 어제 기절한 것과 스캐너가 연관이 있는 건가?’
합리적인 의심이 가는 것부터 시작해 추론에 나섰다.
가장 먼저, 스캐너를 사용할수록 몸의 변화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물론 능력을 얻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가장 눈에 띄게 변화하기도 했고, 실제로 모니터를 통해 스캔 진행률이라는 수치로 나타나기도 하니 말이다.
다음으로 알아차리기 애매한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느껴지는 낯선 인기척부터 시작해 가끔씩 발생하는 이명, 이 모든 게 스캐너를 사용함으로써 커지고 있었다.
지금껏 잔병치레 하나 없이 건강하게 살아온 태범이었다.
병이라 해봐야 1년에 한두 번 정도 걸리는 감기 정도, 하지만 스캐너를 사용한 이후부터 신체적 변화가 있었으니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이 스캐너와 관련이 있다는 인과관계는 확실히 할 수는 없지만, 몸에서 어쨌든 느껴지는 직감이 말해주고 있다.
실제 능력을 받아들이면서, 몸의 변화는 분명히 일어났을 것이다. 능력을 얻는다는 게 곧 변화를 말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번에 발생한 기절 사건이 혹시 스캔의 영향을 받아서?’
스캐너가 어떠한 방식으로 태범에게 능력을 부여하고 있는지는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
알고 싶어도 알 수 없었다.
차라리 마법이라 하면 믿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합리적인 과학의 원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스캐너의 능력에 신기하게 감탄만 했지만, 후에는 어떤 원리로 이 스캐너가 작동하는지 알고 싶었다.
능력이 생기면서 덩달아 생긴 호기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태범에게도 스캐너의 작동원리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였다.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스캐너를 뜯어보지 않는 이상, 이를 알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캐너 작동원리를 알아가는 건 포기하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또 몇 달간을 지났고 오늘 새로운 사건이 닥치면서, 스캐너에 대한 호기심이 다시 한번 태범의 머릿속을 일깨운 것이었다.
‘도대체 이 스캐너는 무엇인가?’
* * *
[12:00]
다음 날을 알리는 12시가 됐다.
태범은 스캐너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스캐너를 실행시켰다.
[경영기술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80%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81% 진행되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강태범을 제거해야 한다. 그의 기세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자칫 어물쩍거리다가 더 이상 우리가 넘을 수 없는 벽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세계 제약회사 1위 마틴의 회장이 지닌 태범에게 관한 생각이었다.
‘제거’라는 단어라 들려오는 순간, 태범도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저들이 말로만 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선빵이지.’
오늘은 마틴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카드를 사용할 계획이었다.
양동건 박사를 배아줄기세포 조작 사기꾼으로 몰아간 사건, 러시아 생물학자 이고르 암살 사건 등 이들이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악덕 행위를 모두 퍼트릴 생각이었다.
이미 마틴의 회장과 행동대장을 스캔함으로 얻은 지식 정보면 충분했다.
아무리 세상에 휘어잡았던 이권세력이라도, 인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태범을 이길 수는 없었다.
숨겨도 숨길 수 없는 것이, 바로 스캐너의 능력을 통해 나타나니 말이다.
딸칵-
태범의 클릭 한 번으로 그들의 온갖 민낯이 SNS를 통해 모두 공개됐다.
* * *
“아니. 강태범 그놈은 어떻게 우리의 정보를 다 알고 있는 거지?”
마틴의 회장 데이비드 버니는 태범의 스낵피쳐 계정에서 믿을 수 없는 글을 읽고 있었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는 떨렸고, 항상 자신만만했던 그는 겁에 질린 상황이었다.
지금껏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이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차마 변명할 수 없는 죄목들이 논리정연하게 정리돼 있었고, 패배밖에는 답이 떠오르지 않을 지경이었다.
“혹시 우리 쪽에 스파이가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정보들이 모두 강태범 손에 있습니다.”
