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78화 (178/188)

# 178

“아버지!”

묵묵히 옆에서 대화를 지켜보던 이주원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발언에 놀란 토끼 눈을 떴다.

어떤 자식이든 같은 반응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뜬금없이 다른 사람에게 돈을 증여하겠다니, 보통 가정의 자식이었다면 아버지를 뜯어말렸을 것이다.

사실 태범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 조금의 성의도 기대하고 오진 않았는데 전 재산을 주겠다는 말에 난감하기도 했다.

게다가 옆에는 이희현의 아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자니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괜찮습니다, 회장님. 그 큰돈을 어떻게 그냥 받습니까? 그냥 말씀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다.”

사실 마음이 흔들리긴 했다.

그저 지갑에서 꺼낸 용돈 몇 푼 주워준다는 것도 아니고, 이름 있는 회장이 본인의 전 재산을 증여하겠다니 망설이게 되는 건 당연했다.

만약 스캐너의 능력을 손에 얻기 이전에 똑같은 제안을 받았다면, 정말 고민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돈 부러울 것 없는 모든 걸 갖췄으니, 욕심이 줄었기에 거절할 수 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돈은 내게 있을 돈이 아니라서 말이죠. 모든 재물에는 알맞은 주인이 있는 겁니다. 아무리 명검이라도 검객이 아닌 농사꾼에게 주어지면 그저 나무를 자르고 풀이나 깎는 데 쓰일 뿐이죠. 돈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가치는 내가 아닌 태범 대표에게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희현은 일장연설을 늘어놓으며 이 상황에 타당성을 제시했다.

참 웃기다.

돈을 받겠다는 것도 아니고, 주겠다며 저리도 애를 쓰시다니 말이다.

지금 저 멀리 영국에 있는 어떤 놈은 돈 때문에 사람까지 죽이려 드는데, 병실 침대에 앉아 있던 노인은 본인의 돈을 주겠다며 떼를 쓰고 있다.

크게 보면 같은 사람인데 이렇게 다른 성격을 지니다니, 사람은 알다가도 모르는 존재였다.

“이렇게 급하게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회장님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나 많으실 텐데,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가당치도 않습니다.”

태범이 한사코 거절하자, 썩어가던 아들 이주원의 표정이 점점 풀렸다.

다행이다.

이주원에게 태범은 한순간에 나쁜 놈이 될 뻔했으니 말이다.

태범에게 한없이 온화했던 이주원이였지만, 본인 아버지의 핵폭탄 같은 발언에 한순간에 적이라도 된 듯 느껴지고 있었다.

어쨌든 한사코 거절하는 태범에 이희현 명예회장도 더 이상 제안하지 않았다.

“역시! 강태범 대표, 사람이 되고도 너무 됐어. 세상에 이 큰돈을 마다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역시 아버지 말대로 대단한 분 같습니다.”

“확실히 돈이 아닌 더 커다란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 사람이 돈만 목표로 하고 달리는 것보다 더 커다란 의미를 쫓는 사람들이 더 대단한 거거든.”

이희현은 제안을 멈춘 대신 태범을 치켜세우기 바빴다.

옆에서 이주원도 안도와 함께 아버지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양쪽에서 가해지는 부자(父子)의 칭찬에 태범은 입술을 꿈틀거리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대표님, 저희 그룹 차원에서도 TB 금융 투자에 대한 투자를 고려해 보겠습니다. 어떤 투자 목록이든 제게 말씀만 해주세요. 오늘 확실히 대표님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네요.”

태범에 대한 칭찬을 거들던 이주원은 태범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 * *

“여보! 시간 없어 빨리 나와.”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봐.”

“어휴. 네 엄마는 항상 이렇게 늦어요. 정말.”

가족이 외출할 때면, 언제나 그랬듯 늦게 나오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도 여자다 보니 화장도 해야 하고, 옷도 나름 꾸미려 애쓰다 보니 생기는 일이었다.

매번 외출 때마다 있는 일이지만, 어머니와 28년을 같이 산 아버지는 여전히 투덜거리고 계셨다.

기다림은 적응할 수 없는 속성인가 보다.

“빨리 좀 나오지. 그러다 영화 다 끝나고 가게 생겼네.”

드디어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한껏 화장을 마치고 옷도 유행을 아는 세련된 사모님처럼 입으셨다.

그렇게 세련된 사모님이 된 어머니와 멋쟁이 아버지를 모시고 태범의 차에 올랐다.

오늘은 가족끼리 모여 영화를 보러 가는 날이었다.

