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79화 (179/188)

# 179

“형, 와줘서 고마워.”

“뭘 그거 가지고 그래. 당연히 가야지.”

“형 덕분에 내가 체면이 살았어. 사실 다들 형이 오는지 궁금해했었거든. 알잖아, 형도. 사람들이 얼마나 형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태인이는 태범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이제는 형에게 고맙다는 인사 정도야 가볍게 할 수 있는 사이가 됐다.

원래 형제지간끼리 살가운 인사를 하기는 손과 발이 오그라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살가운 말을 대신해 욕과 장난으로 친근함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만나면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어머니에게 등 싸대기를 맞을 정도니 말 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의좋은 형제가 다 됐다.

태범이 능력을 통해 동생을 챙겨주면서부터, 진짜 형제가 우애가 무엇인지 깨닫고 있었다.

“영화 재밌더라. 솔직히 걱정이 조금 있었는데, 첫 장면 보자마자 그런 의심 싹 사라지더라고.”

“진짜, 그 정도였어?”

“장담하는데 분명 초대박 날 거야. 알잖아 형이 이래 봐도 예측하는 건 잘하는 거.”

“정말 형이 생각한 대로 대박 나면 좋겠다. 사실 손익분기점만 넘길 바라고 있거든.”

“손익분기점은 개뿔, 그보다 훨씬 이상일 거니까 더 기대해도 좋아.”

이렇게 기대심을 주고는 혹시나 잘못되어 실망감이라도 안긴다면 큰일 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기대해도 될 만큼 태범에게 확신이 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닐 테니 말이다.

사람의 심리를 이용할 줄 아는 이 영화는 감정의 발생 원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아! 그건 그렇고, 영화 보니까 내가 말해 줬던 것 대부분 들어가 있던데? 참고가 많이 됐나 봐?”

“오, 역시 눈치 빠르네. 사실 형이 말해준 조언 내가 감독님한테 다 전해줬었거든, 감독님도 마음에 들어 하셨어. 그러니까 이번에 영화 잘 되면 형 공도 있는 거야.”

“그래? 그럼 밥 한번 얻어먹어야겠네?”

“뭐, 그거야 지금이라도 당장 사줄 수 있지. 형 안 바쁘면 언제든 나한테 전화해. 무슨 일이 있어도 바로 나갈 테니까.”

동생에게 밥을 얻어먹는다는 건 의미가 있었다.

단지 물질적인 보상이 아닌, 동생이 가질 뿌듯해할 감정을 같이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처음 사회에 나가 돈을 벌고, 부모님에게 용돈을 가져다주는 것 또한 같은 이치, 물질은 명분이고 중요한 건 마음이었다.

“맞다, 형. 무대인사 때 김동원 봤지? 김동원이 형 광팬이라고 하더라. 형 얼굴 보는 게 소원이었다고 하는데, 이제 소원을 이뤘지 뭐야.”

“아니, 내 얼굴을 봐서 뭐한데. 그러고 보니 참 웃기다. 나도 학생 때 그 사람 팬이긴 했는데. 참 그러고 보면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네.”

태인이의 영화 이야기는 한참 동안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목소리에는 잔뜩 들떠 있어 흥분된 상태였다.

태범은 그런 동생의 말을 성실이 대꾸해 주며 들어줬다.

“형, 안 그래도 많이 바쁘고 힘들 텐데 괜히 내가 붙잡아 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괜찮아. 사람들하고 이야기 나누는 게 내 일인데 뭐가 힘들겠어?”

“형, 그럼 이만 끊을게. 고마웠어.”

“그래. 수고 많았다. 앞으로도 더 잘될 거니까, 기대 많이 해.”

* * *

[영화 ‘운동의 신’ 흥행을 달리다.]

└대박입니다. 보고 또 보세요.

└영화 보고 나오는 사람들 모두 훌쩍였습니다. 저도 썸녀랑 같이 보러 갔다가 눈물 참느라 죽을 뻔했습니다.

└명작입니다. 영화 제목에 속지 마세요. 솔직히 제목 보고 삼류 영화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어쨌든 대박입니다.