옆에서 같이 태범의 글을 지켜보던 마틴의 전무이사도 잔뜩 흥분해하고 있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저 정도까지 모든 정보가 태범의 손에 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고, 결국 추측의 끝은 내부 스파이가 있다는 결론이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내부에 스파이가 있는 것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알 수 없는 거잖아?”
데이비드 버니 회장도 같은 생각이다.
정말 마음을 꿰뚫고 있는 신이 아니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스파이라도 의심하는 편이 그나마 합리적이었다.
심지어 개인적인 대화까지 태범의 SNS에 올라올 지경이었으니, 사실상 어떠한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정부에서 마틴에 대한 집중 수사 명령이 내려왔다고 합니다.”
회장실 문을 황급히 열고 들어온 직원, 그의 얼굴에는 다급한 모습이 역력했다.
안 그래도 열 받아서 활활 타오르던 데이비드 버니 회장에게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분노는 폭발했고, 버니 회장은 잔뜩 화를 내며 물었다.
“뭐? 정부? 어떤 놈이 내린 지시인데?”
“의회에서 이미 동의됐고, 정부에서 직접 내린 지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정부 누구? 내 손아귀가 곧 정부인데, 도대체 누가 그랬다는 거야?”
“그게…… 총리님이 직접 명령을…….”
정치권에 뿌린 돈이 얼마인데, 데이비드 버니는 정부가 본인을 지목했다는 걸 차마 믿을 수 없었다.
정치는 민심이기 이전에 돈이었다.
돈으로 만들어진 정치, 그 중심에는 데이비드 버니가 한몫하고 있었고, 이 정치권을 손아귀에 넣을 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그 모든 것이 깨져버린 것이다.
“뭐? 총리가? 그럴 일이 없어. 확실히 알아본 거 맞아?”
현실을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애써 현실을 부정하고 외면을 하려 했지만, 마음속 불안함은 이미 현실을 자각시키고 있었다.
“안 그래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만, 이미 정해진 것 같습니다. 저희에 대한 수사는 피할 수 없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게 말이라고 하나? 어떻게 해서든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그걸 단정 짓고 있나? 내가 이렇게 쉽게 무너질 사람으로 보여?”
홧김에 말은 이렇게 했지만, 본인도 데이비드 버니 역시 방법을 떠올리진 못했다.
분에 차 애꿎은 직원만 욕먹고 있었다.
그때였다.
방금까지 버니와 대화를 나누던 임원, 아담 모리슨 전무이사가 핸드폰을 손에 쥐며 말했다.
“회장님, 전화입니다.”
“뭐? 나?”
“네. 회장님을 찾고 있습니다.”
“왜 나를 찾는데, 당신 번호로 연락을 하는 거야.”
뜬금없이 본인의 핸드폰을 건네는 모리슨의 모습에 데이비드 버니 회장은 짜증 나는 어투로 말했다.
지금 모든 게 짜증 나고 화가 나는 상황이었다.
“아니…… 그게…… 전화를 건 사람이 강태범이라고 하는데…….”
“뭐? 강태범?”
전무이사의 한마디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던 데이비드 버니의 눈이 주름과 함께 번쩍 떠졌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물었다.
“너 지금 강태범이라고 했어?”
“네. 강태범이라고 합니다.”
“전화 이리 줘봐.”
버니 회장은 안 그래도 태범과 직접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놈이길래 본인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알고 싶었으니 말이다.
버니 회장은 침을 꿀꺽 한번 삼키고는 전화를 받아들었다.
“네. 마틴 회장, 데이비드 버니입니다.”
“반갑습니다, 회장님. TB 금융 투자의 강태범이라고 합니다.”
“뭐야? 당신 정말 강태범 맞아?”
“뭘 놀라시고 그러십니까. 제 목소리쯤이야 뒷조사하면서 실컷 들어서 이제는 익숙하지 않으십니까?”
대화를 나누는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