태범의 가족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부모님이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98년도에 개봉한 타이타닉인 만큼, 영화로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들뜬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동생 태인의 웹툰이 영화화되어 시사회를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늘은 태인이에게 초대를 받고 영화관에 가는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린애처럼 투정만 부릴 줄 아는 놈이었는데, 이제는 사회인이 다 돼서 영화 초대까지 하는 것이다.

부모님만큼이나 태범 역시 뿌듯했다.

까불거릴 줄만 알던 놈이 이제는 다 컸다.

물론 태범의 도움이 막강해서 이뤄낸 결과이긴 하나, 어쨌든 보기는 참 좋았다.

그렇게 온 가족이 영화를 기대하며 용산에 있는 영화관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사람들 반응이 왜 이런 다냐.”

“왜?”

“아니, 이것 좀 봐봐.”

아버지는 스마트폰 액정 위를 천천히 터치하시며 느릿느릿 글씨를 적었었다.

[운동의 신]

초록 창에 검색한 것은 태인이 참여한 영화 ‘운동의 신’

그중에서 가장 먼저 뜬 기사를 클릭해 네티즌 반응을 보고 계셨던 것이다.

잔뜩 들떠있던 아버지였는데, 무엇을 봤는지 표정이 잔뜩 굳어져 있었다.

태범은 아버지가 건넨 스마트폰 속 기사를 살펴봤다.

[인기 웹툰 운동의 신, 영화로 개봉.]

기사의 내용은 단순 홍보성 기사였다.

영화가 언제 개봉하고, 대충 어떤 줄거리 인지 설명하는 그런 흔한 기사.

아버지가 놀란 건 기사의 내용이 아니었다.

└헐, 결국 이게 영화로 나오네. 솔직히 노잼일 듯.

└아무리 천재 강태범 대표 동생의 웹툰으로 영화화했다지만,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예전에도 이것과 비슷한 웹툰이 있었지. 웹툰으로 인기가 많았지만, 영화로는 폭망했던 ‘싸움왕’이라는 영화.

└동생이 강태범 이름 팔아서 만든 영화 아닌가, 솔직히 웹툰이 재밌는 건 인정하나, 영화는 도저히 나올 게 아님.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상상도 안 된다.

└보지도 않고 왜 이렇게들 부정적이세요.

└전 다른 사람 평가보고 나서 볼랍니다. 절대 먼저 볼 용기는 없네요.

네티즌들은 이번 영화에 많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었다.

웹툰의 소재가 판타지와 스포츠가 결합되었고, 간단히 웃고 즐길 수 있는 전형적인 단편적인 스토리였기 때문이다.

영화로 나오기에는 너무 가벼운 소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자칫 영화의 구성을 엉망으로 하고, 연기를 너무 가볍게 했다가는, 영화가 가볍다 못해 아예 날아갈 기세였다.

네티즌들의 걱정과 똑같이 태범 역시 우려가 되긴 했으나, 기대에 부푼 부모님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드릴 수는 없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스마트폰을 끄며 말했다.

“아빠, 이런 거 신경 쓸 필요 없어. 아직 영화 보지도 않고 뭘 알겠어? 그냥 사람들이 시샘하는 마음 때문에 이런 거야.”

“아, 그런 거니?”

태범의 태연한 척하는 연기에 아버지는 조금이나마 걱정을 좀 덜었다.

하지만 이제, 아버지가 아닌 태범의 마음에 불안함이 싹트고 있었다.

* * *

차에서 내린 태범과 가족들은 경호를 받으며 영화관으로 입장했다.

시사회가 열릴 곳은 국내에서 2번째로 큰 영화관이었다.

쇼핑몰 내에 위치한 영화관으로 많은 유동인구가 있기 때문에, 경호에 특별히 신경 쓸 필요가 있었다.

“뭐야. 강태범 아니야?”

예고 없던 태범의 등장에 관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웹툰작가 강태인이 강태범의 동생이라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으나, 설마 이렇게 시사회장에 모습을 드러낼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 말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대통령이 작가 친구의 영화 시사회장에 모습을 드러낸 거랑 같았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초미의 관심사가 바로 태범의 동향이었고, 그런 태범이 직접 영화관에 나타났으니 사람들 눈에는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여기저기 오! 거리며 환호성과 함께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범아,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너 알아보네.”

자리에 앉은 어머니가 신기한 눈으로 주변을 보며 말했다.