└기대 안 하고 봤는데 대단한 영화였습니다. 사람의 감정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는 영화입니다. 예전 강태인 작가 인터뷰 보니까 형인 강태범이 많이 도와줬다는 것 같던데, 정말 대단한 작품을 만들었네요.

“형 말이 맞았어. 진짜 대박이야.”

컴퓨터 앞에 앉아 네티즌 반응을 살피던 태인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만세를 외쳤다.

개봉 날, 반응은 하나같이 칭찬 일색이었다.

부정적인 반응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힘들었고, 이 정도 기세만 영화 흥행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아직 가봐야 알겠지만 현재까지 개봉 후 3일 관객 수가 100만을 돌파한 시점이다. 기대 이상의 영화로 입소문을 타면서 관객 수 상승곡선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게다가 영화의 주 소스가 태범이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흥행 속도에 추진력을 가했다.

“엄마, 엄마!”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태인이는 방에서 나와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왜 그래, 아들?”

“오늘까지 관객 수 몇만인 줄 알아?”

“얼만데 그래?”

“100만이 넘었데! 100만!!”

태인은 눈을 크게 뜨고는 과장된 손짓과 함께 흥분된 채 말했다.

어머니는 100만이라는 수치가 실감이 나지 않는지, 표정의 큰 변화가 없었다.

“100만이 많은 거니?”

“엄청 많은 거지! 천만 영화라고 안 들어봤어? 벌써 3일 만에 그 중 1/10을 채웠다는 거야!”

“어머! 그러니?”

어머니는 이제야 실감이 난 듯 태인의 말에 반응했다.

“영화가 이대로만 가주면 우리 영화도 천만은 찍을걸? 그럼 나도 돈방석에 앉는 거야!”

“호호호. 우리 두 아들 모두 출세했네?”

어머니는 기쁘게 웃으며 태인이의 성공을 축하해줬다.

태인이가 본인의 일에 만족을 하며 좋아하니, 어머니도 감격에 겨웠다.

태범에 비하자면 태인의 성공은 새 발의 피 수준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본 건 금전적인 성공이 아니었다.

단지 숫자의 의미만 봤다면, 태인의 성과에 어머니는 감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가 본 건 자식이 원하는 만족하는 삶이었다.

자식이 스스로를 만족하는 삶을 얻었을 때야말로 곧 어머니로서 임무를 다한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엄마 지금까지 저희 키우느라 고생 많이 했어요. 고맙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태인이의 입에서 상상치도 못한 말이 나왔다.

면전에 대고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유치원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울컥하는 마음이 차오르는 건 왜일까, 이 상황이 어머니에게는 낯설게 느껴졌지만 감정이 벅차 올랐다.

아들이 준 그 어떤 선물보다도 어머니의 마음을 울리고 있는 말 한마디였다.

* * *

TB 금융 투자, 기술사업팀 회의실.

“개방, 항상 변화의 마무리는 개방에 있는 법이었습니다. 개방 없이는 세상을 잡을 수가 없죠.”

“하지만 너무 시기상조인 것 같습니다. 지금이 가장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인데, 이걸 무료로 제공한다는 건 엄청난 손해가 예상될 겁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누구입니까? 미래를 보는 투자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좀 더 장기적으로 볼 필요가 있죠. 개방만이 장기적 싸움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언뜻 보면 과거 쇄국청책을 펼치려는 흥성대원군과 논쟁을 벌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개방인가 아닌가의 문제였다.

태범은 딥멀티의 알고리즘을 오픈소스화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나 딥멀티를 이용해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할 수 있고, 이를 수익화 시킬 수 있도록 말이다.

지금은 한정적으로 샘성 전자나 스낵피쳐 그리고 런던대 측 권한이 있는 소수의 개발진만이 딥멀티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개발에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대중들에게 공개되며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면,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소프트웨어가 나오는 건 식은 죽 먹기라 보고 있었다.

뭐가 됐든 간에 소수보다는 다수의 사람에서 나오는 결과물이 더 다양하고 대단하다는 건 당연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표님, 그렇게 된다면 기존에 저희랑 계약을 맺은 샘성 측에서도 반발이 꽤나 될 겁니다.”

기술사업팀 백석규 부장이 말했다.