태범이야 이제 익숙한 사람들의 반응이었지만, 부모님 입장에서는 여전히 이런 관심들이 신기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영화 시작 전 무대 인사를 위해 출연진들이 스크린 앞에 섰다.

그리고 거기에는 동생 태인이도 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배우 김동원입니다.”

출연진들과 영화감독님, 작가들이 한 번씩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고는 간단히 인사를 건넸다.

다들 스크린에서 많이 보던 유명 배우들이었다. 역시 대기업과 함께한 영화라 그런지 달랐다.

“와!!”

꽃미남 배우가 마이클 잡을 때면 관객의 환호성이 커졌다.

‘후…… 잘돼야 할 텐데.’

환호성을 들으니 은근 긴장이 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생이 참여한 영화라 그런지 반응이 신경 쓰이는 건 사실.

게다가 아까 아버지 스마트폰으로 본 네티즌들의 부정적인 반응이 자꾸 머리에 떠올라, 혹시나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만약 영화가 정말 재미없어 관객의 분위기가 싸해지기라도 하면, 동생에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미리 머릿속으로 떠올리기까지 했다.

으! 상상하기도 싫다.

“편하게 보고 즐길 수 있되, 깊이 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즐거운 관람이 되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감독의 인사가 끝나고, 출연진들과 감독은 무대를 떠나며 영화가 시작됐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 모습부터 스크린에 나타났다.

영화 내용은 이랬다.

몸과 정신이 나태와 태만으로 가득 차 있던 아이가 각종 운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스토리였다.

경험하는 운동에 따라 만나는 인연들이 다르고, 삶의 의미를 전달해 주는 사연들도 담겨 있었다.

‘오오, 저건 내가 추천해서 넣은 대사인데?’

영화가 진행되는 곳곳에 태범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웹툰을 그릴 때와 마찬가지로 영화화가 확정되고, 동생과 연락을 할 때마다 조언을 해주곤 했다.

사실상 태인이의 성공한 웹툰도 태범의 힘이 절반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영화까지 이리될 줄은 몰랐다.

태인에게 조언 그리고 추천했단 말들과 대사들, 그리고 스토리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이 영화 속에 담겨 있던 것이다.

영화를 보내는 내내 ‘어? 이건!’ 하며 머릿속 기억을 일깨웠다.

어두운 영화관 조명 때문에 관객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소리를 통해 분위기로 느낄 수 있었다.

영화가 전해주려는 감정의 상황에 따라 관객들이 반응하고 있던 것이다.

“하하하하!”

코믹한 장면이 나올 때면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빵! 하고 터져 나왔다.

피식도 아니었다. 허파가 들썩거릴 정도로 폐 안에서부터 나오는 커다란 웃음이었다.

주위에 있던 경호원들도 키득거리며 입 밖으로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는 모습이 보였다.

슬픈 장면이 나올 때는 언제 웃었다는 듯, 여기저기서 콧물을 들이마시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가 또다시 웃고, 엉덩이에 뿔이 날 지경이었다.

‘와…… 결국 대박영화 하나 나왔구나.’

영화를 보는 내내 태범은 감탄을 이어갔다.

영화 시작 전까지 했던 걱정은 완전히 사라진 지 오래, 오랜만에 영화다운 영화를 보고 있었다.

많은 감정과 스토리를 담아내려다 보니 자칫 망할 수 있었는데, 공통된 주제를 잔가지 식으로 잘 펼쳐나가 완성된 짜임을 보인 영화였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다.

태범과 가족들은 태인이의 이름을 찾기 위해 스크린 위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엄마, 저기!”

스크린 위에 강태인이라는 이름 석 자가 올라가자 태범이 이를 알렸다.

태인의 이름을 본 부모님의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허허.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보다. 이번 영화 최고다, 최고!”

영화관에 시작할 때와 끝날 때의 표정이 360도 바뀐 아버지였다.

네티즌들의 반응을 본 이후부터 걱정 가득하던 아버지는 영화를 본 후 모든 불안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영화는 아버지의 눈에도 완벽했다.

감동을 받았는지 눈 밑에는 눈물 자국이 보일 정도였다.

아버지가 요즘 갱년기라 그러신지 눈물이 많아지시긴 하셨다.

나이가 들면 남성호르몬이 상대적으로 줄면서 감수성이 풍부해진다고 하던데, 영화가 주는 감동을 견디다 못해 눈물을 흘리신 것이다.

뚜르르-

그렇게 엔딩 크레딧까지 모두 마치고 영화관을 떠나려던 때였다.

태인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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