도롱뇽 프로젝트와 딥멀티 추가 개발을 진행하면서 여태껐 태범과 별 이견이 없었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작정한 듯 태범의 의견에 반기를 들고 나서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염두에 둬야 할 문제이긴 하죠. 하지만 독점계약이 아니기 때문에 법률상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단지 기업 간 신뢰를 위해서 설득은 불가피하겠지만, 그 또한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태범은 백석규 부장 의견을 맞받아쳤다.

“굳이 오픈을 안 시켜도 전문가들이 최첨단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오픈되면 프로그램의 질이 나빠지는 건 물론, 프로그램의 희소성에 대한 가치가 떨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생각을 해보시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인터넷도 처음에는 군사 목적으로 사용되다가, 대중에게 사용이 됨으로써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습니다. 요즘 잘나가는 운영체제 앤드로이드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발에 필요한 소스를 오픈하여 다양한 콘텐츠의 소프트웨어를 쏟아내고 있지 않습니까?”

염려하는 몇몇 직원들에게 태범은 예를 들면서까지 설득에 나섰다.

솔직히 태범의 힘과 회사 내 권력이면 일방적으로 의견을 밀고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도 하나의 조직이기 때문에 어찌 됐든 간에 최소한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남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본인이 가진 의견 또한 문제가 있다는 걸 말하기도 했다.

좀 피곤할 수 있지만, 의견을 일치시키기 위한 토론과 논쟁은 불가피했다.

“저기 이번에 새로 들어온 장준현 사원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네? 네!”

회의실에 잔뜩 긴장한 채 앉아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이번에 기술사업팀에 새로 들어온 직원이었다.

TB 금융 투자 규모의 일반적인 회사라면 사원과 대표가 한자리에서 회의를 하는 건 드문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태범은 모든 직원에게 최대한 동등한 입장을 제공하려 했고, 모두에게 발언 기회를 나눠줬다.

“장준현 씨, 무엇이든 괜찮으니까, 아무 의견이나 내보세요. 무슨 말을 하든 욕할 사람 없으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요. 전 눈치 없이 부대방문 한 사단장이 아니니까 정~말 편하게 말하세요. 하하.”

부대에 방문해 불편한 점이 있으면 말해봐라.

흔히 부대에 높은 상급자가 와서 질문을 하면 뻔하고 좋은 말만 늘어놓기 바쁘다.

태범 역시 군 생활을 하며 경험해 봤던 스토리, 회사 내에서만큼은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자유를 재차 강조하며 누구나에게 편한 대화를 유도했다.

장준현 사원은 잠시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더니 본인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저도 대표님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프로그래밍 쪽은 소수보다는 다수에게 주어질 때 그 효과가…….”

삐-

‘이명인가?‘

장준현 사원이 입을 열 때쯤, 태범의 귀에서 삐- 하는 소리와 함께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귀 옆에서 누군가 속삭이는 것 같은 소음이었다.

가끔 느닷없이 이명이 생기는 경우가 있긴 했는데, 그와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일정한 소리가 아니라, 음이 오르고 내려가기를 반복하는 소리였다.

귀에 이물감이 느껴지는 것도 같고, 태범은 귓구멍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대표님, 어디 불편하세요?”

불편해하는 태범의 모습에 백석규 부장이 물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괜히 회의를 방해하는 건가 싶어, 그냥 참자 싶어 손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때였다.

“그럼 다시…… 윽.”

그때였다.

웅성거리는 소음이 점점 크게 들리더니, 얼마 후 소음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마치 귓속에 벌레가 들어간 기분이다.

태범은 내렸던 손을 다시 귓구멍에 가져다 대며 고통을 호소했다.

“대표님, 괜찮으세요? 대표님!”

회의실 직원들이 당황한 듯 태범을 바라봤다.

태범이 점차 고통에 찬 모습으로 바뀌어 가자 직원들도 이를 눈치챈 것이다.

‘젠장. 뭐야 도대체.’

견뎌보려 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강한 소리의 파동이 고막을 때리는 것 같다.

단순한 이명이라고 하기에는 강한 소음이었다.

소음을 귀를 넘어 두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머리가 흔들리듯 아파 오기 시작했다.

“대표님! 대표님!”

마지막 백석규 과장의 소리와 함께 태범의 의식이 사라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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